4월 19일 일기. 행정권력의 근대화. 영화들.

Comment 2015. 4. 19. 22:08

주말에는 가족에 일이 있어서 잠시 고향에 내려갔다 왔다. 토요일 집회 이야기는 일요일에야 들었고, 가족들은 다시금 내가 절대로 집회에 가지 않기를 요구했다(나는 "합법적으로 잘 하겠다"고 답했다...진심이다).


 2008년 광우병 파동/한미FTA 집회 때도 비슷한 맥락이었는데, 한국우파 집권세력의 비합리성은 사실 놀라울 정도다. 행정권력의 효율성이란 입장에서 본다면, 솔직히 분향소 정도까지만 터주고 적당한 공간만 확보해주었다면 이미 탈정치화된 대중은 추모만 하다가 귀가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08년도 때도 대통령도 아니고 장관이나 총리급이 초반부에 적당한 제스쳐만 취했어도 사그라버리고 말 일이었다--4월 말까지만 해도 광우병 촛불은 거의 '듣보잡' 수준이었고 이른바 진보적인 대중카페에서도 별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08촛불은 물대포가 등장한 순간 폭발했다(나는 개인적인 일도 얽혀서 그때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과 꽤 다른 관점을 갖고 있는데, 언젠가 써 볼 생각이다). 08년도나 지금이나 사실 사태의 핵심에는 행정권력의 놀라울 정도의 무능함이 있었는데--밀양 송전탑 사태를 그런 사례들의 하나로 언급할 수 있겠다--우파들은 시위를 진압한 뒤 거들먹거리기에 바빴다. 좀 더 심각한 건 한국사회에 두 개의 사고체계, 그러니까 '법과 질서가 승리했다'와 '전제권력의 억압을 깨트리자'라는 식의 사고만 횡행할 뿐 이러한 사태들로부터 행정권력의 효율적인 운용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근대화의 기준이 법과 경제, 그러니까 민주적 제도와 경제적 지표의 층위에서만 논의되면서 우리가 놓친 것들 중 하나는 행정권력을 포함해 지배적인 세력의 통치술의 근대화라는 주제다. 단적으로 말해, 한국 행정권력의 통치술은 아직도 전근대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조금 더 역사적으로 바라보자면, 김대중-노무현 기에 행정권력운용 차원에 있어서 '선진화'가 시도되었고--예컨대 한미FTA는 행정권력이 스스로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광고하기 시작한 첫 사례 중 하나다--, 이명박 정권 이후 통치의 세련됨 혹은 효율성이란 측면에서 한국은 급작스럽게 후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박근혜 정부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진정성을 갖춘 우파라면 효율성의 측면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열등함을 인정해야 한다. KTX 사태나 밀양, 그리고 세월호 국면에 이르기까지 박근혜 정부가 덜그럭거렸던 일들의 대부분은 사실 별 탈 없이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이었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일들이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정부의 비효율성을 증명한다. 예를 들어 세월호 국면은 유가족들이 대통령을 바라보고 울부짖었을 때 대통령 본인이 하루 정도 투자한 뒤 특별조사위를 돌렸으면 애초에 이렇게 지지율 하락 및 대규모 경찰력의 동원을 감수하는 사태로 전개되지 않았을 거다. 08년도부터 시작해서, 야당이 지리멸렬해진 이후 거의 모든 사안에서 주도권을 잡은 건 우파고 실제로 지금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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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스키외의 <페르시아인의 편지>_Lettres persanes_의 조악한 국역을 읽었다. 시간적 이질성과 공간적 이질성을 함께 다루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문명사적 관점을 도입한 서구근대 최초의 텍스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텐데, 여기에 프랑스 사회에 대한 아이러니컬한 시선, 그리고 사회의 통치와 가정의 통치 같은 내러티브들이 엉켜 있기 때문에 흥미롭다. 혈거인들의 이야기도 재밌긴 한데 <법의 정신>까지 일단 봐야겠다.


영화를 보았다. 곤 사토시의 <천년여우>, 이라크 전쟁의 시점에서 68정신을 회고해 교차시키는 매우 흥미로운 텍스트인 <초 민망한 능력자들>_The Men Who Stares at Goats_(한국에서는 이런 작업이 나올 수 있을까?),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이 텍스트도 국가 대 개인이라는 프레임으로 볼 수 있다), 아르젠토의 <서스피리아>를 보았다. <능력자들>과 <서스피리아>가 가장 인상적이었고 언젠가 이야기해볼 것도 많을 성 싶다.



그리고 미루어놨던 Smollett을 이제 미친듯이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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