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일 외.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Reading 2014. 12. 4. 14:24

박권일 외.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자음과 모음, 2014. [무크지 모멘툼 제1권]


: 얼마 전에 언론에 소개되기도 해서 곧바로 구해 읽었다. 분량은 220쪽인데 판형은 작고 글자는 크고 줄간격도 넓어서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여섯 필자의 소논문(?) 한 편 씩이 실려있고, 문순표와 박권일이 40쪽 정도, 이택광이 20쪽 정도, 나머지 필자 셋이 30쪽 정도다. 대략 오늘날 새롭게 등장한 한국의 극우파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각자의 관심사에 맞춘 주제를 채택해서 쓴 글들 모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장 이론적인 언어로 씌어진 문순표의 글을 포함해 까다로운 글은 없고 슉슉 넘기며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소득이 없는 텍스트도 아니라서 12,000원이라는--요즘 인문 학술서치고는 싼(?)--가격과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는 독자라면 한번 정도 구해서 읽어봐도 나쁘지 않겠다. 일본 이와나미쇼텐에서 종종 시의성 있는 현안에 대해 관련 전공자를 섭외해 논문 몇 편을 실어 가볍지만 무의미하지는 않은 읽을거리를 책으로 출간한다고 들었다. 이 책도 그런 비슷한 느낌이다(글이 좀 더 가벼울지는 모르겠다). <일베의 사상>이나 김학준의 석사학위논문을 대체할 연구서는 아니지만 이 텍스트들과 같이 한국의 극우파를 이해하기 위해 염두에 둘 수 있는 글들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박권일의 글은 '일베' 혹은 한국의 넷우익에 대한 전반적인 스케치다. 하나로 관통하는 이론적 틀이나 입장이 그렇게 선명하게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 일베에 대한 기존의 대중적인 논점들을 골라서 검증하고 자신의 의견을 더한다. 개인적으로 국정원과 같은 국가기관-권력의 개입을 일베분석에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은 동의한다(23); 물론 나는 일베적 의식과 국가의 관계가 그것보다 더 깊다고 생각하지만. 평이하고 한번쯤 죽 읽으면 재밌는 글이다.


 김민하는 극우정당이 가능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초점에 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미 양당제가 뿌리깊고 후발주자의 진입장벽이 높은 정당/선거제도를 감안할 때 새누리 외의 극우정당이 등장하기는 어렵지 않냐는 얘기. 개인적으로는 예전부터 양당제가 안정적으로 자리잡힌 국가에서는 파시즘이 등장하기 어렵지 않나라고 생각해왔기에 수긍이 가는 얘기다. 그러나 그러한 결론만으로 만족스럽지는 않은데, 새누리 내에서 이러한 극우파를 어떤 방식으로 비/공개적으로 활용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새누리 내에서 (예전의 오세훈을 비롯해) 보다 '급진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대표하려는 이들이 있어왔는데 이들이 새누리당 내부에 어떠한 효과를 끼칠 것인지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지만 다루어지지 않는다. 기승전결이 깔끔하지만 분석으로서 아쉽다는 인상이 남는 건 이미 극우를 주기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가져가는 정치세력을 정작 논의하지 않은 채 새로운 극우정당의 출현가능성만을 다루기 때문일 터이다.


 김진호와 남상욱의 글은 각각 반공-극우 개신교 역사와 일본의 우파-극우파 역사를 다룬다. 어떤 면에서 짧지만 지금까지 잘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이라는 점에서 이 책 전반에서 가장 흥미로운 논의들이기도 하다. 김진호의 글은 특히 서울시 인권헌장을 둘러싸고 극우 개신교도들이 혐오하는 집단-주체로 등장한 지금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비록 글 자체는 이 이슈를 다루지 않지만) 참고할 사항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반공->성공지향->외부의 타자 공격이라는 한국 우파 개신교사는 체크할 부분. 남상욱은 (개개인의) '생명'이라는 개념이 전후 일본에서 좌우파 모두의 이념적 지형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면서 포스트모던기 이후 생명을 자기 식대로 전유하는 새로운 우파의 등장을 저지할 수 없게 되었다고 설명하는데 일본쪽 이데올로기 연구자들은 흥미롭게 생각해볼 내용인듯 싶다.


 아마 나 자신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저자는 문순표일 것이다. 그는 <계몽의 변증법>의 구도로 한국 진보의 계몽주의가 어떻게 일베와 같은 새로운 우파의 정신, 그중에서도 "팩트주의"를 배태했는가를 그려내려고 한다. 나 자신이 한국 자유주의 진보와 새로운 극우파의 출현을 변증법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큰 틀에서 문순표의 입장에 동의한다. 다만 논의를 조금 더 세부적인 지점에까지 밀착시키는 게 더 좋지 않은가, 예컨대 이전의 한국 진보세력을 표기하는 레테르로 "계몽주의"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인 언술이 가능하지 않은가 및 일베 및 새로운 우파 분석이 "팩트주의" 이상의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고는 생각한다. 짧고 이론의 언어로 기술되어 있지만 가끔 멈춰서 생각해보면 좋은 대목들이 있다.


 마지막 이택광의 글은 파시즘이라는 이름을 다시 꺼내면서--그러니까 이 책은 일베로 시작해 파시즘으로 끝난다--파시즘을 자유주의 이후에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정치담론으로 놓고 오늘날의 국면이 신자유주의 이후에 파시즘적 정치가 도래되는 것으로 봐야한다는 주장이다. 주장이나 결론은 동의하는데 (물론 이게 그렇게 새로운 이야기인지 모르겠다...파시즘을 2차 대전에만 묶어두려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얘기지만, 애초에 <계몽의 변증법>이나 칼 슈미트의 입장, "근대의 초극" 등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낯설지 않다) 글이 충분한 시간을 두지 않고 씌어진 것인지 좀 난삽하다. 논지 전개도 (다른 필진들의 글에 비할 때도) 정리가 안 된 채로 꼬여있어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정리하는게 어려운 독자들도 있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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