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일기. 취미(취향)와 타인 / 카프카적인 꿈.

Comment 2014. 11. 10. 02:10

1.


취미taste가 발달한다는 것은 미묘한 지점에까지 차이를 볼 수 있게 됨을 뜻한다. 전에는 특성없는 것, 같은 것, 뭉툭한 덩어리로 보였던 대상들이 어느새 뚜렷하게 별개의 것들로 갈라진다. 이전까지는 사소하고 아무래도 상관없던 차이들이 중요한 의미를 품고 다가온다. 마치 포탄을 쏠 때 단 1도의 오차가 수십km 바깥에서 엄청난 차이를 유발하는 것과 같다. 사람과의 만남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작은 말 한 마디가 언젠가 근본적인 차이로, 경우에 따라서는 도저히 같이 있을 수 없을 정도의 거리감으로 다가오리라는 사실을 '안다'. 취미가 발달한다는 것은 그러하므로 대상만이 아니라 취미가 발달한 인간, 섬세한 차이를 구별하게 된 인간 자체를 독특한 존재로 만든다. 그 독특함이 때로 그 자신을 고립시킬지라도 말이다.


타인과의 차이를 끌어안고 사는 일은 물론 많은 노력과 고통이 따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취미와 섬세함의 문제라면, 그리고 그 차이가 옳은지 그른지 결정하는 일이 당위적인 판단력에 달려 있다면, 차이와 더불어 살고자 하는 이는 인내와 같은 특정한 덕성을 요구받는다. 보는 것, 결정하는 것과 무언가를 끌어안고 때로 고통을 감수하며 함께 산다는 것은 다르다. 차이로부터 고개를 돌리거나 뭉뚱그려 묶어버리는 태도와 차이를 인식하고 알고 함께 살고자 하는 태도는 다르다. 전자는 자신의 인식을 타이르고 속이는 일로 끝나지만, 후자는 노력과 인내를 요구한다. 그런 점에서 확실히 관계로서의 삶은 인식과 판단의 논리로만 설명될 수 있지 않다. 우리는 견디고 견디는 과정에서 무언가 새로운 국면으로의 상승 또는 이행을 보아야만 한다.


타인으로부터 차이를 보는 것, 차이를 묻어버리지 않는 것, 그리고 어떻게 차이와 함께 살지를 고민하는 것, 그 차이와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관계는 불안정하고 불확실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그 타인이 자신과 같은 판단을 내리고 같은 고통을 감수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덕이 어떠한 자발성, 자율성으로부터 나오는 무언가라면 우리는 타인이 덕을 갖추기를 바랄 수는 있어도 요구할 수는 없다. 그게 관계의 시작 전과 후를 가르는 결정적인 분기선이다. 우리는 그 앞에서 늘 비관적인 인식을 곁에 두고 목숨을 걸 수밖에 없다.




2.


약간은 카프카를 떠올리게 하는 꿈을 꾸었다.


학회장이었고 막 유학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발표가 있었다. 나는 일개 학생이었고 어떤 질문들을 할 수 있을지, 이 발표가 정말 쓸만한 내용인지 아닌지를 동학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과에서 해외학술행사 담당을 맡고 계신(...) 모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무언가 말씀을 하시던 중 갑자기 행사장에 나와 비슷하거나 조금 윗 연배처럼 생각되는 낯선 여성이 들어왔다. 시끌시끌한 분위기여서 딱히 주목을 끌지는 않았다. 그는 웃는 얼굴로 선생님께 무언가 이야기를 했고 선생님은 애매한 표정으로 내게 그를 따라 나가보라고 하셨다.


밖의 다소 훵한 주차장에 나가니 아저씨 한 명이 승용차 운전석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둘은 아마도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을 형사들이었다. 여성은 내가 경찰서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꿈 속에서도) 특별히 죄를 저지른 게 없었기에 황당한 기분으로 무슨 죄냐고 물었다. 그의 답변은 다소 횡설수설이었으나 요점은 "묵비권 행사죄"였다. 내가 아마도 정치적일 특정한 주제에 대해 답변을 거부했다는 것 자체가 체포사유로서의 죄라는 것이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무언가를, 심지어 질문받는 절차조차도 없었음에도,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죄가 성립할 수 있다니, 꿈 속에서도 카프카가 떠올랐다. 그는 이 이야기를 웃는 얼굴로 했고 나는 그게 본인도 이 이유의 어처구니없음을 알고 있어서인지 누군가를 이토록 쉽게 체포한다는 게 즐거워서인지 아니면 그저 어쨌든 웃으면 좋아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즉석에서 파란색인지 보라색인지 분홍색인지 하여간 조야한 빛깔의 플라스틱 끈(주로 박스 포장에 사용하는)으로 수갑 비슷한 포승줄을 만들어 내게 내밀었다. 어처구니 없었으나 반쯤은 체념한 기분으로, 반쯤은 내가 저지른 죄가 없다는 확신으로 포승줄의 고리에 두 손을 넣었다.


승용차 뒷자리에 앉아서 어디론가 갔다. 서초/관악경찰서(물론 실제로 둘은 다른 곳이다)로 가는 그렇게 넓지 않은 도로는 양 옆에 빽빽이 들어찬 높은 건물들의 그림자로 뒤덮여 있었다. 동이 트기 전의 새벽녘처럼 느슨한, 경계가 흐려지는 분위기 속에서 인도 위의 행인들은 독특한 차림새였다. 그들은 희고 분홍 빛깔의 가면을 쓰고 검은 망토 안쪽으로 가면과 마찬가지로 백색과 적색, 분홍빛의 구획들로 나뉘어진 옷을 입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특이하고 불길한 느낌을 주는 것은 그들의 몸가짐이었다. 그들의 몸은 좌우로 흐느적거리듯 흔들렸고 그 나른한 리듬은 보는 이를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어두운 구역으로 끌어들이는, 유혹적이되 불안하고 어쩌면 치명적으로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주었다. 꿈 속의 세계에서 나는 그들의 출현이 법, 질서, 정상성의 감찰이 희미해진 특정한 순간에만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경찰들은 거리를 듬성듬성 배회하는 그들을 다소 경멸적으로 흘깃 쳐다보았고 그저 속도를 높여 재빠르게 지나칠 뿐이었다.


도착한 곳은 경찰서가 아니라 식당이었다. "밥은 먹고 살아야지"라는 종류의 다소 뻔뻔스러운 느슨함, 어차피 이 일도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일 뿐이라는 태도가 있었다. 가게는 작고 정갈했으나 너무 세련되지 않았다. 허름하지만 지저분하지 않다는 정도의 말이 어울리겠다. 우리가 이런 분위기의 식당에 암묵적으로 부여하는 믿음처럼 그곳은 아는 사람만 아는 맛집이었고, 끓여낸 흰 국물에 무언가 씹을 수 있는 건더기로 꽉 들어찬 식사가 나왔다. 나는 무언가 셋 중에서 가장 아랫 사람 정도의 위치였고 가장 나이가 많은 남자형사부터 메뉴를 골랐다. 식사는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무언가 매우 맛있고 꽉 들어찬 밥을 먹었다는 것만 떠오른다.


식사를 마친 뒤에도 나는 여전히 경찰서에 갈 수 없었다. 형사들은 서에 들어가기 전에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남자는 운전석에 앉아 핸들에 기대어 쉬고 싶어했고 여자는 라디오인지 DMB인지 무언가 소리가 나오는 기계를 틀고 싶어했다. 놀랍게도 운전석에 앉은 남자의 무릎 위에 (등을 남자 쪽으로 돌린 채로) 여자가 앉았다. 뒷자석에 앉은 나는 이들이 실제로 연인 사이일까, 아니면 부녀관계와 비슷한 관계일까--겹쳐서 앉아있는 둘의 자세가 명백히 성적인 함의를 연상케 했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관계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았다--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들에게는 이러한 자세가 완벽하게 익숙해보였는데, 남자는 심드렁하게 핸들에 기대어 쉬고 있을 뿐이고 (이 구도에서 갑자기 몸이 작아진 것처럼 보이는)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핸들 아래에 놓인 DMB 기구를 틀고 다시 조수석으로 와서 차 안을 조금씩 점유하는 음악을 들었다.


다시 차가 움직였다. (현실의 관악경찰서를 연상케하는) 경찰서가 보였다. 그러나 이들은 그 앞에서 멈추지 않고 또 다시 어디론가로 향했다. 이들이 공동으로 살고 있는 숙소였다. 마치 커튼 사이로 늦은 오후의 햇빛이 파고들어와 채운 공간처럼 이들의 아파트 방에는 눈이 아프지 않은 노란 색과 황색 사이, 혹은 조금 옅어진 갈색의 벽이 있었다. 적당히 따스하고 적당히 포근한 공간이었다. 남자는 들어온 뒤 곧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깔고 잠들었다. 여자는 자신의 방에서 기타를 꺼내었고, 곧 어딘가 다른 곳에 있던 그의 애인이--그러니까 이 집에는 세 명이 살고 있는 셈이었다--나와 마주보고 자신의 기타로 함께 연주했다. 누구도 나에게 신경쓰지 않고 있었지만 나는 내가 철저하게 부자유함을, 나 자신의 자유 의지로 이 공간을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았다. 버려졌지만 구속되어 있는 처지에서 간절하게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기분과 함께 잠에서 깨었다.


이 꿈이 더 카프카적인지, 아니면 이 꿈 전에 꾸었던 (선임들이 가득한!) 군대 꿈이 더 카프카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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