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을 처음 읽은 순간

Comment 2014. 11. 9. 01:08

<스스로를 지운 '자본론' 번역자, 그는 지금 어디에>

기사 링크: 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38282.html



“비루하고 누추한 이 현실의 누더기 속에서 한 세대의 젊은 사람들이 <자본론>을 금기로부터 해방시켰고 <자본론>을 읽을 수 있게 함으로써 그것을 비신화화했다”




기사 본문의 요지랑은 특별히 연관이 없는 한 문장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문장을 곱씹는다. 우리는 정말로 <자본론>을 읽고, 제대로 이해하고, 또 그것을 비신화화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학생운동과는 특별한 접점이 없고 좌파는커녕 당대 분위기를 따라 어중간한 자유주의자들이 가득한 시공간에서 학부시절을 보냈다. 신기한 일은 머리 한 켠에 맑스와 <자본론>에 대한 무언가 어렴풋한 의무감이 계속해서 있었다는 것이다. 주변에 그 책을 읽으라고 권하는 사람도, 그 책을 읽고 있는 사람조차도 없었는데--적어도 내 눈에 띄진 않았는데--언젠가는 <자본론>을 읽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어딘가에 있었다. 무언가 나와 전혀 별개의 곳에 있는 지식일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다지 좋아할 수 없는 세상의 질서에 대해 가장 반항적인 지점에, 다른 한편으로는 지식으로서 가장 고차원적인 지점에 <자본론>이 있다는 근거없는 생각이 있었다; 당시 내 주변의 또래들은 아무도 이 책을 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나 혼자만의 느낌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론>으로 가는 길은 험난해보였다. 선배들이 저 책을 읽기 전에 사전연습으로 이진경의 책을 읽다가 매우 어려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위의 두 학번 정도를 기점으로 반에서 공부하는 모임은 사실상 존속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러한 어려움을 버티고 같이 책을 읽어나갈 선배들 또한 없었다. 학부 4년 간 선배들 없이 동기 및 후배들과 세미나를 했고 어쩔 수 없이 거의 항상 세미나의 진행에 책임을 떠맡은 입장으로 살았다. 당연히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이야기해주는 사람은 전무했다. <자본론>은 누구나 한번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매우 어렵다고만 알려진 책이었다. 무협지의 표현을 빌려 '주화입마'에 빠지지 않으려면 사전 독서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말만 떠돌았다. 잘못 읽으면 읽는 이의 정신까지 망가트릴 정도로 엄청난 책인 셈이었다(물론 정신의 파괴를 감수하고 도전하는 사람은 내 주변에는 없었다). 심지어 그 사전 독서리스트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야기해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나는 그 말이 도대체 누구의 입에서 나온 것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단지 <자본론>의 어려움에 대한 유령이 심지어 아무도 그 책의 주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 과반 공간에서조차 조용히 한 구석에서 과반을 배회했다. 나 역시 그 책을 세미나에서 함께 읽기에는 스스로가 지적으로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혼자 <공산당 선언>만을 읽었다. 강유원의 입문서는 독학을 강요받은 이에게는 나름 귀중한 자산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석사 들어오면서 처음 맞은 이론 세미나에서 <독일 이데올로기>를 발췌독으로나마 흘깃 보았다. 대학원 선배들 중에도 <자본론>을 어느 정도 읽은 사람은 매우 드물었고 아무도 그 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알튀세르의 이름은 흘깃 나왔지만 막상 <자본론>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다. 알튀세르가 <자본론>은 매우 읽기 어려우니 책을 읽는 순서가 따로 있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정도였다. 그렇다고 학내외 공부모임을 찾아다니기에는 그 분위기가 너무나 두려웠다; 어쨌든 '나는 운동권이 아니다'는 그런 나이브한 감각이 있었다(대신 혼자서 벤 파인의 개설서를 찾아 읽었고, 주변 사람들을 모아 스미스의 <국부론>을 읽었다). 한번 <자본론>을 읽기 위한 모임에 들어갔지만 역시 목표에 이르지 못하고 끝났다. 결국 처음 <자본론>을 펼친 때는 정확한 시기가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도 석사 1년 차가 끝날 때쯤이었을 것이다. 하루에 국역본으로 100쪽 정도씩 읽었던 것 같다. 알튀세르가 했다고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초반부 어딘가에 정말 매우매우 어려운 부분이 있고 이 부분에서 막히면 일단 다른 부분들을 읽은 뒤 되돌아와야 한다고 했다. 독학자는 어디가 그렇게 흉악한 부분일까, 어디쯤에서 막힐까 두려움을 갖고 각 장을 넘겨야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끝까지 다 와 있었다. 특별히 막히거나 너무 어려워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 부분은 없었다.


(미리 변명을 해둔다면, 나는 <자본론>을 통해서 맑스의 경제이론 체계를 구축한다거나 철학적으로 맑스를 한 줄 한 줄 따라 읽는다거나 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내 관심사는 단지 맑스가 대충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큰 개요를 흐릿하게나마 붙잡는 것, 혹은 조금 평범한 말로 문자 그래도 <자본론>을 읽는 것이었다...<자본론>을 연구하거나 비판하는 건 일단 '읽은' 뒤의 일이다. 지금도 그렇다. 읽기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는 세목에서 맑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하고 그 끝에서 대략의 요지 및 주장을 정리하는 것이다)




<자본론>은 그렇게 난해한 책이 아니었다. 물론 그 책을 깊게 학적으로 연구하고 이해하려면 여러 맥락에 대한 많은 독서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책을 마치 동시대의 저자가 쓴 책처럼 죽 읽고 요점을 이해하는데 백과사전적 독서가 필요한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수학에 대한 이해도, 맑스의 경제이론적 체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면 모를까, 특별히 필요하지 않다. 어차피 맑스는 미적분이 아닌 대수학, 쉽게 말해서 거의 산수 수준의 수학과 평범한 공식들을 사용한다. 맨 처음에 설명하는 C가 상품, M이 화폐(돈)이라는 식의 개념과 p 는 이윤profit, v는 가변자본variable capital, c는 불변자본constant capital ... 등등의 기초적인 정의만 잘 따라가면 맑스가 그것들을 기초로 설명하는 분수식과 공식들은 거의 직관적인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다(적어도 아직 읽지 못한 <자본론> 3권 1/7 이전의 지점까지는 그렇다). M-C-M'은 아주 평범한 이야기다. 돈이 있고, 돈을 들여서 상품을 만들고, 상품을 팔아서 돈을 더 벌고...라는 상식적인 과정이다. <자본론> 1권 후반부는 거의 역사기록에 의거한 현실고발에 가깝다. 공식을 전부 까먹어도 맑스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이해하는 건 평범한 대학생의 머리로도 어렵지 않다. 어차피 일반적인 독자의 목적은 이 사람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독자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원리를 그럭저럭 무리없이 서술하고 설명하느냐에 있지, 이 공식을 세부적으로 파고 들어서 당장 전 세계의 이윤율이 어떻게 운용되는지에 있는 게 아니다. 후자는 맑스주의 경제이론가들이 할 일이며 독자가 맑스를 이해하는데, 심지어 맑스주의자가 되는 데도 맑스의 모든 경제/철학적 논의가 타당한지 점검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다.


영역본(penguin 판)에 기초한 김수행 선생의 <자본론> 국역본 1권을 읽으면서 어떤 인상을 받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중요한 인상은 맑스는 결코 자신의 책이 어렵게 읽히기를 바라지 않았다는 것이다(적어도 그가 생전에 완성해 출간한 <자본론> 1권은 그렇다). 직접 읽어보면 안다. 상품과 가치만이 아니라 자신의 주요 개념과 공식들을 설명하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맑스는 반복에 가까울만큼 상세하게 설명한다. 이미 앞부분을 읽고 대략의 요지를 이해한 독자에게는 거의 지겨울 정도로 했던 말을 약간의 뉘앙스를 달리해서 또 한다. 연구자에게는 이러한 설명이 현상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기술하려는 각고의 노력으로 보이겠지만, 비전문적인 독자의 시선에서 보면 이건 그냥 저자가 엄청나게 친절한 것에 가깝다. 쉽게 말해 맑스는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들이--당연히 노동자들이 포함된다--자신의 이야기를 어려워서 이해하지 못할까봐 몇 번이고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려고 하는 거다. 한번이라도 남을 가르쳐본 사람은 쉽게 동감할 수 있지 않은가? 자신의 이야기가 조금 어려워보일 때 학생들의 흥미를 붙잡으려고 약간 표현을 달리해서 훨씬 쉽게 풀어주려는 노력을 하는 순간 말이다. <자본론> 1권은 온통 맑스의 이러한 친절함으로 뒤덮여 있다. 내 생각에 이 책의 맑스는 사상사에서 거의 비견될 이가 없을 정도로 독자가 자신의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매우 예외적인 저자에 속한다.


둘째,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자본론>의 언어 표현은 그 자체로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다. 김수행 역을 읽으면서 갖가지 한문 용어들에 골치아프셨던 분들은 (기본적인 영어독해가 가능하다면) 한번 김수행 역이 대본으로 삼은 펭귄 판 영역본을 읽어보시길 바란다. 문장은 대체로 그렇게 길지도 까다롭지도 않다. 어휘도 무척이나 쉽다. 가변자본이라고 쓰면 무언가 어려워보이지만, variable capital할 때 variable은 중고등학교 영어교육에서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단어다. 몇 년 전에 맑스에게 두려움을 가진 한 학부신입생의 편견을 깨주기 위해서 <자본론> 1권의 서문들을 영어판으로 직접 읽으면서 직독직해(...)를 해줄 기회가 있었다. 너무나 간결하고 쉽게 읽혀서 그 학부신입생이 당황해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김수행 역은 펭귄판에 엄청나게 충실하며 주요 개념어 번역을 뒤져보면 거의 직역에 가깝게 옮겼다. 단지 한자어로 번역된 개념어들이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직관적으로 잘 녹아들지 않는 것 뿐이다. 영어로 영어판을 읽어보면 정말 맑스만이 아니라 영역자도 이 책을 어떻게든 쉽게,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무리없이 읽힐 수 있도록 엄청나게 노력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나는 <자본론> 독어판의 원전으로서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영어판이 갖고 있는 미덕은 그 나름대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솔직히 말해 나는 맑스에 대한 괜찮은 개설서가 한 권 더 나오는 대신 <자본론> 자체를 조금 더 편한 말로 풀어쓴 번역본이 하나 더 나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학술적 용도를 위한 판본이야 이미 나와있지 않은가). 어차피 개설사 100권 읽어도 원 텍스트를 읽는 것과 같을 수가 없다. 진정으로 맑스의 의도에 충실하려는 사람들이라면 <자본론>을 높은 교육수준 없는 독자들도 막히지 않고 술술 읽을 수 있는, 즉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번역본을 만드는 작업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강신준 역이 매우 잘 읽힌다고 들었는데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맑스는 교양독자와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며 맑스주의는 그런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복잡한 걸 의도적으로 쉽게 만드는 건 폭력이지만, 쉽게 읽히길 바란 책을 어려운 것으로 그냥 두는 것 역시 좋은 자세는 아니다.




다시 나의 독서경험으로 돌아오자. <자본론>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가장 커다란 감정은 지금까지 속고 살아왔다는 분노, 허탈감, 어이없음이었다. <자본론>은 유령이 아니었고 너무나 어려워서 토할 것 같은 책은 절대로 아니었다(개인적으로 칸트는 물론이고 <꿈의 해석>보다도 훨씬 쉽게 읽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나는 벤야민이나 스피노자, 정신분석적 비평을 읽는 사람들이 <자본론>을 어려운 책이라고 말한다면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 겹겹이 쌓인 소문과 편견의 장막을 걷어내고 직접 책을 읽었을 때 거기에는 그저 한 권의 명료한 문제의식을 가진 책이 있었을 따름이었다. 이후 맑스가 내 공부의 방향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은 맞지만, 그건 논의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세계를 조금 더 분명하고 일관성 있는 논리로 설명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깊이 읽으려고 든다면 다르겠지만--물론 모든 책은 그렇게 어렵게 읽을 수 있다--그 자체의 요지로는 전혀, 전혀 난해한 책이 아니다. 그래서 학부 기간 <자본론>의 이름을 꺼낼 때조차 전전긍긍했던 수년 간의 세월이 너무나 바보처럼 느껴졌고, 바보처럼 살아왔다는 것에 화가 났다. 주화입마가 어쨌다고? <자본론>을 읽으면 뭐뭐를 반드시 읽고 선행학습을 거쳐야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이때 알튀세르의 맑스 독해에 대한 깊은 불신감이 생겼다...그 나름의 맥락이 있는 건 이해하지만, 어쨌든 한국에서 이런 방식으로 그의 말이 돌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결국 대부분 자신이 직접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누군가의 말을 옮겼을 따름이지 않은가.


<자본론>을 읽은 때를 기점으로 나는 내 바로 위의 선배 세대들의 학문적 판단에 심각하게 회의적인 시각을 갖기 시작했다(물론 이 편견은 드물게 존재하는 성실한 연구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끝까지 읽어보지도 않았으면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남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서 살아올 수 있다니, 나로서는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읽지 않았으면 그냥 읽지 않았고 모른다고 하면 될 일인데 뭘 먼저 읽는 게 맞는지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가 왜 튀어나오는가. 한편으로는 선배들의 말을 결코 곧이 곧대로 듣지 말고 한번쯤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 더 근본적으로는 결국 어렵다는 평을 듣는 책일수록 남의 말에 의존하지 말고 직접 읽어봐야 한다는 '경험주의적' 태도를 갖게 된 것도 이러한 충격적인 경험을 통해서이다. 결국 내가 읽고 내가 정리하는 게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며 그 다음에 다른 이들의 의견에 비추어 나의 독해를 교정하는 쪽이 맞다. 타인의 의견을 내 의견으로 삼고 싶다면 그 타인이 과연 믿을만한 사람인지부터 먼저 검토해야 한다. 나중에 이 태도는 학위논문을 쓰면서 내가 다루는 텍스트에 대한 온갖 엉터리 논문들을--저자가 한국인이건 미국인이건 탑스쿨 출신이건 교수건 간에--접하면서 조금 더 굳건해졌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나는 최초에 인용한 코멘트에 여전히 반문할 수 있겠다. 사람들은 정말 <자본론>을 읽었는가? <자본론>은 비신화화되었는가? 적어도 내 또래의 수년 간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자본론>을 하다못해 1권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힘으로 읽어낸 사람은 여전히 드물고, <자본론>은 마치 상상의 동물처럼 신비화된 텍스트로 남아있다. 이 책이 잊히고 있다면 그건 이 책의 효력이 다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지적으로 무책임하기 때문이다; <자본론>이 수명을 다했다는 선언이 실제의 독서에 기초한 자신의 판단을 대체하기 때문에. 실제로 이 책을 읽어보면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맑스의 논의가 어떻게 21세기의 한국에 이토록 잘 들어맞는지 엄청나게 놀랄 것이다. 예컨대 산업예비군에 대한 맑스의 설명을 들으면 오늘날 도서관에 처박혀 스펙쌓기에 몰두하도록 강요받는 대학생들의 처지가 어떤 것인지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부분적으로는 맑스 자신의 탁월함에, 부분적으로는 우리들의 사회가 명백히 과거의 구도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론>은 여전히 시의성을 갖는다. 진짜로 시의성이 결여된 쪽은 지식과 독서에 대한 우리들의 잘못된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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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1.12 03:48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BeGray 2014.11.12 16:56 신고 Modify/Delete

      제가 비밀댓글로 적으면 손님들이 읽을 수 없는 경우가 생겨서 일단 공개(?) 댓글로 적습니다 ㅎ 무엇보다 제 글이 독서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글을 쓴 보람이 있네요^^.

      김수행 역과 강신준 역의 차이가 조금 궁금합니다. 사실 내년 1월부터 <자본론>을 1권부터 3권까지 다 읽는--물론 저는 전문적인 정치경제학 훈련을 받은 사람도 아니고, 제가 그걸 직접적으로 수행하려는 사람도 아니므로 '문헌학'에 가깝게 읽겠지만요--세미나를 하려고 합니다. 독/일/영이 안 되는 사람들과 할 예정이므로 국역본 판본을 골라야 하는데 강신준 판이 비교적 잘 읽힌다고 들어서 이 판을 선정할 생각이었습니다만(저는 김수행 판으로 갖고 있고 3권 초입부에서 시간이 없어 더 못 나가고 있습니다ㅠㅠ), 이렇게 말씀해주시니 제 판단을 재고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읽으시면서 느꼈던 차이를 조금 더 상세하게 말씀해주시면 여러 사람의 책값을 아낄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 않을까 합니다 ㅎㅎㅎ

  2. 현준 2014.12.19 20:46 Modify/Delete Reply

    인용된 기사는 몇번을 읽어도 재밌네요.
    번역의 역사만큼 흥미로운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일본의 앞선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요.

    저는 아직 자본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스탈린 외교사를 전공한 노경덕 교수말로는
    "김수행 선생은 누워서 읽을 수 있게 번역해야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정작 본인의 자본론은 누워서 못읽게 번역하셨다.
    대신 강신준 선생의 번역본은 누워읽을만 하다"고 하더군요.

    제가 얼마전부터 적금을 넣기 시작했는데 복무가 끝나면 딱 강신준 선생 자본 전집살만큼 나옵니다.
    제가 워낙 좋아하는 교수의 추천이다보니 별 고민은 안 드네여ㅋ

    • BeGray 2015.01.07 11:50 신고 Modify/Delete

      지금에야 리플을 다네요;; 아마 1월 중하순 정도부터 읽기 모임을 시작할텐데 고민 또 고민입니다 ㅋㅋㅋ

  3. GGGGG 2015.02.01 12:57 Modify/Delete Reply

    번역본 평가에 대해.. 이런 글이 있더군요.
    http://socialandmaterial.net/?p=32
    http://socialandmaterial.net/?p=434

    • BeGray 2015.02.01 17:46 신고 Modify/Delete

      GGGGG 님//

      수년 전에 읽었던 글인데 지금 다시 보게 되네요... 링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4. 2015.03.22 16:40 Modify/Delete Reply

    비슷한 맥락에서 한가지 질문드려도 될까요? 저는 인문학, 사회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청년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던 중 배움에 대한 열의가 생겨 대학에 가려고 하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대학4년동안 그 모든 학문의 수업을 다 소화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 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필자님께서 자본론을 혼자 독파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이전의 학습에 따른 방법론, 혹은 독해력이 기반된 것인지 궁금하구요.. 학부수준 혹은 그 이상의 공부를 스스로의 독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아직 대학에 가보지 않아서 대학 교육이 어떤식으로 운용되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 스스로의 열의와 의지라고 생각해서요.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찾아오게된 경로는 구글에서 주화입마 어쩌고 하는 키워드를 통해서였어요. 현재 수능 준비를 하고 있는데, 고등학교 시절 학교공부를 전혀 하지 않다시피 했는데도 독학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느끼고 있구요 이 명제가 대학 교육에도 적용되는가, 그것이 맞다면 스스로 돌파할 수 있는 학문의 경지는 과연 어디까지이며 대학의 역할은 무엇인지.. 그런 의문이 들었던것 같아요..

    • BeGray 2015.03.23 02:31 신고 Modify/Delete

      너무 많은 내용이 들어가 있어서 한번에 만족스러운 답변을 드리긴 어려울 것 같네요^^; 저도 제가 경험한 범위 안에서만 이야기할 수 있음을 감안해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말씀하신 것처럼 학부 4년 간 여러 학문을 다 주파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특히나 인문-사회학처럼 상당한 시간에 걸쳐 엄청난 연구성과들이 축적되었고 그 안에 전문화된 세부분야들이 수없이 존재하는 학문들은 더욱 그러하고요. 그래서 학부과정기간 동안 (공부나 비판적 사고능력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실제로 목표로 해야하는 대상은 주요한 논의들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그리고 가능하면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표한할 수 있는) 능력의 기초를 쌓는 것,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에 관해 기초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것, 그리고 그외 여러 분야들에 대해 얕게나마 시야/관심사를 펼쳐두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주된 동력은 독서의 축적이죠. 학부를 졸업했다고 해도 그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정보를 접하고 축적하고 이해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니까요. 그런 점에서 독서가 학부과정을 대체한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학부과정을 진정으로 가치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수업에서 권하는 범위 이상의 독서가 필수적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대학은 (대체로는) 본인이 수업을 선택해 들을 수 있는 곳이니만큼 제가 일괄적으로 어떻다고 말하기는 어렵네요. 무엇보다 한국에선 어느 대학이냐에 따라 가르치는 수준이 상당히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어서, 극단적인 경우에는 교양수업조차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곳들도 있을 정도니까요. 어쨌거나 정상적으로 학부가 운영되는 대학이라고 가정한다면, 대학이 제공해주는 가장 큰 장점은 이미 축적된 방대한 학술적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리고 선생과 동료학생을 포함해서 자신의 사고를 함께 논의하고 필요하면 지도받을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지적인 성장의 핵심은 대화를 통한 끊임없는 자기교정에 있으니까요. 역사상 때때로 독학자들 중에서 뛰어난 사람들이 나오는 법도 있긴 하지만, 애초에 초중고등학교에서 비판적 사고능력 및 이를 뒷받침하는 엄밀한 논증능력을 길러주지 않는 한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학부교육이 여전히 유효한 역할을 갖는다고 생각하고요(물론 현실에서는 그에 미달하는 학교들이 너무나 많지만요).


      정리하자면, 특정한 분야에 한해 대학교육과 비슷한 수준의 성취를 독학으로 도달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지적 성장에 필수적인 자원들 및 인적 관계의 부재는 그 성장을 굉장히 비효율적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본>의 경우, 저도 기본적으로는 대학에서 읽기와 쓰기를 교육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혼자 읽는 게 가능했던 점도 있겠죠.

      혹시라도 다른 지점들이 궁금하시면 더 댓글 달아주시고요. 제가 대답할 수 있는 범위 한에서는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 2015.03.23 02:51 Modify/Delete

      제가 지향했던 부분과 거의 일치하는 답변을 받은 것 같습니다 우선 정말정말 감사드려요 뜬금없이 찾아와 이렇게 질문 툭 던지고 간다는 것이 상당한 민페일 수 있는데 이렇게 친절한 답변을 받아 영광입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부분은.. 음 우선 저는 독서 외에 딱히 취미랄것도 없어서 대학에 다니는 동안 문학동아리와 과활동, 기초적인 수준의 대인관계를 제외하고는 온전히 학문에 정진할 생각이예요 어차피 여행이나 사회경험을 통한 간접체험이나 인생을 느낀다느니 하는 맥락도 결국 학문을 통해 직관적으로 깨우칠 수 있다고 생각해서요 제 계획은 복수전공제도를 활용해 우선 인문대에서 철학 전공을 통해 인문학적 부분의 기초를 닦고, 사회과학대의 경제학과에사 문과생에게 필요한 수리통계학적 지식이라든지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배우는 방식으로 공부하는 것이 어떤가 싶어서요. 나머지 학문에 대해서도 최소한 개론수준만큼은 계절학기등을 홯용해서라도 습득해나갈 생각이예요.. 제가 대학에서 배우고 싶은 것은 학문 그 자체가 아니라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말그대로 주회입마하거나 원전에 손도 못대는 수준에서 탈피할 수 있는 소양을 기르는 것이거든요 궁극적으로는 독자적으로 저와 저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통찰하고, 그 미래나 현상에 관한 견해를 제시하는 문학서적을 출판해 보는것이 목표입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같은 책처럼요. 사실 주변의 대학다니는 친구들에게도 이런 부분의 상담을 요청해 봤는데, 지극히 원론적인 대답이 돌아오거나 이 세대 특유의 먹고사니즘에 매몰된 대학의 현실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거든요.. 그 나름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의 존재 이유에 대해 회의하게 되었고.. 그래서라도 이왕 대학에 가기로 마음먹은 바에야 조금이라도 점수가 높은 대학에 간다면 더 깊이있는 학문을 하기에도 용이하지 않을까.. 그것이 솔직한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음.. 이정도면 제가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대강 전달되었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대학에서 수업을 무한정 듣고 싶다고 그게 되는것은 아니더군요 물론 소화할 수 있는 범위가 존재할테니 최대이수학점이랴는 제도가 있는것이겠지만 조금 아쉽습니다.. 제 지향이 지나치게 모호하고 몽상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열심히 또 바르게 접근할 필요를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한 방법론은 바람직한 것인지.. 또 실제 대학에 가서 부딪히게될 현실적인 한계와 저의 이상 사이에 어떤 간극이 존재하는지 그런 것들이 궁금합니다 물론 부딪혀 보면 다 알게 될 일이겠지만요 저는 가능하다면 전공을 세개까지도 늘려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정말정말 감사드려요 잊지 못할 것 같아요

    • 2015.03.23 03:00 Modify/Delete

      아!!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덧붙여 질문할게요.. 저와같은 사람의 학업 계획은.. 대학을 졸업한 이후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과 차라리 직업을 가진 후에 대학에서 축척된 소양을 가지고 독학해 나가는 것 중 무엇이 바람직할 것인지.. 보다 원론적으로는 대학과 대학원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긴 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대학원이 연구를 목적으로 한다면 제가 지향했던 지식의 축척을 통한 관점의 확립->진정한 나의 해답 찾기에 어떤 도움이 될지 의문이었거든요 재가 바라는 방식은.. 마치 이과생들이 대학원에서 물리학의 정점을 향해 달리듯 한 학문을 깊이 파고싶다기보다는, 통섭적 이해의 도구로 활용하는 쪽에 가까워사요.. 그럼.. 정말 감사합니다.. 민폐가 아니었으면해요

    • BeGray 2015.03.24 23:37 신고 Modify/Delete

      역시 제가 대답할 수 있는 범위 안쪽에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적인 욕구가 매우 왕성하신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여러 학문을 두루 살피고 싶은 심정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각 학문들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전문화되었고 누적된 양도 큽니다. 이건 대학에 가셔서 그냥 직접 겪어보시면 될 것 같네요(물론 대학도 대학 나름이고 선생도 선생 나름이라 편차가 없지 않겠습니다만). 이미 각 학문에서 다루고 있는 고전적인 문헌들을 모두 읽은 일종의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모를까--그리고 한국에는 이런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겁니다--, 독학자라면 더더욱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텍스트를 물리적으로 읽는 양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어느 정도까지 깊게 이해하고 몇몇 자구에 묶이는 것이 아닌 그 논리를 이해할 수 있느냐가 진정한 문제라고 한다면, 대체로 특출난 사람이 아닌 이상 그 시간이 적지 않게 소모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 사람이 다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연구자들이 각자의 필드에서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필드의 연구자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이른바 '주화입마'에 걸린 사람들은 텍스트를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본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믿기 때문에 엉뚱한 길로 간다는 것만 덧붙여 두겠습니다.


      "독자적으로 저와 저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통찰하고, 그 미래나 현상에 관한 견해를 제시하는 문학서적을 출판해 보는것이 목표입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같은 책처럼요." 이 대목에 대해서는 솔직히 비관적입니다(이런 종류의 포부를 갖고 실천한 사람들 중에 시간이 지나도 읽을만한 글을 남긴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주화입마'에 정말로 걸리기 쉬운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문학서적'이 그러한 통찰과 견해를 제시할 수 있었던 시대도 더 이상 아닐 뿐더러, 니체의 지적 이력에서 또한 엄청난 문헌학적 축적이 선행하였음을 상기하시길 권합니다. 이런 목표를 진지하게 갖고 계시다고 한다면, 당장 그 목표를 이룬다기보다 엄정한 지적 훈련을 받은 뒤에 생각해보셔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분명히 말해, 거대한 지적 작업일수록 세부적인 것을 철저하게 다룰 수 있는 고도로 훈련된 정신을 필요로 합니다; 세부를 깊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통섭적 이해'에 도달하는 경우는 없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에서는 대학원, 그것도 일부 대학의 대학원을 제외하고는 그러한 훈련과정을 제공해주는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훈련은 자체로 고된 노동입니다. 그걸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의 여부는 본인이 겪어보고 판단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리하자면, 매우 특별한 지적환경을 갖추고 있는 게 아니라면 독학으로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하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더불어 원대한 포부를 갖고 있다면 그만큼 좋은 선생님, 동료들과 함께 치열하게 공부하는 편이 효율적이리라고 생각되네요. 가능하면 좋은 학교에 가셔서 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좋은 동료들과 충분히 교류하면서 정진하시는 게 제일 빠른 길입니다.

    • 2015.03.25 00:08 Modify/Delete

      정말정말 감사합니다ㅠㅠㅠ이렇게 명쾌한 답변은 태어나서 처음 듣는 것 같아요 근 몇주간 공부하다 문득 떠오른 이런 종류의 의문을 마주할 때마다 일단 대학에 가면 다 알게될 일이니 우선 공부에 집중하자라고 생각하면서도 영 찝찝했던것이 사실이거든요 그래서 소중한 시간을 탕진하면서까지 주화입마와 같은 키워드로 검색해보던 중이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이 은혜 잊지못할거구요!!제 무지가 낳은 근시안적 발상이 블로그 주인분같이 진정한 학문의 궤도에 들어선 분들께 실례가 아닐지 걱정은 되지만.. 어쨌든 방향이 잡힌 것 같으니 열심히 달리는 일만 남은것같아요 혹 제가 평생에 걸쳐,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학문에 매달린 뒤에도.. 역사속 수많은 철학가들의 업적에 반에 반도 못미친다고 하더라도, 당장 그 결말을 알고 시작한다 해도 저는 그 길을 기쁘게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시 부딪쳐 봐야 아는 일이겠지만요 이렇게 남겨주신 답변 소중히 메모해 둘게요 그리고 이 친절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볼 생각이예요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 BeGray 2015.03.26 18:58 신고 Modify/Delete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입니다^^. 다만 저도 이제 갓 공부를 시작한 입장에 불과해서 제 시야에 보이는 것들만큼만 이야기할 수 있을 따름이니 필요에 따라 적당히 걸러서 취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모쪼록 정진하셔서 만족할만한 성취 있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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