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 <일베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열광의 감정동학> 읽고 코멘트.
Critique 2014. 10. 2. 03:56김학준.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열광의 감정동학>. 석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2014.
링크: http://dcollection.snu.ac.kr/jsp/common/DcLoOrgPer.jsp…
일베를 다룬 김학준의 석사논문을 읽었다. 간단한 평과 읽으면서 떠올린 생각들을 정리했다.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자료가 많다는 건 엄청난 강점. 총 190여쪽에 달하는 분량 중 양적 자료를 시각화한 도표 및 일베 용어사전을 합한 부록만 18쪽에 달한다. 개인적으로 이 논문 최대의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일베 이용자 인터뷰 및 웹 상의 구체적인 언어사용을 인용하는 대목들까지(이 부분은 부록에 수록되는 대신 논문 본문에 직접인용되어 있다) 포함하면 일베에 대한 직접적인 분석자료만 쳐도 이미 상당한 양이다. 보다 종합적인 후속연구가 나오기 전에 일베에 대해 어느 정도 진지한 관심을 갖고 언급하려는 이가 김학준의 논문을 읽지 않고 지나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 정도로 중요한 연구다.
그렇다고 데이터만 쌓아놓고 이론에 입각한 설명을 하지 않는 건 아니라서, 분량의 상당수가 사회비판이론/사회학이론/사회철학이론으로부터 개념을 끌어오고 또 분석에 적용하는 데 들어간다. 주로 언급되는 이름은 에바 일루즈, 뒤르켐, 지그문트 바우만, 악셀 호네트, 데이빗 리즈먼 등인데 여기에 아즈마 히로키나 페터 슬로터다이크, 한병철, 리처드 세넷까지 포함하는 상당한 '마당발'을 자랑한다. 물론 그 이용이 다 효율적인 것 같지는 않고, 때로는 읽은 게 아까워서, 때로는 학위논문이니까 들어간 건가 싶은 부분도 있긴 하지만, 애초에 내가 사회학 질적연구 전통에서 이론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아는 것도 아니라서. 개인적으로는 이론의 활용에서 조금 더 나아갔으면 싶은 부분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전반적으로 실증연구랑 이론이 어긋난다는 인상은 없다.
비전공자 독자로서 제일 좋다고 생각하는 점은 역시 논문이 재밌고 잘 읽힌다는 것이다. 어렵고 꼬인 서술도 별로 없고, 죽죽 잘 넘어간다. 이론가들 이름이 갑자기 쏟아질 때 거슬리는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사실 별 배경지식 없이도 따라가는 데 무리는 없다. 밤에 꽤 피곤한 상태에서 서론 정도만 읽을 생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보니 꽤 긴 논문이 다 읽혔다(나는...내 학위논문도 그렇고, 솔직히 말해 그렇게 잘 읽히는 글을 쓸 자신이 없다). 학위논문의 다소 딱딱한 포맷임에도 불구하고 부분적으로는 '일베의 감정' 혹은 '정서'를 다루기 때문인지 내용도 딱딱하다는 인상은 없다. 물론 워낙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독자로서는 요점을 다시 정리하는 노동이 필요하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할 일이다. 뭐 어차피 초록이랑 서론, 결론에서 큰 틀의 요약은 이미 해주고 있고.
그러나, 1년 전에 나온 박가분의 <일베의 사상>이 그러하듯, 김학준도 최종적인 결론에서 일베와 대중적 동원이라는 문제를 간과한다. 후자의 논문이 성격 및 시기상 훨씬 상세한 분석을 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논문제출 후 1개월 뒤에 벌어진 사태들, 곧 폭식투쟁 이후 무시할 수 없게 된 일베와 극우파 대중동원의 가능성을 포착하지는 못한다. 이는 부분적으로 (내가 박가분의 책에 대한 서평에서 지적했던) 국가라는 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와 겹쳐 있는데, 그건 밑에서 따로 간단하게 코멘트 하겠다. 예컨대 일베의 정서를 '차가운 열광'이라고 부르면서 단순한 '위악'으로 간주하는 결론에 나는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이론적인 언어로 말한다면, 김학준은 호네트의 분석이 사회적 무시라는 기제의 '가해자'(=일베)라는 항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나는 "대상/객체에 대한 주체의 폭력"과 '권위주의적 인성'을 연결시키는 아도르노의 문제틀이 다시 소환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기본적으로 '감정'이라는 내적 성향의 표현물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갖가지 사회이론의 도입을 통해 이를 거시적인 사회구조의 맥락과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선명히 드러나지만, 그것이 과연 충분히 체계적인 사회상을 우리에게 떠올리게 하는가는 또다른 문제(예컨대 신자유주의는, 후기 근대는 도대체 무엇인가? 양자는 같은 개념인가? 아니면 중첩될 수 있는 것인가?). 물론 이는 석사학위논문에서 다룰 수 있는 범주를 넘어가며 학위논문이 연구의 보수성을 가장 짙게 요구하는 형식임을 감안할 필요는 있겠다. 그런 점에서 김학준의 논문은 우리에게 일베의 정신으로부터 결국 한국사회의 전체적인 스케치를 어떻게 그려낼 수 있는가라는 과제를 선사한다(참고로 박가분은 <일베의 사상> 후반부에서 이를 나름대로 시도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물론 무척이나 흥미롭고 곱씹을 점이 많지만, 쉽게 동의할 수 있는 분석은 아니었다).
이하는 김학준의 논문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 지점들(당연하지만 김학준의 논의를 따라가면서 떠오른 내 메모들이니 이걸 바탕으로 논문의 내용을 평가하는 우를 범하진 말아달라).
1) '자유주의적 합리성의 진전'과 일베의 퇴행적 합리주의의 연관성(합리적 주체의 파괴). 김학준이 일베의 '유머사이트'로서의 성격을 강조하면서, 특히 드립이라는 행동양식이 무책임의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고 분석하는 대목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것. 이는 현재 한국의 극우파들을 바라보는 내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기도 한데, 박가분도 논객문화와 일베의 연결점을 제시하면서 유사한 주장을 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 이건 언젠가 따로 이야기할 것이므로 더 이야기하지 않겠다(<계몽의 변증법>이나 <도구적 이성 비판>을 읽은 사람들, 혹은 테일러의 <불안한 현대 사회> 같은 텍스트를 읽은 분들께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대략의 감이 잡힐 것이다).
2) 5.18, 그러니까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하가 그 자체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촛불집회 및 그것이 상징하는 '공적 질서(권위)=국가에 대한 불복종' 및 그로 인한 아노미적 상태 자체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이 과거로 투사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사점을 제공(김학준이 직접적으로 이런 주장을 하지는 않으나 그의 논지 전개는 이러한 해석을 끌어낼 잠재력을 품고 있다). 어떤 면에서 세월호 사건에 대한 일베의 태도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곧 세월호 및 그에 수반하는 사건이 의미하는 국가권위에 대한 신뢰의 상실 자체가 일베 및 우파들에게는 잊어버리고 싶은 일이며, 세월호의 유족들은 그러한 '질서의 상실' 자체를 표상하는 '아픈 상처'이기 때문에 질서 자체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공격하고 제거하고 지워버려야 하는 대상이 된다. 덧붙이자면 일베와 촛불집회를 본격적으로 연결시킨 최초의 주요 저술이 박가분의 것이었다는 사실은--비록 그 디테일한 논리에 동의할 수 없는 지점들이 있다고 해도--언급되어야 하며, 김학준의 논의는 그 프레임을 조금 더 정교화시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물론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예컨대 08 촛불은 단순히 아노미를 가져온 것만이 아니라 비유하자면 국가라는 '아버지'가 시민사회에게 '거세공포'를 심는 오이디푸스적 기제로 이해될 여지가 있다; 이 시점부터 국가라는 주체에 대한 태도가 변한다는 것을 생각하자).
3) 아마 이 논문에서 가장 기묘한 지점 중 하나는 일베 이용자들의 '공감'이 '국가'를 포함한 '승리자들' 혹은 '지배적 질서'로 향한다는 점을 지적한 뒤 이러한 동일시 자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해명하지 않고 곧바로 자기계발담론으로 넘어간다는 데 있을 것이다. 나는 일베 혹은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베와 극우주의, 그리고 국가의 문제가 반드시 제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리고 박가분과 김학준 모두 이 주제를 다루지 않고 넘어갔다). 여기에서 최근 시사인에서 나온 천관율 기자의 글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1341 은 일베의 의식으로부터 (개발독재=고도성장기에 사회적 성취를 이룬) '아버지'를 자아-이상으로 삼고 스스로를 동일시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나는 김학준의 논문을 직접 읽기 전에 당연히 천관율 기자가 논문에서 해당 주장을 가져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논문에서 직접적으로 이런 성향을 주요하게 언급하지는 않는다).
4)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일베의 집단적 감정에 국가=우파지배세력=아버지에 대한 동일시 경향이 존재하며, 이것이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원한/분노로서의 도덕감정과 결합하여 독특한 일베적 의식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극우주의 정신의 핵심은 원한과 적대감, 권위에 대한 동일시라는 데 있지 그 원한의 방향이 타 인종/민족을 향한다는 데 있지 않다. 나는 일베가 독일이나 일본과 다르기 때문에 극우/극단주의가 아니라고 하는 대신 이것이 한국의 조건 하에서 극우적 정신이 어떻게 배태하는가를 보여주는, 극우/극단주의 연구를 확장시키는 사례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본다.
5) 2-4에서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곧 일베의 정신이 극우파적 국가주의로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관점은 당연히 일베의 정신을 고정된 상태가 아닌 지금도 계속해서 변모 중인 동적인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는 전제를 함축한다. 사회비판이론은 실증적인 연구를 제시해야 하는 김학준의 논문에서 우리가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실증 이상의 '경향성'을 포착해야 한다. 아마 단순한 실증을 뛰어넘어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이 통상적인 사회과학과는 조금 다른 비판적 사회이론, 혹은 찰스 테일러식으로 말한다면 "해석적 변증법"(<헤겔>)으로서의 인문학적 사회비판에게 주어진 방법적인 강점일 것이다. 예를 들어 차가운 냉소가 "차가운 열광"으로 바뀌었다면, 이것은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변화를 계속 이어나가 "뜨거운 열광"으로 바뀔 가능성을 내포하지 않는가?
6) 조금 디테일한 차원에서 김학준의 논문이 지적하지 않았지만 지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실을 덧붙인다면, 일베 이용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나타나는 국가관/정치관 및 그 구체적인 용어("화전양면전술" "남베트남 패망과 종북의 역할")가 정확히 군대 정신교육에서 군인들에게 주입되는 내용 및 그 언어적 표현을 거의 그대로 답습한다는 점을 주목하자. 이뿐만이 아니라 대북관, 종북에 대한 두려움, 여성 혐오, '평범 내러티브', '체제순응주의'와 같은 기제들은 모두 오늘날의 군대생활 및 군생활이 군인들에게 강요하는 '주체화과정'에 필수적으로 따라붙는 것들이다. 쉽게 말해 나는 "일베인들은 어떻게 일베인이 되었나"를 질문할 때, 국가의 이데올로기 교육장치로서의 군대가 맡는 역할을 절대로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바꿔말하면 일베 또는 일베가 표상하는 극우적 정신을 비판할 때, 국가주의 및 가부장주의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과 함께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장치들에 대한 고찰 또한 필요한데, 군대는 무엇보다 특정한 형태의 주체화 과정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그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장치인 것이다. 분명히 말하건대 군대 내에서의 정신교육은 매우 심각할 정도로 뉴라이트의 역사관을 반영하고 있으며(나는 심지어 국방일보에서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을 자유민주주의/자유경쟁시장의 이념으로 해석하는 교육자료도 읽은 적이 있다!), 이것이 매년 수십만의 남성들 (및 비교적 소수의 여성들)에 끼치는 영향을 감안할 때 사태의 개선을 위해 이것을 건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7) 5와 6을 이어서, 나는 후기근대, 후기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또는 뭐라고 부르든 간에 오늘날의 정치경제적 및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국가/행정부의 영향력이 지대하게 커졌다는 점을 지목하고 싶다. 이는 군대 또한 예외도 아니어서, (오늘날 <진짜 사나이>와 같은 반동적 예능프로그램에서 보여주듯) 군대와 같이 사회와 가장 거리가 멀다고 간주되는 국가기구/장치조차도 시민사회의 의식과 무의식에 자신의 영향력을 가능한한 폭넓게 행사하려고 한다. 쉽게 말한다면, 정부 및 그 수하기구들이 '투표권을 가진 여론'의 중요성 및 그것이 조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자각했다는 점, 그리고 그에 따라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 및 문화/무의식의 형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자 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최근에 일베의 폭식투쟁을 위한 피자값을 댄 인물을 새누리가 공식적으로 영입한다거나, 국정원이 종종 일베를 활용한다거나 하는 등의 사례는 공적 권력의 새로운 작동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당연하지만, IMF 및 신자유주의 체제의 형성에서 정부의 여론형성기능강화, 특히 노무현 정부의 FTA 홍보정책은 우리가 흘려버리기 쉽지만 매우 중요한 사례다). 일베 정신의 형성은 그런 점에서 단순히 시민사회의 민주주의적 기획 실패 이상의 것을, 한 근대사회를 구성하는 사회-시장-국가의 삼각형 모델에서 권력의 동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질문을 포함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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