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5일.

Comment 2014. 8. 25. 23:24

오랜만에 이렇게 계속 걸었더니 다리가 아프다. 근육보다는 관절이 욱신거리는 기분. 무릎 쪽 느낌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늦은 저녁 및 부족한 수분을 채우기 위한 주스(포도주스 1L)를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기대에 비해 체중은 별로 안 줄었다. 아직도 79.5-_-;; 주스를 다 마셔놓고 보니 내가 팡타그뤼엘도 아니고...라블레가 살아서 나를 봤다면 나름 캐리커처 하나는 그려놓지 않았을까(사실 어제 저녁도 늦게 짜장면 곱배기랑 왕만두를 먹었다...).



카메라가 많았다. 길을 계속, 지칠 때까지 걷다보면 길이 아니라 나 자신의 상태를 보게 된다. 일찍 쉬어버린 목에 계속 신경이 쓰였다. 아이들은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어설프게 따라하는 아이도 있었다. 항상 인도는 있었지만, 사람이 다니기에 편한 길은 별로 없었다.


오후의 서울역은 기묘한 곳이었다. 천지교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종교에서 묘하게 맑은 소리를 내지만 전체적으로 기상한 음악을 배경으로 틀었고, 광기와 노망의 경계에서 기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노인들이 우리 곁에서 우리들을 향해 그러나 우리들에게 닿지 않을 이야기를 했다. 자기는 안산에 조카가 있다고, 아이들이 죽었다고, 박근혜는 머슴이라고...이렇게 형해화 되기 직전의 언어들이 이미 파편화된 형태로 그 노인의 입에서 나왔고, 나는 그가 어떻게 언어를 배웠을지, 그리고 어떻게 언어를 잊었을지, 다시 또 어떻게 언어를 되찾을 수 있을지 약간은 복잡한 기분으로 궁금해했다. 서울역은 수많은 사람들을 계속 뱉어내고 있었고, 온통 구름으로 뒤덮이어 흐리지만 당장 비가 내리지는 않을 정도인 하늘 아래 학교에서부터 걸어온 사람들은 조금은 진이 빠져 주저앉아 있었다. 서울역은 그 주변에서부터 노인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젊은 이들은 오로지 역으로 들어가는 에스컬레이터와 역 주위의 쇼핑센터, 그리고 도로의 자동차 안에만 머물고 있었고, 도보를 서울역 곁을 지나가는 행진 무리의 곁에는 오로지 노인들만 있었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닥에 아예 드러누운 이도 있었고, 마치 투명인간처럼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 허공에 외치듯 무언가를 외치는 이도 있었다. 다른 노인이 와서 그 노인을 잡아 이끌었다. 잠시 후 (방금의 노인을 말렸던) 노인이 돌아와 학생들의 물통을 갑자기 빼앗아 갔다. 무언가 심술궂은 표정이었다. 소주병을 들고 종이컵에 따라 마시는 노인도 있었다.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종교단체에서 틀어주는 음악을 배경음으로 무언가 나사 하나가 빠진 것 같은, "정상적인 노인"(그러나 그런 게 무얼까?)에서 한 두 발자국 씩 엇나간 사람들이 제각기 움직이고 있었다. 종교단체에서는 할머니 한 분이 곱게 다듬어진 한 뼘 반 가량 되는 나무 막대기 두 개를 이따금씩 서로 부딪혀 소리를 내었고, 그 소리가 기묘하게 맑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이상한 종교면 이상한 소리나 내는 게 맞을 텐데, 그렇게 정리해버리기엔 소리가 너무 맑았다. 아마 주변의 높은 빌딩에서 이 모든 디테일들을 살펴보는 이들이 있었다면, 브뤼겔이 마을의 축제를 그린 그림들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그것과 죽음의 무도를 그린 그림을 뒤섞으면 조금 비슷한 이미지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서울역을 지나자 길가 구석구석에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무리를 이루어 대기하고 있었다. 이곳은 이미 비상경계구역 비슷하게 되어버렸다. 오로지 자동차들만이 자유로웠고, 모든 사람들은 자유롭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무장하지는 않았지만 여하튼 방패를 든 경찰들이 순간적으로 사람들을 전부 포위한 적이 있었다. 또 잡히면 곤란한데,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결국 경희대 행진이 왔다는 이야기와 함께 포위가 풀렸고,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갔다.


경찰들의 압박을 힘들게 버텨내며 광화문 이순신 동상이 있는 곳으로 왔다. 꽤나 큰 규모의 천막이 처져 있었고, 그곳에서는 단식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한결 여유롭고 평화로운 기운을 품었다. 문재인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원래 '잘 생긴'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며칠 간의 단식을 거치니 확실히 미남의 풍모를 갖추어서 다들 경탄했다. 천막을 빠져나오니 멀리 세종대왕 동상을 두고 그 앞에서 시국미사가 펼쳐지고 있었다. 세례는 받지 않았지만, 군대 종교행사의 기억을 더듬어 몇몇 제의에 같이 참석했다. '성가'로 부른 노래 중에 <광야에서> <아침이슬> <바위처럼>이 들어 있었다(<바위처럼>은 원래 카톨릭 성가 목록에 들어있기는 하다). 이미 행진 내내 목이 맛이 간 상태였지만, 나름 힘을 내어 불렀다. 구호가 아닌 노래를 부르는 것은 오늘 행사에서는 처음이었다. 조금은 힘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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