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일

Comment 2014. 7. 20. 15:44

신광현 선생님 3주기 묘소방문을 다녀왔다. 매우 더웠지만 걱정하던 정도는 아니었다. 직전에 선생님의 아버님께서 돌아가셔서, 선생님 묘 옆 자리에 또 다른 묘 하나가 들어와 있었다. 돌아오는 차편에서 도란도란 선생님과의 추억을 이야기하다가 연구실에서 맞아주시던 생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전까지 흑백사진과 같았던 추억 속의 시각적 단편들은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를 타고 다양한 빛깔로 가득찬 생기어린 삶의 광경이 되어 내 앞을 흘렀다. 내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목소리를 떠올릴 때 (내가 기억하는 것은 목소리인가, 아니면 목소리의 인상인가? 내 앞에 떠오르는 것은 죽은 이의 단편인가, 아니면 단편을 통해 이윽고 충만하게 드러나는 죽은 이인가?) 대상이 가장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렇게 선생님의 목소리와 기억이 다가왔고, 나는 비로소 우리들이 잃어버린 것을 아프게 실감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삶에 새기는 시간은 그가 떠났을 때 텅 빈 자욱을 너무나 고통스럽게 느끼게 된다는 점에서 때로 저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우리는 그 시간을 오로지 축복으로만 기억하며, 그렇게 축복 속에 어떤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아픔을 껴안지 않고는 축복과 함께할 수 없음을 배운다. 묘소 앞에서 나는 선생님 덕택에 험한 곳 다치지 않고 잘 다녀왔노라고, 그리고 몇몇 친구들의 안부를 함께 전해드린다고 말씀드렸다. 생전의 선생님 앞에서라면 나오지 않았을 딱딱한 목소리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대체로 사람들의 타고난 선량함을 믿지 않는다; 그것들은 언제나 너무 약하고 쉽게 구부러지며 비굴함, 교묘한 이기심, 자기만족적인 허영과 뒤섞인다. 그러나 언제나 예외적인 순간과 예외적인 사람들은 존재한다. 선생님은 내게 선생님의 선량함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주지 않으신 채로 먼저 떠나셨고, 그래서 내게 선생님은 언제까지나 예외적인 존재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고 상실의 통증이 가라앉은 뒤에 드러나는 사실들조차도 그분을 평범함으로 깎아내리기는커녕 빛나게 한다는 점에서 예외적인 성격은 더욱 커진다. 그러한 예외에 비추어 보면 이 세계에 남아있는 이들의 추악하고 모자란 그림자는 더욱 크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분은 다시금 온화한 웃음으로 너무 그렇게 절망적으로, 냉소적으로만 보지 말라고, 반드시 그러한 삶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그러니까 기운을 내어 살아가라고 당신의 삶으로 말씀하실 것이다. 나는 그러한 예외를 유일한 버팀목으로 붙잡고 진정한 경험주의자의 자세로, 단지 하나의 반례만 있어도 전칭명제는 성립할 수 없다는 믿음을 고수하며 나아갈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선생님 앞에서 나는 학생이 되어 이와 같은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지고 되받고 홀로 답하고 다시 묻고를 반복할 것이다...삶을 받았다면, 삶을 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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