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와 코멘트들: 제국의 몰락, 대학의 커뮤니케이션 실패, 19세기 지성사

Comment 2017.12.14 00:15

1) 2017년 11월 18일 기사 코멘트


https://www.nytimes.com/2017/11/16/opinion/house-tax-bill-graduate-students.html


20세기 초반: 유럽의 제국(혹은 워너비)들이 근대적 통치모델을 만드느라 씨름하면서 망해가는 이야기
20세기 중후반: 미국이 세계제국으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전 세계를 통치하는 모델을 (유럽의 인적·지적 자원을 활용하여) 본격적으로 구축/완성하는 이야기
20세기 말-21세기 초반: 미국인들이 지금껏 만들어놓은 고도의 통치시스템을 때려부수는 이야기

이 내러티브에서 특히 흥미를 갖고 있으며 또 강조하고 싶은 요소 두 가지를 꼽는다면, 하나는 통치시스템의 구축과정에서 대학(원) 및 연구소들로 대표되는 지식집적·(재)생산시스템 및 그것을 뒷받침하고 또 그로부터 나온 지식들을 활용하는 거대한 체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특히 1970-80년대부터 미국의 새로운 보수주의가 강력한 도덕주의·개신교 포퓰리즘 등과 결합하면서 혁신주의(progressivism)적 영향 및 세계제국을 통치하는 모델을 망가트리는 과정이다. 지금 뉴스만 보면 "이게 다 트럼프 때문이다"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20세기 후반부터의 보수주의 (반)혁명이 실현되는 하나의 예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한국은 아직은 다행히 이런 사람들이 다수가 아니지만, 최근 개신교 극단주의를 이끄는 목사들·프로파간디스트들이나 유교·중화중심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건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참고로, 서구 20세기 기준에서 볼 때, 한국은 아직 근대적 통치엘리트를 생산하고 활용하는 고등교육체제를 만든 적이 없다.
**이런 역사적인 과정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데 정작 이 주제에 달라붙어 분석할 수 있는 역사가들·역사가적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연구경향에 대한 소개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건 더 슬픈 일.



2) 2017년 11월 27일 기사 코멘트


http://www.insight.co.kr/news/128017


"A씨는 "근데 장학금 수여식이라는 자리가 너무 힘들었다. 2-3달은 그래도 돈 걱정 좀 덜겠다 싶어서 기쁘면서도 너무 허탈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수여생 전부를 인촌기념관에 모아두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수여식을 진행했다. 그 중엔 KU Pride Club 홍보대사를 하는 동기도 여럿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척했지만 생각보다 씁쓸했다"고 밝혔다.

이어 "가난한게 부끄러운 적은 없었지만 그동안 힘들어도 꾹 참았는데 이번 행사로 모두가 알게 됐다"며 "생각보다 조금 창피하더라"라고 전했다. 또 "거기다가 사회 보시는 분은 '단상에 올라와서 사진 찍지 않으면 장학금 안드려요' 이런 농담만 했다. 누군가에겐 농담거리일 수 있지만 정말 나에겐 큰 돈이었다"고 토로했다.
[...]
이와 관련 고려대학교 대외협력부 백영희 차장은 "이번 행사는 불우한 학생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 생활비조차 없어 학업을 중단하는 학생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라며 "학생들에게 배려가 없었다는 건 정서 자체가 조금 다른 거다. 학생들이 느끼기엔 창피한 감이 있을 수 있는데 그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논란이 된 사회자 발언에 대해서는 "사회자는 법대 교수님인데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도와주자고 하셨던 분이다. 학생들이 자리에서 안 일어나니 농담으로 한 말이다"라고 밝혔다. 기념사진에 대해서도 "진짜 보여주기식이었으면 클로즈업 했지 않겠냐. 소액기부 캠페인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홍보차원에서 찍은 것이다. 공연장 2층에서 찍어 얼굴은 안 보인다"고 전했다. 또 관계자는 "(이번 논란에 대해) 소수의 의견일 뿐"이라고 일축하며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될 만한 사안이었으면 다시 행사를 고민하지 않았겠냐"고 밝혔다."

: 최근 수 년 간 전국 대학 여기저기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실패'에 포함될 케이스다. 이런 유형은 대체로 ①의사결정권을 쥔 (주로 50-60대로 구성된) 교직원들이 ②20대 대학(원)생들의 윤리적·정치적·사회적 감각에서 "부당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그 자체로는 사소한 언행을 한 뒤 ③그 반발을 철저히 자신들의 기준에서 볼 때 특별히 고려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단, 적절한 대응책을 내놓는 데 실패하며 ④결과적으로 학생공동체&사회여론으로부터 더 크고 격렬한 반발과 비난을 초래한다는 유사한 전개를 보여준다. 이번 사례의 경우 고려대학교의 대표자들은 특정한 언행이 빈곤으로 인한 장학금 수혜 학생의 인격·존엄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상상 자체를 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아주 간단히 말하면, 여러 한국 대학에서 의사결정권자·대표자들은 자신들이 대해야 할 대학생들, 나아가 한국 사회 전체의 여론에서 정당함·부당함을 판별하는 감각이 자기 자신들의 세대와는 매우 달라졌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 이는 필연적으로 (최초에는 치를 이유가 없었던) 매우 큰 비용을 치르거나 때로는 안정적인 거버넌스 운영에 실패하는 결과로까지 이어진다. 실제로 지난 수 년 간 사회 제반 영역에서 50대 이상의 상급자들의 언행·매너에 대한 비판이 다양한 형태에서 제기되어 왔고 많은 이들이 적어도 겉으로나마 그에 대해 신경 쓰는 척을 하기 시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20대들을 계속해서 마주치는 대학의 교직원들이 시대적 변화에 대해 부적응자로 남아있다는 사실은 한번쯤 음미할 만 하다(그러고보니 고려대학교는 작년 총장의 "피교육자" 발언으로 먹을 필요가 없었던 조소까지 받은 적이 있는데, 여기의 교직원들은 불과 1년 전의 사태로부터도 배운 게 없는 것 같다).

의사결정권자들, 기구의 대표자들이 바뀐 조건에 적응하지 못하고 커뮤니케이션 실패를 반복할 때, 이는 좋든 싫든 해당 대학·기구의 거버넌스 실패를 지속적으로 산출할 것이다. "교육자는 교육되어야 한다."


3) 2017년 12월 9일


1.

이번 학기 지도교수님 대학원 수업 조교를 하고 있다. 사실 학부수업조교만 맡아도--이제 기말 페이퍼 첨삭이 남았다--상관은 없지만, 19세기 영국문학의 이름을 걸고 실제로는 18세기 말-19세기 초 낭만기에 절반 이상을 할애하는 수업이니 복습 겸 해서 최대한 자주 참석했다(앞으로 은퇴까지 두 학기만 남아서 가능한 더 들어놓고 싶은 것도 있다). 수강생 다수가 석사 1-2학기 재학생들이다보니 선생님이 원하는 수준의 배경지식은 대체로 부재한지라 "도대체 얘들은 학부에서 뭘 공부하고 오는 걸까! 예전에는 그래도-" 식의 탄식도 반복되는 의례가 됐고, 선생님께서 친절하게 설명 및 정리를 해주마 하실 때도 사실 그중엔 꽤 많은 배경지식을 갖춰야 요점을 잡을 수 있는, 그러니까 수강생들에겐 모르는 말의 뭉치가 떨어지듯 보일 게 뻔한 순간도 제법 있다.

처음에는 선생님과 수강생들 사이에서 다리를 놔 주자고 마음을 먹었다. 선생님의 1차 설명 뒤 수강생들이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으면 어렵게 느껴질만한 부분을 2차로 풀어서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사실 박사수료생과 석사 신입생 간의 공부량 차이가 학부생과 석사과정생보다 더 큰 건 당연하고, 거기에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내가 선생님 수업 조교를 맡은지 어언 7학기째...서당개의 자격이 충분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 서당개가 수강생들이 써온 리스펀스에 어떤 논리적 문제가 있는지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이제 은퇴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할머니 선생님은 한창 말씀하시다 기운이 다해 쉽게 지치시곤 한다ㅠㅠ). 그렇다, 난 정말로 Teaching Assistant가 되어버렸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또 학과에서 혼자 지성사 파느라고 이야기할 사람도 별로 없는 광경에도 지친 김에 아직 논문까지 채워넣어야 할 빈 공간이 많은 수강생들을 공부시킬 용도로 영국 18-19세기 전공자를 위한 지성사 입문용 리딩 리스트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대충 17세기 혁명기가 끝나고 영국인들이 무슨 문제를 겪게 됐고 담론장의 구도가 어떤 식으로 짜여졌는가...부터 시작, 상업사회의 도래와 계몽기를 거쳐 프랑스혁명기를 지나 빅토리아 자유주의 문화가 자리를 잡고 19세기 말 새 자유주의(new liberalism)가 이르기까지의 긴 여정이다. 당연히 이걸 위한 충실한 연구 리딩리스트를 만드는 건 무리고, 지금은 단지 이 시기를 <부르주아 계급의 성장&프랑스의 정치혁명&산업혁명>이라는 구태의연한 도식으로 퉁치고 넘어가지 않을 수만 있으면 된다. 즉 내가 6년 전 석사논문을 쓸 때 겪었던 시행착오를 앞으로 우리 학과에서 이 시기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덜 겪고 넘어가도록 하자, 정도랄까.

2.

일단 마음을 먹고 나니 대충 18세기 중후반부까지 지성사 연구의 뼈대는 지금까지 정리를 해온지라 크게 문제될 건 없는데(옥스퍼드 18세기 영국철학 핸드북의 챕터 몇을 더 보고 17세기 연구를 좀 더 보강하면 되는 수준이다), 정작 난점은 내가 석사논문을 쓰면서 공부를 했다고 생각한 19세기에 있었다. 이번에 지성사 쪽 저자들의 흐름을 어느 정도 따라가면서 맨 처음 깨달은 것은 6년 전에 나는 소설을 꼼꼼하게 읽은 것 말고는 지성사를 전혀 몰랐고 또 모른다는 것조차 모른 채 학위를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여기까지는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6년 전에는 나나 지도교수님이나 지성사 연구가 이 정도로 축적되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아직도 로크적 자유주의라는 표현이 통용되는 영문학과 그딴 건 반 세기 전에 깨졌다는 영국지성사의 거리가 이처럼 멀다ㅠㅠ.

하지만 더 큰 충격은...18세기는 그래도 포칵이랑 혼트를 좀 파면 큰 골격이 정리가 됐는데, 19세기는 그런 게 없다는 거다. 19세기엔 <마키아벨리언 모멘트> 같은 저작이 안 나와서 처음에는 아 케임브리지언들이 초기 근대에서 18세기 후반까지를 집중적으로 파거나 아니면 점프해서 20세기로 오는 경로가 일반적이다 보니 프랑스 혁명기와 그 이후가 비었구나, 산발적인 연구만 있고 큰 내러티브가 없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마크 비버가 서섹사 학파의 연구를 정리한 글(2000)을 봐도 그렇고, (다른 케임브리지 정치사상사보다 1.5배에 가까운 분량을 자랑하는) <케임브리지 19세기 정치사상사>(2011)의 인트로와 에필로그를 봐도 그렇고, 그냥 19세기 연구자들이 "아 이 시기가 너무 폭발적이라 그런 내러티브 한 둘로 정리가 될 수 없는 시기임 ㅇㅇ 포칵 같은 방법론은 19세기에 안 통함"...이라는 합의에 도달해버린 거였다. 그러니까 아직 연구가 안 돼서가 아니라 그냥 이 시대가 그런 식의 연구가 안 되는 시기였고--적어도 쟁쟁한 연구자들이 그런 결론에 도달했고--나는 그걸 이제 안 셈인 거지.

혁명과 낭만주의? 진짜 온갖 게 다 나온다(낭만주의자들도 세대 별로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 여기까진 그래도 18세기적 틀이 많이 남아있지만, 18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자유주의의 시대로 들어가면 우리는 별 휘황찬란한 자유주의(자)"들"이 등장하는 걸 보게 된다. 벤담이랑 밀이랑 다르고, 밀이랑 19세기 후반부의 새 자유주의자들과 또 다르고, 제국주의와 식민에 대한 입장도 제각기 다르고, 사실 "자유주의"라는 이름을 공유하는, 그리고 서로 견해차가 분명히 있는 서로 다른 그룹들이 뒤엉켜 있다고 보는 게 일단 맞는 말인 듯 하다(여기에 대해선 일단 이 서평의 요약이 도움이 된다 https://www.thenation.com/article/liberalism-doesnt-start-liberty/ ). 거기에 지질학&진화론을 포함한 자연과학의 발전이 정치 및 사회이론에 영향을 끼치고, 19세기에 가장 선진적이었던 독일대학에서 (역사학과 법학을 비롯해) 점차 축적된 전문화된 학문성과들이 들어오며--19세기 영국지성&문화계는 독빠들의 터전이기도 하다--정치경제학이 이제 거의 준 전문적인 학문으로 발돋움하면서 행정부터 대중간행물까지(19세기 영국출판계 경제 분야 최대의 거물급 저자는 무려 32권의 대중적 책을 쓴 여성작가였다), 유럽에서부터 남미와 일본에까지 정말 어디에서든 영향력을 떨친다. 여기에 노동계급운동과 사회주의의 도전, 여성운동, 투표권 확대 등 전통적으로 널리 알려진 래디컬한 운동들이 대두하고, 상대적으로 한국인들에겐 덜 알려진 복음주의의 엄청난 대중적 영향력(여기엔 물론 종말론이 빠지지 않는다)까지 고려하면...

...그러니까 이 모든 일들이 한 세기 안에 발생했고, 이 다양한 사람들이 유사한 시공간을 공유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다고 상상해보라. 그렇게 많은 연구자들이 달려들어도 여전히 적지 않은 빈틈이 남는 상황에 가장 대표적인 내러티브를 하나 꼽는 게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그나마 그 유력한 후보인 자유주의는 알고보니 변화무쌍하고 아무데나 잘 들러붙는 넉살 좋은 호칭이었고(자유주의가 바로 그런 범용성 때문에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사상'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많은 걸 포기하고 일단 19세기 리딩 리스트를 만들었는데--그중 상당수는 나도 못 읽었거나 인트로 정도만 뒤져본 상태다--약 20여 항목 중 굵직한 편저가 절반이 넘는다. 몇 주 간 벼락치기하면서 연구사를 따라간 19세기가 아니라 좀 더 풍부한 문헌들을 제공할 예정인 18세기 리딩 리스트까지 합치면 훨씬 더 길어지겠지. 덧붙이면 이 모든 건 1차 문헌을 제외한 2차, 3차 문헌들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공부하지 않고 어떻게 '틀리지는 않는' 전문연구자가 될 수 있겠는가? 달리 답은 없다. 부디 완성될 리스트가 학생들을 이 매력적인 시대, 알면 알수록 오늘날의 우리까지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대로부터 등을 돌리도록 만들지 않기만을 기원한다.

3.

결코 스스로가 속한 시공간에 대한 지적인 흥미를 잃어본 적이 없는 내가 왜 수백 년 전의 다른 세계를 공부하게 되었을까? 지금 갖고 있는 답은 다음과 같다. 나는 17세기 후반부부터 19세기 말까지의 영국과 그 지적 산물에 대한 한국 학계의 이해도가 현저히 부족하며, 심지어 그 부족함을 인지하지조차 못하고 있는 게 현재의 상황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서구 근대의 전통에 대해, 나아가 우리 자신을 구성하는 근대적 전통에 대해 매우 편협하고 단순화된 이해만을 갖도록 만들었다. 다른 세계의 복잡성을 인지하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의 세계가 지닌 복잡성을 인지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세상의 편견과 달리 인문학 연구자들은 과거를 연구하는 경우에도 그 자신의 동시대인들에게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만한 저작을 내놓을 수 있다("대중인문학"이란 이름을 악용하는 텅 빈 허영심의 포장지를 만드는 것 말고도 말이다). 단지 그렇게 하려면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우리는 이제까지 그 노력을 어떻게 얼마나 해야할지 잘 몰랐을 뿐이다. 이제 인문학 연구자들을 둘러싼 이 지긋지긋한 무기력을 걷어내고 존재의 이유를 증명할 때가 됐다. 나는 사회가, 다른 분과학문들이, 그리고 우리 인문학 연구자 자신이 우리들의 작업에 부과한 '대체로 무해하다'는 평가에 질렸다. 우리 세대의 인문학 연구자들 중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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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Л 2018.01.05 14:41 신고 Modify/Delete Reply

    좋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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