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테일러. <세속화 시대>. 4부 정리.

Intellectual History 2016. 11. 29. 00:44

Taylor, Charles. _A Secular Age_. Cambridge, MA: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2007.


<세속화 시대> 4부(본문은 423-535쪽, 주석은 815-32쪽)를 정리한 내용이다.


4부 세속화의 서사들 Part IV. Narratives of Secularization

 

: <세속화 시대> 1부부터 3부까지는 중세 후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서구 기독교 세계의 정신적 변화를 역사적·지성사적 작업을 참고하여 정리했다. 점차 (종교)사회학적 분야의 연구를 참고하는 비중이 늘어나는 걸 볼 수 있는 4부에서는 1960년대를 중요한 분기점으로 갖는 20세기의 기독교 사회가 맞이한 근본적인 도전, 즉 현재진행형인, 동시대적 현상으로서의 세속화를 본격적으로 논하기 시작한다. 4부는 12동원의 시대”(The Age of Mobilization), 13진정성의 시대”(The Age of Authenticity), 14오늘날의 종교”(Religion Today)의 총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다시 연속된 총 열 개의 절로 나뉜다. 첫 두 장에서 나란히 시대란 표현이 쓰이고 있는 데서 알아차릴 수 있듯, 테일러는 특히 1960년대를 기점으로 뚜렷이 드러나는 세속화 현상을 갑작스럽게 돌출된 사건이 아니라 단계별로 구획된 시대적 흐름의 연속체 안에 위치시킬 수 있다고 본다.

 

테일러의 시대구분 도식을 간단하게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신과 국가의 안녕이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이를 담당하는 단 하나의 국가-교회가 있는 바로크적”(baroque) 카톨릭 사회, 집단적 제의”(collective ritual)에 따라 사회구성원들을 위계적인 질서 안에 위치시킬 수 있었던 구체제”(ancien régime)-“() 뒤르켐적”(paleo-Durkheimian) 단계(455). 근대 영미를 예로 들 수 있는 사회, 특히 19세기를 기점으로 과거와 같은 자명한 믿음 대신 종교적 대중동원이 중요해지면서 사회 전체를 (신 자체라기보다는) 신의 의도”(Design)가 투영된 결과물로 이해하고 종교적 소속감이 국가에 대한 소속감과 연결되어 있으나 단 하나의 국가교회가 아니라 복수의 종파들이 자유롭게 공존하는 동원의 시대”-“신 뒤르켐적”(neo-Durkheimian) 단계 1960년대 및 그때의 문화혁명”(the cultural revolution)을 기점으로 서구에 확산되기 시작한 것, 즉 종교적 삶이 집단적 정체성의 핵심기제가 아니라 개개인 각자의 내면에 고유하게 자리한 무언가 중요한 것을 표출하는(expressive) 것으로서의 특정한 삶의 양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그런 점에서 낭만주의적 전통의 계승이라고도 볼 수 있는) “진정성의 시대”-“후기 뒤르켐적”(post-Durkheimian) 단계.

 

4부는 12장은 이러한 도식을 설명하면서 19세기부터 1960년대까지의 동원의 시대-신 뒤르켐적 단계가 출현하는 상황을, 13장은 1960년대 이후의 진정성의 시대-후기 뒤르켐적 단계의 도래 및 그 중요한 특질을, 14장은 전체적인 논의를 정리하면서 유럽과 미국이 어떻게 상이한 경로를 걷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물론 테일러 자신이 강조하듯 이러한 시대적 구별은 결코 기계적으로 적용될 수 없으며, 오늘날의 조건 또한 후기 뒤르켐적 단계의 유일한 존속이라기보다는 신 뒤르켐적 사회와 후기 뒤르켐적 사회의 복잡한 공존이라고 보는 게 보다 설득력 있다. 이때 테일러의 요점은 현대 세속화를 설명하는 주류적 해석, 즉 세속화를 종교적 사고·행동양식의 쇠퇴로 특징짓는 관점에 대항하여 오늘날 종교적 사고·행동양식은 (공적인 영역에서조차도) 소멸하고 있지 않으며 단지 그것이 과거와 다른 성격·형식·영성(spirituality) 속에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테일러는 후기 세속화”(post-secular)라는 용어로 지칭하고자 한다.

 

 


12장 동원의 시대 Ch. 12. The Age of Mobilization

 

: 4개의 절로 구성된 12장에서 첫 두 절은 세속화에 대한 기존의 논의를 살피고 테일러 자신의 주장을 개진하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들을 확인하며, 뒤의 두 절은 장 제목에 명시된 동원의 시대”-“신 뒤르켐적 단계를 설명한다. 이때 핵심은 1800년부터 1960년대까지의 한 반 세기에 걸쳐 서유럽 기독교 세계에서 대중사회”(mass society)로의 이행이 분명해짐에 따라 과거의 종교적 양식이 쇠퇴하고 교회가 정치적 대중동원이 가능한 기구로 재구성되는 새로운 종교 양식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현대인 다수의 상식과 달리 종교·교회가 단지 개인적인 신앙의 영역으로 주어진 대신 국가·정체(polity)와 그 구성원의 관계를 설정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왔다는 전제가 기본적으로 주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1절에서 테일러는 자신이 영국, 프랑스, 미국 세 국가에 한정해 다루고자 하는 현상, 서구에서 근대적 세속성의 발흥”(the rise of modern secularity in the West)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정리한다(423). 18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엘리트 집단 내에서 ()신앙의 다양한 행동양식 혹은 그를 위한 지평이 개발되었다면, 이것이 이후 소수의 엘리트 집단으로부터 전 사회로 확장되었다보통교육의 확장, 문해율 및 고등교육의 확대, 현대에는 대학교육 수혜자 수의 급격한 상승을 포함해 점차 전체적인 사회구성원이 동일한 사회적 상상”[the same social imaginary, 424]을 공유하게 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 세속화 이론”(secularization theory)이라 할 때, 세속화 이론은 통상적으로 세 가지 현상을 다루었다: 세속화1: 공적인 삶에서 종교의 쇠퇴(the retreat of religion in public life) 세속화2: 신앙 및 (그와 연관된) 실천의 쇠퇴(the decline in belief and practice) 세속화3: 신앙의 조건이 변화(the change in the conditions of belief)이때 인본주의적 대안”(a humanist alternative)의 대두를 포함하는 은 사실상의 불신앙을 포함한 의 현상이 나타나는데도 영향을 끼쳤다.

 

문제는 세속화의 역사적 전개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1960년대의 기독교 인구의 급감은 분명 두드러지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역사적으로 완만하게 전개되어 온 흐름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17세기 프랑스 카톨릭교회의 대항종교개혁(the Counter-Reformation)이나 18세기 말 영국 복음주의 운동(the Evangelical movement)은 성공적으로 기독교인들을 붙잡는데 성공했으며, (테일러가 여기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20세기 중반 전후(戰後) 유럽에서 기독교 정당은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이었다. 신앙이나 종교적 논리 대신 고유의 논리에 따라 작동하는 여러 분리된 자율적 영역들의 등장이라거나(아마도 독자들은 여기서 니클라스 루만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베버 이후의 고전적인 탈주술화”(disenchantment) 테제 또한, 유대교와 기독교 내에 이미 각각 탈주술화된 영역을 가졌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세속화와 등치될 수 없다. 오히려 종교적 믿음이 사적인 영역으로 침잠했다는 고전적인 믿음은 종교사회학자 호세 카사노바(José Casanova)의 연구가 보여주듯 오늘날에 과거와 같은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 앞서 세 가지 현상으로서의 세속화 자체는 부인할 수 없다고 할 때, 세속화에 대한 설명은 최소한 두 가지 반문과 마주하게 된다: 오늘날 겉으로 보이는 만큼 실제로 종교가 쇠퇴하고 있는가? 우리가 지금 우리 자신의 종교적 쇠퇴를 주장하기 위해 비교대상으로 삼는 과거는 실제로 어떠했는가? 이러한 질문 앞에서 테일러가 취하는 방향은 결국 종교자체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테일러는 종교에 대한 세 가지 편견("unthought")을 비판한다: 종교는 과학과 대비할 때 거짓”(false)이다, 종교는 이제 우리 삶과 무관”(irrelevant)하다, 종교는 본래 권위적”(based on authority)이다(429).

 

그렇다면 종교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테일러는 여기에 곧바로 직접적으로 답변하는 대신 자신의 스타일에 따라 다시금 (종교를 둘러싼) 근대적 조건을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으로부터 출발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의 종교가 직면한 주된 투쟁은 두 가지 입장 사이의 갈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쪽에는 인간의 번영 너머”(beyond human flourishing)을 추구하는 거듭남의 관점”(the perspective of transformation)이 있고, 반대편에는 인간의 상호번영을 추구하는 근대의 도덕적 질서 및 상업사회”(the Modern Moral Order and commercial society)와 같은 사회적 질서에 기초하여 광신이나 열광주의를 거부하는 내재성의 관점”(the immanence perspective)이 있다(430-31). 이때 근대의 세속화란 결국 후자가 전자를 점차 배척하고 무대 밖으로 내쫓는 결과로 이어진다. 테일러는 이 과정을 주어진 사실로 받아들이되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층위의 설명방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장 기저에는 (스티브 브루스[Steve Bruce]가 설정한) 사회의 파편화(social fragmentation), 공동체의 쇠퇴 및 관료기구의 성장(the disappearance of community and the growth of bureaucracy), 합리화의 증대(increasing rationalization)와 같은 변화가 있고, 그 위에는 신앙와 종교적 실천의 쇠퇴라는 현실이 있다. 테일러는 여기에 기존의 세속화 이론이 다루지 않는 다음과 같은 물음의 층위를 덧붙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모든 운동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오늘날 종교와 불신앙이 마주한 곤경은, 그것들의 취약함과 강점은 무엇인가?”(Where has the whole movement left us? What is the predicament, what are the vulnerabilities and strengths of religion and unbelief today? 432)

 

논의를 약간 건너뛰어, 테일러가 본격적인 설명을 시작하기 전 강조하는 지점들을 짚어보자. 무엇보다도 세속화는 변하지 않는 무언가로서의 종교가 몇 가지 요인들의 집합에 의해 점차적으로 쇠퇴해가는 단선적 과정이 아니다. 이때 핵심은 종교의 형식이 어떻게 바뀌어 왔고 또 지금도 바뀌어 가고 있는지”(how the forms of religion actually changed, and are changing again today, 437)를 직시하는 것이다. 테일러는 분명 도시화나 이민과 같은 요인들의 작용은 부인할 수 없으나 역사적으로 볼 때 새로운 종교 형식들이 지속적으로 창조되어 왔으며 이것이 세속화의 요인들로 인해 호소력을 상실하게 된 과거의 종교 형식을 대체해가는 과정이야말로 진실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세속화라는 흥미로운 이야기는 단순히 쇠락의 이야기가 아니며, 성스러운 것 혹은 영적인 것이 개인적인, 사회적인 삶에서 새로이 자리매김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새로운 자리매김은 영적인 삶이 새로운 형식으로 재구성되고 신과의 관계 안팎에서 [우리가] 존재하는 새로운 방식들의 출현하도록 했다”(But the interesting story is not simply one of decline, but also of a new placement of the sacred or spiritual in relation to individual and social life. This new placement is now the occasion for recompositions of spiritual life in new forms, and for new ways of existing both in and out of relation to God, 437).

 

2절은 전근대적 시기부터 도시화 시대까지의 종교적 양식의 변화를 압축해서 정리한다. 이는 종교적 삶이 수행되기 위한 사회적 틀”(the social matrix)과 삶이 그 안에서 구성되는 영성의 형식들”(the forms of spirituality)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된다(438).

최초의 틀은 위계적인 구체제모델이다. 민속적 종교(folk religion)와 같은 예를 꼽을 수 있는 이러한 모델에서는 집단적 의례를 통해 구성원이 보다 높은 힘의 감각”(senses of higher power) (지역 공동체 내부에서나마) “전체 공동체”(the whole community)에의 일치감을 느끼게 된다. 지배 엘리트들은 이러한 민중적종교를 끊임없이 통제하려고 노력한다. 종교개혁이 그 대표적인 사례로서, 미신·비공인 종교가 금지될 뿐더러 개중에는 사회 자체를 개혁하고 혁명하려는 시도까지 있었다. 그러한 경향이 정점에 다다른 것이 새로운 반 기독교적 이데올로기”(a new anti-Christian ideology, 442)를 제시하기까지 한 프랑스 혁명으로, 이를 이끈 세속주의 공화주의자들과 대결하게 된 카톨릭 세력은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바로크적인 수직적·위계적인 사회 모델을 다시 제시하고 스스로 사회 전체의 교회”(The Church of the whole society)의 역할을 맡아 마법에 걸린”(enchanted) 세계를 다스리는 정통파로서의 임무를 주창했다.

그러나 이러한 반동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점차 (이후 기독교 민주주의로 이어질) “민주적인영역들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엘리트와 대중 사이의 깊어지는 간극을 포함한 계층·사회분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통일된 교회모델의 성립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도시화와 산업화의 진전은 19세기 후반 프랑스 농촌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교구 통치에 기반한 마법적 종교”(enchanted religion)는 붕괴한다. 기존의 종교적 통치에서 소외된 도시생활자들의 집단적 출현은 그 빈틈을 메꾸기 위한 새로운 형식과 공동체를 요구하게 되며, 이중에는 교회의 통제를 벗어난 배타적 인본주의라는 선택지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곧바로 세속주의의 범람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19세기의 교황지상권론을 주창하는 교회는 경건함의 민중적 양식”(popular modes of piety)을 제시하여 시골만이 아니라 도시지역 노동자 집단을 대상으로도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결국 카톨릭 교회는 그 스스로 평신도를 조직화하여 집단적인 카톨릭 행동”(Catholic Action)에까지 이르는 대중동원 과정에 착수하게 된다.

 

3절은 2절 마지막의 사례를 이어받아 본격적으로 대중동원의 시대를 다룬다. 과거의 종교양식에서 어떤 신성한 질서가 그 자체로 정당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면, 이제 이러한 질서는 존재하기 위해서 대중이 동원되어야 하는”(to have to be mobilized into existence, 445) 것으로 인식되게 된다. 교회와 국가 간의 구체제적인 결합도 이제는 신의 섭리를 왕이나 교회가 독점적으로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민족·인민이 근대 도덕 질서”(MMO)와 결합한 모델, 상호적 이익을 추구하도록 구조화된 사회”(a society structured for mutual benefit) 자체가 신의 의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된다(447). 북미 지역의 경우 구체제가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문명 혹은 자연 자체가 신의 목적을 반영한다고 믿는 시민종교의 생성으로 발전했지만, 구체제와 대중동원 시대의 모델이 공존하며 충돌해야 했던 유럽은 좀 더 좌충우돌하는 길을 걸어야만 했다.

미국의 경우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종교로부터 인민들이 떨어져 나와 자발적으로 연합체를 형성하는 모습을 다른 나라보다 좀 더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러한 자유 교회”(free churches, 449) 원형은 본래 웨슬리 형제들이 이끈 감리교(the Wesleyan Methodists)에 있었으나, 미국의 경우 좀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감리교도들은 모든 사회구성원이 속하는 교회(church), “구원받은사람들에게만 집중하는 종파(sect)도 아닌 교파(denomination)의 원형을 보여주었다. 교파는 자신들을 여러 (배타적이지 않고 상호 연합가능한) 교파들로 이루어진 사회의 일부로 간주했는데, 이는 북미의 새로운 공화국”(the new Republic)의 시민종교로서 좀 더 걸맞은 것이었다. 이민, 급격한 사회변화, 계급 간 충돌과 같은 요인들이 과거의 교회 모델에서 충분히 대응되고 있지 않을 때 스스로를 다스리는 독립의 에토스”(the ethos of self-governing "independence," 450)를 강조하며 유연성을 갖춘 이러한 교파들은 18세기 중반의 대각성 운동(the Great Awakening), 19세기 초 제2차 영적 각성운동(the second Awakening) 등을 거쳐 주도권을 획득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대중종교 모델은 기존의 질서가 변화하는 무질서의 시대에 절제(temperance)를 키워드로 한 스스로를 다스리는 (남성) 주체, 자유와 존엄 및 책임감, 가족 중심적 질서(family-centered order) 등을 내세우며 신앙과 도덕질서를 융합시켰고 구성원에게 자기 통제의 힘을 부여했다. 즉 복음주의는 개종을 통해 더 나은 사람으로의 변화를 약속할 수 있었다.

테일러는 구체제의 붕괴 이후 등장한 대중동원 모델의 주요한 특성을 다음의 서로 강화하는 두 가지 특성으로 정의한다. 첫째, 신의 의도가 사회의 정치적 정체성과 맞물린다는 믿음. 둘째, 자유교회들이 상호부조를 통해 개인들이 신의 말씀과 접하고 서로에게 힘을 줄 수 있도록 기능. 이 두 가지 경향이 상호강화하며 작용한 미국에서 공화국은 교파들의 다수성을 보장하며, 교회들은 공화국이 필요로 하는 개인들의 에토스, 즉 신의 뜻에 따르는 에토스를 지속시킨다. 이처럼 개별 교회·종교와 분리되어 교파들을 담는 그릇 혹은 그 모두를 감싸는 신의 뜻을 나타내는 국가의 모델이 바로 신 뒤르켐적인 모델이며, 특히 영어권 국가에서 이러한 모델로의 궤적이 나타난다. 신 뒤르켐적 모델이 강세를 보인 곳에서는 진정한교회가 반대세력을 낳았던 바로크적 모델과 달리 민중 집단이 열광적이었던 감리교도들처럼 자신들의 영성의 형식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높은 수준의 신앙과 종교적 실천을 유지할 수 있었다(455). 이 모델에서 종교적 소속감은 정치적 정체성과도 깊게 이어져 있으며, 나아가 민족국가적 정체성과도 이어져 자신들이 신의 의도에 따라 문명적 질서를 건설하는 보다 우월한 이들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됨으로서 그 자체로 대중동원의 밑바탕이 되었다.

 

4절은 구체제(AR) 모델과 대중동원(M) 모델의 갈등 및 전자로부터 후자로의 이행과정을 다룬다. 테일러는 양자의 차이점으로 먼저 네 가지 요인을 지목한다: 세계질서에 대한 관념: “질서지어진 우주”(cosmos)라는 전근대적 모델 VS. 근대 도덕 질서 선험적 질서가 초역사적으로 존재하며 인간 존재의 위치와 역할을 규정 VS. 인간 행위자들이 그러한 질서(혹은 신의 의도)를 세속적 세계에서 실현해야 한다는 사고 유기적 사회 모델 VS. 그 자체로 무매개적인 시민들이 사회질서에 직접 접속”(direct-access) 탈주술화 여부(459-60). 물론 전자에서 후자로의 이행은, 예컨대 프랑스와 영미의 차이가 보여주듯, 지역적으로 상이한 경로로 진행되었다. 이 과정을 단선적인 흐름으로 설명하는 대신 테일러는 다음과 같은 이행모델을 설정한다. 기존의 낡은 형식들이 불안정해지고, 이때 인구가 보유한 레퍼토리(the repertory of the populations)로부터 가능한 창출된 것들을 포함한 대안이 기존의 형식을 대체하거나 재구성하게 된다.

19세기 프랑스 카톨릭 교회의 경우, 혁명 이후 교회는 전체 사회구성원을 포괄하기 위해 평신도들에게까지 닿는 재조직화를 추구했으나, 과거의 위계적 모델은 근본적으로 근대성의 발전과정, “도시, 산업, 의사소통, 이동성”(towns, industry, communications, mobility, 462) 등의 확산과 쉽게 조화를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교회의 보전을 위해 채택한 조직화와 모집, 대중동원의 기제가 그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낡은 형식을 무너트리게 된다. 공동체 형식(community form)으로서의 종교라는 형식을 띠고 있었던 AR 모델은 구성원들에게 사회의 법칙에 대한 순응을 강요했으나, 이는 사회의 변동과 함께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공화주의자(the Republicans)가 이겼고, 종교는 개개인들의 의견”(opinion)이 된다(464). 전통적인 민중공동체와 (개혁에서 볼 수 있듯) 개인적인 경건과 자율성을 추구하는 두 입장 사이의 항으로서 위계질서를 갖춘 권위를 대변했던 카톨릭은 AR모델이 붕괴한데다 자신의 경쟁자인 공화주의자들까지 동원에 뛰어들면서 다른 선택지를 가질 수 없었다. 프랑스 카톨릭 교회는 왕정과의 결합 및 사제에 의한 통치(clerical control, 467)를 포기하고 이를 기독교 민주주의, 평신도가 주도하는 정당정치로 대체하게 된다.

이렇게 재구축된 카톨릭과 (영미의) 복음주의에는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고 테일러는 설명한다. 양자는 무엇보다 근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에토스·영성과 훈육을 신도들에게 심어주었으며, 보다 특별한 영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을 위해 예배, 기도 등의 특별한 형식(여성은 신성한 마음”Sacred Heart을 맡고 남성은 보다 활동적인active 역할을 맡는 식으로 종종 젠더화된)을 제공하고 양자를 결합했다. (다만 카톨릭은 예컨대 축제festive와 같이 각 교구공동체의 민중적 성격을 지닌 의례들을 내버려두고 그것과의 긴장을 감내하며 대신 그것을 활용하는 길을 선택했다) 동시에 양자는 기독교 정당처럼 정치적 정체성을 제공했으며, 자신들이 도덕과 문명의 수호자라는 믿음을 공통적으로 견지했다. 물론 이 네 가지 특성은 과거의 두 세기 동안 엘리트 집단 내에 자리 잡아온 것이었으나, 이제는 이 모든 것이 대중적인 현상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1800년대부터 1950-60년대까지를 특징짓는 동원의 시대는 곧 드라마틱한 추락을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13장 진정성의 시대 Ch. 13 The Age of Authenticity

 

두 개의 절로 구성된 13장은 1960년대 이후의 급격한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논리를 제공하고자 한다.

 

5절에서 테일러는 1960년대를 개인화의 혁명”(an individuating revolution, 473)이 휩쓴 시기라 부르면서, 거기에는 도덕적·영적·도구적 개인주의와 함께 과거 낭만기에 발명되었던 “‘표출주의적개인주의”(“expressive” individualism)의 대중적 확산이 있었다고 말한다. (적어도 영미와 프랑스의) 모든 이들은 무언가 바뀌었음을 직감했고, 미국인들은 공동체, 가족, 이웃, 심지어 정체(the polity)까지도 붕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처럼 수많은 변화 중에서도 테일러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처럼 새로운, 적어도 겉보기에는, 개인화를 부추기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도덕적으로 불편하게 받아들이도록 한 인간의 삶, 주체성, 선에 대한 이해”(the understandings of human life, agency, and the good which both encourage this new (at least seeming) individuation, and also make us morally uneasy about it, 474)의 영역이다.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소비자 혁명”(the consumer revolution)으로, 이는 사적 공간(private space) 및 그것을 충족시키는 갖가지 수단들에 초점을 맞추었다(474). 사치는 이제 방탕과 악덕의 상징이 아니라 각자의 취향을 표출(express)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졌으며, “행복 추구”(pursuit of happiness)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이처럼 새로운 소비문화에 수반한 중요한 현상이 바로 옷에서부터 음반에 이르기까지 쇄도하는 신상품으로 가득한 특별한 청년 시장”(youth market)의 등장으로, 청년층은 동시에 새로운 동원의 정치의 핵심이 되어 소비에서도, 정치에서도 자신에게 고유한 무언가를 표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18세기 후반 낭만주의 표출주의로부터 기원하는) “‘진정성의 문화”(the culture of ‘authenticity,’ 475)가 등장한다. 진정성의 문화는 사회적 순응을 미덕으로 강조하는 부르주아적규범이나 완충된”·훈육된 자아 및 도구적·합리적 통제, 50년대의 순응적 기조, “시스템메커니즘이성으로부터 비롯된 내면의 분할이나 지배와 억압에의 복종으로 비판·거부하며 자아의 실현을 근본적인 가치로 끌어올렸다. “통합적인 자아의 표출, 감각적 해방, 평등한 관계, 사회적 유대”(integral self-expression, sensual release, equal relations, and social bonding, 477) 등이 병립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이러한 요구는 1968년의 이상이 품었던 유토피아적 본성의 귀결에서 드러나듯 그러한 목표들 중 어느 하나도 희생시키지 않고 실현되기란 극히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으며, 그 예로 테일러는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가 거론한 보보스 족”(BoBos)에게서 보다 고상한 이기심”(higher selfishness)의 추구와 사회적 평등의 망각이 동시에 나타난 것을 꼽는다. 60년대 유토피아적 운동의 파편들은 가령 그 자체로 근본적인 가치를 부여받은 선택”(chocie)이란 말에서 드러나듯 현실의 딜레마를 가려버리는 대가를 치르기도 했다. 이처럼 진정성의 시대로의 이행에서 도덕적 지주가 변화했다”(the moral stakes change, 480)고 할 때, 테일러는 이러한 변화에 따라 우리가 적어도 두 가지를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첫째, 가능한 선택지가 바뀌었다과거에는 가능했던 선택지들이 이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둘째, 오늘날의 맥락에서 여러 선택지 중 더 나은 선택지가 존재한다.

이러한 변화가 우리의 사회적 상상에 어떤 변화를 초래했는가? 시장경제, 공론장, 인민주권과 같은 기존의 수평적”(horizontal) 변화에 조응하는 네 번째 구조로 테일러가 꼽는 것이 바로 유행의 공간”(the space of fashion, 481)이다. 여기서 개개인이 선택하고 창출하는 스타일의 유행은 한편으로 자아의 표출이면서 동시에 사회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유아론과 의사소통이 함께 작용하며, 이처럼 공통의 행위와 느낌이 가능한 공간의 창출은 진정성의 시대가 가져온 진정한 변화 중 하나이기도 하다이러한 공통 감각(common feeling)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넘어서는”(beyond ourselves, 482-83) 과거의 축제와 같은 것을 환기시킨다. “전시의 공간”(spaces of display)과 불가분한 새로운 소비자 문화는 그것이 상품을 통한 자아 표출이라는 점에서 거대 기업 등에 의해 조작될 위험을 항상 품고 있지만, 동시에 사회구성원에게 가족이나 전통이 아닌 다른 영역으로 진입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선택·자결(self-determination)의 측면 또한 지닌다. 초국가적 자본의 언어 자체의 바깥으로 나아가려는 진정성에 대한 보다 진솔한 탐색”(a more genuine search for authenticity, 483) 또한 이 영역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한다.

상호 이익추구에 기초한 근대 도덕 질서(MMO)의 관점에서 볼 때, 진정성의 시대는 각자의 가치와 각자의 진정성을 승인하는 약한 상대주의(soft relativism)를 보여준다. 이때 개인적 자유와 미덕(virtue)의 추구는 양립 불가능하지 않은데, 이는 로크 혹은 초기 미국정신에서 드러난 도덕의 강력한 제약과 달리 타인을 직접적으로 위해하지만 않는다면 각자의 선을 추구할 수 있다는 J. S. 밀 식의 위해 원칙”(harm principle, 484)으로의 이행을 보여준다(행복추구권 또한 도덕적 제약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던 초기에서 현대의 사생활privacy 보호로 강조점이 이동한다). 밀이 훔볼트 식의 표출주의적 원천을 받아들였다면, 위해 원칙은 이후 표출주의적 개인주의의 성립에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혁명적 변화의 기술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성적 관습”(sexual mores, 485) 상의 변화다. 과거 엘리트 집단 내에서만 통용되던 새로운 성 관념은 1960년대를 기점으로 전 사회적으로 확산된다. 테일러는 고-뒤르켐적 모델에서 후기 뒤르켐적 모델로의 이행과정을 다시금 짧게 간추린 뒤(486), 후자의 단계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신성한 것과 국가 혹은 정치적인 것 사이의 연결은 희미해지며 각자가 자신에게 유의미한 영적 경로를 선택할 자유를 부여받는다고 말한다. 물론 그러한 변화가 20세기 중반에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닌데, 가령 18세기에 완충된 자아에 대한 불만으로 우리 자신을 움직이는 느낌, 감정, 생생한 믿음을 강조”(to stress feeling, emotion, a living faith which moves us, 488)하는 경향이 등장하여 정념 자체가 미덕의 주요한 원천으로 자리하고 종교와 지적인 삶이 점차 분리된 것으로 여겨지게 되는 흐름이 나타났다. 낭만기에는 이 연장선에서 협소한 이성과 진리(truth)의 구별이 강조되고, 후자를 포착할 수 있는 보다 섬세한 언어”(a subtler language)가 추구되었으며 영적 통찰·느낌이 사회적 순응과 대립하게 된다. 그리고 후기 뒤르켐적 시대에는 마침내 위해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 한에서 무제약적인 다원주의가 출현한다.

후기 뒤르켐적 모델, 진정성의 시대의 중요한 견인차인 표출주의 혁명은 이제 지난 시대까지 당연시되었던 기독교와 자기훈육의 에토스, 그리고 문명적 질서(civilizational order)라는 3항 사이의 근본적인 결합을 의문시한다. “자기 거부”(self-denial)나 훈육·자기통제의 에토스 및 이를 강조한 복음주의적 전통은 더 이상 문명적 질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지 않으며, 대신 행복 추구·자기 충족(self-fulfillment)·규율의 위반을 강조하는 표출주의적 사고에 의해 억압적 기제로서 비판 받는다. 이 흐름을 선도한 것이 바로 성 해방과 여성주의 담론이다(다만 테일러는 이러한 담론 일부가 주창한 성 역할의 거부가 겉보기만큼 쉽게 달성되기는 어려웠다고 덧붙인다). 기독교 교회와 자기훈육의 에토스 사이의 결합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이것은 문명화 과정·상업사회의 대두와 함께 교회 또한 여성화”feminization 하면서 기독교 신앙과 가족적 가치및 훈육된 노동의 결합이 강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역으로 교회가 권위주의적”(authoritarian)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는 결과를 낳았으며, 기독교는 아직 사회에 자신의 역할을 설득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찾지 못하고 있다.

 

6절에서 테일러는 성 해방의 맥락을 좀 더 상세히 설명한다. 이제까지의 기독교적 통치에서 사제계급은 지옥에 대한 공포 등을 통해 위계적인 통치를 수행할 수 있었으며, 이는 도덕주의(moralism, 497) (한편으로 사제계급과 성적인 것의 거부를 강조하고, 다른 한편으로 근대사회가 안정되면서 순수성의 문제에 더욱 매달리게 되어 나타나는) “성적 순수성”(sexual purity)에 대한 강조와 병행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에 기초한 사제계급의 통치는 근대성의 발전과 함께 나타난 개인의 책임과 자유를 강조하는 경향과 쉽게 타협할 수 없었다. 최초에는 교회의 영도 하에 성에서 자손증식만을 강조했던 서구 사회는 17-18세기의 변화와 함께 빅토리아 시기로 접어들면서 과학적 관점에서건강한 성을 강조하고, 쾌락 또한 (주 목적은 아니지만) 함께 갈 수 있다는 언어를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이러한 흐름으로부터 촉발된 성 윤리의 자연화·의학화 경향은 지도적인 엘리트·사제계급이 아닌 일상의 평범한 사람의 관점에서 성을 이해하게 된다(이때에도 결함 있는이들은 배제되었다; 건강은 그 자체로 미덕과 결합했으며, 질병은 악덕을 표상하는 언어는 유지되었다).

20세기 초반에는 마침내 과학과 종교의 연합이 붕괴한다. “프로이트, 해블록 엘리스, 에드워드 카펜터 등의 사상가들에게, 성적 희열은 그 자체로 좋거나 최소한 사실상 근절할 수 없는 힘이었다”(For thinkers like Freud, Havelock Ellis, Edward Carpenter, sexual gratification was either itself good, or at least seen as a virtually unstoppable force, 501). 이제 감각적인 측면(sensuality)에 대한 거부는 점차 사라지고 있었으며, 여성의 욕망 또한 중요하게 인정되고 있었다. 1960년대에 감각적 측면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 되었고, 서로 다른 성은 평등한 것으로 간주되기 시작했으며, “전복적인”(transgressive) 성은 해방적인 것으로, 섹슈얼리티는 정체성의 근본적인 일부분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러한 관념상의 변화가 일상에서 얼마나 지속될 수 있었는가와 별개로, “도덕적 풍경”(the moral landscape)은 변화했다. 카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거쳐 자연의 언어와 결합한 새로운 성적 도덕을 제시했지만, 이는 진정성의 시대에 제대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테일러는 지적한다.

 

 


14장 오늘날의 종교 Ch. 14 Religion Today

 

: 7절은 지금의 문화적 혁명과 함께 동원의 시대에 지배적이었던 종교적 형식은 불안정해졌다는 진술로 시작한다(505). 교회는 더 이상 민족적·소수자 정체성과 강력하게 결합되어 있지 않으며, 권위의 윤리·양식이란 측면에서도 과거와 같은 위상을 확보할 수 없었다. 국가/애국심-종교-가족적 가치가 강력하게 결합한 미국적 모델도 세계 대전 후에는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를 맞이한 후기 뒤르켐적/진정성의 시대에 종교는 그 자체가 (표출주의 혁명의 상속자인) 진정성을 추구하는 하나의 행위양식이 되었다. 제도적 종교의 권위주의에 대한 거부와 함께 합일의 감정, 전체로의 충만함, 개성과 같은 영성의 새로운 강조점이 등장했으며, 주관주의적 영성은 뉴 에이지 등에서 제시된 영적 모험”(spiritual quest)의 새로운 형식과 조응했다. 그리고 이것이 반드시 이 세계에 갇힌, 내재적 자아(immanent self)의 추구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권위에의 굴종을 거부하는 자율적인 자기탐색의 시도들도 있으며, 웰빙 문화를 넘어서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초월에 대한 열망은 존재한다. 물론 우리 시대에 후기-뒤르켐적 양식과 (때로 새로운 권위주의로 갈 가능성도 있는) 영적 모험만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며, 기존에 공인된 권위에 기초하는 신-뒤르켐적 양식 또한 이들과 경쟁하는 구도에 놓여 있다테일러는 유사한 구도가 17세기 프랑스에서 경쟁했던 두 입장 사이의 갈등, 즉 공인된 교회의 결정을 옹호하는 얀센주의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경건한 인본주의들(the devout humanism) 사이의 대립에도 나타난다 말한다.

 

8절에서 테일러는 표출주의적 문화가 영적 풍경”(spiritual landscape), 특히 기독교 세계에 끼친 영향을 설명한다. 한편으로 서로 다른 종교 집단 사이의 장벽이 무너졌다. 그러나 특히나 기독교의 관점에서 볼 때, 종교는 명확히 쇠퇴했다. 무신론자의 수는 급격히 늘었고, 종교를 가졌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종교적 삶에 참여하지 않는 중간지대의 비중도,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의 신봉자들도 늘었다. 동원의 시대로부터 진정성의 시대로 이행하면서 기독교는 후퇴했다”(a retreat of Christendom, 514). 과거와 같이 다른 사회구성원을, 다른 세계를 기독교화하겠다는 사명 또한 비현실적인 것이 되었다. 물론 이것이 후기-뒤르켐적 단계가 모든 곳에서 독점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민자 사회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집단주의적·국민적인(national) 정치적 정체성을 비롯해 신-뒤르켐적 단계 또한 곳곳에서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 영적 실천을 이해하는 형식이 개인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공동체에 소속되는 것과 같은 집단적인자기 이해의 추구 자체는 여전히 남아있다우리는 이를 우리를 일상에서 벗어난, 공통의 행동·느낌 속에서 모두가 융합하는 경험으로 인도하는 (가령 락 콘서트와 같은) “축제”(the festive)의 번성에서 관찰할 수 있다.

기독교로부터의 후퇴, 신앙과 국민적·집단적 정치적 정체성 간 연결고리의 약화가 부분적이나마 초래한 결과로 테일러는 영성의 추구와 공인된 종교적 권위 사이의 거리가 벌어지게 된 현상을 지적한다. 확고한 무신론보다도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기독교 명목론”(Christian nominalism, 520), 즉 스스로를 기독교도라고 생각하지만 권위적인교회에 특별히 나갈 생각은 없다는 점에서 믿지만 속하지는 않는”(believing without belonging, 518) 이들의 확장은 주목할 일이다. 그러나 국가적 재난이나 재해, 위기 후에 기독교에의 호소가 다시금 증대하는 것을 볼 때 이것이 곧바로 기독교·종교 자체의 소멸이라는 흐름으로 이어진다고만은 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테일러는 단순히 신-뒤르켐적 정체성 또는 문명적 질서에 대한 우리의 충성을 통한 종교에의 연결 자체가 상실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며, 실제로는 오히려 일종의 돌연변이가 있다고 말하는 게 맞는 것 같다”(we shouldn’t perhaps speak simply of the loss of a neo-Durkheimian identity, or connection to religion through our allegiance to civilizational order, but rather of a kind of mutation, 522)고 말한다. 이를 좀 더 잘 살펴보기 위해서 테일러는 유럽과 미국이라는 매우 다른 두 모델을 비교해볼 것을 제안한다.

 

9절에서 테일러는 미국적 예외”, 또는 유럽적 예외를 비교해보고자 한다. 미국은 [여러 이질적인 요소들 간의] “통합 모델 중 복수의 종파들로 이루어진 모델을 채택했다”(one of the models of integration was of "denominations," 523). 단 하나의 공인된 교회라는 오래된 모델은 거부되었고, 주민들은 제각각 여러 교회들에 나뉘어 소속되지만, 이 모두는 다시 하나의 넓은 시민 종교”(civil religion)의 일부인 것처럼 여겨진다. 사람들은 신앙 및 종교적 정체성을 통해 아메리카에 속한다. 구체제적 모델이 없이 곧바로 신 뒤르켐적 단계-동원의 시대로부터 출발한 미국적 모델은 프랑스의 자코뱅-공화주의적 정교분리”(laïcité)와 분명한 대조를 보인다. 반면 고-뒤르쳄적 혹은 구체제 모델과 신-뒤르켐적 모델이 혼재하여 종교와 권위·특권이 밀접하게 결합해온 유럽에서는 사회적 순응을 유발하는 이데올로기인 종교에 대한 반작용으로 반사제주의적 성격을 띤 배타적 인본주의나 비국교도(nonconformity)들이 강하게 나타났다. 보다 위계적인 유럽사회에서 [공인된 교회와 반목해온] 엘리트들이 만들어낸 불신앙의 모델이 민중에게도 넓은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 또한 중요하다(524).

주지하다시피 60년대의 문화혁명은 진정성의 윤리 및 성 혁명 등을 통해 19세기-20세기 초의 종교적 형식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새로운 형식을 출현시키면서 신앙과 정치적 정체성, 신앙와 성 도덕 간의 연결을 파괴했다. 여기에 대해서도 유럽과 미국은 서로 다른 경로를 걸었다. 후기-뒤르켐적 모델로 가려는 사람들을 위한 대안적 종교형식이 이미 적지 않게 존재했던 미국은 신의 가호 하에 있는 하나의 나라”(one nation under God, 527)라는 구호를 포함해 애국심-종교-가족의 결합체가 공고하게 유지될 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종교가 유럽과 같이 극적으로 쇠퇴하는 결과를 피할 수 있었다. 반면 유럽은 애국심-종교-가족의 결합체가 1차 대전 이후 급격히 무너진 상태였으며, [곧바로 종교 자체의 거부로 가지 않도록 완충작용을 해줄] 다른 종교형식이 없는 상황에서 기존의 종교가 무너지고 종교가 아닌 의미의 형식”(extra-religious forms of meaning, 529)을 새롭게 탐색하는 경로로 나아갔다.

 

4부의 마지막인 1410절에서 테일러는 세속화에 대한 주류적 해석과 달리 지금까지의 상황을 단순히 종교·신앙의 쇠퇴만으로 기술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영원을 향한 욕망”(désir d'éternité, 530)은 근대성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동기부여의 원천으로 남아있으며, 기독교가 더 이상 단일한 사회이해의 모델을 제공하지 않는 다원주의적 조건 하에서도 호세 카사노바가 주장했듯 종교적 담론은 여전히 공적 영역에서 번성할 것이며,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공적 토론 과정에서 자기 자신에게 가장 유의미한 언어를 말하도록 요구한다”(Democracy requires that each citizen or group of citizens speak the language in public debate that is most meaningful to them, 532). 장기적으로 볼 때, 분명 라틴 기독교 세계에서 종교적 숭배 및 그 실천의 형식은 보다 개인적이고 열성적인 것으로 바뀌어 왔으며, 오늘날 찾아볼 수 있는 탐험의 영성”(the spirituality of quest)은 그러한 흐름이 진정성의 시대에 취하고 있는 형식처럼 보인다. 근대 도덕 질서와 그것이 요구하는 훈육을 하나의 속박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그에 대항해 신앙으로 향하는 수많은 다른 경로들을 열고 있는 것도 사실이며, 미하일 엡스타인(Mikhaïl Epstein)이 소비에트 이후 러시아 사회에서 찾아낸 최소한의 종교”(minimal religion, 533), 즉 카톨릭이나 정교회와 같은 주어진 종파에 대한 신앙고백 대신 친구, 가족과 같은 직접적인 인간관계 내에서 공유되는 종교적 형식에서 다양한 형식의 영성과 종교적 숭배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the coexistence of plural forms of spirituality and worship is taken for granted, 534). 테일러는 이러한 상황에 처한 유럽을 주류적인 세속화 이론이 도전받고 있다는 점에서 후기-세속화”(post-secular)의 공간이라고 명명한다. “어느 경우에든,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종교적 탐색을 이제 막 개시하고 있으며, 그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In any case, we are just at the beginning of a new age of religious searching, whose outcome no one can foresee, 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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