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은 신유교주의 포르노인가?

Comment 2017. 3. 16. 23:21
[이 글은 편집을 거쳐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게재되었다. http://www.huffingtonpost.kr/woochang-lee/story_b_15420978.html ]

마이클 허트(Michael Hurt)가 쓴 <케이팝은 신유교주의 포르노다>(K-pop Is Neo-Confucian Pornography)를 읽었다. 얼마 전 이 글의 영어원문이 SNS에 올라왔을 때 조금 읽다가 뒤로 미루어두고 잊어버렸는데, 이틀 전 한국어 번역문이 공개되었다(http://m.blog.naver.com/iden_com/220958002702). 한국어역 텍스트를 두 번 읽은 뒤 내린 결론은 (적잖게 고생했을 한국어 역자에겐 미안하지만) 이 글에 괜히 시간을 투자해 영어로 읽을 필요는 없었으며, 마찬가지로 이 글이 유효한 통찰을 준다고 믿을 이유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두 가지 이유를 꼽고 싶은데, 첫째, 이 글의 논지 전개는 아주 기초적인 수준에서부터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필자는 대학에서 학부생들을 가르친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밝히고 있지만, 내 생각엔 그가 지금이라도 학부 수준의 논리학 수업을 성실하게 청강한다면 모두에게 더 이로울 것 같다. 둘째, 조선 후기 정치사상을 전공한 지인에게 이 글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그에 따르면 이 글에서 "유교"에 대해 언급하는 대부분의 사항들은 틀렸다.


1. 문화연구식 글쓰기의 나쁜 클리셰를 거의 압축하듯이 모아놓은 이 글의 주요 논지는 다음과 같이 단순하게 정리될 수 있다.

A. (신)유교는 여성을 성애의 대상으로만 간주하며 주체성을 박탈한다(필자는 암묵적으로 유교가 여성을 "포르노"의 대상으로 만든다고 전제하는 것 같다).
B. 현대 한국에서 유교주의는 여전히 강력한 영향을 발휘하고 있으며, 특히 여성인물의 재현에서 그러하다.
C. 로타와 최근의 (일부) K-Pop은 여성을 "소녀"로 묘사하는데, 이때 "소녀"는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능동적인 주체성을 박탈당하고 성적 대상으로서의 정체성만을 갖는다.
D. 따라서 (로타 등을 포함한) K-POP은 신유교주의적 포르노다.

이 네 가지의 명제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좀 더 간단하게 만들면 다음과 같다: 한국의 신유교주의(P)는 여성을 포르노의 대상으로 만든다(Q), K-POP(R)은 여성을 포르노의 대상으로 만든다(Q), 따라서 K-POP(R)은 신유교주의(P)적 포르노다. P->Q, R->Q, 따라서 R->P. 청소년기에 위기철 선생의 <논리> 3부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것이 일종의 오류논증이라는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사람은 죽는다, 닭도 죽는다, 따라서 닭은 사람인가?). 그러니까 이 글의 주장은 그냥 논리적으로 틀렸다.

좀 더 진지한 독자들을 위해 비판을 덧붙여 보겠다.

첫째, 필자는 자신이 "한국의 모든 것을 유교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보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이 글만 놓고봤을 때 그는 정확히 자기 자신이 정의하는 바보에 해당한다. 그는 한국학 연구의 낡아빠진 오류를 비판하지만, 정작 2010년대의 한국문화를 설명함에 있어 신유교주의 말고 그 어떠한 문화적 원천도 언급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현대사회가 그러하겠지만) 한국은 굉장히 다양한 문화적 원천들의 충돌과 타협을 통해 만들어진 사회다. 당장 90년대 이후의 한국 대중문화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80년대까지의 유산은 일단 괄호에 넣는다고 하더라도, 미국과 서유럽, 홍콩,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본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서 거시적인 설명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자신이 주된 소재로서 언급하는 포르노의 경우, 아주 당연하게도 (주로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그러나 매우 폭넓게 유통되는) 일본 포르노의 영향없이 한국의 포르노 문화를 말할 수 없다--필자가 주요한 사례로 꼽는 로타의 경우도 일본의 특정한 사진풍을 그대로 가져온 게 아니냐는 비판을 누차 받아왔다. 간단히 말해, K-POP의 포르노적 성격을 규명할 때 왜 일본 포르노 문화가 아닌 신유교주의의 영향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강조되어야 하는가?

둘째, 그가 유교적 여성관의 특징이라고 지적하는 사항들은 너무나 크고 광범위해서, 그냥 우리가 (최근의 유행을 따라) "여성혐오"라고 부르는 것들의 사례를 모아놓은 것과 차이가 없다. "여성을 남성에 비해 계급적, 권력적으로 낮은 위치에 두는 것", "여성의 정숙이 자원으로서, 혹은 인간으로서 그를 정의하는 가치의 핵심"이라는 것, "여성의 신체에는 주체가[주체성이] 없다"는 것, "사회는 자라서 아이를 낳는 능력으로 여성을 평가"한다는 것 등등...의 진술이 나오는데, 여성주의 및 여성혐오에 관해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사항의 대부분이 특별히 "유교적"이라기보단 대부분의 남성중심적 문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서구 중세 로맨스를 보면 이런 여성혐오 정도는 언제든 삽으로 퍼낼 수 있을만큼 가득한데, 그걸 분석거리로 삼는 게 중세 페미니스트 문학비평의 한 흐름이기도 했다). 일본에는 저런 문화가 없나? 미국 청교도 문화에는 그런 게 없었나(필자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The Handmaid's Tale 같은 건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른 문화권 혹은 다른 포르노 문화의 여성관과 "유교적" 여성관의 유의미한 차이를 짚어내지 않는한 필자가 주장하는 "유교적 여성관"이 딱히 유교적일 이유도, 따라서 K-POP이 딱히 "신유교주의적 포르노"일 이유도 없다.


2. 그렇다면 그가 유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진술들은 얼마만큼이나 정확할까? 늦은 시간 나의 귀찮은 질문에 답변해 준 Jean Soh 선배에게 감사드리면서 그의 코멘트를 정리해서 옮겨본다.

1) 전통적인 신유교적 입장에서 논개는 실존인물인지도 확실하지 않고 충, 효, 열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오랫동안 도외시되었으며, 임진왜란때 전투에서 패배한 진주지역의 양반들이 지역살리기 운동의 일환으로 "의"라는 영역을 굳이 만들어서 표장한 인물이다.

유교는 여성의 신체에 대해서 (허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여성의 정숙, 즉 순결하고 번식에 용이한 유기체라는 개념이 여성의 삶보다 중요하게 여겨진다면 논개의 죽음은 정당성을 얻는다"라고 보지 않는다. 정숙=순결이 아니다. 유교는 기본적으로 관계윤리, 즉 자신에 대한 수양은 자신이 책임지면 되지만, 진짜 유교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건 관계가 설정되면서부터. 논개의 경우 충, 효, 열 어디에서 속하지가 않는다. 누구의 아내도 아니었고, 부모를 위해 죽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국가를 위해 죽은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조선에서 논개를 표창하는데 엄청 시간이 많이 걸렸다. 같은 인용문의 "[여성이] 번식에 용이한 유기체[가 되는 게 중요하다]"라는 말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럼 남자는 번식에 용이하지 않다는 말인가? 번식에 용이하지 않은 유기체는 어떤 것인가?

2) "조선 유교주의에서는 남성만이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자아 수양을 할 수 있다. 조선 유교는 여성은 현자가 될 수 없으며 자아와 신체를 초월하기 위한 필요나 능력도 없다고 상정한다. 남성은 고전을 연구하며 심적인 자아를 남기며 조상숭배 제도를 통해 육체적인 자아도 남긴다. 그러나 여성은 물리적인 신체를 통해 번식하고, 가족 구성원을 유지하기 위한, 육체적인 신체로서만 존재한다. 심신수양의 상징인 ‘기’는 남성 신체의 대표적인 개념이다. 조선 유교에 따르면 여성은 물리적인 신체가 강조되며 남성은 신체를 초월하기 위한 측면이 강조된다."
--> 이게 사실이라면 조선후기에 성인이 되기 위해 글을 쓰고 교류하고 "성인은 누구이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말을 했던 양반여성들은 뭐가 되나?

"조선 유교학자들은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 이런 말을 하는 조선유학자들은 없다. 음과 양은 동등성을 갖는 짝이다. 유교가 대중화되면서 음양/천지/상하/고저와 같은 반대되는 개념들의 짝이 양-천-상-고/음-지-하-저와 같은 연속적 개념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여성들을 폄하하거나 남성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존재했지만, 유학자들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유교는 (민주주의가 무의식적으로 시민에서 남성이란 말을 빼고 인간이라고 지칭한 것과 유사한 의미에서) 인간들이 본성적으로 동일하다고 믿는다.

"미래의 신부감을 고르는 데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여부가 중요했다"는 말은 앞뒤가 안맞는다. 신부가 애를 낳아보고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그 신부가 임신할 수 없는 몸인지의 여부를 어떻게 확인하나. 물론 여성의 경제활동이 제한되고, 제사가 중요한 가부장사회에서 아들을 낳는 것이 여성의 중요한 역할이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미래의 신부감을 고르는데는 남자와 여자의 사주팔자가 잘 맞는지를 보는 것이 더 중요했다. 아들을 낳을 수있다고 해도 남자와 사주가 안맞는 여자와 결혼할 수는 없었을테니까. 애를 못낳는 부부도 상당히 많았고,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혼을 만약 쉽게 하거나 첩을 통해 아들을 얻어서 적장자로 만들 수 있었다면 조선후기에 그렇게 많은 입양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3) "조선시대에서 ‘좋은 소녀’는 소년과 내외해야 했으며 혼자 외출할 수 없었고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 조선시대에 정말 좋은 집안들은 여성교육에 엄청 신경썼고, 교육받은 여성이 일종의 가문의 교양의 지표였다. 물론 여성의 말은 담장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억압이 존재했고, 학파마다 여성에 대한 교육수준이 달랐지만, 조선시대 내내 여성이 교육받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로리타 얘기를 하기에는...애초에 어린애들이랑 섹스하고 결혼하는게 문제가 안되는 [조선]사회에서 소녀가 무슨 의미가 있나?

4) 서양개념으로 충분한 설명을 굳이 유교를 가져오는 이유를 모르겠다. 조선시대에 여성에 대한 억압이 없던 건 아니지만 지금과 양상이 달랐다고 보는게 더 적절하다. 조선은 처녀에 대한 규제보다는 남편없는 여자(이혼당했거나 남편과 사별한 여자)의 성에 대한 관리에 더 초점을 맞췄던 것 같다. 언급된 것들이 다 유교의 잔재면 저 가운데 서양의 영향과 유교의 영향의 퍼센티지는 각각 어떻게 되는지 묻고 싶다.

위와 같은 코멘트를 종합하면, 필자는 기본적으로 유교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아마 그가 유교에 대해 아는 것은 막연히 위계적이고, 여성억압적인 동양의 나쁜 풍습이라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3.

결론을 내리자. 필자에게 현대 한국을 학문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만한 역량이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는 현대 한국문화에 작용하는 다양한 힘들도 모르고, 유교에 대해서도 잘 모르며, (인접분야에서 훈련받은) 내가 볼 때는 딱히 문화적 텍스트를 잘 분석하는 것 같지도 않다. 다양한 개념들을 거의 불필요한 수준으로 소환하곤 하지만 글의 기본적인 뼈대부터 오류논증이라는 건 건 치명적이다. 우리는 K-POP의 포르노적 성격을 비판할 수 있고, 유교가 얼마나 현대 한국사회에서 부적합한 이데올로기인지도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걸 말하기 위해 가치없는 글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해가며 읽을 필요는 없다. 번역자에게 다음엔 더 괜찮은 글을 번역할 기회가 있을 거라는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추가로 조선 유학에서 여성은 "열등한 기"에 속했는가의 여부 및 조선 후기 여성의 교육에 대해 선배에게 뒤이어 들은 내용을 옮겨둔다. 조선 후기는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거의 모르는, 그러나 흥미로운 세계인 것 같다^^.


1. 일단 여성이든 남성이든, 이기론의 관점에서 보면 그냥 음양오행을 다 받아서 태어나는거라, 개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다들 오행을 골고루 갖고 태어나는 셈이 됨. 예를 들어 누군가가 사주를 보면 오행에서 물이 부족하므로 물부족인간이고, 어떤 사람은 물만으로 사주가 채워져 있으면 그 사람 역시 치우친 사람이 되는거지. 음과 양도 복잡해서 예를 들어 홀수는 양, 짝수는 음이고, 왕은 양, 신하는 음, 남편은 양, 부인은 음,  이런 식으로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데, 이렇게 보면 음양오행적 전통(이건 유교전통이나 성리학적 전통만이라고도 보기 어려움)에서는 상황적이고 상대적인 구분이라고도 볼 수 있음. 혼(양), 백(음), 봄 여름(양), 가을 겨울(음), 인과 예(양), 의와 지(음), 말(양), 소(음)와 같이 나누기도 하고.


문제는 천(양)과 지(음)가 남자와 여자를 표상해서 세상의 만물을 낳는다는 사유에서 남자와 여자가 각각 하늘과 땅의 표상들을 받아 안는다는 것일텐데, 생성의 관점에서 보면 하늘과 남자는 만물/인간을 낳고(생), 그것을 땅과 여성이 받아서 완성시킨다(성)는 개념이기 때문에 양자가 공존하지 않으면 세계는 존재할 수가 없음. 그러나 이 사유는 여성의 출산을 여성의 근원적인 속성으로 규정하게 만들기는 함. 여성은 출산을 함으로써 자연질서의 한 축을 재현하고 그에 참여하는 것이 되니까. 성리학은 이런 측면에서 남녀를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음이 열등한 기라고 말하기도 어려움. 음양이 움직이는 순서도 음(靜)이 먼저이고 이후에 양(動)이니까. 음과 고요함이 먼저 존재한다는 데에서 심성론적 수양/지식이 행동에 우선한다는 사유도 도출되는거고.


여성의 행동이 제재되어야 한다는 사고는 음양론이나 유교적일 수 있는데, 여성이 태생적으로 열등하다는 사유는 유교적이라기보다는 불교적인 것일 수 있고(윤회론적 관점에서). 이론이 아니라 현실의 측면에서 보자면 복잡해지는 부분들이 있음. 그래서 일단 "유교학자들"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정해 말할 수 있음(무식한 학자들이나 음이 양보다 열등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댓글에서 언급한 것이 김태연의 글이 아니라 동양쪽의 레퍼런스를 요구하는 것이라면, 그건 너무 많음. 성리학을 베이스로 해서 조선시대 여성연구를 하신 분으로는 이숙인 선생님의 책이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입문서로는 괜찮을 수도.



2. 성인이 되고자 한 조선후기 여성들의 사례는 임윤지당, 강정일당이 아주 대표적이고,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던 여자들이 있고 그 여자들끼리의 코넥션들이 있었던 것 같고, 조선후기로 갈수록 양반 여성뿐만 아니라 첩들이 남편들을 패트론으로 삼아 시회를 하는 경우도 많음. 임윤지당, 강정일당은 문집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고,문집을 남기지 않더라도 아들들의 어머니에 대한 기록들이나 아버지의 딸들에 대한 기록들에 보면 여성들의 학식에 대한 칭찬이 엄청나게 남아 있음. 조선성리학의 괴수라 알려져 있는 송시열이 고모 비문에 쓴 내용(우리 고모는 배운 적도 없는데 한문을 줄줄줄 했고 어쩌구 저쩌구), 김창협이 딸의 죽음을 슬퍼하며 이 딸이 너무 똑똑해서 아버지와 늘 학문적 대화상대가 되었다고 남긴 글(김창협은 당대 최고의 학자) 등에서도 볼 수 있고 홍석주, 홍길주, 홍현주(홍현주는 정조의 사위이고, 홍석주는 19세기 재상이었음)는 어머니에게 수학을 배웠는데, 어머니 달성 서씨(이 집안은 수학 과학 잘하는 집안으로 유명함)는 아이들을 위한 수학책이 문제가 많다고 본인이 수학책을 다시 쓰기도 함.

17세기에 김창협집안, 즉 안동김씨집안에서 은진송씨집안(송시열집안)으로 딸을 하나 시집보냈는데 그 딸이 교육을 너무 잘 받아 그집 아들보다 똑똑하기도 하고 기도 세기도 해서 송씨 집안에서도 힘들어하고 본인도 힘들어서 시집 욕을 엄청 한 게 그 사람 글들 중에 남아 있음(호연재 김씨).

가난한 집안에서는 나이가 있는 여자랑 아들을 결혼시킴. 12세-18세처럼 대여섯 살쯤 차이나게. 그 이유는 집에 돈이 없어 아들을 가르칠 수 없으니 시집 온 며느리가 아들, 즉 자신의 남편을 (교육을 포함해) 양육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강정일당이 딱 그 케이스인데, 그래서 강정일당의 남편은 강정일당이 평생의 스승. 그래서 강정일당이 죽고 나서 부인의 문집을 내기 위해 온 사대부들을 찾아다니며 만시를 써달러고 하거든. 학자들이 엄청 거부하는데도 기어이 받아내서 아내의 문집의 절반을 사대부들의 글로 채웠음. 아내 문집의 정당성을 갖게 하기 위해.

19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여성억압은 심해졌지만 북촌양반들은 딸들을 계속 가르쳤던 듯. 1903년인가에 여성들이 여학교를 만들어달라고 조선 최초로 연명상소를 냄.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양반들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다 포함되는데,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공교육을 받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는 방증이고, 이에 대해 남성들도 지지했다는 걸 의미. 여학교는 사립이 아니라 국립으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는건데 고종의 비이자 순종의 어머니였던 엄비가 이를 후원했다고도 함.




**[20170319에 추가한 내용. 허트의 코멘트에 대해 알려주신 분께 감사드린다.] 마이클 허트(Michael Hurt)가 자신의 글에 대한 내 비판을 읽고 내가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didn't actually understand my argument)는 코멘트를 남겼다(링크: https://www.facebook.com/groups/criticalkoreanstudies/permalink/1711844775496267/). 물론 어떤 점에서 내가 그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분명한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으며, 대신 해당 포스트의 댓글에서 그는 자신이 김태연(Taeyeon Kim)의 2003년 논문에 기초한 "신유교주의적 쇠우리, 즉 실제 역사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유교 자체가 아닌 [과거에] 실제로 사회를 훈육·통제하는 도구였던 유교가 현재의 이데올로기적 형식[으로서 작동하는 양상]"("an neo-Confucian "iron cage" or a contemporary, Ideological form of "confucianism" that was actually used as a social disciplining tool, rather than the actual, historical ideology itself")을 통해 비판적인 문제제기를 하고자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비판자가 자기 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답변이 보통 제대로 된 반론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흔히 선택하는 비상탈출구 중 하나임을 상기하면서 짧게 두 가지 재반론을 하고 싶다.


1. 허트 및 그에 동조하는 이들은 나의 비판이 오직 "역사적 대상으로서의 신유교주의(또는 성리학)"에 대한 오용에 있는 것처럼 말하면서 허트의 초점이 역사적 대상으로부터 변용된 이데올로기이므로 내 비판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그들이 학술적인 한국어를 읽을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나는 그들이 내 글의 첫 번째 항목을 제대로 읽었는지 의심스럽다. 나는 내 글의 첫번째 항목에서 허트의 전체 논지 자체가 논리적 오류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시에 그가 "신유교주의"라고 규정하는 것이 현대 한국사회 혹은 그 문화적 텍스트를 제대로 분석하기에는 지나치게 모호하다고 주장했다. 여성을 "주체[성] 없는 신체"로 만드는 이데올로기가 유교 뿐인가? 더불어 현대 한국에 작용해온 수많은 요소들 중 신유교주의가 K-POP에 대한 분석에서 특권적인 위치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란 무엇인가?--그가 사회의 모델에 대한 이론적 훈련을 받은 적이 있는 "사회학" 전공자라면 이 질문이 무엇을 함축하는지 모를리가 없다. 이 모든 지적에 답변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다'고 말하기는 곤란할 것 같다.


그가 자신의 주장을 유효한 것으로 만들고 싶다면 "신유교주의"라고 부르는 걸 지금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가능하다면 그것이 한국사회에 작용하는 다른 이데올로기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도 부분적으로나마 제시하면 된다. "어쨌든 처음 문제제기를 했으니 좋은 건 아니냐"라는, 정작 "유교적 전통"이 문제라는 주장이 너무 흘러넘쳐서 이제는 클리셰로조차도 쓰이지 않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혀 먹히지 않는 항변을 하느니 말이다. 그게 아니면 그냥 자기는 전문가도, 연구자도 아니며 이 글은 블로그에 취미로 쓴 일기일 뿐이라고 답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2. 허트가 주된 레퍼런스로 삼고 있는 김태연의 "신유교주의적 신체"에 대한 논문을 대충 훑어봤는데, 애초에 "The Neo-Confucian body did not refer just to the corporeal, nor did it act as a reference to an individual self. The emphasis on non-distinction between self and others produced a sense of self that was non-individuated and fluid, with no boundaries to determine a distinction between one’s family and one’s self. This understanding of self is by no means a thing of the past. It still informs the way people relate to each other and consider their bodies, their selves, and others, as evidenced in recent studies of Korean subjectivity" (99)라고 말하면서 어떤 개념이 500년간, 그리고 지금까지도 큰 변화없이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글이 역사가들에게든, 지성사가에게든, 이데올로기 연구자에게든 그다지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질 것 같지 않다. 이 논문의 저자가 1) 신유교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2) 현대 한국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3) 그 주장이 논문이 출간된지 14년이 지난 지금에도 수정없이 적용될 수 있는지 모두에서 난 회의적이고, 그런 점에서 이 논문을 베이스로 삼아 자신의 입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허트의 주장 또한 지지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당연하지만, 다른 연구자의 글을 인용하면서 자기 주장의 토대로 삼고자 할 때 해당 논문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도 연구자에게 중요하게 요구되는 역량이다. 자신의 글에 대한 반론에 정직하게 맞대응하는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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