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영재", 사이비역사학, 이데올로기 전파 경로

Comment 2017. 3. 16. 00:53

우연히 SBS에서 나오는 <영재발굴단>이란 프로그램을 보았다. 보통 때 같았으면 눈길조차 가지 않았을 프로그램을 잠시 지켜보게 된 것은 무려 "역사영재"라는 멘트가 전면에 나왔기 때문이었다. 지적 노동의 양적투입이 없이 퍼포먼스를 내기란 매우 힘든 오늘날의 인문학 필드, 그중에서도 특히 역사학에서 "영재"같은 게 존재할리가 없다고 생각해온 입장에서 "역사영재"란 표현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떡밥이지 않겠는가. 방송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역사영재로 소개된 소년은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마다 효(孝) 정신에 입각해 부모에게 큰 절을 하고(미안하지만, 박근혜에게 "마마"라고 부르며 큰 절을 했다는 어느 박사모의 기사가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한국에 대해 세계에 알리겠다는 뜻을 품고 <삼국사기> 영어판을 읽으며, 한국 청소년들의 역사의식이 부족하다고 한탄하면서 인터넷에 역사강의를 올린다고 한다. 뒤이어 비슷한 영재성을 지닌(?) 소년들 간의 시국토론이 이어졌는데, 이 역사영재는 다음 대통령으로 정조 같이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이 강한 인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스튜디오의 (아마도 주로 연예인들로 이루어진) 어른들은 어른들도 잘 하지 못하는 맞는 말을 영재들이 한다며 계속되는 감탄사를 퍼부었다(관련기사도 나와있다: http://www.sedaily.com/NewsView/1ODD8RZVIV).


아마도 이 소년이 이후 정말로 역사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고 상상해보자...지금의 방송출연을 떠올릴 때마다 이불에 수백 번씩 발길질을 할 것이며(이 영상을 발굴해 SNS에 퍼트릴 악랄한 동료가 한 명쯤은 튀어나올 것이다), 혹시라도 타임머신을 쓸 수 있다면 자신의 연구시대로 가는 것보다 과거의 자신에게 가서 방송출연을 무산시키는 걸 우선순위로 삼을 게 분명하다--나는 이 소년이 적어도 10여 년 후 그 정도의 분별력은 가지게 되기를 바란다. 이 우스꽝스러운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역사영재"를, 아니 애초에 "영재"와 "역사"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적어도 현대 역사학의 기본적인 전제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이 소년들을 "역사영재"라고 부르기는 무척 곤란하다는 사실이다. 냉정히 말해 이들이 연구자로서 지성 혹은 비판적 사고능력을 높은 수준으로 갖추었는지의 여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단지 이들이 (아마도 주변 어른 또는 여기저기 비전문가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주워듣고 흡수했을) 갖가지 '역사적' 관심사에 푹 빠져있으며 그걸 읽고 외우고 정리하는 데 비범한 열정을 쏟아붓는...그러니까 일종의 덕후들이라는 건 잘 알겠다. 물론 덕후기질은 연구자에게 좋은 동력이 되어줄 때가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지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슬프게도.


이 방송을 좀 더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은 이 당황스러운 내용들을 단순히 비난하거나 조소하는 대신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해당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이 영재성을 다룰 역량을 포함하여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에 요구되어야 할 최소한의 지적 기준에 미달한다는 것 이외에도--이는 무엇보다 천편일률적인 반응밖에 할 줄 모르는 스튜디오 게스트 선정에서 잘 드러나는 것 같다--우리는 한국의 10대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역사"가 무엇인지를 질문해볼 수 있다. 이 소년을 어떤 전형으로 간주할 수 있다면,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역사란 주로 조선시대에 강조점이 찍힌 "한민족"의 과거의 총체다. 문제는 이 과거가 단순히 예전에 있었던 일이 아니라 오늘날 한국인 정체성의 핵심으로 규정되며, 나아가 18세기 후반 조선의 왕인 정조를 21세기 초반인 오늘날 한국의 지도자 상에도 그대로 덮어씌울 수 있다는 믿음에서 볼 수 있듯 현실을 이해하고 규범을 설정하는데 어떠한 필터링도 거치지 않고 사용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으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엔 과거와 현재에 얼마나 깊은 간극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거리감각이 없다.


"10대쯤엔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거 아냐"라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맞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이 방송을 보면서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이 "영재"들의 언행에서 암시되는 태도와 세계관이 그저 학술로서의 역사를 아직 알지 못하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산물이라기보다는 우리 자신 또한 어릴 적부터 주입받아 온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너무나도 잘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이 소년이 이상적인 군주로 떠올렸던 정조를 생각해보자. 한국 대중문화에서 정조 붐이 어떻게 불었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정조가 우리가 과거에 도달하지 못했던 강력한 민족국가에의 염원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신념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음을 모를 수 없다. 이 소년이 과거를 알아야 독도를 지킬 수 있으며, 국민들이 역사를 잊어버릴수록 영토와 국익 또한 취약해지리라는 우려를 표할 때(그리고 방송이 그러한 말을 영재성의 증거처럼 추켜세울 때), 이것은 사실 우리 자신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특정한 종류의 민족주의적 믿음을 거의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또 하나의 사례임은 분명하다. 나는 하나의 정치적 신념이자 세계관으로서의 민족주의가 반드시 나쁜 것이라고 못박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간 대학의 역사학 분과 및 학술장에서 민족주의에 기초한 역사만을 유일하게 올바른 역사로서 승인하는 태도를 상대화하기 위해 투쟁해온 것을 모르지 않는 입장에서 이러한 잘못된 사고가 대학에 입학하기 전의 청소년들에게, 그들의 부모들에게, 그 부모들이 접하는 각종 대중매체에서 여전히 증식하고 있음을 볼 때 "역사적 사고"를 향한 여정엔 많은 난제가 남아있다는 걸 느낀다.


국정교과서 사태에 묻힌 감이 있지만, 2015-16년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는 "국뽕" 혹은 과도한 소망충족적 민족주의에 기초한 사이비역사학과 근대적 역사연구자들 사이의 충돌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었다는 것이다. 사이비역사학의 신봉자들은 (현대 역사학의 성과를 전혀 따라가지 않았으면서도 자신이 역사를 잘 알고 있다고 자인하는) 몇몇 정치인들을 통해 공식적인 학적 연구에까지 심각한 지장을 주기에 이르렀고, 여기에 <역사비평>지를 중심으로 한 연구자들의 반격이 이어졌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3121440251). 그러나 이것은 단지 학계에, 몇몇 광신적인 성인 저자들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2015년 말 "신라시대 고서"를 번역하고 인터넷으로 강의하던 고등학생이--이 청소년 또한 위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에겐 또 한 명의 "역사영재"로 불릴만 하다--성균관대 사학과에 수시합격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2/26/0200000000AKR20151226040800004.HTML). 이 뉴스의 교훈은, 지금의 역사전쟁은 이덕일이나 김진명 같은 이들의 저술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역사적 감각이라는 또 다른, 그러나 덜 중요하지는 않은 전장에서도 치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성사적 관심을 가진 한 명의 연구자로서 나는 사이비역사학 혹은 잘못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주장하는 내용을 일일이 반격하는 것 못지않게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어떤 경로를 통해 유포되고 "진정한 사실"처럼 자리잡는지에도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인터넷 곳곳에 퍼진 역사카페, 김진명의 소설, 어딘가의 중고등학교에서 정의감에 불타 "올바른 민족사"를 설파하는 교사, 그리고 때때로 튀어나오는 방송에 이르기까지 이 이데올로기는 다양한 루트를 통해 오늘도 청소년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역사에 관심을 가진 10대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과거의 이데올로기를 여과없이 흡수할 뿐만 아니라, 이제 인터넷 방송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그들 자신이 직접 이데올로기의 전파자로 행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경로들을 하나하나 밝히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한, 연구자들의 비판은 사이비역사학과 민족주의 음모론의 언어로 형성된 두터운 심연을 결코 뚫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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