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 일기. 방학의 끝.

Comment 2016. 3. 2. 17:03
오늘 새벽 2시 부로 마감원고를 넘겼고, 직후 오전 수업 리딩을 읽기 시작하면서 새 학기가 시작했다. 그렇게 방학이 끝났다. 개강 첫 주는 좀 쉬면서 컨디션을 가다듬을 생각이다...라고 하지만 토요일에 나다 총회가 있고 아마 2월 말에 정신없이 뒤로 미룬 일정들이 몇 개 더 생길지도 모른다. 세 끼 식사와 8시간 수면을 이틀만 해도 어느 정도 회복은 되리라 생각하지만, 확실히 학부생 시절과 비교하면 신체기능이 하락하고 있음을 느낀다.

두 달 내내 무언가 일정이, 마감이 있어서 개강의 순간이 더 휴식처럼 느껴지는 기묘한 방학이다. 한편으로 충분히 쉬지 못했기에 새 학기에 필요한 에너지가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작은 업무였지만 (단발성을 포함해) 조교일 몇 개를 하고, 장학금을 신청하고, 세미나 두 개를 하고, 정책테이블에 참석하고(일정이 당초 예상보다 길어졌다), DBpia 케이스로 탐사 저널리즘(...)을 실천해보고, 지인의 자소서를 뜯어고쳐주고, 번역문에 코멘트하고...마지막으로 기고할 원고를 썼다. 헬조선, 뉴라이트, 세대론에 관한 글인데, 늘 그렇듯 새로운 이야기를 하기는 쉬우나 유의미한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사전 계획 없이 들이닥친 일이 분명 있었지만(누리미디어 키배...), 사실 대체로는 방학 시작 때부터 강행군을 각오하고 짠 일정이다. 적어도 내 인생의 방학 중에 이 정도로 일정들을 밀도있게 배치한 적은 없어서 걱정이 많았다. 돌이켜보면,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결과는 드물지만, 하나하나 꼽아보면 거의 다 어떻게든 하긴 했다. 적어도 그 점에서는 아쉬움이 없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공적인, 사적인 주체로서 주어진 의무를 다 하고 삶의 반경을 넓힐 수 있는 삶은 분명 감사할 일이다. 어쩔 수 없이 원하는만큼 책을 읽진 못했다. 물론 두 달 간 새로운 문제의식은 생겼고 지적으로 성장하기는 했지만 주로 사람들과 만나고 일하면서 얻은 것들이라 충분히 책과 가까웠다는 자평을 내릴 순 없다.

거의 매주 무언가를 썼다. 순수하게 쓴 양만 따지자면 평균적으로 하루 최소 A4 1장 이상은 쓴 것 같다. 학문적이지 않은 글을 포함해 다양한 스타일을 써볼 수 있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기회다. 글을 통해 벌고 또 공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경험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학적인 글을 어떻게 더 잘 쓸 것인가라는 전문화의 요청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필요한 상황에 맞춰 효과적인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범용성의 요청이 있다. 이번 방학은 후자에 가까웠는데, 그에 따른 만족감과 동시에 전자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다. 아마도 이 갈등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사실 한국의 대학원생에겐 자신의 영역 바깥에서 말할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기에, 나는 그 갈등이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란다.

건조기의 빨래를 꺼내고, 좀 자고, 저녁을 먹어야겠다. 그 뒤에 누군가의 원고를 검토하고...지치지않고 찾아올 마감과 씨름하며 글을 쓸 것이다. 어쨌든 그게 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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