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일 일기. 비 오기 전 스케치.

Comment 2015. 8. 12. 02:13

밥 같은 밥을 먹기 위해서는 문 밖의 열기 덩어리에 뛰어들어야 했다. 길가에는 팔뚝만한 풀들이 무성했다. 녹빛은 약간 어두웠는데, 습기를 머금은 탓인지 구름볕에 빛의 양이 조금 모자랐던 탓인지 분간키 어려웠다. 계속 몸에 부닥치지만 더위는 덜어가지 않는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풀의 색깔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하늘이 온통 구름으로 덮이어 햇빛이 빠져나올 틈새가 없었던 탓일 것이라. 먹구름과 연한 구름의 경계는 분명치 않았지만 시선을 좌우로 돌리면 그 짙음의 차이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붉은 벽돌길 틈새를 이끼와 작은 풀이 어느새 파고들었고 그 위를 개미들이 종횡으로 부지런히 오갔다. 잠자리떼는 덥수룩히 자란 풀숲 약간 위 허공에서 빠르게 뱅뱅 돌다 멈추었다를 반복했다. 조용히 틀어박혀 있어야 할 때를 준비하는 부지런한 벌레들을 밟지 않으려니 발걸음이 좌우로 꼬였다. 강아지풀은 누군가 쓰다듬는 양 크게 까딱거리지만 흰 꽃, 노란 꽃은 조용히 타원을 그리며 제자리로 올 뿐 좀처럼 격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계단을 올라서니 보랏빛 꽃이 고개를 숙인 채 봉우리를 오므리고 있다. 발걸음마다 머리 위에서 미약한 천둥소리가 울려오기 시작한다. 끊이지 않고 그르륵 거리는 모양이 고픈 배에서 흘러나오는 신호와 닮았다. 끽연의 의지는 대단한 것이라, 습하기도 하거니와 바람이 거세지고 있음에도 몇몇이 벤치에 앉아 허리를 구부정하게 기울인 채 담배를 물고 있다. 타닥하는 소리와 함께 보이지 않는 모래쪼가리가 바람에 튀기다 수챗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고 들어와 블라인드를 살짝 올렸다. 풀빛은 한층 짙어지고 풍력발전장치의 바람개비는 내달리는 속도를 늘렸다. 창문 높이까지 높이 자란 나뭇가지들은 정신없이 흔들렸다. 무리에서 떨어진 개미처럼 혼자 거리 위를 오가던 사람들의 수는 차츰 줄고, 몇 안남은 행인들의 발걸음도 점차 종종걸음이 되어 간다. 순간 쏴-하는 소리와 함께 비 무리가 내려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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