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 고진『<세계사의 구조>를 읽는다』, 폴 코블리『내러티브』

Reading 2014. 3. 30. 02:47

이번 토요일에는 25일 번역출간된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를 읽는다(이하 <읽는다>)와 폴 코블리Paul Cobley <내러티브>_Narrative_를 읽었다. 지금은 내일 푸코 세미나(<생명관리정치의 탄생> 1-3)를 준비하기 전에 잠시 이른바 '브레너 논쟁'the Brenner Debate의 논문들이 정리된 <농업계급구조와 경제발전--브레너 논쟁>_The Brenner Debate: Agrarian Class Structure and Economic Development in Pre-industrial Europe_ 국역본(이연규 역, 집문당, 1991)을 읽고 있다.

 

앞의 두 권의 서지사항은 다음과 같다

가라타니 고진. <세계사의 구조>를 읽는다. 2011. 최혜수 역. 도서출판b, 2014.

폴 코블리. 내러티브. 윤혜준 역.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3. Trans. of _Narrative_ by Paul Cobley, London: Routledge, 2011[New Critical Idiom 총서].

 

<읽는다>는 제목에서 암시되어 있듯 후기 가라타니의 가장 중요한 저작 중 하나인 <세계사의 구조>를 보충하는 텍스트로, 가라타니와 다른 이들의 대담이 총 6편 수록되어 있다. 본래 일본판의 경우 대담과 강연록이 수록되어 있는데, 강연록은 추가원고와 함께 <자연과 인간>으로 먼저 출간되었다. 만약 후기 가라타니의 주저들로 세미나를 하고자 한다면 <트랜스크리틱> 정본판-<세계사의 구조>-<자연과 인간>-<읽는다> 순으로 커리큘럼을 짤 수 있을 것이다; <세계공화국으로>는 시간순으로 <트랜스크리틱><구조> 사이에 놓여있지만 굳이 가라타니의 모든 텍스트를 다 읽는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면 괜히 오해만 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해서 놓지 않았다. 현재 번역 중인 <철학의 기원>은 전혀 읽어보지 못해서 얼마나 중요성을 가질지 아직 모르겠다. 28일에 <구조>_The Structure of World History_란 번역제로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역자는 Michael K. Bourdaghs 라는 사람인데, amazon을 찾아보면 일본문학 관련 연구서를 낸 것 말고 어떤 인물인지는 모르겠다. _Structure_Amazon.com 소개를 보면 추천사를 남긴 인물 중 한 명이 흥미롭게도 조운 콥젝Joan Copjec이다(대담 중 "유동의 자유가 평등을 초래한다"에 콥젝의 이름이 한번 나오긴 한다). 얼마 전 SUNY Buffalo에서 Brown Univ.으로 옮겼다고 듣긴 했는데...

사실 <읽는다>의 대부분의 내용은 <구조>의 논의 또는 교환양식론을 조금 더 쉬운 말로 부연설명하는 것으로, 후자를 꼼꼼하게 읽고 가라타니 사상의 궤적을 따라온 사람이라면 대체로 특별히 새롭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에 이 책이 일본에서 출간된 지 2년 정도가 지나서 <구조>의 국역본이 출간되었기도 하고. 다만 한 국가의 사회구성체를 분석하는 <트랜스크리틱>과 세계체제를 다루는 <구조>가 다른 점, 나아가 왜 전자의 저술에 그치지 않고 후자의 저술이 필요해졌는지에 대한 언급--9.11 이후의 세계정세를 포함한--이라든가, 안토니오 네그리를 포함한 다른 '세계사의 저술가들'과 자신의 관계를 논의하는 부분 등은 이론 및 정치철학의 독자들에게 약간의 흥미를 끌지도 모른다. 가라타니의 사상체계를 이해하는 작업 자체에서 이 책이 갖는 의미는 주로 교환양식D, 보편종교(개인적으로는 1979-80의 이란 혁명이 언급된 게 눈길이 간다...푸코가 지지했던, 그리고 루시디가 <악마의 시>_The Satanic Verses_에서 다루었던 게 이 이란혁명이다) 그리고 '세계동시혁명'이 갖는 의미 등을 상술하는 데 있을 수 있겠다. 그래서 (아마 <철학의 기원>에서 조금 더 다뤄질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하는 단어는 '데모크라시'를 대체하는 원리처럼 제시되는 '이소노미아' isonomia이다. 특히나 슈미트가 지적하듯 통상적으로 자유와 평등은 배치되는 관계, 둘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으려 노력해야 하는 것으로 제시되었는데, 이소노미아를 언급하면서 가라타니는 자유=유동성과 평등이 서로를 필요로 하게 만드는 체제를 목표지점으로 제시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후반부의 세 대담, 그중에서도 각각 소련 붕괴 후의 러시아와 민주당 집권 이후의 문제를 다룬 끝의 두 편이 가장 흥미롭다. , 세번째, 네번째 대담에서 한국과 북한이 잠깐 언급되긴 한다.

사상의 측면에서 굳이 말한다면 <구조>를 약간 더 보충하고 쉽게 해설하는 게 목표인 책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가라타니의 약점이니 뭐니 적는다고 해서 특별히 의미있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주권의 핵심인 군대를 방기해야한다는 (지지할 수는 있지만 현실화될 거라는 납득을 시키기는 어려운) 방안 외에 자본=네이션=국가를 넘어설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개인적으로 <트랜스크리틱>의 가장 선진적인 면은 그 성패를 떠나 프로그램의 제시라고 생각했는데, <구조>와 이후의 논의는 아직까지 보다 확장된 정세분석과 장기적인 목표제시의 차원에 머무른다. 물론 사상가에게 프로그램까지 토해내라고 요구하는 게 억지라는 생각이 든다만, 지난 세기 운동의 주역으로서 맑스주의가 가졌던 힘은 어쨌든 꽤나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다는 데 존재하지 않았던가? 이번 책에서 가라타니가 통상의 아나키스트와 선을 긋는 지점은 이후의 전개에서 조금 흥미로울 수 있겠다.

번역 자체는 별로 불만이 없으나 편집은 (항상 도서출판b의 텍스트에서 느끼지만) 상당히 불만스럽다. 책 출간 직전까지 텍스트를 학술서에 가깝게 완성한다는 프로페셔널리즘이 부족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나 고유명사 번역 등에서, 내 생각에는 일차적으로 번역자가 충분히 넓게 공부하지 못했고, 이차적으로 편집에서 그러한 오류를 잡아내지 못해서 일본어를 별 생각없이 옮겨놓은 경우가 보인다. 예를 들어 65쪽에서 피에르 클라스트르Pierre Clastres"클라스톨"이라고 번역해놓은 거라든가(정작 국역본 <구조>에선 멀쩡히 번역해놨던 걸로 기억하는데...도서출판b는 이런 거 비교 대조를 전혀 안하나?), 112쪽의 '투루게네프', 249쪽부터 계속 언급되는 가라타니가 몸담았던 학생운동조직 (독일어 Bund)'분트''분토'로 옮긴 거라든가--참고로 <정치를 읽는다>에서는 '분트'로 옮겼다--, 유리 로트만Yuri Lotman'율리 로트만'이라 옮긴 거라든가(262) 등등. 특별히 찾아본 게 아니라 그냥 한번 죽 읽으면서 눈에 걸린 거다. 오카자키와 오사와가 참여하는 대담의 92쪽에서 대담자를 "오자키"라 옮긴 것은 사와를 자키라고 잘못 옮긴 것인지, 아니면 ''를 빼먹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아마추어적이란 느낌이 든다. 86쪽에서 aufheben을 지양이 아닌 아우프헤벤이라고 그냥 쓴 것도 좀 이상하고, 각주도 대체로 아쉬운 편인데 예를 들어 에른스트 블로흐를 소개하는 각주에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관계가 전혀 언급되지도 않고 국내 소개 저서 중에 제일 중요한 <희망의 원리>를 빼먹은 것도 (절판되었다곤 하지만!) 걸리고. 대담마다 꺽쇠 사용이 바뀌는 것도... 하여간 별 생각없이 책을 펴들어도 문제가 탈탈 나오니 책 나왔다는 소식 듣자마자 뛰어가서 산 사람으로서는 조금 어이가 없다. 학술서를 만들 생각이 전혀 없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몇 십 더 들여서 교정쇄 한번 더 보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트랜스크리틱>이나 <구조>에서 찾아보기가 아예 없는 것도 당황스럽다...) 초반본 산 사람은 무슨 게임 클로즈베타 참여자가 되는 건가? 원래 이런저런 실수가 잦은 출판사인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 책의 편집상태는 당황스럽다.

 

 

코블리의 책은 서사이론 세미나에 언급된 김에 한번 읽었다. <서사학 강의>가 정말 교과서라면, 이건 조금 더 난이도가 있다. 약간 기호이론의 관점에서 서사예술의 변천을 (그러니까 주로 문학이 언급되며, 그중에서도 대부분의 사례는 영미문학에 집중되어 있다...)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그려내면서 다양한 개념/이론들을 소개하는 식이다. 기본적으로는 개설서라고 보는 게 맞을 거고 (루틀리지 New Critical Idiom 총서인데, 찾아보니 나도 흥미가 가는 주제들이 몇 권 있다) 저자의 다소 시니컬한 (영국식의?)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부분이 몇몇 있다. 윤혜준 선생의 번역은 나쁘진 않은데 가끔 문장이 조금 이상하게 읽히는 부분이 있다(역시 좋은 편집자를 만나지 못한 게 아닐까? 물론 <읽는다> 보다는 훨씬 상태가 좋다). 내가 남의 문장보고 뭐라고 할 처지는 못 되지만, 나쁜 문장에 대한 감수성이 극도로 약한 나한테도 느껴진다면 그것도 나름 문제인 게 아닐까? 여튼 이 책만 갖고 서사이론을 활용하기는 아직 무리일테고...연습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브레너, 포스탄, 르 르와 라뒤리 등 거물들의 논문들이 수록된 <브레너 논쟁>1/4 정도 읽었는데 매우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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