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임브리지 학파와 20세기 역사학의 역사
Intellectual History 2018. 1. 2. 12:282017년 12월 21일에 쓴 글.
1.
한 선생님과의 대화 중에 왜 한국 인문사회학계에는 영국의 지적 성과가 매우 제한적으로만 소개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쓴 댓글을 일부 수정하여 옮긴 것:
영국학계에 대해 우리가 잘 모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를 하나만 꼽자면, 한국의 인문사회학계에 가장 잘 알려진 영국 역사가들은 누가 뭐래도 에릭 홉스봄과 E. P. 톰슨, 레이먼드 윌리엄스를 비롯한 (주로 사회사-문화사에 기여한) 맑스주의 역사가들입니다. 하지만 20세기 영국 역사학계를 크게 훑어보면 이 사람들은, 이들의 위대함과 기여를 충분히 인정한다고 해도, 주류가 아닙니다. 영국 역사학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룹을 하나 꼽는다면 누가 뭐래도 케임브리지 역사학과가 빠질 수 없을텐데, 맑스주의 역사가/문화사가들은 누구도 여기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물론 홉스봄이 30대에 잠시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에 펠로로 있긴 했지만요). 홉스봄이 버크벡 칼리지에서 가르쳤고 윌리엄스가 케임브리지 희곡 교수직을 맡긴 했습니다만, 이들이 영국사학계의 핵심부에서 재생산에 성공하지 못한 건 분명하죠.
물론 케임브리지 역사학과 교수진의 방대함을 고려할 때--이는 케임브리지 역사학과가 케임브리지 법학·옥스퍼드 정치학·PPE 등과 함께 국가적 통치엘리트를 육성하는 학과 중 하나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해당 시기에 어느 한 분파가 전적인 주도권을 잡았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습니다만, 그중에 퀜틴 스키너를 대표자로 꼽는, 현재도 젊은 박사들을 계속 양성 중인 정치사상사·지성사 전통이 차지하는 몫은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스키너는 허공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그 자신의 회고에서 볼 수 있듯 법학과 신학을 두 축으로 하여 20세기 중후반 영어권 중세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발터 울만,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 연구의 선구자였던 던컨 포브스, (후에 사회과학적 연구로 가긴 하지만) 로크에 대한 엄밀한 문헌학적 조사를 통해 '케임브리지 역사학파'의 첫 단추를 놓았다고 할 수 있는 피터 래슬릿 등 이미 정치사상사 연구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연구자들이 있었고요. 이런 계보선상에서 스키너와 케임브리지 학파는 한편으로는 1960년대 이래 "맥락주의" 방법론 논쟁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 1970년대부터 정치사상사 필드를 뒤집어놓는 주요 저술들의 본격적인 출간을 통해 영향력을 확장하게 됩니다.
[*아마도 영국의 독특한 특성일텐데요, 19세기 중후반 부터 옥스브리지 두 학교 모두 (비록 전통적으로 통치 엘리트들을 육성해오긴 했지만) 근대적 국가에 걸맞은 통치 엘리트들을 육성하기 위해 커리큘럼을 일신하려는 노력이 출현하기 시작합니다. 그중 옥스퍼드가 보다 정치 이론/과학 중심으로 갔다면, 케임브리지의 경우 역사에 초점을 두고 특히 과거의 역사적 행위자들이 어떤 사상적 토대 위에서 판단하고 행동했는가를 이해하는 게 통치 엘리트들의 필수적인 지식이 된다는 흐름이 있었죠. 당연히 케임브리지 학파의 역사에 대한 역사적인 작업들 또한 나와있는데요, 이런 작업들은 종종 앞서의 흐름으로부터 오늘날 케임브리지 학파의 기원을 찾곤 합니다. 실제로 케임브리지 학파 주요구성원들이 정치이론/철학적 주제에 깊은 관심을 지녀왔고 일부는 public intellectual에 가깝게 활동하는 걸 보면 그러한 이념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강조하고 싶은 지점이 몇 가지 있다면, 첫째, 케임브리지 학파는 스키너·포칵·던 등이 주도한 방법론적 논쟁을 통해 미국 및 유럽 역사학계가 한 발짝 뒤에 태풍처럼 맞이하게 되는 포스트모던·'언어적 전회'에 이미 여유있게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둘째, 결과적으로 신좌파 정치의 쇠퇴와 함께 연구의 방향까지 애매해진 '진보' 사회사-문화사 전통과 달리 '근대국가'와 같은 대문자 정치Politics**의 영역을 계속해서 다룰 수 있었으며(이건 사실상 국가와 정치, 이데올로기의 영역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아날학파 및 그 파생물들과 비교할 때 케임브리지언들이 갖는 결정적인 강점입니다), 셋째, 방법론적으로 절충주의적이 되었다는 비난까지 감수해가면서 정치철학·(정치사상 외의) 지성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통용가능한 연구모델을 제시했으며, 넷째, 스키너, 존 던, J. G. A. 포칵, 리처드 턱, 제임스 털리 등의 1-1.5세대 주요 멤버 외에도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마크 골디 같은 이를 포함해 뛰어난 연구자이자 교사인 사람들이 계속 배출되었고 후속세대에도 마찬가지로 뛰어난 연구자들을 재생산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입니다. 네 번째 사항을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들은 케임브리지 역사학과와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Cambridge University Press)라는 두 가지 핵심기구를 활용할 수 있었고, 전자는 연구자들의 교육·상호작용·재생산을, 후자는 대표적으로 1984년부터 지금까지 110여 권이 출간된 "Ideas in Context" 시리즈를 포함해 연구의 생산과 확산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즉 이들은 방법론, 연구영역, 인접분야로의 확장, 제도의 장악 및 재생산과정 모두에서 준비된 상태였던 거죠.
[**소문자 정치politics가 일상의 정치라든가 문화정치처럼 공식적인 정치적 기구 외의 영역에서 매우 다양한 형태로 벌어지는 정치적 실천들의 집합을 가리킨다면(이걸 이끈 대표적인 운동부문이 여성주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 같은 구호처럼요), 대문자 정치Politics는 국가, 의회, 정당, 행정 등과 같이 보다 공식적인, 우리 현대인들이 직관적으로 '정치적'이라고 부르는 영역들에서 벌어지는 실천들을 가리킵니다. 20세기 후반의 (이 말의 넓은 의미에서) 신좌파의 대두는 학문적 관심사를 후자에서 전자로 끌고 간 참이 있고, 영국의 정치사상사가들은 여기서 예외적으로 후자의 관심사를 고수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 다시 "큰" 주제를 다루자는 요구가 역사학계에서 나오는 것 관련해선 요 짧은 글을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http://www.historytoday.com/blog/2014/03/big-back-return-public-history). *아티클에 언급되는 현재 하버드 역사학과에 재직 중인 데이비드 아미타지(David Armitage) 또한 케임브리지에서 박사를 받았습니다.]
케임브리지 학파는 (적어도 20세기 중후반에는) 방법론적으로도, 연구대상에서도, 정치적으로도 맑스주의 및 신좌파들과 분명한 거리가 있었고(물론 개러드 스테드먼-존스 같은 맑스주의자 역사가가 나중에 지성사 방법론을 받아들이고 케임브리지 정치학Political Science 교수직에 취임하는 일이 있긴 합니다), 동시에 20세기 서구 역사학의 가장 큰 모멘텀이었던 역사학의 '사회과학화'와도 다른 길을 갔습니다.*** 이는 이들이 20세기 후반 대륙과 미국의 역사학과에 거의 수용되지 않고 일종의 고립된 섬처럼 남게 된--물론 이후 스키너의 프린스턴 고등연구원 재직을 기점으로 상황이 점차 바뀝니다만--결과로 이어집니다. 아마도 그것이 크게 보면 맑스주의 및 진보운동·사회사·문화사가 장악했던 20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한국 서양사학계 및 인접분야에서 영국적 전통이 거의 수용되지 않았던 중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비교적 최근 미국에도 아직 탑스쿨에 한정되어 있긴 하지만 (케임브리지언들과 교류하든 아니든) 지성사가들이 점차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데, 한국 서양사학계는 규모도 작고 세대교체도 이제서야 간신히 시작될 것이며, 방법론의 필요성에 대한 의식도 크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더불어 영국사의 비중이 그렇게 크다고는 말하기 힘들기 때문에--지성사의 수용이 당장 활발하게 되기는 기대하기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역사학의 '사회과학화'에 대해 읽어볼 수 있는 책 두 권만 꼽자면 하나는 얼마 전 타계한 조지 이거스(Georg G. Iggers)의 <20세기 사학사>이며, 좀 더 성찰적인 다른 하나는 아날학파를 다룬 프랑수아 도스의 <조각난 역사>입니다. 방법론적으로 보수적인 한국사만이 아니라 한국의 서양사학계에서도 방법과 개념에 대한 본격적인 고찰을 시도한 저술이 설령 번역서로조차도 드물다는 점은 무척 아쉬운 일입니다.]
요약하면, 짧게는 20세기 중반부터, 길게는 19세기 후반부터 내려온 영국 정치사상사 전통은 전후 급속히 사회과학화하던 대륙·미국 역사학계에 거의 수용되지 않았고, 사실상 후자의 관점을 그대로 받아들인 한국 서양사학계·문화연구 쪽에서도 전자의 존재를 몰랐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영국사학계=홉스봄, 톰슨, 윌리엄스라는 상당히 잘못된 그림을 갖고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더불어 지금까지도 프랑스의 게토화된 급진좌파들이나 미국 좌파 인문사회과학계의 다소 관성화된 주장에 지나치게 큰 중요성을 부여하는 경향으로 인해 포스트-이론들이나 신좌파가 실제로는 매우 큰 서구학계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인식의 지도그리기'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죠(저는 이 부작용 중 하나가 특히 동양·국 자 붙은 분야에서 "서구는" "근대는" 식으로 매우 비역사화된 일반화를 스스럼없이 하는 거라고 봅니다). 좀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영국적 전통의 몰이해와 함께 현대의 미시사·문화사·사회사가들이 제대로 파고들지 못했던 대문자 정치, 정치적 언어, 행위자와 같은 요소들을 한국의 역사적 연구자들이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한국사회에서 어떠한 종류의 정치적·시민적 행위자가 될지에 대한 기본적인 상을 (전통적인 스타일의 운동·지사적 모델을 제외하고는) 구성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에 있을테고요.
저는 한국의 인문사회과학이 사회에 개입하고 기여하는 방식 중 하나는 우리가 사용하고 또 우리를 구성하는 언어·담론·사상·편견을 분석하고 역사화하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 유감스럽게도 현재 한국 인문학 연구자들은 그 과제를 충분한 수준으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좀 더 정확하게는 그러한 과제를 수행하려는 욕구에 비해 방법론적 성찰이 제대로 따라오지 못한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힘듭니다(한국에서 지성사를 추구한 사람들이 탐색했던 부르디외나 코젤렉은 부분적인 참고는 될 수 있어도 이런 작업에 본질적인 도움이 될지는 의문입니다). 서양사학계의 상황을 고려할 때 그들이 앞으로 수십 년이 걸려 지성사를 수용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차라리 지금 당장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이 먼저 뛰어들어 가져오는 게 현실적인 해결책이겠죠. 한편으로는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거나 아니면 이해 자체가 거부되는 식의 양극단적 반응을 받아온 신좌파적 정치서사·급진 민주주의 이론으로 복잡한 정치적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나이브함에서도 거리를 둘 필요가 있겠지요.
2.
"In [Ernest] Fortin's work this approach is associated with a rather gloomy view of the role of rights in modern society. At one point he wrote, "The citizens of the new society ... are attached to society by bonds of self-interest alone, have nothing to die for and, by the same token. nothing to live for." [...]
[위의 본목에 대한 주석6번에서] This is arguable of course. I cannot speak for all my generation but in the various troubles of the twentieth century many of us were willing to risk our lives to defend the free societies that some modern intellectuals disdain. And many did die." (Brian Tierney, "Natural Law and Natural Rights: Old Problems and Recent Approaches", _The Review of Politics_ 64.3[2002], 419).
발터 울만의 대표적인 제자로서 위대한 중세사가이자 2차 대전 현역 참전자인 브라이언 티어니의 관점을 매우 잘 드러내주는 대목. 20세기 중후반 영국에서 교육받은 엘리트들의 "modern society"에 대한 인식을 집약하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옮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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