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akley, Francis. _Natural Law, Laws of Nature, and Natural Rights_ 읽고 간략히 정리.

Intellectual History 2016. 12. 15. 00:12

Oakley, Francis. _Natural Law, Laws of Nature, and Natural Rights: Continuity and Discontinuity in the History of Ideas_. NY: Continuum, 2005.

 

프랜시스 오클리의 <자연법, 자연의 법칙, 자연권: 사상사에서 연속과 불연속성>을 읽고 매우 간단하게 정리한다. 강연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짧은, 그러나 무척이나 세련된 영어를 볼 수 있는 책에서 오클리의 기본적인 전제는 자연법/자연권 전통의 관점에서 볼 때 서구 사상사가 중세 후기를 기점으로 근세까지 근본적인 연속성을 갖는 하나의 시기, 즉 앤터니 블랙(Antony Black)의 표현을 재인용하여 "유럽 정치사상의 진정한 시대적 전환은 12세기와 18세기까지의 기간에 일어났으며"(the truly epochal shifts in European political thought occurred in the twelfth and eighteenth century), 따라서 이 시기가 "근본적으로 단일한 시대"(essentially a single epoch, 24)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주장은 두 가지 지점에서 스키너 및 리처드 턱으로 대표되는 케임브리지 정치사상사학파의 입장과 충돌하는데, 후자가 17세기 영국혁명 전후의 근세를 근대적 정치사상의 출발점으로 놓으면서 중세와의 "불연속성"을 암묵적으로 전제한다면--물론 케임브리지언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기존의 스트라우스나 맥퍼슨에 비할 때는 근세를 중심으로 중세 후기와 근대를 연결시킨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오클리 및 브라이언 티어니(Brian Tierney)를 포함해 그가 참고하는 중세사가들은 한편으로 근대적 논의의 출발점을 중세까지 끌어올리면서 사상사의 "연속성"을 강조한다(그 점에서 오클리는 자신이 아서 러브조이Arthur J. Lovejoy의 계승자임을 자처한다). 즉 한편으로 중세사가, 특히 (발터 울만 및 칸토로비츠로부터 내려오는) 교회사 및 법사상사가들의 작업에 토대를 두면서 중세로부터 근세, 경우에 따라 오늘날의 세계에까지 이어지는 연속성을 중심개념으로 채택하는 것이 오클리와 티어니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실제로 둘은 Catholic Historical Review에서 서로의 자연법/자연권에 대한 책에 극진한 호평을 주고 받았다). 이러한 입장이 오늘날 서구 자유주의를 둘러싼 정치철학적 논쟁에서 갖는 함의는 다음에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1장은 자연법의 두 가지 전통, 즉 그것을 "구성하는 계기"(constitutive moment)이자 "[세계를]가리키는 합리적 규범"(indicative rational norm)으로 이해하는 그리스적 전통과 "의무를 준수하게 하는 힘"(obligaging force)이자 "[세상을]지배하는 법률적 명령"(imperative leglslative command)로 이해하는 기독교적 전통을 소개하고(24) 이 두 가지 전통의 긴장관계로 기초지어진 자연법이 특히 14-15세기 기독교철학자들에 의해 "무엇에도 제약받지 않는 신의 자유, 초월성, 전능함"(the untrammaled freedom, transcendence, and omnipotence of God, 26)을 강조하는 유명론적 경향이 출현하는 대략의 과정을 설명하는 인트로다. 2장은 여기서 에우튀프론 딜레마, 즉 올바른 이성에 기초한 법과 신의 의지 중 무엇이 최종적인 정당성을 부여하는 심급인지에 대한 갈등구도를 파고들어가 자연법의 두 가지 전통 사이의 긴장이 유명론자들에 의해 God's absolute willdivine reason=naturla law를 결정하게 되는 논리가 출현하는 계기를 좀 더 상세하게 다룬다면, 3장은 중세 후기 유명론 및 이에 기초한 자연권 전통의 핵심인물이라 할 수 있는 오컴의 윌리엄(William of Ockham)에 대한 최근의 해석적 난점을 소개한다. 오컴은 (미셸 빌레Michel Villey의 주장과는 달리) 자연법과 자연권의 병립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으되, 자연법을 최종적으로 신의 의지에 귀속시키는 논지를 설정했으며 이 논리는 이후 홉스와 로크의 자연권에도 이어지는 걸 볼 수 있다.

 

오클리의 책에서 가장 중요한 4장은 자연권에 대해 2005년까지의 논의를 한꺼번에 쭉 정리해주는 매우 유용한 내용을 담고 있다(시간이 없으면 4장만 읽어도 될 정도다). 4장의 핵심은, 자연권은 근대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클리는 먼저 레오 스트라우스 및 빌레 -> Georges de Lagarde로 가는 프랑스 쪽의 주장을 명료하게 정리해준 다음 이들의 근본적인 해석구도, 즉 토마스 아퀴나스의 자연법이 이후 오컴에 의해(빌레) 또는 홉스에 의해(스트라우스) 뒤집히고 개인의 주관에 기초한 권리(subjective individual right)라는 (다소 비관적인 의미에서) '근대'로 간다는 내러티브를 반박한다(4장 1, 2절). 애초에 중세는 아퀴나스 식의 '세계를 구성하는 객관적 원리'로서의 자연법만 있는 게 아니라 자연권과 자연법의 논의가 공존하던 시기였으며, 12-13세기에 이미 자연권/법(jus naturale)를 주관적/개인적인 것으로 사용하는 용법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103). 더불어 리처드 턱을 중심으로 하는 근세 연구자들의 "17세기 근대 자연권설"도 비판한다(4장 3절). 앞서 3장에서 보았듯 오컴한테는 자연법과 자연권이 같이 가는 게 이상하지 않았으며, 교회법에서의 혼인법과 계약법이 보여주듯 개인의 의지(individual will)에 초점을 두는 논리는 오컴 이전 12세기 법학자들, 로마법 주석가들에게서부터도 찾아볼 수 있다(여기에서 TierneyCharles Reid의 연구가 주로 인용된다)--오클리는 이미 12세기에서부터 "능동적 권리"(active rights)와 "수동적 권리"(passive rights)의 '근대적' 구분이 존재했다고 말한다(101).


주지하다시피 오컴은 14세기 프란치스코파와 교황 요한 22세와의 청빈과 소유권 논쟁에서 전자의 입장에 따라 용익권(the simple use / usus facti)과 소유권(the ownership / dominium)의 구별이 가능하며 전자가 일종의 자연권으로 주어진다고 주장했다. 논쟁이 격화되면서 그는 더 나아가 신민들(subjects)에게 공동체의 지도자를 선출하고 지도자의 권력에 제약을 부여하는 정치적 권리가 있다고 말하기까지에 이르며, 이는 15세기의 장 제르송(Jean Gerson), 16세기 스페인의 스콜라주의자들, 그리고 마침내 17세기의 자연권 사상사들에게 이어진다(104-05). 오클리는 크누트 하콘센(Knud Haakonssen)의 논지에 따라 18세기쯤 가야 자연법적 전통이 사라진다고 말하며, 서두에 설명했던 12-18세기가 사실은 single epoch였다는 주장을 전개한다(물론 오클리가 중세와 근대가 같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데, 그는 4장 4절에서 밝히듯 다른 무엇보다도 전자에서는 후자와 달리 개개인이 권리를 보유하는 유의미한 단위로 간주되지 않았다다고 말한다).

 

이 내러티브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게 4장에서 말하는 다음의 인용이다:

그러나 이미 분명한 것은, [자연법-자연권의 전개]과정이 빌레가 주장하는 식의 불연속성, 혹은 스트라우스가 주장하는 식의 극적이고, 비역사적이며, 유사-푸코적인 단절을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 대신, 보다 신뢰할만한 대안적인 설명의 윤곽이 이제 떠오르고 있다. 그들이 제시하는 설명이란 자연권 언어의 느린 진화과정이다. 자연권 언어는 중세 법학의 거대한 바다”(티어니)라고 불려온 것으로부터 기원했으며, 이후 중세 후기의 철학 및 신학, 그리고 (16세기의) 두 번째 스콜라주의와 상호작용했고, 이어 17세기의 철학적인 자연권 사상으로 흘러들어갔다. 심지어 그 이후에도, 만약 하콘센과 샤피로의 서로 다른 설명이 결국 옳다면, 자연권 언어는 권리 담론이 마침내 자연법의 객관적 규범에의 오랜 종속으로부터 탈출하기 시작하여 도덕적 전통주의의 근대적판본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18세기까지도 계속 발전해 갔다. 하지만, 자연권 사상에서 철학적 사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 되었든 간에(근대 시기에는 분명히 매우 중요해졌다), 그것이 법적인 것, 특히 12-13세기의 교회법적 문헌에 가장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But what is already, [...] perfectly clear, is that the process involved is not one marked by discontinuities of the sort canvassed by Villey, still less by dramatic, ahistorical, and quasi-Foucauldian ruptures of the kind urged by Strauss. Instead, the outlines of a more credible alternative account have now begun to emerge. And what they suggest is a slow, evolutionary development of natural rights talk originating in what has well been called "the great sea of medieval jurisprudence" (Tierney), but interacting eventually with the philosophy and theology of the later Middle Ages and of the second (sixteenth century) scholasticism, finding its way thence into the philosophical natural rights thinking of the seventeenth century, but even then, if Haakonssen and Shapiro are in their differing ways at all correct, still evolving on into the eighteenth century when rights discourse began finally to escape its traditional subordination to the objective norms of natural law and to become identified with a "modern" version of moral conventionalism. But, however important philosophical considerations eventually became for natural rights thinking (and in the modern period they clearly did become very important), it should be acknowledged that its deepest roots reach down into the juristic, and especially the canonistic literature of the twelfth and thirteenth centuries, 105-06)

 

이렇게 자신의 주장을 전개한 오클리는 44절에서는 덜 배워먹은(!) Early Modern들과 또 만물중세설을 외치는 중세사가들을 근엄한 어조로 비판한다(이건 굳이 번역하지 않겠다): "Much of what I have had to say has been directed, at least implicitly, at those whose scholarly interests lie in the modern period. In particular, it has been targeted on their regrettable (if understandable) reluctance to take more than fleeting account of the intricate and arcane claims and controversies prevalent among their medievalist colleagues. What follows, however, is properly directed to those of us who are medievalists, and it involves a word of caution. Impatient with the barriers to understanding posed by the traditional medieval-modern historiographic divide, all too conscious of the frequency with which alleged and much trumpeted novelties of the early modern period have well-developed root systems thrust deep into the patterns of medieval life and thought, and irritated, it may will be, by the bland willingness of many a blinkered modernist simply to ignore that fact, it could be all too easy for us, in turn, to commit our own historiographic sins. In saying that, what I have in mind is the ease with which, in our eagerness to effect a perfecdy warranted course correction, we could slip into claiming a bit too much for medieval antecedents, however important such antecedents may be, and, by so doing, miss the significant differences of emphasis and nuance that serve to distinguish modern and even early modern patterns of thinking from what had gone before"(106-07).

 

 

원래 래리 시덴톱의 책을 읽고 리뷰를 준비하다가 브라이언 티어니의 논문을 보게 되었고, 티어니의 글을 읽다가 오클리의 책까지 왔다(...). 다음엔 아마 해럴드 버먼의 <법과 혁명>을 보게 될 것 같다(다행히 2권까지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있다!). 점점 배보다 배꼽이 커지고 있는데, 이 중세로의 여행이 어디까지 갈지 나 자신도 짐작이 가지 않는다(거기에 피터 브라운까지 읽는다면 후기 고대까지 가게 된다...). 어쨌든 지금은 기말페이퍼 및 다른 마감을 위해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여기서 정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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