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 수사, '순수한 이야기' [130804]

Comment 2014. 3. 18. 13:35

*2013년 8월 4일 페이스북


 (대략 5줄 미만으로 내용이 정리될) 영화들을 보면서; 근대 이후의 서사적 예술양식들, 특히 소설은(대다수의 경우 영화 및 만화도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 어떤 설득의 기제를 갖는다. 그것이 지금 해당 작품work이 보여주고자 하는 인물의 내면, 이야기 전체가 품고 있는 교훈, 무언가에 대한 비판이든 뭐든 간에; 여기서 작품 혹은 텍스트가 말하는 바가 저자의 의도와 등치되지 않는 경우에도 이 진술은 그다지 틀리지 않는다. 아주 파편적인 경우를 포함해서 특정한 메시지가 있고, 그 메시지가 전달되는 대상이 있고, 결정적으로 그 메시지가 전달되는 방식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거의 모든 예술에 그것이 어떤 수사rhetoric를 담고 있는지를 질문할 수 있고, 때로 그러한 수사의 계기를 포착하는 데서부터 텍스트에서 도출될 수 있는 메시지를 발굴하는 작업을 시작하기도 한다. 조금 더 조심성 없이 말한다면, 해석자의 입장에서 수사가 메시지에 선행할 때가 있다(그래서 수사가, 말하는 방식이 메시지의 내용과 결과까지도 뒤틀어버리곤 한다). 대체로 잘 만들어진 예술작품은 그것에 묻혀있는embedded 메시지와 그 메시지의 전달방식이 적절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 적절함에 따라 우리는 우리가 설령 동의하지 않는 메시지를 품고 있는 예술작품(예컨대 명백히 보수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뛰어난 대중영화 <다크 나이트>처럼)이 어떤 탁월함을 지녔다고까지 말하곤 한다. '설득의 기제'는 뛰어난 19세기 소설들에서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며, 그것에 반기를 든 20세기 중반 이후의 소설들, 우리가 포스트모던이라고 부르는 것들에도 역력히 드러난다. 단지 후자가 조금 더 메타적인 메시지를 품는다는 것만이 다르다.

예전에 이야기와 소설을 대비시키면서 잠깐 언급했던 '순수한 이야기', 교훈이 없는 이야기는 위의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설득의 기제를 갖고 있지 않다--혹은 그렇게 읽힌다. 그것은 특정한 메시지를 갖고 있지 않거나, 그 메시지를 해독가능하게 할 수사적인 단서를 남겨놓고 있지 않다. 해석자는 해당 텍스트 앞에서 도무지 접근할 수 없는 거리감과 다른 한편으로 너무나 가깝게 맞닿아있는, 무매개적인immediate 밀착을 함께 느낀다. 그런 종류의 이야기들은 해석하기에는 너무 멀고 또 너무 가깝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 이야기 그 자체를 위한 이야기("오로지 재미있는 이야기"와는 다르다--교훈없는 이야기들은 재미를 위해서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앞에서 해석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들의 존재는, 그리고 전승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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