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케. <생명정치란 무엇인가>.

Reading 2015. 11. 11. 01:02

토마스 렘케. <생명정치란 무엇인가: 푸코에서 생명자본까지 현대 정치의 수수께끼를 밝힌다>. 심성보 역. 그린비, 2015. Trans. of _Biopolitics: An Advanced Introduction_ by Thomas Lemke, 2011. [독일어 원서는 _Biopolitik zur Einführung_, 2007. 영어판으로 옮기면서 개정번역되었고, 한국어판은 영어판을 옮겼다. 간략한 설명은 한국어판 6쪽 번역자 주 참고]


 생명정치 개념에 대한 렘케의 명료한 개설서를 읽었다. 나는 렘케가 통치성governmentality 관련 저술의 편집을 맡았던 사실은 알았는데, 예상치 못하게 생명정치 쪽 저술이 먼저 출간되었다. 책 자체는 한국어 판 기준 찾아보기까지 포함해서 230쪽 정도고 줄간격도 큼직해서 분량은 그다지 많지 않다(영어판은 본문만 치면 index와 저자소개 포함 145쪽이다). 원래 서술 자체가 짧고 명확하게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는 데다 심성보 선생이 맡은 번역문도 깔끔해서 내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푸코의 재부흥 이후 한국에서도 곳곳에 생명정치란 표현이 유행하지만 정작 그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고 유효하게 사용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지 않은데, 이 책의 출간이 이론을 좀 더 이론적으로 활용하는데 보탬이 되기를 기원한다; 한국의 많은 연구자들의 착각과 달리, 이론적인 연구가 무용해지는 대부분의 경우는 지나치게 이론적이어서가 아니라 충분히 이론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명정치란 무엇인가? 렘케는 생명을 일종의 주어진 토대로 간주하는 자연주의적naturalist 입장 및 생명 과정을 정치의 대상으로 삼는 정치주의적politicist 견해 양자를 비판하며 푸코의 입장을 따른다. "[푸코에 따르면] 생명은 정치의 경계를 나타낸다. 정치가 준수하면서도 동시에 극복해야 하는 경계 말이다. 이러한 경계는 자연적이고 주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한 동시에 인공적이고 변형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푸코의 작업에서 '생명정치'는 정치적 질서에서 나타난 하나의 단절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인간의 생명에 고유한 현상들이 지식과 권력의 질서에, 즉 정치 테크닉의 영역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의 생명정치 개념은 생명[현상]이 그것의 구체적인 육체적 담지자에게서 분리되어 추상화되는 사태를 상정하고 있다. 생명정치의 대상은 개별 인간이 아니며, 인구 수준에서 측정되고 합산되는 인간의 생물학적 속성이다. 이런 방식을 거쳐 규범norm이 규정되고 표준이 설정되며 평균값이 정해질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생명' 자체가 독립적이고 객관적이며 측정 가능한 요인이 되었으며, 그와 함께 구체적인 살아 있는 존재에게서 인식론적·실천적으로 떨어져 나올 수 있고 개인의 고유한 경험에서 분리될 수 있는 집합적 실재가 되었다"(19-20).


 간단하게 말하자면 렘케의 텍스트는 생명정치 '개념'의 역사 및 현대적 용례를 다룬다. 즉 푸코가 작업한 바와 같이 17-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하는 생명정치적 실천에 흥미를 느낀다면 이 책은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렘케는 생명정치 개념이 어떻게 출현했고 또 어떠한 이론적 파장을 낳았는지, 이 개념을 활용하는 주요한 이론가들로는 어떤 이들이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한다. 이 책은 대략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20세기의 유기체적 국가생물학이나 나치의 인종주의로부터 시작해 1960-70년대 생태주의 및 기술주의에 이르기까지 생명정치적 개념이 가시화되는 과정을 다룬 1,2장, 생명정치 개념의 사용에서 다른 누구보다도 결정적인 기여를 제공한 미셸 푸코(<"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성의 역사> 1권, <안전, 영토, 인구>,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이 주로 다루어진다; 3장은 푸코의 70년대 후반부 작업을 매우 잘 요약하고 있다)와 푸코의 개념을 받아 활용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자들인 아감벤(주로 <호모 사케르>)과 하트/네그리를 다룬 3-5장, 그 외에 디디에 파생Didier Fassin, 폴 래비노Paul Rabinow, 니컬러스 로즈Nikolas Rose를 포함해 푸코의 영향권 안팎에서 진행된 다양한 이론적 실천을 소개하는 6-8장이 그것이다(9장은 짧은 결론이다). 책을 끝까지 읽은 독자들은 금방 알 수 있겠지만, 몇 가지 기본적인 사항에 대한 합의를 제외하고는 (심지어 푸코로부터 이 개념을 끌어 쓰는 저자들까지도) 생명정치 개념을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렘케 또한 그들의 다양한 차이를 소개하는데 관심이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생명정치'의 역사 및 오늘날의 용례uses를 개괄하는데, 이 개괄에서 볼 수 있듯 이 용어는 얼핏 모순적으로 보이는 요소들을 결합하고 있다"(187, 영문판을 참조하여 번역 일부 수정)는 말은 정확하다.


 <생명정치란 무엇인가>는 이론적 영역을 다루는 개설서가 갖추어야 할 미덕들을 갖추고 있다. 폭넓은 범위에 대한 짧지만 명료한 서술, (특히 아감벤에 대한 비판적인 지적에서 잘 드러나는) 이론의 강점 및 약점에 대한 가감없는 논평, 넓은 범위에 걸친 참고문헌 인용. 특히 세 번째 점을 강조하고 싶은데, 렘케의 책이 아니었다면 영어권만이 아니라 독일어권에서도 생명정치 개념에 관련된 여러 저술들이 나와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근래에 독일에서도 푸코를 비롯한 '현대 프랑스철학'을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각주에서 빈번히 독일어권 문헌을 언급하는 책을 읽었을 때 드는 실감은 다르다. 그외에도 이른바 '비판적 사상가'(critical thinkers)들만이 아니라 질서자유주의/신자유주의 통치를 둘러싼 이론적 작업들을 소개하는 8장은 생명정치와 (푸코주의가 충분히 건드리지는 않았던) 경제라는 주제를 짧게라도 소개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개념과 이론에 대한 교통정리를 필요로 하는 독자들만이 아니라 새로운 활용사례들을 통해 시야를 넓히려는 독자들에게 렘케의 책은 기초적인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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