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과 정치적 소통

Critique 2015. 8. 29. 18:25

이 칼럼(http://m.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4675)는 오늘날 뉴스의 중요한 가치가 기사의 정보값보다 관계형성/유지를 가능하게 해주는 소통기능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확실히 그런 측면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엄밀하게 사고하고자 한다면, 사회적 관계를 위한 소통의 여러 가지 형식들 중에서 왜 뉴스인건지, 그리고 여러 종류의 뉴스들 중에서도 왜 특정한 뉴스에 대한 선호가 존재하는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다. 사람들은 뉴스를 통해 자기동일성을 확인하고자 할 뿐인가? 그런 경우가 생각보다 매우 많은 것은 사실이나, 그것만이 전부라고 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지만 동시에 세계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위한 감각자료를 축적해나가기도 한다; 어쨌든 사람들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 귀여운 고양이 동영상 보다는 언론기사를 읽는 게 더 합리적인 행위라고 믿는다. 물론 그러한 믿음이 곧 기사를 읽고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는 능력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뉴스와 플랫폼의 관계를 언급하는 글을 읽을 때 조금 아쉽게 느껴지는 건, 플랫폼 이용자들의 성향 변화 및 그에 따른 플랫폼의 조정과정을 분석하는 시선을 갖춘 이가 드물다는 사실이다. 내가 2012년 개인적인 이유로 페이스북을 시작했을 때 나와 주변인들은 페이스북이 유의미한 지적인 소통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는 인상을 공유하고 있었다(지금까지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는 많다). 당시 나의 협소한 페이스북 친구 범위를 감안해야겠지만, 페이스북에서 '긴 글'을 쓰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고 아예 이 플랫폼 자체가 글쓰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대표적으로 페이스북의 글쓰기 플랫폼은 극도로 단순화된 기능만을 그것도 불완전하게 제공한다(심지어 나는 싸이월드보다도 열악한 편집창을 보고 개탄했다). 페이스북은 철저히 단문 및 이미지 공유에 최적화된 공간으로 간주되었고, 실제로 사진 및 코멘트로 구성된 게시물을 공유하면 사진만 공유되던 과거의 설정은 이용자 간 소통의 핵심은 이미지며 문자언어는 불필요한 부수적인 것일 뿐이라는 플랫폼 제작자의 실용적인 인식을 잘 보여준다.

 

정확한 시점을 특정하기 어렵겠지만, 그리고 어느 한 순간에 일어난 변화라기보다는 지속적인 변화가 축적되어 왔다고 말하는 게 좀 더 안전한 진술이겠지만, 나처럼 플랫폼 전환에 보수적인 사람들조차도 다양한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페이스북을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플랫폼은 강력한 변화유인과 직면했다. 나를 포함해서 문자언어로 '심각한' 주제들을 논의하고 공유하는 걸 온라인 생활의 근본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가벼운 소통'을 지향하던 페이스북에 맞춰 스스로를 바꾸기보다는 플랫폼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활양식을 관철하는 쪽을 택했던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페이스북에서 '심각한' 주제들을 다룬 글의 비중이 양적으로 늘어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플랫폼을 그러한 용도로 활용하는 게 더 이상은 그렇게까지 괴상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은 점차 넓게 퍼져간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인 이슈나 논쟁적인 주제를 다룬 글이 이전보다 훨씬 눈에 잘 띄기 시작했다. 내 페이스북 친구범위의 변화 및 플랫폼이 내 관심사에 맞춘 주제들을 선별했으리라는 사실을 고려해야겠지만, 어쨌든 그러한 주제를 다루는 대규모 커뮤니티들이 생기고 몇 백 명이 공유하는 '심각한' 글들을 찾아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그 질적인 면모에 대해서 나는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다). 페이스북에서 학적인, 지적인, 정치적인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다는 인식은 역으로 그러한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페이스북 이용을 꺼리던 더 많은 이용자들을 유입시켰다. 그리고 언론들이 제각기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발빠르게 페이스북을 뉴스배포처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페이스북은 이처럼 문자언어를 통한 소통양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편의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플랫폼 설정을 바꾸기 시작했다. 나는 페이스북 운영자들이 페이스북 이용자집단의 정치적 소통역량을 보장하려 했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다만 몇 가지 기능상의 변화는 결과적으로 정치적 소통을 포함한 "문자언어 소통의 편의성"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기능을 전부 알기는 쉽지 않은 페이스북에서--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페이스북에 프라이버시 보장설정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되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벌어진 수많은 미세조정을 예리하게 지적하기는 힘들겠지만, 두 가지 가시적인 변화만 꼽아도 충분할 것이다.

 

첫째, 앞서 예로 들었듯 본래 페이스북의 사진공유는 문자 코멘트를 삭제하고 이미지만을 옮기는 것이었다면, 비교적 가까운 시점에서 이제 사진공유는 문자 코멘트의 공유 역시 포함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기능 상의 변화는 당연히 문자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편의성을 증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조금 넓은 관점에서 말하자면, 페이스북 운영자들은 문자적 소통이나 사진/동영상 이미지 소통만이 아니라 이미지와 문자가 결합한 종류의 소통을 그 자체로 하나의 유의미한 단위로 간주하기 시작한 셈이다. 문자언어소통에 이미지를 결합할 수 있다는 것, (넓은 의미에서) '논평'을 주요한 소통수단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정치적이고 '심각한' 주제의 게시물을 주로 다루는 사람들의 소통가능성을 증진시킨다(아직 링크+문자코멘트 공유는 지원하지 않는데, 언젠가 이 설정 역시 바뀔 가능성은 있다). 정치적 논평자들이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식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이러한 기능상의 변화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충분한 탐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감안해야 한다.

 

둘째, 좀 더 최근의 시점에 댓글(comment)창에서 특정 댓글에 대한 댓글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전에 페이스북의 댓글창은 하나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특히 제3자의 게시물에 대해 댓글로 소통할 때 서로를 일일이 태그하는 방식으로만 대화할 수 있었고, 일정 수 이상 댓글이 작성되었을 때 (특히나 논쟁적인 대화의 경우) 그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며 따라가는 일은 꽤나 귀찮았고, 이는 해당 대화에 대한 피로도를 상승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댓글에 대한 댓글이 가능하게 되면서 댓글창을 통한 소통의 편의성은 질적으로 상승했다. 댓글란은 이제 그 자체가 다차원적인 소통공간이 될 잠재력을 갖게 된다. 게시물에 대해 최초에 각각의 주제를 다룬 A, B, C라는 댓글이 달리면 각 댓글마다 해당 주제에 집중한 논의의 전개가 가능해졌고, 각 주제에 대한 대화는 서로 엉키지 않고 진전될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한 게시물에서 유의미하게 논의될 수 있는 문자량/정보량은 댓글창을 통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각각의 대댓글에 '접기'를 허용한 것은 페이스북 측이 자신들의 설정변화가 어떠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지 예측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특정한 이용자에 대한 호오를 표시하는 정도의 단순한 댓글은 이러한 변화에 특별한 영향을 받지 않지만, 주제에 대한 지적인/정신적인 집중을 요구하는 정도가 높은 소통일수록 새로운 댓글시스템으로부터 획득하는 편의성은 증대한다.

 

나는 이러한 변화가 현재의 소통양태에 즉각적으로 거대한 변화를 초래한다거나, 우리가 곧 진정한 온라인 공론장(이 개념은 단순하게 현상기술을 위해 적용하면 너무 많은 사례에 적용할 수 있고, 가치평가기준으로서 엄격하게 적용하면 사실상 적용할 수 있는 사례가 거의 없다; 나는 양자 사이 어딘가에서 이 개념을 사용한다)에 진입하게 될 거라는 예측을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페이스북 플랫폼이 문자언어소통 기능을 점차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플랫폼을 수정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페이스북을 문자언어소통과정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심지어 비교적 이미지를 통한 소통에 더 가까운 '젊은 세대'를 포함해서) 및 문자언어소통 자체의 양이 증대하고 있다는 사실 양자가 상관관계를 맺을 뿐 아니라 서로 간에 되먹임(feedback) 과정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소통을 비롯해 전통적으로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에서 이질적인 행위로 간주되었던 '진지한' 소통의 양과 그 편의성 모두 증대할 가능성이 높다(나는 현재진행형이라고 본다). 짧게 언급할만한 흥미로운 사실로, 지금 인스타그램이 보다 젋은 이용자들에게 이해되는 방식은 과거 페이스북이 이해되던 방식과 유사하다; 이미지를 통한 보다 가볍고 부담없는 소통, 이것은 페이스북이 초기에 한국인 이용자들에게 주었던 인상과 매우 흡사하다. 우리는 페이스북에 문자언어소통 및 '진지한' 소통과정이 증폭하면서 페이스북이 플랫폼의 성격을 점차 새로운 유입자들에 맞추기 시작하고 이전에 페이스북이 보유하고 있던 상대적으로 '가벼운' 소통은 이를 보다 특화한 인스타그램이 흡수하고 있다는 가설을 세워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추측이 사실이든 아니든 어쨌든 몇 가지 시사점을 이야기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첫째, 엔지니어나 예민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를 주의깊게 인식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온라인 소통의 플랫폼은 지속적으로 변한다. 이미 페이스북은 지난 3년간 상당한 변화를 겪었고, 특히나 다른 소통플랫폼들과의 경쟁 및 스마트폰 등을 통한 접속장치 상의 기술적 변화가 계속해서 작용하는 한 계속해서, 아마도 우리의 예측 이상으로 빠르게 바뀔 것이다(뉴스공급의 기능을 사실상 스스로 제약한 것이나 다름없는 네이버는 페이스북을 통한 기사접속수가 이렇게 증대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까? 만약 네이버가 다른 선택지를 택했다면, 적어도 한국 이용자들의 온라인 뉴스소비 경로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둘째, 플랫폼의 변화는 소통양태의 변화와도 밀접한 상호연관성을 갖는다. 페이스북의 이용자가 증폭할 것을 예상한 사람들은 많았겠지만, 특히 한국의 온라인 공간에서 정치적 주제에 관련된 소통이 이 정도로 광범위하게 행해질 것을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던 듯 싶다; 한국에서 기술발달과 정치현상의 상호관계를 예측하는 작업은 그 중요성에 비해 아직도 너무 소수의 전유물로 남아있다. 특정한 주제의 소통이 어떤 소통양식과 친밀성을 갖는지, 그리고 플랫폼 기능상의 변화가 여기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좀 더 진지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셋째, 두 번째 항목의 연장선에서, 플랫폼 자체의 '정치적인' 성격을 겨냥한 투쟁이 언젠가 가시화될 가능성이 있다. 2015년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꼽는다면 단연 반 여성혐오를 내세운 메르스갤러리-메갈리아 운동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들이 (스스로 의식했는지 모르겠지만) 던진 중요한 의제 중 하나는 한국 페이스북 운영진의 여성혐오적 성향을 의문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베를 비롯해 각각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특정한 정치적 성향과 이어져있음은 2000년대 후반부터 명확해졌지만, 비교적 중립적인 성격으로 이해되었던 플랫폼 운영진의 ()정치적 입장을 논의의 장 내로 가져왔다는 점은 중요하다. 현재로서는 운영진의 편파적인 행정처리를 비판하는 수준이라면, 언젠가 우리 사회가 고도화된 비판적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연구자들을 좀 더 많이 보유하게 될 때(유감스럽게도 한국의 고등교육/연구환경은 점점 이를 어렵게 만들고 있지만) 플랫폼 '기능상의' 변화가 소통에 어떤 정치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 역시 가시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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