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여성혐오 편과 가부장주의에 관하여

Critique 2015. 8. 8. 16:15
직썰 기사 링크: http://www.ziksir.com/ziksir/view/2189

PD수첩 여성혐오 편 스크린샷을 보면서 여성혐오를 "우리나라 남자들이 힘드니까"로 덮으면서 혐오-폭력에 대한 책임 따위는 망각하는 조잡한 변명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런 시선은 온라인 어딜 가든 발에 채이는 거라, 굳이 뻔한 이야기를 또 듣고 싶지 않아서 아예 해당 방송을 볼 마음이 없었다. 링크한 직썰의 꽤 긴 글은 PD수첩 해당 방영분과 메르스 갤러리 유저들의 실제 인터뷰 내용을 상세하게 대질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설명한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PD수첩 PD는 사실을 취재하고 분석하는 대신 본인들에게 이미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체득되어 있는 익숙한 가부장제를 어떻게든 복구하는 게 목적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특별히 눈에 띄었던 것만 체크한다면,

"방송 말미 PD수첩은 싸이의 <아버지>를 BGM으로 깔며 다시 한 번 설득한다"

(허지웅의 인터뷰에서) "[젠더 문제는] 결국 한 꺼풀 덜어내서 보면 그 문제의 근간엔 부동산 문제가 있고, 계급 문제가 있거든요. 왜 그걸 안 보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클로징 멘트에서] 이제 20대 중반쯤 되는 청년들이 우리 아버지세대의 가부장적 책임감, 의무감을 갖고 있는 것을 보니 참 안쓰럽습니다. [...] 소위 말해 찌질해 보여도 괜찮으니, 여자친구와 그리고 미래의 아내와 솔직한 대화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컴퓨터 앞에 앉아 없는 김치녀를 만들고 공격하는 그런 무의미한 여성혐오에 빠지게 되는 일도 없을 겁니다."

선의를 갖고 요약하면, 가부장의 짐이 오늘날 너무 무거운 것이 된 남성들이 여성혐오로 향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나는 그러한 분석 자체는 분명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PD수첩 제작진이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덮어주지는 못한다.

첫째, 그들은 (가부장에 대한 향수와 부채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싸이의 노래를 인용하면서) "가부장의 무거운 짐" 자체를 미학적으로 떠받든다.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가부장의 의무가 실현될 수 없는 상황이 문제적이라면, 왜 그들은 가부장의 의무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에는 도달하지 못하는가? 애초에 한국사회가 가족을 이해해온 방식 자체가 현대적인 시민사회에서는 더 이상 지탱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구태이지 않은가? (여기에 대해서는 진달래 기자의 기사를 참고하라 http://www.huffingtonpost.kr/dalrae-jin/story_b_7954882.html) PD수첩 제작진은 이러한 고민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결론은 남성들이 여성에 비해 얼마나 박탈당한 존재인지를 강조하는 온정주의적 면죄부로 향할 수밖에 없다.

둘째, 그들이 인용하는 허지웅의 코멘트는 젠더 문제가 단순히 경제적 문제의 반영일 뿐이며 페미니스트들 혹은 반-가부장제 목소리가 경제적 문제라는 '심층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단언한다는 데서 이중으로 문제적이다. 성과 계급에 대해 최소한의 이론적 논의를 따라가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성차별이 단순히 계급갈등의 반영이라고 주장하지 않으며, 동시에 현실의 문제에는 계급갈등과 성차별이 (그리고 다른 기제들이) 긴밀하게 얽혀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허지웅의 코멘트는 계급물신적인 구좌파적 시선을 반복한다는 데서, 그리고 새로운 비판적인 페미니스트들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페미니스트들을 편협한 집단으로 덮어씌운다는 점에서 이중으로 진부하다--나는 그가 한때 스스로를 새로운 진보좌파의 일원으로 간주했으며 동시에 여전히 지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이로 표방한다는 게 당황스럽다. PD수첩은 허지웅의 반지성적인, 지금은 그 자체가 반反 페미니즘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 구도를 답습한다. 이건 지적으로 나태하다.

셋째, 클로징 멘트에서 알 수 있듯, PD수첩 제작진은 마지막까지도 가부장주의 혹은 남성 중심적인 가족주의를 충실히 되풀이한다. 남성들이 여성혐오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그녀들이 "여자친구" 혹은 "아내"가 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어머니라는 단어가 안 나온 게 어디인가)! 너의 애인이자 여성들은 동등한 시민이자 인간이기 때문에 혐오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게 아니라, 가족 혹은 (이성애적) 연애 안에서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는 이러한 논리는 일견 여성혐오를 비판하는 것 같지만 그 근본적인 전제가 되는 가부장적 구도를 당연한 선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조금 더 교활해진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이들에게 사회는 여전히 주인공인 남성이 가족/연애를 통해 여성을 통치하는 전근대적인 공간이기에, 이 안에서 시민의 권리라든가 인간의 평등과 같은 근대적인 고민들이 들어올 여지는 없다(나는 의식적으로 여기에서 근대주의자의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가부장과 가부장 워너비들만이 거주권을 갖고 있는 PD수첩 제작진의 세상에서 여성들에 대한 혐오담론이 얼마나 얼척없는 사례들로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한 반성이나 비판은 애초에 무의미하다. 가부장들의 세계에서는 여성이 아무리 멍청하고 무책임하며 이기적이라고 해도(여기서 "군삼녀"와 같은 군대 레토릭이 작동한다) 어차피 섹스파트너로서 대상화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그들이 폭력을 느끼든 말든, 그들에게 가해지는 공격이 얼마나 부당한들 아무래도 상관없으며 남자들이 여성들과 재결합할 수 있도록 합리화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 제작진은 내친김에 여성 혐오를 포함해 한국 남성집단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이 "과장된" 것이라는 언급을 누차 한다. 이들이 메르스 갤러리 인터뷰이들에게 "답정너"를 시현한 것은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매우 일관성 있는 것이다--너희 여자들은 어차피 뭔 말을 하든 중요하지 않으니까 내 얘기만 만들면 돼, 라는 '오래된 오늘'의 가부장제가 여기에 있다.

PD수첩 제작진에게서 드러나는 가부장주의는, 다들 알고 있듯이, 전혀 새로운 형태가 아니다. 이것은 정확히 말해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간주하는 척을(물론 그렇지 않다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해야하는 근대의 가부장들이 종종 취하는 처세술에 가깝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일은 이들의 위선 자체가 아니라 이들의 세계관 자체가 전근대의 망령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규범적인 용어로 사용한다면) 근대성의 요건 중 하나는 사회가 평등한 시민들에 의해 구축되었다는 인식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이성애든 아니든, 피부 색깔이 무엇이든, 어떤 부모 밑에 태어났으며 어디서 자랐든, 얼마나 수입이 있든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가족은 평등한 인간들이 소통-관계하는 한 가지 방식일 수는 있어도 유일하게 보편적인 방식일 수는 없으며, 남성이 왕좌에 앉아 유일한 인간으로 행세하는 가족은 더더욱 그러하다. PD수첩 제작진들이 유포하는 가부장제는 우리가 이러한 근대적 세계로 진입할 수 없도록 가로막는 장애물일 뿐이다. 이렇게 우리의 전선은 좀 더 구체화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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