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여성혐오 편과 가부장주의에 관하여

Critique 2015.08.08 16:15
직썰 기사 링크: http://www.ziksir.com/ziksir/view/2189

PD수첩 여성혐오 편 스크린샷을 보면서 여성혐오를 "우리나라 남자들이 힘드니까"로 덮으면서 혐오-폭력에 대한 책임 따위는 망각하는 조잡한 변명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런 시선은 온라인 어딜 가든 발에 채이는 거라, 굳이 뻔한 이야기를 또 듣고 싶지 않아서 아예 해당 방송을 볼 마음이 없었다. 링크한 직썰의 꽤 긴 글은 PD수첩 해당 방영분과 메르스 갤러리 유저들의 실제 인터뷰 내용을 상세하게 대질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설명한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PD수첩 PD는 사실을 취재하고 분석하는 대신 본인들에게 이미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체득되어 있는 익숙한 가부장제를 어떻게든 복구하는 게 목적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특별히 눈에 띄었던 것만 체크한다면,

"방송 말미 PD수첩은 싸이의 <아버지>를 BGM으로 깔며 다시 한 번 설득한다"

(허지웅의 인터뷰에서) "[젠더 문제는] 결국 한 꺼풀 덜어내서 보면 그 문제의 근간엔 부동산 문제가 있고, 계급 문제가 있거든요. 왜 그걸 안 보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클로징 멘트에서] 이제 20대 중반쯤 되는 청년들이 우리 아버지세대의 가부장적 책임감, 의무감을 갖고 있는 것을 보니 참 안쓰럽습니다. [...] 소위 말해 찌질해 보여도 괜찮으니, 여자친구와 그리고 미래의 아내와 솔직한 대화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컴퓨터 앞에 앉아 없는 김치녀를 만들고 공격하는 그런 무의미한 여성혐오에 빠지게 되는 일도 없을 겁니다."

선의를 갖고 요약하면, 가부장의 짐이 오늘날 너무 무거운 것이 된 남성들이 여성혐오로 향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나는 그러한 분석 자체는 분명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PD수첩 제작진이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덮어주지는 못한다.

첫째, 그들은 (가부장에 대한 향수와 부채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싸이의 노래를 인용하면서) "가부장의 무거운 짐" 자체를 미학적으로 떠받든다.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가부장의 의무가 실현될 수 없는 상황이 문제적이라면, 왜 그들은 가부장의 의무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에는 도달하지 못하는가? 애초에 한국사회가 가족을 이해해온 방식 자체가 현대적인 시민사회에서는 더 이상 지탱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구태이지 않은가? (여기에 대해서는 진달래 기자의 기사를 참고하라 http://www.huffingtonpost.kr/dalrae-jin/story_b_7954882.html) PD수첩 제작진은 이러한 고민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결론은 남성들이 여성에 비해 얼마나 박탈당한 존재인지를 강조하는 온정주의적 면죄부로 향할 수밖에 없다.

둘째, 그들이 인용하는 허지웅의 코멘트는 젠더 문제가 단순히 경제적 문제의 반영일 뿐이며 페미니스트들 혹은 반-가부장제 목소리가 경제적 문제라는 '심층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단언한다는 데서 이중으로 문제적이다. 성과 계급에 대해 최소한의 이론적 논의를 따라가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성차별이 단순히 계급갈등의 반영이라고 주장하지 않으며, 동시에 현실의 문제에는 계급갈등과 성차별이 (그리고 다른 기제들이) 긴밀하게 얽혀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허지웅의 코멘트는 계급물신적인 구좌파적 시선을 반복한다는 데서, 그리고 새로운 비판적인 페미니스트들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페미니스트들을 편협한 집단으로 덮어씌운다는 점에서 이중으로 진부하다--나는 그가 한때 스스로를 새로운 진보좌파의 일원으로 간주했으며 동시에 여전히 지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이로 표방한다는 게 당황스럽다. PD수첩은 허지웅의 반지성적인, 지금은 그 자체가 반反 페미니즘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 구도를 답습한다. 이건 지적으로 나태하다.

셋째, 클로징 멘트에서 알 수 있듯, PD수첩 제작진은 마지막까지도 가부장주의 혹은 남성 중심적인 가족주의를 충실히 되풀이한다. 남성들이 여성혐오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그녀들이 "여자친구" 혹은 "아내"가 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어머니라는 단어가 안 나온 게 어디인가)! 너의 애인이자 여성들은 동등한 시민이자 인간이기 때문에 혐오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게 아니라, 가족 혹은 (이성애적) 연애 안에서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는 이러한 논리는 일견 여성혐오를 비판하는 것 같지만 그 근본적인 전제가 되는 가부장적 구도를 당연한 선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조금 더 교활해진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이들에게 사회는 여전히 주인공인 남성이 가족/연애를 통해 여성을 통치하는 전근대적인 공간이기에, 이 안에서 시민의 권리라든가 인간의 평등과 같은 근대적인 고민들이 들어올 여지는 없다(나는 의식적으로 여기에서 근대주의자의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가부장과 가부장 워너비들만이 거주권을 갖고 있는 PD수첩 제작진의 세상에서 여성들에 대한 혐오담론이 얼마나 얼척없는 사례들로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한 반성이나 비판은 애초에 무의미하다. 가부장들의 세계에서는 여성이 아무리 멍청하고 무책임하며 이기적이라고 해도(여기서 "군삼녀"와 같은 군대 레토릭이 작동한다) 어차피 섹스파트너로서 대상화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그들이 폭력을 느끼든 말든, 그들에게 가해지는 공격이 얼마나 부당한들 아무래도 상관없으며 남자들이 여성들과 재결합할 수 있도록 합리화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 제작진은 내친김에 여성 혐오를 포함해 한국 남성집단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이 "과장된" 것이라는 언급을 누차 한다. 이들이 메르스 갤러리 인터뷰이들에게 "답정너"를 시현한 것은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매우 일관성 있는 것이다--너희 여자들은 어차피 뭔 말을 하든 중요하지 않으니까 내 얘기만 만들면 돼, 라는 '오래된 오늘'의 가부장제가 여기에 있다.

PD수첩 제작진에게서 드러나는 가부장주의는, 다들 알고 있듯이, 전혀 새로운 형태가 아니다. 이것은 정확히 말해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간주하는 척을(물론 그렇지 않다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해야하는 근대의 가부장들이 종종 취하는 처세술에 가깝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일은 이들의 위선 자체가 아니라 이들의 세계관 자체가 전근대의 망령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규범적인 용어로 사용한다면) 근대성의 요건 중 하나는 사회가 평등한 시민들에 의해 구축되었다는 인식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이성애든 아니든, 피부 색깔이 무엇이든, 어떤 부모 밑에 태어났으며 어디서 자랐든, 얼마나 수입이 있든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가족은 평등한 인간들이 소통-관계하는 한 가지 방식일 수는 있어도 유일하게 보편적인 방식일 수는 없으며, 남성이 왕좌에 앉아 유일한 인간으로 행세하는 가족은 더더욱 그러하다. PD수첩 제작진들이 유포하는 가부장제는 우리가 이러한 근대적 세계로 진입할 수 없도록 가로막는 장애물일 뿐이다. 이렇게 우리의 전선은 좀 더 구체화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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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이상 2015.08.09 21:39 신고 Modify/Delete Reply

    저는 '(형식적)합리주의의 극대화'도 하나의 원인으로 봅니다. 우스갯소리로 '일베의 여성혐오는 저열하지만 내가 하는 여성혐오는 그만한 근거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한마디로 '여자들도 군대 가고, 여자들도 힘든 일 도맡아서 하고, 여자들도 돈 쓰고, 여자들도 책임을 지라!'는 겁니다. 그것이 진정한 양성평등이 아니냐는 거죠. '권리는 요구하면서 의무에는 눈 감는' 여성들의 '비합리성(?)'이 그들의 입장에서는 몹시도 아니꼬운 것이죠. 의아한 건, 그토록 합리적이라면 여성들이 처해있는 말도 안 되는 비합리적 현실에 대해서는 왜 그만큼 분노하거나 발언은 하지 않는 걸까 하는 점입니다. 물론 그들(남성)이 원하는 답변은 자신들이 의문을 품고 있는 점에 대한 명확한 해명이지 다른 사례를 끌고와 'A의 잘못을 언급한다면 왜 B의 잘못은 언급하지 않냐?'는 점이 아니지요. '그건 그것대로 해결하고 이건 이것대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볼 테니까요. 그렇다면 여성들 역시도 굳이 남성들이 짊어지고 있는 가부장제에서의 책임감을 나눠질 필요는 없겠죠. 결국 저런 식의 변명은 '도끼로 제 발등을 찍는 격'이랄까요? 그들(남성)은 합리성을 중시하는 비합리주의자들이면서 비합리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합리주의자들인 셈이지요. 왜 이런 분열적인 모습이 보이는 걸까요? 그 근간에는 유아기적인 자아를 벗어나지 못한 마초 아닌 마초들의 생떼 쓰기. 일종의 피해자되기 서사가 있다고 보네요. '가부장제에서 남성성을 강요 받으며 살아가는 나의 고통은 알아 주지 않으면서 되레 나더러 가해자라고 일컫고, 과거에 비해 나는 누린 권리가 없는데 그런 나더러 권리마저 내놓으라 요구를 하고, 남자라는 이유로 기껏 2년 동안 죽어라 고생하며 군대를 다녀왔더니 계속해서 나에게 평등하게 대해줄 것을 요구하는 여성집단'을 향한 울분과 추상적 혐오.

    저는 '결과의 평등'보다 '기회의 평등'이 중시되는 '능력주의, 자격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더 노골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봅니다.

    • 개선비 2015.08.10 14:14 신고 Modify/Delete

      저도 이분이랑 비슷한 의견을 갖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허지웅이 계급문제라고 언급한 부분은 맥락상 이러한 이유였습니다. 허지웅은 단순히 젠더 문제들이 계급문제로 치환된다는 일반론적인 얘기가 아니라. 20대 사이에 증가하는 여성혐오 문제의 본질은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사소한 것도 아쉬워진 남자들'의 분노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PD수첩이 단순히 가부장제를 지지하고 있다 보지 않습니다. 물론 프로그램을 쭈욱 보다보면 결국 남자들의 얘기에 귀기울이는 것은 분명하지만, 결국 가부장제의 해체는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그러한 진행이 억압 기제로서의 측면보다는 단순히 시대에 뒤쳐졌다, 혹은 더이상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식의 서술을 보이고 있다는 게 문제가 될 수 있을 수는 있겠지만요.

      다만 제가 PD수첩에 불만이 큰 부분은 문제를 사회적인 차원이 아닌 개인적인 차원으로 내린다는 점입니다. PD수첩의 클로징 멘트가 이를 잘 보여주는데, 결국 내 배우자, 내 여자친구에게 찌질해보여도 경제적인 문제를 얘기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찌질하다는 규정성이 사회적 폭력이라는 측면을 도외시하고 있으며, 여성혐오가 결국 내 배우자, 내 여자친구 문제로 한정짓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후자의 문제는 여성혐오의 대상이 결국 내 배우자, 내 여자친구가 아니라(일베식의 서술로치면 결국 "내 여친은 탈김치"일 것입니다.) 불특정 다수에 대한 혐오라는 것이며, 이는 개인 간의 소통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개입되어야할 부분입니다.

      사실 제가 여성혐오 담론에 대해 불만인 것은, 이것을 나쁘다고만 규정할 뿐 그러한 불만을 어떻게 해소할지에 대해 논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설사 잘못된 불만일지라도 그것이 사회적으로 명확히 인지될 정도라면 문제를 해결해야지 억압해서는 안 되는 법인데, 사실상 대부분의 담론들은 이 문제가 잘못됐다는 점은 지적하지만 어떻게 해소할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습니다. 조금 다른 맥락의 문제지만, 군가산점이 실제로 효용성이 있든지와 상관없이 논의해볼 수는 있는 것이며, 병사 월급 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논의해볼 수 있는 것이니까요. PD수첩 인터뷰자 중 최진기(?)가 말했듯이 병사 월급을 100만원 수준으로 올리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사회적으로 합의해볼 수 있는 부분인데 도외시되고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결국 이런 부분을 고려하면 윗분과 더욱 비슷한 포지션을 취하게 될거 같군요.

    • BeGray 2015.08.10 23:30 신고 Modify/Delete

      소년의 노래 // 동의합니다. 정확히 말해 "형식적 합리주의"는 합리주의를 표상한 이데올로기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죠. 여기에서 좀 더 나아간다면 (맑스적인) 가치형식의 문제까지 갈 수 있을텐데, 이 문제는 미래의 아주 얕은 문제의식 정도로만 남겨둡니다.


      개선비 // 소년의 노래 님과 "비슷한 의견"이라는 게 그러니까 실질적인 차원에서의 평등이 초래되지 않는다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이야기죠? (그렇게 제가 확대해석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현준 씨의 댓글 안에서 유사성이 곧바로 드러나지는 않는 것 같네요)

      고백하건대 제가 PD수첩 방송을 직접 전부 봤다기보다는 몇몇 필터링을 거쳐서 제한적으로 소화했기 때문에 실제 본 사람들의 의견과는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다만 현준 씨의 입장은 제가 접한 반응 내에서도 독특한 편이긴 하군요).

      PD수첩이 오늘날의 조건이 가부장제가 과거와 같은 형태로 유지될 수는 없는 상태임은 저도 본문에서 지적한 바입니다만, 그것이 현준 씨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결국 가부장제의 해체는 필요하다"는 진술로 이어지는 것인지는 조금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가부장제가 작동하기 힘든 조건을 가리키는 것과 가부장제를 명확히 비판하는 것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크니까요. 싸이의 <아버지> 같은 노래를 온정적으로 사용하는 방송이 정말로 그러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고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현준 씨가 달리 지적했듯, "개인적인 차원으로 내린다"는 것이 문제라면 이는 곧 가부장제의 해체를 주장하는 것과 상충될 수밖에 없습니다(물론 PD수첩 제작진의 의식이 문제적 사태 앞에서 분열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여성혐오 담론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할 때 이것이 여성혐오 자체에 대한 불만인지 여성혐오 비판 담론에 대한 불만인지 조금 불투명합니다(당연하지만 둘은 다릅니다!). 맥락상 후자인 것 같은데, 물론 군대가 여성혐오 담론에서 핵심적인 기제로 작동하며 군 복무과정의 합리화는 매우 필요합니다만(다만 저는 이걸 여성혐오 내부의 문제라기보다는 조금 다른 문제틀 속에서 보고 싶습니다), 저는 가부장주의 자체의 해체를 좀 더 중요하게 보는 입장입니다. 물론 군 복무로 인한 손실과 충격은 절대 과소평가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여전히 성 차원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맞고 남성들에게 훨씬 더 많은 역량과 자유가 제공됩니다. 이 차별의 재생산에는 사회적 성차 및 이와 결부된 가부장제가 있고요. 이것의 전반적인 합리화과정 내에서 군 복무 문제를 다시 끌어들여올 수 있는 맥락이 있는데--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저는 군 복무는 우선적으로 성차 이외의 합리화/개혁이라는 맥락에서 다루어야 하며, 성차 안에서 이 문제를 다룰 때 문제를 제대로 풀어낸다기보다는 오히려 헝클어트릴 위험이 더 크다고 주장합니다--가부장제의 해체를 끌어오지 않고 여성혐오의 해소책으로 군 복무 문제를 거론하는 건 그렇게 좋은 전술이 아닐 것 같아요.

    • 개선비 2015.08.11 12:01 신고 Modify/Delete

      제가 첫분 댓글을 잘못 이해했군요
      그런데 정말 동의한다는 표현은 그대로 적용될 것 같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경제적 문제의 인식의 형식이 바로 기회의 평등으로 표상될 효율성의 극대화입니다.(사실 그렇기에 현대 사회의 체계변화가 근본적 문제이나... 이후-담론의 부재와 너무나도 강력한 변화동력으로 인해 체질개선된 사회에서 어떻게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냐가 문제가 된듯합니다.. 안습)

      저는 직접 보았는데, 제가 본 느낌은 pd수첩이 남성들의 담론을 이해할 내러티브를 제공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적 의식은 결여되었으나 절대 그것이 옹호적 입장으로 연결되진 않았습니다. 싸이의 아버지를 삽입한 것도 지금 20대는 더이상 동의하지 않는 구시대의 표상으로서 제시된 것이었습니다. 특히 클로징 멘트는 김치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으며(제가 찾아보니 일베 사용자들은 이 부분에 불만이더군요) 그 해결책도(사회적 의식이 결여되어있지만) 이전 질서의 해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물론 이것은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변화이겠지만요).

      군대 문제를 언급한 이유는 실제로 그것이 피해의식 서사의 핵심이기 때문에 그러한 불만해소를 위해서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예컨대 병역문제에 항상 등장하는 임신문제가(이 문제도 사실상 경제적 문제-기회비용과 경력이라는 문제-라는 공통점을 가지죠) 무시될 수 없는 것처럼요. 논리적으로는 별개라도 인식의 서사가 연결되면 합의를 위해 재고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경기장의 불평등을 또하나의 불평등으로(형식적 불평등일지라도) 해소한다는 것은 잘못된 거 아닌가요? 시소의 비유는 상대편을 올리게 하지만, 이 문제를 철사로 비유하면 결국 곧게 하는 것이 핵심일테니까요.

    • BeGray 2015.08.12 02:07 신고 Modify/Delete

      개선비 //

      결국 PD수첩 해당 방영분을 봤습니다. 처음부터 이 방송을 봤다면 본문과는 꽤 다른 글을 썼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훨씬 더 크리티컬한 지점들을 많이 건드릴 수 있었겠죠. 어쨌든 저는 제 원래의 입장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게 문제지 제가 과도하게 나가서 문제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감상에 비추어 현준 씨 코멘트에 다시 답변할게요.

      1) "허지웅이 계급문제라고 언급한 부분은 맥락상 이러한 이유였습니다. 허지웅은 단순히 젠더 문제들이 계급문제로 치환된다는 일반론적인 얘기가 아니라. 20대 사이에 증가하는 여성혐오 문제의 본질은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사소한 것도 아쉬워진 남자들'의 분노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겁니다." ; 제게는 현준씨의 발화가 허지웅의 도식을 단지 세련되게 되풀이하는 걸로 읽힙니다. 요점은 허지웅의 코멘트가 현실에 존재하는 성적 위계의 문제가 현재의 사태에 중층적으로 작용하는 걸 덮는다는 데 있습니다. 쉽게 말해, "모든 게 결국 경제적 문제로부터 기인한다"는 것 자체가 사태의 한 가지 측면만 부당하게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2) " 제가 본 느낌은 pd수첩이 남성들의 담론을 이해할 내러티브를 제공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적 의식은 결여되었으나 절대 그것이 옹호적 입장으로 연결되진 않았습니다." ;

      PD수첩이 2-30대 남성들의 의식을 이해하는 서사를 제공하려고 했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의식의 객관적 층위에서 해당 의식이 어떤 점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는가를 사실상 거의 지적하지 않고, 이것이 많은 부분 남성의 가부장적 의무에 대한 일종의 '미학화'를 초래합니다(아마 PD수첩 제작진은 방송을 2-30대 남성 시청자들을 강하게 의식해 제작한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수집한 "여론조사"가 객관적으로 어떻게 어긋나 있는지, 여성들이 남성들의 견해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은 전혀 다뤄지지 않습니다...어떤 면에서 이것 자체가 가부장주의를 되풀이하는 태도임을 의식할 필요가 있죠). 이 지점을 포착하지 않고 "PD수첩 제작진이 가부장주의를 옹호한 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건 텍스트를 충분히 독해하지 못한 것 또는 과도하게 온정적인 독해라고 생각합니다.

      3) "싸이의 아버지를 삽입한 것도 지금 20대는 더이상 동의하지 않는 구시대의 표상으로서 제시된 것이었습니다." ; 이건 현준 씨의 명백한 오독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당 방영분에서는 이 직후에 20대 중-후반 남성들을 인터뷰(?)하면서 여전히 가부장적 태도가 굳건히 지배하고 있음을 '잔잔한' 음악과 함께 보여주고 있기 떄문입니다. 정확히 말해 PD수첩 해당 방영분은 가부장적 태도가 되풀이 되고 있는데, 그게 오늘날에는 유지되기 힘드니까 고통을 재분배하자는 (사실 남초 커뮤니티의 온건파들이 주장하는) 통속적인 결론을 재기술할 뿐입니다(제가 이쪽 입장에 비판적인 것은 대부분 현실적인 성 격차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데이트/결혼비용을 포함한 경제적 부담의 재분배를 외치는 순진한 수준의 이야기이기 떄문입니다).

      4) "이전 질서의 해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물론 이것은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변화이겠지만요)." ; 이 지점에도 여전히 동의하지 않습니다. 위에서 현준 씨가 직접 이야기했지만, 이들은 데이트비용/결혼비용 부담의 재분배와 같이 개인적인 해결책 정도를 이야기할 뿐--물론 저는 문화와 의식의 개혁 자체를 무용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질서의 해체"와 같은 키워드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해 이 방송은 이전의 질서나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가부장제를 건드리지 않고 지나가는 쪽에 가깝습니다. 저는 현준 씨가 오히려 가부장제라는 단어를 매우 좁은 의미에서만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문스럽습니다. 이 단어는 성정치의 맥락에서 가장 미시적인 지점의 실천에서부터 거시적인 수준의 사회조직까지 포괄해서 지칭합니다.

      5) "군대 문제를 언급한 이유는 실제로 그것이 피해의식 서사의 핵심이기 때문에 그러한 불만해소를 위해서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 저는 이 대목에서 현준 씨가 PD수첩 제작진이 설정한 서사에 말려들었다고 생각합니다(정확히 그런 이데올로기적인 서사를 제공한다는 것 자체가 해당 방영분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저는 가부장주의적 의식과 그것이 온전히 지탱될 수 없는 물질적 현실의 중층결정이 오늘날 여성혐오의 핵심이며, 군대와 같은 표상은 그것에 정당성을 부인하기 위해 차용된 것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PD수첩은, 그리고 지금 현준 씨가 빠져드는 것처럼 보이는 군대-임신 서사는 바로 표상으로 핵심적인 구조를 대체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입니다. 표상의 레벨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걸로 가버리면, 극단적인 경우 사치스러운 여성이 문제니까 여성들이 사치를 줄이고 검소하게 살면 되는 거 아니냐는 식의 이야기로도 끌려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자면 군대는 성 격차와 별개의 층위에서 합리화로 이야기되어야 합니다(어차피 그것이 국가에 의한 자유박탈 및 강제노동징발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월급 100만원이 주어진다고 할 때, 물론 이런 식의 개선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습니다만, 그것이 현실에 존재하는 남성의 원한감정을 실제로 해소할 수는 없을 겁니다; 원한감정을 표출하기 위한 매개물의 정당성을 갉아먹을 수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6) "경기장의 불평등을 또하나의 불평등으로(형식적 불평등일지라도) 해소한다는 것은 잘못된 거 아닌가요" ; 이 부분은 제가 말한 적이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완전한 오독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네요. 저는 심지어 군 복무라는 페널티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가 여전히 남성중심적으로 구축된 사회임을 이야기하려고 한 것이지, 군 복무라는 페널티가 성 격차를 완화하기 때문에 정당화된다 따위의 이야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댓글로 빨리 읽고 빨리 쓴다고 해도 이런 오독은 좀^^;;

    • 비이상 2015.08.12 10:28 신고 Modify/Delete

      오! '남초 사이트의 온건파들'이라는 표현이 정말 탁월하네요. 직관성이 매우 뛰어납니다. ㅎㅎ

      그리고 군복무가 얼핏 남성들에게 페널티처럼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엄연히 따지면 그조차도 우리 사회가 여전히 남성중심의 사회라는 걸 알려주는 하나의 상징이 아닐지요? 남성(강자)들이 주장하는 '우리는 여성들에 비해 이러저러한 것들에 대한 의무를 짊어진다.'는 것들은 사실상 스스로가 자초한 결과에 가깝다는 것이죠. 그래서 군복무 등을 내세우며 그것이 '페널티'라고 얘기하는 것 또한 그들 스스로 '도끼로 제 발등을 찍는 격'이라고 봅니다.

    • 개선비 2015.08.12 15:37 신고 Modify/Delete

      BeGray//
      경기장의 비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부당한 지적이 아니라고 봅니다. 일단 비유 자체가 정상상태를 위해서는 기울여짐이 필요하다는 형태의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러한 비유는(시소의 비유와 더불어) "역차별 아닌가?"에 대한 반박용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비유에서 오는 사고-프레임 구성문제를 생각해보면 그러한 비유는 애초에 편향적입니다. 뿐만아니라 제가 이 부분을 지적한 이유는 흔히 여성혐오자로 규정되고 있지만(사실 이 프레임 자체도 여성주의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형님이 언급한 "온건파"들의 주장은 결국 역차별의 철폐로 수렴된다는 점을 고려해보았을 때, 그들의 주장이 "그 자체로 논의될 필요가 없는가?"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실제로 여성혐오 문제가 부각되기 이전부터 남초 사이트에서 유통된 반-여성부 담론들이 과연 남성주의적 사고에서만 기인했는지 전 의문이 드는군요.

      "질서의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는 너무 나간 표현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는 PD수첩이 가부장제를 옹호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오독이라 봅니다. 결론부의 직전에 남성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적 태도가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 부분이 있는데(내 여자친구가 고생하는 꼴은 못본다. 내가 더 많이 벌어야하지 않겠냐 등) 이 부분도 결국 결론으로 이행되는 과정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에서 계속 주장하는 "그러한 사고를 버려야 네들이 말하는 평등이 온다."식으로 보았을 때 PD수첩은 이 문제를 몰-이념적으로 보고 있지만, 결국 성역할-규정적 사고의 탈피를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가부장제를 좁게 해석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데, 이 부분에서 PD수첩이 가부장주의를 옹호했다고 볼 여지가 어디서 개입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자료가 남성 편향적이라고 남성주의적이거나 가부장주의적인 것은 아니니까요. 애초에 PD수첩은 이 문제가 부정적이다는 전제를 깔고 그 속의 자체논리를 알기 위해 간다는 식의 방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입부에 기존의 비판 담론을 배치한 것이고요. 게다가 원래는 여성혐오 비판 담론으로 메갤러를 넣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 선택이 오히려 편향적인 결과를 낳은듯 합니다. 얼굴을 가린 20대 남녀는 모두 인터넷에서 "혐오"를 이끄는 인물들로 구성된 것입니다.

      또한 여성혐오의 본거지라 할 수 있으며 사실상 하나의 담론으로 수렴되는 집단(야갤-주갤-일베)에서, "'김치녀'보다 '보빨남'(이 단어만 봐도 여성이 성적으로 대상화 된다는 것은 분명 사실인듯 합니다. 하지만 성적 대상화가 가부장에를 지탱하거나 합행할 수는 있어도 그것만으로 이것이 가부장주의적, 혹은 남성주의적이라 규정할 수 있는가는 별개 문제라고 보아 이 부분에 사용합니다.)이 문제다."라는 수사를 자주활용하는데, 이 수사가 바로 위에서 말하는 "내 여자만큼은 잘해주고 싶다."는 식의 사고가 핵심이라는 지적(비록 꽤나 왜곡된 부분이 있지만서도)을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고통의 재분배 문제가 왜 순진한 문제인지도 의문이 듭니다. 비록 부족하나마 현실적인 성-격차는 조금씩 진전을 보이고 있는 반면 데이트비용/결혼비용을 포함한 경제 문제는 점점 그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입니다.(1960-70년대의 남여 데이트비용/결혼비용 분담률과 최근의 분담률은 매우 다릅니다. 과거에는 여성이 조금 적은 정도였지만, 지금은 명백히 적습니다.) 만약 재분배의 문제가 현실적인 성-격차 인식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지금 우리 사회는 평등하다는 과도함에 있지, 재분배의 요구가 부당한 데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보기에는 과거에는 성별간의 권력격차가 이념적인 형태로 지지되었던 한편, 요즘에는 경제적인 형태로 유지되고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요즘 성역할-규정의 재생산에 이 문제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떄문입니다. 결국 '현모양처'가 꿈으로 용인되고 있는 것은 그러한 경제격차의 정당화와 더불어 그 이념적 체계의 정당화로 반복되기 때문입니다.(그런면에서 심사임당을 5만원권 지폐에 넣은 것은 몰-이념적인 처사라 봅니다. 심사임당에 대한 절대 다수의 내러티브는 구시대적입니다.) 따라서 경제적 격차에 대한 해소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성역할-규정의 해소에 필수적인 요인입니다. 여기서 직업/소득적인 문제의 성격차와 이 문제 중 무엇이 우선되냐는 것도 사실상 의미 없다고 봅니다. 두 문제다 해결되어야할 문제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기서 다시 허지웅의 "이 이면에는 경제적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는 담론이 다시 등장할 수밖에 없는데, 결국 과거의 데이트비용/결혼비용의 격차가 현대에 이르러 늘어난 이유는 집값의 상승과 소비지향적 사회 구조로의 이행이었기 때문입니다.

      군대 문제는 별개이지만 하나로 모아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여군의 탄생과 관련된 담론과 군가산점 문제에 대한 담론의 형식으로 끊임없이 사회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한 이 문제는 계속 동문서답일지라도 계속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군복무가 양성갈등의 완충지점이라거나 남성의 페털티로 완화된다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 문제 자체만으로도 해결이 시급한 부분이기 때문에 해결할 가치가 있으며, 그것이 여성혐오에 대한 지속적 정당화의 시도의 핵심이기 때문에 그 틀을 붕괴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와 별개로 여군 문제는 성역할-규정성의 차이-차별론의 가장 치열한 논쟁거리가 될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이 문제와 더불어 우리 사회의 성역할-규정성의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봅니다 전.

      그리고 제가 경제적 문제를 강조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오래전에 다윈의 대답이란 책을 본적이 있습니다. 좀 오래전에 읽어서(중3-고1 때 읽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주장자체는 정확치 않지만, 저자가 제시한 흥미로운 요점이 있어서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저자는 여성주의자들이 할당 혹은 성차별적 구조가 반복되는 직업들이 모두 '좋은 직업'이며, 할당으로 인한 개별적 혜택이 큰 것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좋은 직업인 것이야 그러한 직업에 누가 있느냐가 사회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선택된 것들의 '이득'이 명백하기에 그 의도가 의심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사회에서 가장 남초 직업중 하나는 물리학자-수학자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성주의자들은 함구하면서 기업의 요직과 변호사-판사만을 언급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남초직업에 대응될 여초직업도 성역할-규정이라는 측면에서 동일한 문제이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하다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이런 면과, 여성주의 활동과 그 지지간의 상관관계를 지적하며 결국 그러한 할당제가 밥그릇 싸움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결국 여성성과 남성성의 편차에 대한 연구 없이 이 문제에 대해서 보는 것은 사실문제를 도외시한채 탁상공론을 하는 것이라 비판합니다.
      저도 조금 온건하게 이 주장을 수용하는데, 대표성이 있는 직업(국회의원, 대법관, 헌법재판소 재판관 등)을 제외하고는 결국 여성성과 남성성의 편차 문제(그것이 존재하냐, 그것의 사회적 구성의 정도 등등 )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현 상황에서 행정적으로 규정짓는 것은 분명 성급해보입니다. 또한 위 저자의 주장처럼 실제로 그러한 운동 속에는 이익단체적 성격이 매우 짙은 작업들도 꽤나 많은 것이 사실이고요. 실제로 남초사이트의 온건파들이 주장하는 것은 역차별은 안 된다는 것이며 이는 꽤나 논의할만 합니다.

      소년의 노래//
      스스로 자초한 것만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러한 규정성은 내부적인 재생산의 구조도 있지만, 여성에 의한 외부적 규정성에도 기초합니다. PD수첩에서 지적하듯이 '찌질함'은 남성의 남성에 대한 폭력과 함께 여성의 남성에 대한 폭력도 갖고 있습니다. 또한 군문제에 있어서 "남성이 여성을 지켜야하므로 남자만 군대에 가야한다"는 식의 사고도 당연히 있겠지만, "여자랑 남자랑 차이가 없다면서 왜 사병으로는 안 오냐?"식의 사고가 여혐문제의 핵심임을 보았을 때 단순히 여혐문제가 남성의 남성성의 재확인에 의한 결과는 잘못된 것으로 보입니다.

    • BeGray 2015.08.12 20:53 신고 Modify/Delete

      개선비 //

      1) 앞에서 이미 강조했다고 생각합니다만, '온건파'들의 "역차별의 철폐"는 실제 역차별처럼 보이는 표상 기저에 있는 근본적인 차별을 인지하지 않은 채 현재가 "여성상위시대"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남성중심주의적 사고의 다른 형태입니다. 당연히, 여성혐오가 지금과 같은 형태로 부각되기 전의 반-여성부 담론(상당수가 조작에 근거한)은 원-여성혐오 담론이고, 남성중심주의적 사고 맞습니다--정확히는 페미니즘 혐오쪽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죠. "경기장의 비유가 편향적이다"라는 표현에서 "편향적"이란 말이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지 불확실한데, 저는 이 표현을 한국사회는 여전히 강력하게 남성중심적 사회임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권리의 재분배 과정에서 '기울어진' 여건들의 조정은 필요한데, 그게 반드시 군대 문제로 갈 이유가 없다는 게 제 요점입니다. 따라서 현준 씨가 첫번째 문단에서 제시한 답변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2) 저는 현준 씨가 방송텍스트가 작동하는 효과를 실제보다 매우 협소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텍스트를 (아마도 단일한) 논리구조로 환원한 뒤 결국 결론이 A니까 A를 사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식의 독해인데, 이건 텍스트의 미학적/수사학적 효과에 대한 무지입니다(서사를 논리로 치환하는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종종 저지르는 실수이기도 합니다). PD수첩이 "성역할-규정적 사고의 탈피"를 촉구한다는 것도 끝에 슬쩍 흩뿌려진 결론에 과한 점수를 준 지나치게 단순한 독해입니다. 텍스트가 일종의 면피용으로 이야기하는 결론과 그 결론에 걸맞지 않는 효과들 사이의 간극을 주시하라는 조언을 하고 싶네요(이게 바로 문학전공자들이 가장 기초적인 층위에서 받는 훈련입니다).
      +
      저는 PD수첩이 명시적인 가부장주의 옹호를 수행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암묵적으로 (좀 더 세련된, 온건한 형태의) 가부장주의적 전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인용하는 자료에서만이 아니라, 그들이 자료를 활용하는 방식, 그리고 그 밑에 깔린 전제 자체에서 그렇습니다. 쉽게 말해 PD수첩은 2-30대 남성들의 (여성혐오적/피해망상적) 현실인식을 그대로 객관적인 현실처럼 받아들이는데, 이것이 매우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내고 있음을 새삼 지적할 필요가 있을 듯 싶군요. 당연하지만 메르스 갤러리 유저들을 단순히 "혐오를 이끄는 인물들"로 간주한 것도 마찬가지고요(해당 인터뷰이들은 분명히 여성혐오VS남성혐오 구도의 메타레벨에 서려고 합니다).

      3) 저는 현준씨가 범하는 오류는 가부장제의 폭넓은 범위를 과소하게 이해하는 것 못지않게 이데올로기가 효과를 미치는 범위를 매우 명시적인 층위에만 국한시키는 데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물론 현준씨가 지금까지 받은 교육을 고려해 볼 때 그게 현준씨의 잘못은 아닐 것입니다만). "보빨남"은 단순히 "내 여자만큼은 잘해주고 싶다"란 사고의 소산이 아니라 여성의 성을 (폭넓은 의미에서) '구매'하기 위해 여성의 권력 안쪽으로 기어들어가는 남성에 대한 혐오를 표현하는 것으로, 당연히 그 기저에는 남성이 여성에 대한 지배권을 갖는 게 정상상태라는 사고가 깔려 있습니다. 이것이 아주 표준적인 가부장제적 사고의 일부라는 건 두 번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현준 씨의 댓글은 여성혐오 담론에서 나오는 수사들이 어떠한 심정적 논리체계에 기초하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4) 네 번째 문단에서 현준 씨의 반응은 제 댓글에 대한 완전한 오독입니다(저는 현준 씨가 댓글을 달기 전에 본인이 타인의 요지를 올바르게 이해한 것인지 반문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좀 더 말끔한 토론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온건파'들의 입장이 현실의 성격차를 지워버린 채 남-녀의 일대일 연애/결혼 관계에서의 비용분담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에 순진하다고 지적한 것이지, 경제적인 레벨의 문제를 고려하기 때문에 순진하다고 한 게 아닙니다. 저의 비판은 자유-계약론자들이 성 산업이나 인신매매와 같은 문제를 괄호에 넣어버리고 성매매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기초한 것이기에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한 비판과 같은 맥락입니다. 직장이나 조직 내 차별, 소득수준차이, 구직기회의 차이를 포함해 사회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성 격차를 지워버린 상태에서 "두 사람 만의 공평한 분배"를 논하는 건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적 맹목입니다. 제 요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허지웅을 다시 끌어들이는 건 아예 핀트가 맞지 않기 때문에 답변할 필요를 못 느끼겠네요.
      +
      ("1960-70년대의 남여 데이트비용/결혼비용 분담률과 최근의 분담률은 매우 다릅니다. 과거에는 여성이 조금 적은 정도였지만, 지금은 명백히 적습니다"; 저는 직관적으로 동의가 되지 않는 내용인데, 통계나 연구자료를 본 거라면 인용해주시겠습니까?)

      5) "[군대문제가] 여성혐오에 대한 지속적 정당화의 시도의 핵심"이라는 데서부터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데올로기 비판의 맥락에서는 군대 문제를 성 격차 문제와 가능한 떨어트려놓고 개혁을 제시하는 게 훨씬 현실적입니다(군대 문제는 군대 문제 자체의 불합리함을 개선하는 데서 해결될 수 있지, 사회에 남은 사람들과의 공평한 대우라는--사실상 구체적인 해결 자체가 불가능한--맥락에서 나와봐야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듭니다). 저는 앞서 말했듯 현준 씨가 이 부분에서는 본질이 아닌 표상에 과도하게 묶여있다고 생각하고, 이번 댓글의 답변에서는 제 비판에 제대로 답했다고 보지 않기 떄문에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6) 해당 책의 주장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건지는 알겠는데 지금 우리가 수용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하지만 여성주의의 가장 오래된 문제는 실질적인 권리의 공정한 분배--인용하신 책의 표현대로라면 "이득"의 분배--에 있고 그 자체를 비난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여성주의의 광대한 스펙트럼 중에서 연구자 집단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정확히 사회 전반적인 여성주의 운동에 힘입어 연구직 내 성평등의 문제 또한 제기가능했습니다. 현준 씨가 지나치게 단순하게 요약한 건지, 아니면 저자의 주장 자체가 문제인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현준 씨가 댓글로 설명한 주장 자체가 유의미하게 받아들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성과 남성성 문제에 대해서는 그 자체가 여성주의 내에서 이론적으로 긴 역사를 지닌 쟁점입니다, 당연하게도-_-;; 현준 씨가 여성주의의 스펙트럼을 조금만 더 폭넓게 접한다면 여성주의가 여성성과 남성성의 편차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식으로 읽힐만한 황당한 진술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계속 "역차별"을 이야기하는데, 저는 이 단어 자체가 사회구조적인 맥락을 통채로 거세한 채 매우 협소한 시점에서의 현상만을 강조하는 용도로 너무나 자주 쓰이기 때문에 솔직히 전혀 동감이 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18세기까지의 로맨스를 보면 여성이 결혼 승락 전까지 일시적으로 남성에게 우위를 점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종종 나오는데, 이걸 바탕으로 19세기 이전의 서구에는 성적 역차별이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전 실소할 겁니다.

      정확히 말해 오늘날 역차별처럼 보이는 것의 상당 부분은 (경제난과 함께) 사회 전반적으로 보수반동기가 열리면서 전통적인 성역할이 다시 돌아오는 과정에서 생긴 결과물에 가깝지(당연하지만 그 관계의 핵심은 남성이 비용을 지불하고 여성의 성과 관계의 주도권을 구매한다는 것입니다!), 그것 자체가 오늘날의 성 격차가 완화되었다는 식의 맥락에서 보는 건 역사적 맥락의 완전한 오독입니다. 올바른 구호는 역차별을 철폐하자는 게 아니라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고 또 지금도 돌아오고 있는 전통적인 성역할/규범을 비판하고 재구성하는 데 있어야 합니다. 저는 현준 씨가 '역차별'이라는 표현이 성 격차와 그것을 해소하려는 노력의 역사를, 그리고 현재가 어떤 역사들의 누적물인지를 완전히 지워버린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걸 아예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해두고 싶네요.

    • 개선비 2015.08.12 22:33 신고 Modify/Delete

      1) 저는 여성상위시대라 표현한적도 생각한적도 없습니다. 현재 제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정책상의 문제의 불평등성이 남성주의로 연결된다는 것은 과도한 해석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성주의에 의해 시행되는 정책 중 비판할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여성주의에 의해 시행되고 있거나 주장되는 정책 중 역차별(이 표현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형식적 불평등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역차별이란 표현은 BeGray님 지적대로 문제의 요지가 있으니까요.)적 성격을 가진 정책에 대한 비판담론이 남성주의로 규정될 이유는 없습니다.

      경기장의 비유가 편향적이라는 것은 그 비유가 쓰이는 맥락과 함께 그것이 비유하는 대상이 복잡성을 왜곡된 형태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성역할 문제는 제로섬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경기장이 기울었다거나 시소와 같다는 식의 표현은 '역차별'처럼 현실을 왜곡하게 만듭니다. 결국 여성에 대한 틀을 만들어 이득을 주는 구조가 유일한(혹은 가능한) 해결책이라는 식의 주장을 함의하고 있지요. 실제로 저는 여성주의 단체의 팜플렛에서 이 수사는 위의 형식적 불평등에 대한 '정당한' 근거로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첫번째 문단의 요지는 형식적 불평등의 문제를 야기하는 분할식(이게 더 어울릴 것같군요.)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 왜 낭성주의로 귀결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며 그것의 해결이 군대문제로 직결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그러한 정책은 폐지되어야하며 다른 방식으로 평등정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맨 뒤에 언급한 남성성-여성성에 대한 생물학적 요인과 사회적 구성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지금 상황에서 무조건적으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오류를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습니다.

      2) 저는 문학텍스트 연구의 훈련을 받은 적이 없고 요즘 BeGray님에게 문학텍스트 분석에 대해 조언을 받을 생각이라(저번에 뒷풀이에서 말씀드렸듯이 문학 사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텍스트를 읽을 때 어려운 부분이 자꾸 생깁니다) 겸허히 수용하겠습니다.
      실제로 PD수첩은 남성에 대한 온정적 시선을 갖기 위해 그러한 태도를 취하고 있긴 하지요.
      "PD수첩은 2-30대 남성들의 (여성혐오적/피해망상적) 현실인식을 그대로 객관적인 현실처럼 받아들이는데, 이것이 매우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내고 있음을 새삼 지적할 필요가 있을 듯 싶군요. 당연하지만 메르스 갤러리 유저들을 단순히 "혐오를 이끄는 인물들"로 간주한 것도 마찬가지고요(해당 인터뷰이들은 분명히 여성혐오VS남성혐오 구도의 메타레벨에 서려고 합니다"
      이 부분은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다만 이데올로기에 대한 여러 태도가 있기 때문에, 제가 보기에 PD수첩은 나름 평등성을 지향하려 했으나 실패한 부족한 답지이지 남성주의를 반복하는 오답지는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좀 다른 방면으로 지적한 것이지만, 저는 PD수첩이 보이는 몰-사회적 태도와 BeGray님이 지적한 편향적 태도의 문제에는 오류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는 2-30대 남성들의 현실인식이 가지는 틀에는 문제가 있을지 몰라도 현실은 꽤나 객관적이라고 봅니다. 역설적이게도 남성주의적 시선으로 인해 오히려 20대 여성의 알바자리가 남성의 알바자리보다 양질인데, 이러한 사실자체는 부정될 수 없는 것이죠. 알바자리 문제 말고도 남초 사이트에서 지적하는 문제 중 몇개는 사실로서는 분명 명확한 것입니다. 다만 그 속에 있는 이념적 틀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겠지요.

      3) 실제로 담론들이 어떻게 오고가는지 봐야 명확히 나타나는 문제인데, 반-보빨남 담론이 남성의 지배권을 위한 것이라는 것은 사실을 왜곡한 부분이 있습니다. 보빨남에 대한 분노가 단순히 여성권력에 기어들어가는 남성에 대한 비난이라면, 그것이 과거에 있었던 친여성적-남성주의 담론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볼 수 없겠지요. 실제로 PD수첩의 막바지에 "내 여친만은"운운한 이들에게 '보빨남'이라는 규정과 함께 비난이 쇄도하였습니다. 내가 더 내고 내가 더 권력을 갖겠다는 사고에 대한 비판이 증가하는 것과 별개로 셔터맨에 대한 동경이 느는 것은 남성-지배 구조보다는 일신의 안일이 더 소중할 것 같다는 심성적-갓수들이 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봅니다.
      이것들마저도 남성주의적 사고의 변형이라면. 결국 변화는 존재해도 해소되는 것은 없다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결국 모든 욕망은 전위될 뿐이라는 프로이트식의 억압구조는 현실과 분명 다릅니다.

      4) 저는 경제적 문제를 지적으로 한정해서 해석한 적 없습니다. 그러한 요인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진보와 반비례하는 경제적 분담률 속에는 변형된 이데올로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적 분담률이 오히려 떨어지고 있는 것은, 경제적 이득으로 인해 오히려 자발적으로 여성들의 본인의 대상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며(그것이 결혼정보회사와 같은 전근대적 경제결합적 성격을 갖고있는 새로운 중매혼의 발흥, 현모양처론, 취집으로 드러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경제적 격차를 해소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적 격차는 결국 가정 내부의 권력 격차를 성립시킬 가능성이 크니까요. 제가 이 부분을 개인적 문제로 보고 있다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한 경제적 분담률의 해소는 가정이란 사회적 단위를 재조직하는 데에 들어가는 자원들을 재분배하는 것으로 사회적 재조직을 하자는 얘기입니다. 또한 그속에는 경제적/제도적 성-경차 문제의 해결과 더불어 성-역할 규정으로 부터의 탈피도 병행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허지웅을 끌어들인 것은 경제적 분담률이 어째서 오히려 늘었는가도 결국 경제적 구조변동의 문제가 개입되어 있으며, 20대의 경제적 문제라는 것을 통해 불만들이 나온 것이기 때문에, 경제적 원인이 중심에 놓여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기 때문에 넣은 것입니다.
      +
      조선일보에서 결혼문제에 대한 기획기사를 지속적으로 실은 적이 있는데 그 때 꽤나 빈번히 인용된 자료를 보고 얘기한 것입니다.
      경제적 구조의 변동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하지도 않습니다.
      옛날에는 집을 해온다는 사고가 지금처럼 강하지 않았고, 집값이 지금처럼 높지도 않아서 사실상 경제적 분달률이 비슷할만 했거든요.
      물론 과거에는 지금보다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란 성격이 더 강했으나, 요즘의 결홈비용도 집안의 도움을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는 기사(기획기사에 이 부분에 대한 비중도 조사된 게 있었습니다)도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과거의 구조가 오히려 심화되었다고 보기에 무리는 없다고 봅니다.


      5) 핵심이라기보다는 논란의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군 문제로 이 문제는 성차 문제에 대한 제대로된 사회적 합의 없이는 계속 되풀이 될 거라는 얘기였습니다.

      6) 1)에서 언급한 내용이 제 답입니다. 전통적 성역할 규범에 대한 철폐가 현재의 방식으로 될 필요가 없고 현재의 정책들은 성별에 의한 편차 문제에 대한 고찰도 없고, 현 시스템에 부합하지도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여성주의 연구자들의 담론과 별개로 그러한 현실정치의 문제는 오래되었으며, 그러니 (아주 유치한 수사이지요. 과거 운동권이었음을 강조하는 몇 보수정치인이 생각나는군요) 자꾸 과거의 여성주의자들이 여성주의 운동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는 책이 자꾸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득"의 분배가 행정적 분할법으로 이행될 이유는 없으며 그것은 전(前)-노동 기간과 후-노동기간에 이루어져야할 문제이지 노동 고용시장 자체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남초직장에서 자주 활용되는 담론 중 "여성들은 희생정신이 부족하고 단결력이 없다."는 수사가 고용불평등으로 이어지는데 있어서는 아무런 정당성도 줄 수 없는 것처럼요. 결국 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출산-양육-경제 문제를 포함한 성-역할 분배 문제의 재구성이 필요한 것이지, 결코 분할-분배 식의 손쉬운 방법은 정당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이유로 성차가 발생했는지 적확한 근거도 없으며, 그 형식이 정당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가 여성성 남성성 편차 문제에 대해 지적한 것은 실제로 이 분야의 발전이 아직 좀 부족한 부분이 있으며, 이 부분에 대한 고찰없는 담론이 너무 난무한다는 현실적 부분에 대한 비판입니다. 실제로 양성간의 차이가 없다는 주장을 하며 시작하여 여성성으로 인해 남성보다 우월하다는 것으로 끝나는 수사는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모든 여풍당당 담론이 그렇지요. 사실 그래서 이 부분의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지적도 한 것입니다. 이 부분이 있을 때 이득분배에 있어 어려울 때가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 개선비 2015.08.12 22:53 신고 Modify/Delete

      댓글이 자꾸 길어지네요.
      사실 핵심은 왜 지금과 같은 형식의 정책을 해야하는가?에 있습니다. 이득 분배에 있어 분할 형식의 제도에 대한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과 그것이 남성주의로 왜 연결되는지가 의문입니다.

    • BeGray 2015.08.12 23:29 신고 Modify/Delete

      개선비 //

      1) 저는 "현재 제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정책상의 문제의 불평등성"이 갑자기 나와서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PD수첩 해당 방영분은 제도의 문제를 다루지 않았고, 그런 것에 대한 제대로 된 비판을 제기하지도 않았어요. 6번과도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만 만약 여성가족부 문제를 다루고 싶다면 (물론 우파 정권이 등장한 후 여성부가 어떻게 변해가는가는 그 자체로 중요한 연구대상이기는 합니다만) 지금보다는 좀 더 복잡하게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여성가족부에서 나온 몇몇 정책들이 문제적이었던 것은 맞지만, 그걸로 여성가족부에서 나오는 수많은 정책들이 전부 성차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무척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주제를 이야기하고 싶다면 PD수첩에 관한 지금의 논의와는 별개로 다뤄야 합니다.

      경기장의 비유의 경우 저는 현준 씨가 제기한 '문제들'에 동의하지 않습니다--정확히는 그게 여기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여전히 "형식적 불평등" 또는 affirmative action의 필요성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더불어, 위의 문단에서도 나왔지만, PD수첩은 어떤 종류의 정책에 대한 제대로 된 비판을 제기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같은 방송을 본 게 맞다면 저는 이 주제에 대한 언급이 왜 나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2) 저는 "실패한 부족한 답지"가 근본적으로 남성중심주의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초래된 결과라고 주장했습니다. PD수첩이 의도적으로 가부장제를 찬양하려고 한 게 아니다라는 이야기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이 PD수첩이 실질적으로 취하는 포지션이 가부장적 의식으로부터 탈피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역설적이게도 남성주의적 시선으로 인해 오히려 20대 여성의 알바자리가 남성의 알바자리보다 양질" -> 이 한 가지 사례로 남성의 주관적인 피해의식이 "객관적"이라는 주장을 하기는 무척이나 어려울 듯 합니다. 실제로 20대 여성의 알바자리가 '양질'인지도 의문이 들고요(이건 실제로 뒤져보지 않는 한 모릅니다). 몇 개의 팩트가 있다고 해서 그 설문조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게 정당화되지는 않습니다.

      3) 문장이 좀 불분명한데, "그것이 과거에 있었던 친여성적-남성주의 담론"에서 "그것"이 "보빨남에 대한 분노"를 가리킨다면 당연히 양자는 다르고, 만약 "그것"이 "보빨남"적 태도를 가리킨다면 어느 정도 유사성을 갖겠죠. 그러나 유사성을 갖는다고 해도 그게 곧바로 몰역사적인 설명인 건 아닙니다. 동형적인 측면 못지 않게 다른 측면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건 지금 여기서 다룰 이유가 딱히 없을 것 같군요.
      / "셔터맨에 대한 동경이 느는 것은 남성-지배 구조보다는 일신의 안일이 더 소중할 것 같다는 심성적-갓수들이 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제 설명에 어떠한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왜 끌고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남성의 모든 사고가 여성지배를 의도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만.
      / 당연하지만 "보빨남"에 대한 분노 자체가 성적 권력관계에 대한 의식을 이미 상정하고 있는 겁니다. 그게 아니면 남들이야 뭘 하든 화를 낼 이유 자체가 없겠죠--특히나 그걸 성적 구도로 이해할 이유도요.

      4) "경제적 이득으로 인해 오히려 자발적으로 여성들의 본인의 대상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 ; 이건 저도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현상이고, 동시에 메르스 갤러리 유저들을 포함한 영 페미니스트들 역시 비판하는 지점입니다.
      / "그것은 경제적 격차를 해소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이것은 오로지 절반만 맞습니다. 양성 간의 경제적 격차는 그 자체가 이미 성 격차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경제적 격차가 성 격차의 하나의 표현이라고 보는 게 맞을 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단순히 "경제적"이라고 볼 때 그것이 이데올로기로 전락하는 지름길이라는 게 제가 계속해서 강조하는 지점입니다.
      / 4번 항목의 나머지 부분을 PD수첩이나 "온건파"들이 주장했다고 보는 건 과잉해석입니다. 제가 비판한 것은 현준 씨의 개인적인 입장이 아니라 (그건 적어도 이 대화에서 제 주요한 관심범위가 아닙니다) 현준 씨가 PD수첩 또는 남초 커뮤니티의 온건파에게 둘러주는 과대포장입니다. 이 대화의 흐름에서 왜 갑자기 현준 씨 본인의 이야기로 넘어가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네요. 그 주제를 이야기하고 싶다면 PD수첩에 대한 논의라는 지금 대화의 범주를 넘어서야 합니다.
      +
      해당 자료를 링크할 수 있나요? 거기서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보고싶군요.

      5) 말씀하신 대로 요점은 성차의 문제를 올바르게 재설정하는 데 있지, 군대 문제를 우선적으로 끌고 오는 데 있는 게 아닙니다.

      6) 앞서 언급했듯이, 해당 코멘트는 이미 PD수첩이나 남초커뮤니티의 온건파 담론을 넘어선 지점에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주제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그 주제를 이야기하고 싶다면 별도의 대화를 개진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 "이득 분배에 있어 분할 형식의 제도에 대한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이 PD수첩 혹은 남초 커뮤니티의 입장이라고 해석하는 건 전혀 동의할 수 없고, 제가 "제도적 비판을 남성주의적이라고 연결시켰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지금까지의 대화 자체에 대한 오독입니다. 지금까지의 대화를 읽어보시면, 당황스러운 감정을 제기해야 할 쪽은 어쨌든 현준 씨는 아닐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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