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폭력의 절반은 페미니스트 피해자의 책임이라고?

Comment 2015. 6. 21. 02:13

데이트 폭력에 대해 누군가가 쓴 글에 대해 말하고 싶다. 먼저 다소 긴 부분 인용을 하자. 그는 매우 인기 있는 페이스북 사용자이기 때문에 그가 누군지 확인하는 것은 이 인용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거기엔 고통과 쾌락의 경계를 흐리는 피학의 본능과, 자기모멸로 위장한 자기애와, 대상을 잘못 찾은 모성애의 찌꺼기 따위가 덕지덕지 늘어붙어있다. 그러나 당신은 제 배로 낳지 않은 수컷의 어미가 되어주려했던 지구상의 모든 암컷들과 마찬가지로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폭행이 육체와 영혼에 남긴 흔적들은 사랑보다 오래 간다. 그리하여 3년 쯤 지난 어느날, 먼 기억 속 그의 주먹질과 발길질이 그때의 낭만적 윤색을 벗은 날것 그대로의 물리적 실체로 다가오는 순간, 드디어 당신은 뒤늦은 청구서를 보내기로 결심한다.


그가 "여자 때린 남자"의 혐의만으로도 막대한 타격을 입을 사회적 명성을 지닌 남자라면 다행일 것이고, 심지어는 그 주제에 감히 페미니스트입네 하고 다니기까지 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당신이 그에게 개처럼 얻어맞던 서울의 어느 밤거리에서 당신들 곁을 발 빠르게 지나쳐 가던 그 행인들과는 달리 모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그를 짓이겨 놓을 것이다. 그렇게 마침내 정의는 실현된다.


http://mydefinition.tistory.com/65 이 글을 접하고, 어떤 부류의 데이트 폭력에 대해, 즉 때리고 맞으며 사귀는 관계에 대해 다소 일반화하여 서술해 보았다. 나는 "여자 때리는 새끼는 무조건 개새끼다" 라는 절대적 명제에 조금도 도전할 생각이 없으며, 글로는 페미니스트인양 하고 뒤에서는 자기 여친을 팼다는 한 씨를 옹호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허구헌날 자기를 팬 남자와 헤어진지 3년만에 그걸 공론화하며 겨우 한다는 소리가 "나 말고 다른 여자는 안 때렸길 바랍니다"인 어느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뒤늦은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픈 마음도 전혀 없다.


누군가 당신을 때리는 순간 그는 당신 혼자가 아닌 사회 전체에 대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당신에겐 그걸 함부로 용서할 권리가 없다. 설사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의 작용으로 연인 관계 중에는 그걸 중단시키는 선택을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적어도 관계가 정리된 2012년에는 어떤 식으로든 조치를 취했어야했다.


당신은 그러지 않았으므로, 만일 그 이후에 한 씨에게 구타당한 여성이 있다면 그 책임의 절반은 당신의 몫이다. "구타 유발자라서"라는 황당한 이유로 당신을 때린 남자가 왜 다른 여자는 때릴 수 없겠는가? "많은 여성 폭력에 대응할 매뉴얼들을 머릿속에 담고 있"는 "페미니스트"인 당신이 그걸 깨닫는데 3년이나 필요했나? "뒤에서 여자 패는 페미니스트"만 "비릿"하고, "그런 놈과 4년 동안 얻어 맞아가며 사귀고 헤어진 후,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함에도 3년 동안 침묵한 페미니스트"는 안 "비릿"한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선명한 구도 속에서 선정된 "나쁜 놈"을 조리돌림하는 건 정의 구현에 목마른 이들이 택하는 가장 쉬운 길이지만, 그건 종종 사안의 복잡하고 미묘한 결들을 뭉뚱그려 버려, 더 많은 이들의 더 많은 반성으로 나아가야 할 집단적 성찰의 기회를 앗아가 버린다. 진부한 '피해자 탓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 혹은 방조자일 수 있는 구조를 보자는 말이다."




솔직히 난 이 글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이 글에서 필자는 거의 유체이탈 수준으로 자신이 마치 데이트폭력 피해자의 내면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듯이 조잡한 심리묘사를 한 뒤 기괴한 윤리적 판단을 내린다. 그 논리를 풀어보자면, 급진적 페미니스트인 피해자가 지난 3년간 이 사태를 공론화하지 않아서 다른 피해자가 생길 가능성을 남겨두었고, 그러므로 절반의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이게 "사안의 복잡하고 미묘한 결들"을 살려낸 결과물인가? 내 지성을 걸고 단언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사안에 대해 특별히 가까운 위치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남의 심리가 이랬을 거라고 써갈기는 건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이해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자신의 한계를 모르는 오만한 정신의 자의적인 폭력에 가깝다. 여기서 모티브를 따서 본인의 소설을 쓴다면 그거야 자유지만, 실제 사건의 남의 심리가 이따위로 너저분했을 거라고 씨부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이건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그냥 엿 같은 폭력이다. 어디서 흔해빠진 영화/소설/시/노래가사를 보고 주워왔는지 모르겠지만, 문학 전공자로서 말하건대 심리묘사의 퀄리티도 유감스럽지만 수준 이하다. 질낮은 비유로 응대하자면, 시체를 뜯어먹은 까마귀가 역겨운 변을 내놓은 꼴이다.


이어 그의 '윤리적 판단'이 어떠한 심리에 기초했는지 나도 정확히 그가 썼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풀어주겠다--물론 내 해설이 조금 더 정확할 거라 자신한다. 이 필자는 사실 3년이나 참은 피해자가 잘못했다는 따위의 시시한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핵심은 필자를 사로잡고 있는 "급진적 페미니스트"에 대한 기묘한 원한의식이다. 좀 더 구체적인 증거를 들어볼까? 인용한 내용에서 끝에서 두 번째 문단을 보면, "페미니스트"란 단어만 세 번 나온다. "여성폭력에 대응할 매뉴얼을 머릿속에 담고 있는 페미니스트", "뒤에서 여자 패는 페미니스트", "3년 동안 침묵한 페미니스트". 길지도 않은 4문장 짜리 문단에 "페미니스트"를 조롱하는 표현만 3개인데, 읽어보면 매 대목에서 필자가 '꼴에 잘났다고 페미니스트라고 지분지분 거리더니 실상은 겨우 요따위지'라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그보다 두 문단 위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페미니스트"를 두 번 써먹는다). 여기서 우리가 진짜로 봐야하는 건 피해자를 탓하는 헛소리 이전에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대한 뒤틀린 증오감정이다.


내 독해가 그럼에도 믿겨지지 않는 분들을 위해 한 가지 보충증거를 내놓도록 하자. 나는 놀랍게도 몇 주 전 어떤 지인의 페이스북 상에서 이 필자와 대화할 일이 있었다. 그는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진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여성혐오자들이 별 생각없이 내뱉곤 하는 진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몇 건의 댓글만에 그의 페미니즘 혐오가 지식도, 논리도 결여된 편견에 기초하고 있음이 분명히 드러났고, 대화는 더 지속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자신의 무지를 수용하고 물러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글을 보면서 내 판단을 수정했다. 그는 이제 안되는 논리는 포기하고 이젠 그냥 억지를 부려서라도 자신의 페미니즘 혐오를 어떻게든 표출하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웹은 넓고 괴상한 사람은 많은 법이기 때문에 나는 그가 저런 글을 쓰는 것 자체는 별로 놀랍지 않다. 저 글을 읽었을 때 정말로 당황스러웠던 건, 내 페이스북 지인들을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저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는 사실이다(그를 팔로우하는 사람의 수를 보고 통탄했다). 물론 세상에 괴상한 취향이 존재한다는 걸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저런 글은 취향 이전에 읽는 이의 정신에 백해무익하다. 김원기 님께서 아주 적절한 평을 써주셨기 때문에 그대로 인용한다.


"폭력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불의의 피해자들이 그것을 고발하거나 맞서 싸우지 않고 침묵하고 참고 용인함으로써 다른 피해자들을 양산시킨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위악적이지만 진실한 얘기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글쓴이는 알아듣지 못할 것 같고). 그렇게 가해와 피해의 구조에서 벗어난 초월자적인 위치에서 피해자에게 최고로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못했다고 꾸짖을 수 있는 심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권력이고 폭력입니다. 그리고 남성적이죠. 폭력에 길들여져 자존감이 하락하고 그렇게 망가져가는 자신에게 적응하면서도 환멸을 느끼고, 환멸을 느끼면서도 극복하기 힘들어할 수 밖에 없는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이해라고는 전혀 없는 그 자리, 그 목소리. 그게 남성의 폭력이니까요. 이 말을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한다면, 당신이 가해자의 자리에서 살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나는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 원문의 필자와 함께 "가해자의 자리"에 기꺼이 서 있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이건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다. 나는 명백히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판단을 내리는 사람과 교분을 맺고 싶지 않다(단지 연구목적으로 저 필자를 관찰하는 거라면 그러려니 하겠다). 내 판단에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별 말 없이 나와의 친구관계를 해제하셔도 좋다. 나는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저런 저열한 글이 또 떠다니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는 것만 분명히 말해둔다.






장주원이 그 문제적 글에서 다음과 같은 댓글로 응답했다(제보해 주신 분께 감사드린다). 저질 글에 일일이 반응하는 건 시간낭비임을 알지만 같잖아서 코멘트 단다.



"가소로운 댓글들 잘 읽었습니다. 어떤 사안에 대한 의견을 세우는 데는 크게 두가지 방식이 있을 겁니다. 하나는 개별 사안마다 제로 베이스에서 수집한 팩트들을 근거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게 지성인이 가져야할 마땅하 자세겠지만, 시간도 여유도 부족한 우리는 매번 그렇게 하지 못하죠. 그래서 모델을 만듭니다. 이 경우에는 '데이트 폭력'이라는 모델이 되겠군요. 선험적으로 규정된 그 모델 속의 남자는 무조건 미친 개새끼이자 절대적 가해자고 여자는 그저 순결무구한 피해자입니다. 당신은 어딘가에서 데이트 폭력에 관한 뉴스를 들으면 파블로브의 개새끼처럼 침을 흘리며 그 모델이 들은 폴더를 주섬주섬 꺼냅니다. "남자가 개새끼네! 여자한테 그러면 안되지! " 당신은 디테일은 듣고싶지 않습니다. 남자의 해명은 모두 변명이 될 뿐이고, 여자가 그것을 공론화하는 시기나 방식이 적절했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는 바로 "2차 가해"로 매도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빨리 빨리 결론짓고, 이지메 할 거 딱딱 좀 하고, 똥 쌀 거 싸고 넘어가고 싶은데, 뭔가 "다른 소리"가 들려오는 자체가 짜증납니다. 이 케이스 자체를 보라고, 당신 모델 속의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이 케이스 속의 한윤형과 문계린을 보라고, 그 둘 사이에 벌어진 일들과 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 대립하는 양자 간에 한쪽이 잘못했다고 해서 다른 한쪽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이 어떻게 책임 전가가 되냐고 , 피해자가 방조자가 될 수도 있는 데이트 폭력의 구조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냐고, 아무리 외쳐도 당신은 듣지 않습니다. 당신에게 중요한 건 진실이나 정의가 아니라, 당신 모델의 유효성을 확인하는 일과 그저 씹어댈 "씨발놈" 하나가 필요한 거기 때문입니다. 그 욕정, 푸짐히 채우세요. 인민재판 벌이고 인격살해하고 다 하세요. 하긴 언제부터 성찰들을 하고 살았습니까 그냥 우루루 몰려가 똥 싸고 마는 거지 ㅎㅎ 부디 시원해지길 바랍니다 또 다른 한윤형이 나타날 때까지."




'너희는 사태의 미세한 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이 쓸데없이 긴 문단은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논파가능하다. 장주원 역시 제3자로서 데이트폭력에 분노하는 다른 사람들보다 실끝 하나라도 더 자세히 알고 있는 팩트는 없다. 그는 프레임이 사실을 가려버린다고 화를 내는데, 정작 그 프레임을 뒤엎을 수 있는 근거는 하나도 확보하고 있지 않다. 정리하자면 장주원은 본인의 글이 철저히 본인의 주관적인 상상력에 기반해 있으면서 다른 이들이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비판하는 초보적인 모순에 사로잡혀 있다. 글 쓰는 인간이 기본적인 논리조차도 못 지키는 꼴만큼 한심한 건 없는데, 여기에 좋은 사례가 있으니 참고하시라.


물론 나는 장주원의 '오두막'이 모래 위에 세워졌다는 걸 지적하는데서 멈추지 않겠다. 장주원 본인이 그토록 좋아하는 심리분석을 다시 한번 그의 글에 적용해보면 몇 가지 설명을 제시할 수 있다.


1. 장주원을 따라 작두를 타보자면, 그는 적어도 성정치의 문제에서는 전형적인 대한민국 개저씨에 불과하다. 그는 성급한 프레이밍을 비판하고 싶은 척하지만 실제로는 그냥 "여성이 피해자고 남성이 가해자"라는 구도를 싫어하는 것뿐이다(그가 진짜로 철저한 회의주의자라면 본인 또한 이 사태를 전형적인 방식으로 프레이밍하고 있음을 자각했을 것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반발심이 일관된 증거를 보여준다. 나는 그의 심리를 "남자가 뭐가 문제란 거야! 어쩌다 보면 여자 좀 팰 수 있지! 그건 다 남녀 사이에 그렇고 그런 일이야 어허헣"라고 묘사하겠다.


2. 그가 말하는 "진실이나 정의"는 물론 면피용이다. 진짜로 진실이나 정의를 생각하는 사람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인격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저런 표현들을 쓸리는 없다. 사실 그는 여기서 또 하나의 인간-클리셰를 보여주는데, 그걸 풀어보자면 "나는 너희같이 우매한 대중들처럼 선동당하지 않는 현명한 사람이라고!"라고 할 수 있겠다. 즉 본인이 다수의 반응을 비판하는 현명한 소수이길 바라는 뒤틀린 인정욕망이 나온다; 물론 이런 흔해빠진 욕망은 인간을 분별없는 행위로 인도한다. 장주원은 그 흔한 사례일 뿐이다.


3. 1번과 2번을 합하면 어떤 결론이 나올지 알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남자가 무슨 죄야, 피해자=여성 프레임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는 우매한 너희들이 문제지, 그걸 직시하고 비판하는 나님은 똑똑하고 현명하고 멋진 남자님!" 물론 "피해자인척 하며 가해자인 여자들이 진짜 문제고, 그런 흔해빠진 속설에 휘말리지 않는" '나님'들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일베다. 단지 일베 사용자들은 자신들이 비루하고 천박함을 알고 인정하는데, 장주원은 자기애가 너무 넘쳐서 그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게 차이라면 차이겠다.


4. 장주원의 글에서 진짜로 희극적인 혹은 비극적인 면은, 그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만큼 혹은 남에게 보이고 싶어하는 만큼 특별하지도, 똑똑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유감스럽지만 그가 생각하는 방식은 한국 어디에서든 종종 볼 수 있는 평범한 수준을 넘어서지 않으며, 그의 언어조탁능력 또한 웹을 조금만 돌아다니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의 '재주'를 아끼시는 분들이 여럿 있으신 걸로 아는데, 세상에 저런 재주는 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