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폭력의 절반은 페미니스트 피해자의 책임이라고?

Comment 2015.06.21 02:13

데이트 폭력에 대해 누군가가 쓴 글에 대해 말하고 싶다. 먼저 다소 긴 부분 인용을 하자. 그는 매우 인기 있는 페이스북 사용자이기 때문에 그가 누군지 확인하는 것은 이 인용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거기엔 고통과 쾌락의 경계를 흐리는 피학의 본능과, 자기모멸로 위장한 자기애와, 대상을 잘못 찾은 모성애의 찌꺼기 따위가 덕지덕지 늘어붙어있다. 그러나 당신은 제 배로 낳지 않은 수컷의 어미가 되어주려했던 지구상의 모든 암컷들과 마찬가지로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폭행이 육체와 영혼에 남긴 흔적들은 사랑보다 오래 간다. 그리하여 3년 쯤 지난 어느날, 먼 기억 속 그의 주먹질과 발길질이 그때의 낭만적 윤색을 벗은 날것 그대로의 물리적 실체로 다가오는 순간, 드디어 당신은 뒤늦은 청구서를 보내기로 결심한다.


그가 "여자 때린 남자"의 혐의만으로도 막대한 타격을 입을 사회적 명성을 지닌 남자라면 다행일 것이고, 심지어는 그 주제에 감히 페미니스트입네 하고 다니기까지 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당신이 그에게 개처럼 얻어맞던 서울의 어느 밤거리에서 당신들 곁을 발 빠르게 지나쳐 가던 그 행인들과는 달리 모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그를 짓이겨 놓을 것이다. 그렇게 마침내 정의는 실현된다.


http://mydefinition.tistory.com/65 이 글을 접하고, 어떤 부류의 데이트 폭력에 대해, 즉 때리고 맞으며 사귀는 관계에 대해 다소 일반화하여 서술해 보았다. 나는 "여자 때리는 새끼는 무조건 개새끼다" 라는 절대적 명제에 조금도 도전할 생각이 없으며, 글로는 페미니스트인양 하고 뒤에서는 자기 여친을 팼다는 한 씨를 옹호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허구헌날 자기를 팬 남자와 헤어진지 3년만에 그걸 공론화하며 겨우 한다는 소리가 "나 말고 다른 여자는 안 때렸길 바랍니다"인 어느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뒤늦은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픈 마음도 전혀 없다.


누군가 당신을 때리는 순간 그는 당신 혼자가 아닌 사회 전체에 대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당신에겐 그걸 함부로 용서할 권리가 없다. 설사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의 작용으로 연인 관계 중에는 그걸 중단시키는 선택을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적어도 관계가 정리된 2012년에는 어떤 식으로든 조치를 취했어야했다.


당신은 그러지 않았으므로, 만일 그 이후에 한 씨에게 구타당한 여성이 있다면 그 책임의 절반은 당신의 몫이다. "구타 유발자라서"라는 황당한 이유로 당신을 때린 남자가 왜 다른 여자는 때릴 수 없겠는가? "많은 여성 폭력에 대응할 매뉴얼들을 머릿속에 담고 있"는 "페미니스트"인 당신이 그걸 깨닫는데 3년이나 필요했나? "뒤에서 여자 패는 페미니스트"만 "비릿"하고, "그런 놈과 4년 동안 얻어 맞아가며 사귀고 헤어진 후,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함에도 3년 동안 침묵한 페미니스트"는 안 "비릿"한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선명한 구도 속에서 선정된 "나쁜 놈"을 조리돌림하는 건 정의 구현에 목마른 이들이 택하는 가장 쉬운 길이지만, 그건 종종 사안의 복잡하고 미묘한 결들을 뭉뚱그려 버려, 더 많은 이들의 더 많은 반성으로 나아가야 할 집단적 성찰의 기회를 앗아가 버린다. 진부한 '피해자 탓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 혹은 방조자일 수 있는 구조를 보자는 말이다."




솔직히 난 이 글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이 글에서 필자는 거의 유체이탈 수준으로 자신이 마치 데이트폭력 피해자의 내면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듯이 조잡한 심리묘사를 한 뒤 기괴한 윤리적 판단을 내린다. 그 논리를 풀어보자면, 급진적 페미니스트인 피해자가 지난 3년간 이 사태를 공론화하지 않아서 다른 피해자가 생길 가능성을 남겨두었고, 그러므로 절반의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이게 "사안의 복잡하고 미묘한 결들"을 살려낸 결과물인가? 내 지성을 걸고 단언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사안에 대해 특별히 가까운 위치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남의 심리가 이랬을 거라고 써갈기는 건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이해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자신의 한계를 모르는 오만한 정신의 자의적인 폭력에 가깝다. 여기서 모티브를 따서 본인의 소설을 쓴다면 그거야 자유지만, 실제 사건의 남의 심리가 이따위로 너저분했을 거라고 씨부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이건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그냥 엿 같은 폭력이다. 어디서 흔해빠진 영화/소설/시/노래가사를 보고 주워왔는지 모르겠지만, 문학 전공자로서 말하건대 심리묘사의 퀄리티도 유감스럽지만 수준 이하다. 질낮은 비유로 응대하자면, 시체를 뜯어먹은 까마귀가 역겨운 변을 내놓은 꼴이다.


이어 그의 '윤리적 판단'이 어떠한 심리에 기초했는지 나도 정확히 그가 썼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풀어주겠다--물론 내 해설이 조금 더 정확할 거라 자신한다. 이 필자는 사실 3년이나 참은 피해자가 잘못했다는 따위의 시시한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핵심은 필자를 사로잡고 있는 "급진적 페미니스트"에 대한 기묘한 원한의식이다. 좀 더 구체적인 증거를 들어볼까? 인용한 내용에서 끝에서 두 번째 문단을 보면, "페미니스트"란 단어만 세 번 나온다. "여성폭력에 대응할 매뉴얼을 머릿속에 담고 있는 페미니스트", "뒤에서 여자 패는 페미니스트", "3년 동안 침묵한 페미니스트". 길지도 않은 4문장 짜리 문단에 "페미니스트"를 조롱하는 표현만 3개인데, 읽어보면 매 대목에서 필자가 '꼴에 잘났다고 페미니스트라고 지분지분 거리더니 실상은 겨우 요따위지'라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그보다 두 문단 위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페미니스트"를 두 번 써먹는다). 여기서 우리가 진짜로 봐야하는 건 피해자를 탓하는 헛소리 이전에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대한 뒤틀린 증오감정이다.


내 독해가 그럼에도 믿겨지지 않는 분들을 위해 한 가지 보충증거를 내놓도록 하자. 나는 놀랍게도 몇 주 전 어떤 지인의 페이스북 상에서 이 필자와 대화할 일이 있었다. 그는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진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여성혐오자들이 별 생각없이 내뱉곤 하는 진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몇 건의 댓글만에 그의 페미니즘 혐오가 지식도, 논리도 결여된 편견에 기초하고 있음이 분명히 드러났고, 대화는 더 지속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자신의 무지를 수용하고 물러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글을 보면서 내 판단을 수정했다. 그는 이제 안되는 논리는 포기하고 이젠 그냥 억지를 부려서라도 자신의 페미니즘 혐오를 어떻게든 표출하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웹은 넓고 괴상한 사람은 많은 법이기 때문에 나는 그가 저런 글을 쓰는 것 자체는 별로 놀랍지 않다. 저 글을 읽었을 때 정말로 당황스러웠던 건, 내 페이스북 지인들을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저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는 사실이다(그를 팔로우하는 사람의 수를 보고 통탄했다). 물론 세상에 괴상한 취향이 존재한다는 걸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저런 글은 취향 이전에 읽는 이의 정신에 백해무익하다. 김원기 님께서 아주 적절한 평을 써주셨기 때문에 그대로 인용한다.


"폭력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불의의 피해자들이 그것을 고발하거나 맞서 싸우지 않고 침묵하고 참고 용인함으로써 다른 피해자들을 양산시킨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위악적이지만 진실한 얘기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글쓴이는 알아듣지 못할 것 같고). 그렇게 가해와 피해의 구조에서 벗어난 초월자적인 위치에서 피해자에게 최고로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못했다고 꾸짖을 수 있는 심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권력이고 폭력입니다. 그리고 남성적이죠. 폭력에 길들여져 자존감이 하락하고 그렇게 망가져가는 자신에게 적응하면서도 환멸을 느끼고, 환멸을 느끼면서도 극복하기 힘들어할 수 밖에 없는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이해라고는 전혀 없는 그 자리, 그 목소리. 그게 남성의 폭력이니까요. 이 말을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한다면, 당신이 가해자의 자리에서 살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나는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 원문의 필자와 함께 "가해자의 자리"에 기꺼이 서 있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이건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다. 나는 명백히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판단을 내리는 사람과 교분을 맺고 싶지 않다(단지 연구목적으로 저 필자를 관찰하는 거라면 그러려니 하겠다). 내 판단에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별 말 없이 나와의 친구관계를 해제하셔도 좋다. 나는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저런 저열한 글이 또 떠다니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는 것만 분명히 말해둔다.






장주원이 그 문제적 글에서 다음과 같은 댓글로 응답했다(제보해 주신 분께 감사드린다). 저질 글에 일일이 반응하는 건 시간낭비임을 알지만 같잖아서 코멘트 단다.



"가소로운 댓글들 잘 읽었습니다. 어떤 사안에 대한 의견을 세우는 데는 크게 두가지 방식이 있을 겁니다. 하나는 개별 사안마다 제로 베이스에서 수집한 팩트들을 근거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게 지성인이 가져야할 마땅하 자세겠지만, 시간도 여유도 부족한 우리는 매번 그렇게 하지 못하죠. 그래서 모델을 만듭니다. 이 경우에는 '데이트 폭력'이라는 모델이 되겠군요. 선험적으로 규정된 그 모델 속의 남자는 무조건 미친 개새끼이자 절대적 가해자고 여자는 그저 순결무구한 피해자입니다. 당신은 어딘가에서 데이트 폭력에 관한 뉴스를 들으면 파블로브의 개새끼처럼 침을 흘리며 그 모델이 들은 폴더를 주섬주섬 꺼냅니다. "남자가 개새끼네! 여자한테 그러면 안되지! " 당신은 디테일은 듣고싶지 않습니다. 남자의 해명은 모두 변명이 될 뿐이고, 여자가 그것을 공론화하는 시기나 방식이 적절했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는 바로 "2차 가해"로 매도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빨리 빨리 결론짓고, 이지메 할 거 딱딱 좀 하고, 똥 쌀 거 싸고 넘어가고 싶은데, 뭔가 "다른 소리"가 들려오는 자체가 짜증납니다. 이 케이스 자체를 보라고, 당신 모델 속의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이 케이스 속의 한윤형과 문계린을 보라고, 그 둘 사이에 벌어진 일들과 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 대립하는 양자 간에 한쪽이 잘못했다고 해서 다른 한쪽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이 어떻게 책임 전가가 되냐고 , 피해자가 방조자가 될 수도 있는 데이트 폭력의 구조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냐고, 아무리 외쳐도 당신은 듣지 않습니다. 당신에게 중요한 건 진실이나 정의가 아니라, 당신 모델의 유효성을 확인하는 일과 그저 씹어댈 "씨발놈" 하나가 필요한 거기 때문입니다. 그 욕정, 푸짐히 채우세요. 인민재판 벌이고 인격살해하고 다 하세요. 하긴 언제부터 성찰들을 하고 살았습니까 그냥 우루루 몰려가 똥 싸고 마는 거지 ㅎㅎ 부디 시원해지길 바랍니다 또 다른 한윤형이 나타날 때까지."




'너희는 사태의 미세한 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이 쓸데없이 긴 문단은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논파가능하다. 장주원 역시 제3자로서 데이트폭력에 분노하는 다른 사람들보다 실끝 하나라도 더 자세히 알고 있는 팩트는 없다. 그는 프레임이 사실을 가려버린다고 화를 내는데, 정작 그 프레임을 뒤엎을 수 있는 근거는 하나도 확보하고 있지 않다. 정리하자면 장주원은 본인의 글이 철저히 본인의 주관적인 상상력에 기반해 있으면서 다른 이들이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비판하는 초보적인 모순에 사로잡혀 있다. 글 쓰는 인간이 기본적인 논리조차도 못 지키는 꼴만큼 한심한 건 없는데, 여기에 좋은 사례가 있으니 참고하시라.


물론 나는 장주원의 '오두막'이 모래 위에 세워졌다는 걸 지적하는데서 멈추지 않겠다. 장주원 본인이 그토록 좋아하는 심리분석을 다시 한번 그의 글에 적용해보면 몇 가지 설명을 제시할 수 있다.


1. 장주원을 따라 작두를 타보자면, 그는 적어도 성정치의 문제에서는 전형적인 대한민국 개저씨에 불과하다. 그는 성급한 프레이밍을 비판하고 싶은 척하지만 실제로는 그냥 "여성이 피해자고 남성이 가해자"라는 구도를 싫어하는 것뿐이다(그가 진짜로 철저한 회의주의자라면 본인 또한 이 사태를 전형적인 방식으로 프레이밍하고 있음을 자각했을 것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반발심이 일관된 증거를 보여준다. 나는 그의 심리를 "남자가 뭐가 문제란 거야! 어쩌다 보면 여자 좀 팰 수 있지! 그건 다 남녀 사이에 그렇고 그런 일이야 어허헣"라고 묘사하겠다.


2. 그가 말하는 "진실이나 정의"는 물론 면피용이다. 진짜로 진실이나 정의를 생각하는 사람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인격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저런 표현들을 쓸리는 없다. 사실 그는 여기서 또 하나의 인간-클리셰를 보여주는데, 그걸 풀어보자면 "나는 너희같이 우매한 대중들처럼 선동당하지 않는 현명한 사람이라고!"라고 할 수 있겠다. 즉 본인이 다수의 반응을 비판하는 현명한 소수이길 바라는 뒤틀린 인정욕망이 나온다; 물론 이런 흔해빠진 욕망은 인간을 분별없는 행위로 인도한다. 장주원은 그 흔한 사례일 뿐이다.


3. 1번과 2번을 합하면 어떤 결론이 나올지 알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남자가 무슨 죄야, 피해자=여성 프레임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는 우매한 너희들이 문제지, 그걸 직시하고 비판하는 나님은 똑똑하고 현명하고 멋진 남자님!" 물론 "피해자인척 하며 가해자인 여자들이 진짜 문제고, 그런 흔해빠진 속설에 휘말리지 않는" '나님'들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일베다. 단지 일베 사용자들은 자신들이 비루하고 천박함을 알고 인정하는데, 장주원은 자기애가 너무 넘쳐서 그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게 차이라면 차이겠다.


4. 장주원의 글에서 진짜로 희극적인 혹은 비극적인 면은, 그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만큼 혹은 남에게 보이고 싶어하는 만큼 특별하지도, 똑똑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유감스럽지만 그가 생각하는 방식은 한국 어디에서든 종종 볼 수 있는 평범한 수준을 넘어서지 않으며, 그의 언어조탁능력 또한 웹을 조금만 돌아다니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의 '재주'를 아끼시는 분들이 여럿 있으신 걸로 아는데, 세상에 저런 재주는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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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6.21 15:06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BeGray 2015.06.21 15:55 신고 Modify/Delete

      아직 한국사회의 문명화는 멀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이었어요.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 2015.06.22 23:33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BeGray 2015.06.23 00:42 신고 Modify/Delete

      도대체 어디서 저런 잡다한 사고방식들을 주워온 걸까 호기심이 생길 정도입니다. 전에 추천해주신 뒤징은 플라톤 다루는 데까지만 읽다가 다른 책들에 밀려서 더 손을 못대고 있네요;; 얼른 여유 나는 대로 보겠습니다 :)

  3. 다찌마와 2015.06.23 03:29 Modify/Delete Reply

    A반성폭력 운동의 연장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데이트 폭력에 관한 성토가 나는 왠지 불편하다.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과 욕망의 문제는 사각에 놔둔채 여성을 수동적인 피해자로서만 돋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고(예컨대 서울대 담배녀 사건처럼), 실은 가진 것들에 대한 맹목적인 분노로 추동된 갑질성토의 궤적에서 벗어나지 못한 땅콩리턴 사태 당시 조현아에게 가해진 갖은 인신공격과 분노가 겹쳐보인다는 점에서 그렇고, 운동의 비전이 명확히 보이지 않을 때, 세계가 투명하게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으레 한명의 구체적인 인물에 대한 윤리적 단죄에 지나치게 몰두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문계린씨가 밝힌 한윤형의 명백한 폭행은 당연히 근절되어야 하고, 한윤형과 같이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진 않았으나 간접적으로 심리적 위화감을 느끼기에 충분했을, 민경씨가 언급한 박가분의 언행은 여러모로 개선되면 좋은 것이다. 내로라하던 젊은 논객들은 추문에 휩싸였고, 각 사건의 피해자가 납득할만한 적절한 대가를 치르고 반성하며 재발을 방지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사건을 책임지고 인성적으로 발전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가정폭력, 학교폭력, 성폭력, 불량식품'으로 대표되는 4대 악이 당연히 나쁜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듯, 지나가는 삼척동자도 동의할 수 있을만큼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이 '당연한 것'에 대한 요구는 sns를 통해 이미 가해자로 상정된 당사자들에 대한 폭격의 구도로 전개되고 있기에, 내가 굳이 그에 한술 더 뜰 생각은 없다. 이건 그들에게 가해지는 비난의 정도가 과격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행동에 대한 알리바이를 뒷받침 해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피해자들이 느낀 폭력의 기준이 작위적이라고 간주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류의 사건들이 소비되는 방식이 적잖이 빤하고, 여기에 이런저런 얘기를 보탬으로써 이상한 급진성을 취하려하는 이들이 꽤 있다는 것, 결국 이것은 '내 안의 파시즘'을 성토하는 식의 고매한 도덕적 회개로 귀결되고 마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은 것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애초에 좌파도 완성된 인물군상이 아닌데, 언제부터 좌파가 인격적으로 위대하고 완전무결했다고 그간 운동권 내부에 있던 고질적인 병폐가 폭로된 것 마냥 너스레를 떠는지도 잘 모르겠고, 왜 일상생활에서의 사소한 도덕도 지키지 못하는 이들이 무슨 구조적 폭력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냐며 비아냥 대는지도 잘 모르겠다. 개인의 일상적인 윤리양태의 모습과 그의 이성이 남긴 업적은 분리해서 판단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도덕성이 결여된 개인에게는 모두가 벌때처럼 달려들어 한마디씩 거들다가도 이 모든 부조리를 재생산하는 단일한 심급을 더 이상 상정할 수 없게 된 작금의 상황에는 왜 그리도 말이 없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B최소한 데이트 폭력의 범위 내에서 여성은 수동적 피해자입니다. 실제 물리적 폭력이 작동되는 순간, 일방적으로 폭력을 가하는 남성에게 어떻게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나요? 일련의 사태에서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사실에 대해서 굳이 언급하게 된 이유는, 바로 그 ‘이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동적인 대처를 모색하기 위함입니다. 폭력에 반대하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만한 원론적인 문제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대다수가 이를 너무도 손쉽게 위반하거나 동조합니다. 이를 단순히 ‘상식’차원에서 치부하고 말기에는 실제 현실에서 오작동하는 선례들이 너무도 비일비재합니다. 폭력은 대상과 층위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작동하지만, 데이트 폭력 자체가 뭇남성들로부터 촉발된 사안이듯이 그 중에서도 여성들은 전방위한 폭력 앞에서 너무도 취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처럼 대개의 여성들이 물리적 힘의 차이에서 연원하든, 만연한 남성주의적 역학 차원에서든 결국 이 사회에서 여성폭력에 대한 잠정적인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면 특정 가해자는 직접적인 피해자를 비롯한 만인에게 윤리적으로 단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것은 결코 폭력 그 자체보다 과하지 않습니다(제가 간과한, 폭력 이상으로 작동한 지금의 사태에 대한 구체적 선례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저를 포함한 몇몇 남성들이 데이트 폭력을 비롯한 페미니즘 문제에 대해서 개입할 때 근거없는 ‘급진성’을 의식할 수는 있지만, 최소한 여성들은 여성문제에 대해 급진성을 획득할 충분한 자격이 있으며 설사 그렇지 않은들 문제 당사자인 이상 자신의 생존과 직결된 사안에 대해 설사 과할지언정 어떤 방식으로든 언급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단죄 받고 싶지 않다면 윤리적 개인으로써 ‘상식’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면 될 일이죠. 그간 이를 손쉽게 져버렸던 한윤형과 박가분 등에게 가해지는 비판의 방향성이 개인을 향해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처음 비판이 발화되었을 때,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이들로부터 관습화된 폭력을 빌미로 이들을 비호하고자 하는 맥락의 글들이 두서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들이 얼마만큼 ‘진정성’ 있는 좌파이든, 상식 차원에서의 폭력문제에서조차 악의적으로 판단을 유보하는 행위는 (한윤형 개인을 둘러싸고 사후적으로 형성된) 운동‘꿘’이라는 불필요한 진영에 대해서 공연한 의심을 불러일으키게끔 합니다. 지금의 사안에 대해서 (어쩌면 유일하게) 가시화된 ‘일부’에 의해 불거진 이러한 의심들이 불편하거나, 그들과는 상이한 입장을 피력하고 싶다면 김민하 씨의 입장 표명에서처럼 실제 불거진 폭력 자체에 대해서 납득할 만한 수준의 처사를 하면 그만입니다. 설마 당사자들이 거기에서조차 꼬투리를 잡을는지 의문입니다. 무엇보다 정치적 보편성을 지향하는 명분을 지닌 분들이 개인의 윤리에 대해 이처럼 무감하면 곤란하죠. 좌파든 아니든, 결여된 도덕성을 건사하는 일은 어렵지만 그럼에도 무던히 갱신해야만 합니다. 폭력과 혐오는 “일상생활에서의 사소한 도덕적 규준”라기보다, 모든 종류의 이념과 사상에 대한 기본적 전제라고 생각합니다.

    C데이트 폭력은 성격상 남성의 여성에 대한 일방적인 폭력을 전제로 합니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의 사소한 도덕"이라뇨? 하루에도 수 명씩 여성이 남성에 의해 살해당하는 나라에서 데이트 폭력은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강산씨 지금 폭력 행위를 무슨 토렌트 불법 다운로드 받는 일처럼 취급하고 계세요. 이런 글은 해당 사건의 가해자가 확실하게 사과하고 책임은 진 다음, 그럼에도 여론이 지치지 않는다면 필요할 수도 있겠죠. 지목된 가해자들이 뻔뻔스럽게 책임을 회피하려는 지금 필요한 글은 아니라고 봅니다.

    A저는 피해자들의 문제제기를 기각하고, 일상적으로 우리가 마주하는 폭력이 하찮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많은 이들이 동조하고, 기꺼이 자신의 목소리를 덧입히고자 하는 사건들이 유독 이런 류의 ‘구체적인 폭력’ 이상의 것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점을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죠. 그것은 이전에도 설명드렸듯 맑스주의;급진 페미니즘의 몰락에서 징후 적으로 드러납니다. 저는 많은 이들이 sns 상에서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듣고 그에 맞춰 ‘가해자’들을 비난하는 데에서 무력감을 느낍니다. 까닭인즉 성폭력범을 규탄하는 것은 매우 손쉽고도 간편한 작업이고, 그에 동조하기란 참 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에 몇마디를 거들면 자연스레 스스로가 가져왔던 무의식적이고 일상적인 폭력으로부터 감면된다는 착각을 하곤 합니다. 마치 자신들에게는 그런 폭력성이 하등 없었다는 것처럼 뒷짐을 지면서요. 덧붙여 그러한 비난은 거의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에도 사람들은 가해자를 성토하고, 그들이 반성의 눈물을 흘리며 공적인 장소에서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이면 마치 모든 성적위계가 해소 된 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정작 그러한 일상적 폭력을 재생산하는 가상의 체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간과한, 폭력 이상으로 작동한 지금의 사태에 대한 구체적 선례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라고 하시니 말씀드리는 겁니다. 세계의 모든 사건들의 발생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결코 어떤 개별 사건도 이유 없이 독립적으로 발생할 수 없지요. 그리고 그 모든 이유의 이면에는 그 각각의 사건들이 발생하게끔 한 단일한 ‘원인’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보이진 않고, 일상적으로 감각할 수도 없지만 이성을 통해 반추해낼 수 있는 원인 말입니다. 그 원인의 이름은 근대 이전에는 신이었으나, 현재로선 자본주의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예컨대 18세기의 산업혁명당시부터 일정 수준이상의 육체적 힘을 요하는 공장 노동이 영국에서부터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자연스레 이전까지 봉건적 가부장제에 놓여있었던 남성 가장의 권력이 철저하게 강화되어왔죠. 여성이 참정권을 획득하는 것이 남성에 비해 늦게 이뤄졌다는 것 또한 이러한 역학관계를 떼어놓고서는 상상할 수도 없고요. 더불어 페미니즘은 그러한 과정에서 출현한 근대적 개념이죠. 이는 페미니즘일반이 경제투쟁의 하위범주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도, 경제투쟁도, 전체를 상정하지 못하면 ‘텅빈 부분’이 되어버린다는 점을 언급하는 겁니다. 여기서 ‘전체’라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라고 요구하시면 안 됩니다. 전체는 결코 생생하게 설명할 수도 없고, 일상적으로는 감지할 수도 없는 것이니까요. 주체는 언제나 제한된 시공간에서 일정한 정보만을 인지한 채 행위 하기에, 전체를 알기 위해서는 결국 치밀한 사유가 필요한 법이죠. 그리고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위와 같은 진단은 실상 페미니스트들 스스로의 반성에서 도출 된 겁니다. 당연히 성폭력은 죄악이지만, 그것에 초점을 둔 성토가 ‘여성주의’를 변호하는 것이라면 그건 차라리 교황에게 맡기면 되겠죠.
    그리고 스스로를 급진적 페미니스트로 정체화 시킨 채 전투적으로 활동하는 이들의 활동에는 아무런 언급도 없으면서, 왜 누군가의 공격의 대상이 되는- 연약하게 그려지는 여성의 모습에는 이렇게도 다들 한 번씩 입을 모으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 박가분/한윤형 사태 또한 그 연장에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조현아의 갑질을 성토하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그는 누가 보아도 잘못을 저지른 이임에 틀림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러한 조현아의 갑질을 성토하고, 그리하여 그가 진정으로 반성하고 윤리적인 모습을 보인다 해도, 저는 세계는 그대로 멀쩡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미 sns를 통해 많은 이들이 주목하게 된 이상, 이번 사건의 당사자들 또한 이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행위 하진 못합니다. 그들이 쉽사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며 방어기제를 보이는 현상을 남들과 같이 성토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덧붙여 지금 sns에서 그들을 성토하는 이들이 진정으로 페미니즘일반에 연대할 이들인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듭니다.

    C긴 글 잘 읽었습니다! 우선, 사람들이 말을 거들면서 본인의 무의식적이고 일상적인 폭력이 감면된다는 착각을 한다... 는 말씀은 옳지 않습니다. 우선 저부터도 사건을 접했을 때 해당 사건을 스스로의 일상적 폭력을 되새김질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게 주로 제가 술쳐먹고 (강산씨도 아시겠지만 ㅜㅜ) 지랄한 것인데...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해당 문단에서 언급하신 것은 거의 픽션에 가깝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구요.
    자본주의에 대한 설명도 잘 읽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거대 서사가 성장하는 와중에 갑툭튀한 것이 바로 우리가 현재 페미니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라고 한다고 해서... 페미니즘과 자본주의가 동일한 전체를 상상해야할 의무는 없지요. 더군다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게 나뉘는 사건에서, 뜬금없이 "너희는 어째서 세계를 상상하지 못하냐"며 비판하는 것, 과도하게 선지자적인 위치를 점하는 것이라는 생각 안 드시나요? 일종의 버즈-아이 뷰로 구조를 파악하고 구석구석을 성찰하는 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맥락에서 그것은 일부 오만하며, 일부 비겁합니다.
    어떤 말씀을 하시는 지는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쓰여진 글이든 맥락에서 벗어날 수 없고... 글쓰는 사람은 내용을 채우는 동시에 어느 맥락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민망할 정도로 일반론적인 말입니다만, 조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댓글을 단 것도 그래서였어요. 강산씨가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 본문에서 물론 두번 세번 강조하셨지만, 그럼에도 어떤 맥락에서는 가해자를 일부 두둔하는 것으로 비추어질 혐의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상황에서... *진정성*은 계산이 되지 않구요. 뭐 그런 이야기 입니다.
    아무튼 저는 이 정도 이야기만 하고 나갈게요. 제 관점만 쓰고 도망가서 죄송하구요! 건필하시고 몸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A저는 재민형이나 시우형이 이 사태에 동조함으로써 제 자신의 폭력을 무의식적으로 감면받고 있다는 말을 한 게 아녜요. 이런 식의 사건에 치밀한 성찰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으레 위와 같은 방식(무의식적 감면의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 거 였구요.. 실제로 트위터에서 본 비난의 양상을 보아,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그러한 징후를 읽었습니다. 자신을 반성할 기회가 되는 건 긍정적인 거지만요.
    그리고 전 거대서사 없이는 세계를 올바르게 감각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는 순간 일상의 다양하고도 구체적인 폭력들에 대한 집착 이상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결과적으로는 모든 종류의 연대를 어렵게 만드는 ‘분열’을 긍정하는 사태를 초래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태가 발생한 시점에서 거대서사를 들먹이는 것이 선지자적인 위치를 점하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도 위와 비슷한 대답이 나오게 될 것 같고요. 애초에 별개로 나뉘어진 것으로 보이는 것들의 독립성을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겠죠. 다만 그렇기 때문에 한윤형/박가분에 대한 성토를 그치라는 것이라기보다는, 제가 그런 징후를 느꼈고 그것이 못미덥다는 말이에요. 이러한 논리가 가해자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이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모두가 그들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그런 우려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애써 시간내어 긴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군대 잘 다녀올게요.

  4. 다찌마와 2015.06.23 03:33 Modify/Delete Reply

    지인 사이에서 오간 이번 사태에 관한 논쟁인데요, ABC는 각각 다른 인물입니다. A의 말을 듣고 전 입장이 참 모호해져서.. 읽어보시고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의견 물어도 될까요?

    • BeGray 2015.06.23 03:42 신고 Modify/Delete

      헉 지금은 좀 정신이 없고 며칠 여유를 두고 읽어봐도 될까요?ㅎㅎ

    • 다찌마와 2015.06.23 03:46 Modify/Delete

      네ㅎㅎㅎ 시간나실 때 그리 해주셔요

    • BeGray 2015.06.23 04:04 신고 Modify/Delete

      대충 훑어봤는데 A가 (경칭은 생략하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뭔지는 알고 동의하는 지점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저도 인간은 필연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거대서사를 요구한다는 것, 그리고 거대서사의 지층에 구조적으로 작동하는 힘들이 있다는 데는 동의합니다--이론화가 충분히 정치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저는 중층결정의 도입을 비롯해 20세기 중반에 사회구조와 사회적 실천 사이의 인과율에 대한 수많은 논의들이 있었음에도 특정한 사태에 대한 인과를 '단일한' 원인으로 해명하는 낡은 모델을 고집하는 이가 오늘날에도 있다는 것에 약간 당황스러움을 느낍니다. '전체'가 반드시 한 가지 단일한 힘으로부터 기원한다는 발상은 오늘날 심지어 가장 추상적인 층위의 이론에서조차도 지탱되기 힘듭니다. A가 이론적 자의식을 갖고 그것을 고집하는 건지, 아니면 단지 공부를 갓 시작한 채 자신이 배우기 시작한 모델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건지 제가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후자 같습니다. 중세 이전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설명이 지나치게 낡고 도식적인 걸 보거나, 단일 원인에 소급하는 인과론을 풀어낸 다음 여러 범주들이 뒤얽힌 '전체'를 논의하는 것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논변이 그러합니다.

      A의 논변이 갖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암암리에 구조적 변환과 일상적 실천 사이에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을 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조적 사고를 막 공부하기 시작한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습성입니다만, 그러다보니 자신이 생각할 때 구조를 바꿀 수 없을 것 같아보이는 일상적인 실천들이 모두 뻔한 행위의 반복처럼 보이는 거죠. A가 지금 얼마나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A가 저의 지인이라면 예컨대 선험적인 구조를 가정하는 대신 개별 실천들의 배치양상으로부터 '전체'의 작동을 사고하려 했던 푸코를 공부해보길 권하겠습니다(그가 좀 더 정통적인 맑스주의에 근접하고자 한다면 물론 헤겔이라는 아주 좋은 모델이 있습니다). 사회의 변화를 역사적으로 추적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개별적 실천들의 축적 혹은 재배치가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엄청난 역사적 변화로 다가오는 상황이 낯설지 않을 겁니다; 설령 그 변화가 반드시 좋은 결과만을 의미하지는 않긴 하지만요. 아마도 갓 공부를 시작한 맑스주의자 후보생처럼 보이는 A가 조금 더 맑스적으로 사고한다면, 구조적인 것에 사고가 닿지 않는 일반인들의 우매함에 한탄하는 대신 그것이 어떠한 종류의 변화로 이어질 것인지 '변증법적으로' 사고하려 할 것입니다.

      다찌마와 님꼐서 어떤 점에서 입장이 모호해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일상적 차원에서의 윤리를 부인할 필요가 없고, 전체적인 차원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어떠한 결과로 이어질 것인지를 사고하고 그에 따른 전술을 생각해 보는 쪽이 해변의 파도가 그저 무기력하게 와서 부딪치고 스러지는 광경을 무한한 반복으로 착각해 절망하는 것보다는 생산적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파도는 그의 발을 적실 뿐더러 나아가 해변의 모습 자체를 바꾸어놓을 것이기 떄문입니다.

    • BeGray 2015.06.23 04:09 신고 Modify/Delete

      요점은, 한탄할 필요는 딱히 없고 정 지금의 상황이 사태를 본질적으로 바꾸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이론적 작업을 하면 된다는 겁니다.

  5. 2015.06.23 09:06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BeGray 2015.06.23 13:36 신고 Modify/Delete

      음... "'사적 복수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떄에서야 비로소 정의에 관해 논할 수 있는 게 아니겠느냐, 하는 식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녀가 말하지 않은 부분을 말하거나 혹은 '우리'가 읽어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였어요." 의 요지/의도가 정확히 어떤 건지 다가오지 않아서 뭐라 코멘트하기가 힘들 것 같아요. 다만 개인의 지지/의도의 차원 이외에 그런 비극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조건/힘들에 대한 고려와 개선의 요구도 함께 해야한다는 하나마나한(?) 일반론을 덧붙이겠습니다 ㅎㅎ

    • 이후 2015.06.23 14:32 Modify/Delete

      네, 제가 전체 맥락을 설명드리지 않고 제 고민만 던져두듯 말씀드려 그런 것 같아요:) 그래도 덧글 감사합니다

  6. 다찌마와 2015.06.23 10:34 Modify/Delete Reply

    그렇군요!! 일상의 윤리를 파괴하는 이들에 대한 단죄에 집착하지만 정작 그 사단이 끝나면 모든이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그 억압의 핵심적인 기제를 제거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A의 진단에 저는 상당히 흔들리더라고요. 헌데 좀 더 생각해봐얄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답

    • BeGray 2015.06.23 12:48 신고 Modify/Delete

      어차피 "억압의 핵심적인 기제"를 생각하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다수였던 세상은 존재하지 않아요. 근데도 세상은 어떤 형태로든 계속해서 바뀌어왔고. 그러니까 그런 게 고민이면 차라리 본인이 더 공부하고 분석해서 길을 내 보는 게 생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ㅎㅎㅎ 당연한 현상 갖고 우울해 할 이유가...

  7. 박가분 2015.07.31 14:13 Modify/Delete Reply

    논란의 당사자 박가분입니다.

    관련한 반론 및 입장글을 7월 17일에 게시하였습니다.

    http://blog.naver.com/paxwonik/22042303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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