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및 1990년대~2010년대 한국대중음악에 대한 비판적 대화

Critique 2014. 11. 4. 01:58

아래의 내용은 지난 며칠 동안 페이스북에서 진행된 대화를 옮긴 것이다. 신해철에 대한 A 선배의 글로부터 시작된 대화는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한국대중음악에서 어떠한 변모들을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까지 옮겨갔다. 마지막의 짧은 부분은 현재의 한국영화에 유사한 문제의식으로 접근한 C님과의 대화다. 현재 이 대화에 대한 추가적인 논평이 나오고 있지 않은 시점에서 대화 참여자들의 허락을 받아 블로그로 옮겨둔다.오탈자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손대지 않았다.



1. 신해철과 1990년대의 한국대중음악에 대한 A의 글



몇 명의 친구들 덕분에 거의 접해본 적 없는 신해철의 음악을 이제야 들어본다. 이제까지는 그가 내 또래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또 친구들의 슬픔에 공감을 표한다.


고인의 음악에 대해 몇 가지 인상을 남긴다. 한국의 90년대에 대한 놀라운 표상인 것 같다. 그 시대의 에너지, 창조성, 이런 것만 아니라 모순과 한계 같은 것도 함께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나보다 17년 위인 그의 음악은 분명 우리 세대가 잃어버린 것을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다. 음악이 추구해야 할 것은 위안보다 자유라는 생각, 다음 시대를 만드는 것은 다음 세대라는 자신감. 젊음이란 누려보기도 전에 흘러가면서 이상화되는 환상이 아니라, 언젠가 부정되어야 할 좌충우돌의 흔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만들어 나가는 바탕이라는 감각. 또, 대중음악의 역사가 진보하고 있다는 믿음. 신해철의 죽음에서 '한 시대의 끝'을 보는 사람들 또한 이런 것을 읽어냈으리라 생각한다.


신해철이 90년대의 에너지와 창조성을 표상한다면, 그가 옛날 용어로 '대중성과 실험성의 조화' 같은 걸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진심으로 묻고 실천하면서도 한 세대의 스타가 될 수 있는, 이제 볼 수 없는 유형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신해철이 개인적인 방식으로 사운드와 스타일을 만들어내면, 사람들은 그것이 자기 세대의 목소리라고 느꼈다. 그의 개성은 가사나 메시지 차원보다 음악의 스타일에 있었는데, 스타일 자체가 메시지로 작동했다. 그의 음악적 개성은 전위적이지도 파괴적이지도 않았지만 개인적이고 도전적이었다. 보컬리스트로서 특이한 목소리를 가진 것도 아니고, 디지털 기술에 적극적으로 의존하다보니 따라하기 어려운 사운드를 만든 것도 아닌데 그렇게 들렸다. 90년대 사람들은 그 도전에 자신을 투영했다. 그러니까 개인적인 도전과 집단적인 공감의 불가능한 종합 같은 게 있다. 이제는 개인적이란 말도 도전이란 말도 그런 식으로 쓰이지 않는다.


그의 음악이 90년대의 모순과 한계를 함축하고 있다면, -- 이 단락이 고인에 대한 실례로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 90년대에 대중음악의 역사가 진보하고 있다는 믿음이란 게 허상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 새로운 음악을 고민한다면 서양의 메인스트림을 피할 수 없었고, 거꾸로 서양의 메인스트림을 앞장서 소개한다는 것은 '새로운 음악'을 한다는 것을 뜻했다(예를 들어 1993년의 '핑계'는 레게를 잠깐 차용한 새로운 음악이었지만, 2003년의 애시드 재즈는 그냥 발빠른 트렌드였다). 그리고 90년대의 서양 메인스트림에는 일관된 흐름 같은 것이 없었으므로 우리로서도 그것을 차근차근 따라갈 수 없었다. 신해철은 서양의 낯선 음악을 도입하거나, 알려져 있지만 주류로 떠오르지 못한 음악(80년대 록)을 바탕으로 하고, 여기에 자신의 개성을 투입해서 음악을 만들었다. 그래서 신식 수입품으로서도, 개성의 표현으로서도 새롭게 들릴 수가 있었다. 새로운 장르가 도입되어 폭발하는 데에는 어떤 사건이나 스타의 개인적인 역량이 필요했다. 그렇게 폭발한 장르는 한 때 유행하고 사라지기보다는 한국 가요의 계보에 포섭되어 토착화되었다. 인디가 생기기 전까지, 토착화되지 못하면 잊혀지는 수밖에 없었다. 넥스트와 서태지의 4집 앨범은 서양 트렌드의 토착화, 개인적 스타일의 추구, 새로운 트렌드의 도입 사이의 균형을 묘하게 유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90년대 말부터 상황이 변했다. 서태지는 갱스터 랩과 얼터너티브를 도입했고, 신해철은 80년대 메탈과 테크노를 도입했지만, 2000년대에 그들을 듣고 이런 장르들을 배운 사람은 없었다. 서양에서 나온 음반을 들으면 됐다. 게다가 대중은 음반을 인터넷에서 공짜로 받았다. 새로운 트렌드를 소개하기 위해 음악가의 개인적인 노력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건 기업이 하거나, 누구든 집에서 인터넷을 켜놓고 하면 된다. 전자의 경우 음악가의 개인적 스타일 같은 것은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었고, 토착화는 눈에 띄지 않도록 더 은근하게 심어놔야 할 것이 되었다. 후자의 경우에도 개인적 스타일은 더 이상 덕목이 아니었다. '제대로 하는' 서양 뮤지션들의 음악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는 세상에서, 어떤 장르의 음악을 제대로 하고 싶다면 개인적 스타일, 한국적 토착화, 이런 것 다 빼고, 장르의 논리에 충실하게 음악을 하는 게 중요했다. 이게 2000년대 초반의 분위기였다. 이후 외국 트렌드와 한국식 토착화, 개인적 스타일을 동시에 추구하려 한 신해철과 서태지의 꿈은 불가능한 게 되었다. 모노크롬과 울트라맨이야는 이 긴장의 막다른 골목일 것이다.

하지만 위 세 가지를 조화시킨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두 음악가 모두 최전성기에도 변신에 집중했다는 것은 그 징후일 것이다. 음악가가 장르를 바꾸더라도 완벽하게 변신해서 새로운 음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창작은 자기 안에서 축적될 수밖에 없다. 여기 신해철과 서태지의 차이점이 있다. 서태지는 80년대 가요와의 단절, 아이들 시절에는 시나위와의 단절, 솔로 시절에는 아이들 시절과의 단절, 이렇게 계속 단절을 화두로 작업을 했다(그리고 수입할 것도 단절할 것도 없게 됐을 때 공허한 음악을 하게 됐다. 마흔이 넘었지만 자기 음악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신해철은 의식적인 단절을 한 적이 없다. 초창기 솔로 앨범의 80년대식 가요나 록을 듣다가 2000년대 음악을 들어보면, 또 이 음악을 하는 게 그때 그 사람이 맞다는 끊임없는 자기 주장 같은 게 있다. '개한민국'은 1992년에 대다수의 한국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웠던 음악인데, 노래만은 1992년 사람이 와서 부른 것 같다.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는 일관성이 있었다. 2000년대는 그 이야기를 록 콘서트보다는 심야 라디오를 통해 듣고 싶어하긴 했지만.


또한, 종합의 초점을 트렌드 수입으로 잡은 서태지와는 달리, 개인적 스타일로 잡은 신해철의 경우에는 그 간극이 더 적극적으로 노출되기도 했다. "절망에 관하여", "오버액션맨", "라젠카 세이브 어스"를 차례로 들으며 드는 생각인데, 사람들이 신해철에게서 자의식 과잉이나 허세라고 부른 것은 그가 그런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의 음악이 내포하는 스타일 사이의 간극 때문이다. 위 곡들을 들어보면, 노래는 일단 어떤 장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영락없이 가요 같은 감상적인 부분도 들어오고, 확 튀면서 가요의 문법을 깨고 나가는 부분도 끼어드는데, 곡 구성이나 장르의 분위기가 이 긴장을 해소해 준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결국 내적 구조가 불안정한 음악인 셈인데, 신해철은 이것을 피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밀어붙였던 것 같다.


1990년대는 대중음악의 격변기였고, 서양 대중음악의 수용 차원에서는 과도기였다. 한국인들은 '팝송'을 듣던 70~80년대 사람들보다 훨씬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게 되었지만, 2000년대 사람들처럼 진짜 그 다양한 음악을 마음대로 구해다 들을 수는 없었다. 신해철은 그 사이에서 자기 역할을 했던, 정말 90년대다운 음악인이었다. 그는 어떻게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새롭게 표현할 것이냐는 점에서 90년대와 80년대와의 관계를 묻고, 어떻게 대중음악인의 개인적 창조성을 지킬 것이냐는 점에서 90년대와 2000년대의 관계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대중가요'와 그것을 파괴하는 것을 동시에 끌고 가려고 했다는 점에서, 또 80년대와 단절한 적도 없고 2000년대에 와서 망가지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90년대의 아주 특이한 종합을 이루고 있다. 옛날부터 그의 음악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느끼긴 했지만 그것은 취향의 문제이고, 일반적으로 그의 음악이 오늘날 낡고 어색하게 들린다면, 그것은 (음향기술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면) 그가 낡고 어색해지는 것을 피하지 않았기 때문, 그의 음악이 90년대와 오늘날의 차이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해철은 90년대의 표상이라 할 만 하다. 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 젊은 세대가 상상하는 좋았던 시대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도 있고 더 잘 추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고인의 명복을 빈다.




2, 1의 글에서 댓글로 진행된 대화: 2010년대의 한국대중음악산업



B: 마침 오늘 밤 부분적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술자리에서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90년대와 2000년대의 대중문화가 어떻게 변했는가는 대략의 스케치만 그려두고 디테일한 정리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적어주신 것들을 보면서 제가 느끼고 있는 바가 완전히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라는 믿음이 드네요.


제게 신해철은 자신의 색채로 사회의 한 영역을 물들일 수 있었던 마지막 사람, 아도르노 식으로 말한다면 '자율적인 개인'으로서 사회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었던 마지막 예술가입니다.


개별적인 예술가들을 대체하는 것은 명백히 아이돌그룹의 등장이겠죠. 90년대 중반부터 아이돌그룹 프로토타입이었던 영턱스클럽이 있었고, H.O.T가 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기업화/자본화된 형태의 예술상품으로서 아이돌이 등장합니다. 한편으로 2000년대가 개별적인 예술가들이 어디에서 새로움을 끌어낼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역설적으로 수입의 장이 너무나 활짝 열리면서 일종의 벽에 부딪힌 시기였다면, 동시에 산업화된 문화상품으로서의 아이돌은 본격적으로 일본과 미국의 아이돌산업 모델을 열심히 따라가면서 '새로움'을 제시하던 때이기도 합니다(매우 비슷한 패턴이 한국의 새로운 대중소설로서 판타지 장르에서 상대적으로 마이너한 규모로 발견됩니다). 


단순히 개별생산에서 산업으로의 '합리화과정'과 같은 시장차원에서의 변화와 함께 MTV/MP3와 같은 기술적 장치에서의 변화, 그리고 대중음악의 서사가 훨씬 단자적인 이미지로 대체되는 흐름(이때 뮤직비디오의 역사적 분석은 매우 흥미로운 소재일 것입니다)을 확인할 수 있지만 이건 여기서 적을 건 아니고...우리가 지금 목도하는 2010년대는 한편으로 기존의 기획사-연습생 시스템 외부에서 새로운 자원을 찾는 오디션 프로그램, 새로운 문법의 창출이 막힌 상황에서 과거 가수/음악을 재조명하는 프로그램(오디션 프로그램이 계속해서 기존 전통을 다시 활용하고 싶어하는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기성품 음악을 해외시장으로 수출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제 생각에 이 세 가지 요소는 꽤나 명확하게 2000년대를 주도했던 산업화된 음악과 기업화한 자본의 결합체가 최소한 새로운 예술적 문법을 발명하는 데 어떤 한계에 부딪혔음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그것이 경제적, 정치적, 사상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심지어 예술에서조차도 우리의 생산력이 고갈되었다는 일종의 '문명사적' 예감을 끌어내는 게 아닌가 싶어요. 한편으로 최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그리고 저 자신도 예외도 아닌 사멸, 파국의 감각은 대중예술에서의 이러한 사태와 완전히 무관한 사실이 아닐 겁니다. 개인적인 예감에 가깝습니다만, 제가 다른 대중예술장르보다도 웹툰에 계속해서 흥미를 기울이는 것은 이 장르가 지난 10년 사이에 한국에서 새롭게 출발하고 아직도 생명력을 보존하면서 발전 중인 매우 드문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A: 마지막 두 단락에 대해서 제 생각을 약간 적어 봅니다.


2010년 전후로 한국의 아이돌 산업은 거의 갤럭시 S3의 수준에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미/일을 베낄 건 다 베껴놨고 나름 세계 수준에 도달해서, 자본가들을 한 철 먹여살리는 데까지는 온 것 같습니다. 그 후 더 이상 아이폰이 베낄 만한 물건이 아닐 때, 이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S5의 시기까지 왔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어차피 아이돌이 음원시장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음원시장이 아이돌에 의존하는 판에서, 아이돌 산업을 통한 새로운 예술 문법의 창출이 한계에 도달했는지, 또 그 한계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비롯한 각종 음원 재활용 시스템(나가수, 슈퍼스타 K, 불후의 명곡...)을 만들어 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두 판은 몇 년째 잘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음원 재활용 프로그램들을 비판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기존 전통'은 성장의 한계에 대한 대안이라기보다 그냥 더 효율적인 투자처일 뿐이지요. 나가수가 처음 떠서 음원이 차트를 휩쓸 때 아주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인스턴트로 만든 음악이잖아요. 최소한의 연주자 훈련을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기본적인 편곡만 가지고 일주일만에 뚝딱 만들어낸 음원이 신곡들과 비교되어 진짜배기 음악 대접을 받는 걸 보면 참 그렇습니다. 상황이 어떻든 가요계에 음원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건 자본이 새로운 음원을 만드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투자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니까요.


또 이 곡들이 떴던 게 당시 아이돌들을 중심으로 한 음악 생산자들의 한계나 고갈 때문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나가수에서는 십 년 이상 검증된 고전을 검증된 보컬리스트들이 부르는데, 신곡들보다 곡이 뛰어난 건 당연하지요. 애초에 게임이 되는 상대가 아닌데 신곡들의 생산성을 탓할 수가 없습니다. 어차피 그 자본이 그 자본이지만, 아이돌이라도 신곡을 내서 떠주는 게 음악 생태계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거꾸로 음원 재활용 프로그램들이 아이돌 산업의 음악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는 결과만 가져온 것 같습니다. 음원 판매는 방송사에서 찍어내는 리메이크 곡들이 알아서 팔 테니, 아이돌들은 돈 안 되는 음원 팔려고 그룹 활동 열심히 할 것 없이 음악 외적 활동으로 영업의 외연을 넓히라는 식입니다. 10년 전에 비하면 아이돌의 음악적 수준 같은 걸 비판하는 사람이 정말 줄었는데, 그만큼 사람들이 아이돌에 바라는 것과 음악에 바라는 것이 갈라졌기 때문인 듯합니다.


오디션 프로그램 역시 10년간 밴드를 한 사람으로서 아쉽습니다. 인디 씬이 최소한도의 '인디펜던트'한 생산과 소비를 전제로 굴러가는 거라면,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인디 씬에 대한 사망 선고에 가까우니까요. 방송사가 일방적으로 죽였다는 게 아니고, 더 이상 '인디펜던트'하게 먹고 살 수 없게 된 음악계와 문화자본 사이의 타협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면 밴드 음원 제작은 부업으로 하던가(밴드 음악은 점점 연주하기 쉬워지고 있고 그 반대급부로 가사는 점점 더 들을 만해지고 있습니다), 아니면 그분들의 눈에 들기를 기다리는 거죠. 이제 학교 밴드에 들어오는 사람들도 더이상 메인스트림 음악과의 관계에 대한 의식 같은 걸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냥 시장에 끼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홍대에 가든 아무 프랜차이즈 까페를 가든 나오는 음악은 차이가 없게 됐고, 모던록, 포크는 거의 넘어갔다고 봐야죠. 어쩔 수 없어 손잡은 건 알겠지만 음악 생태계에는 큰일입니다.


그 후 2012년 이후 몇몇 인디 뮤지션들에게서 새로운 인디음악의 모델 같은 걸 좀 본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통진당과 진보신당 탈당파가 빠져나간 후의 노동당을 보는 것 같긴 합니다.


시의적절하지 않은 이야기가 길어져서 미안합니다.



B: 말씀하신 음원재활용&오디션프로그램 등에 대한 비판에 동의합니다. 다만 저 자신은 말씀하신 지점, 즉 일종의 새로운 투자방식으로서 그와 같은 방법들이 활용되는 것과 함께 거기에 하나의 대중예술장르가 예술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부딪힌 상황 또한 볼 수 있지 않냐는 것이죠(단순히 생산자들의 질이 하락했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점입니다). 예를 들어 음원재활용 프로그램--적절한 호칭이군요ㅋ--에서 제가 제일 주목하는 바 중 하나는, 그곳에서 어떤 음악이 나오든간에 십중팔구는 동일한 패턴으로 편곡되어 공연된다는 것입니다. 비교적 조용하게 원곡과 가까운 전반부가 있고, 후반부에서는 거의 반드시 기교&성량을 최대한으로 뽑아내는, 마치 맛보는 사람들의 미각을 마비시킬 정도의 화려한 양념을 치는 요리를 연상케하는 대목들이 들어가면서 끝맺습니다. 당연히 더 크고 더 높고 더 힘차게(올림픽?!) 소리를 지른 사람들이, 경우에 따라서 원곡의 정신을 거의 모독하기까지 하는 공연이 더 높은 점수를 받고요.


저는 여기에서 우리 시대 예술적 생산의 난국과 '듣기'의 퇴행--아도르노의 <음악사회학 입문>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을 동시에 목도하는 기분입니다(물론 이런 경향은 오디션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저는 그래서 양념이 잔뜩 처진 <먼지가 되어>의 리메이크판을 들으면서 정말 과하게 자극을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말씀하신 인디 씬의 경우, 저 자신이 애초에 음악을 거의 듣지 않은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TV와 인터넷의 연계를 통해 형성된 대중음악시장이, 본래의 이윤추구적 경향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입에 잘 맞는 맵고 단 양념을 잔뜩 치면 될 뿐인, 그리고 오로지 그런 맛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의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고 있는 느낌입니다(이는 아이돌음악의 흐름에서도 마찬가지로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중에...). 그런 점에서 저는 자본의 논리와 예술의 문법이 서로 어떻게 얽혀있는가를 떼어놓지 않으면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점에서 선배님처럼 저보다 음악에 훨씬 조예가 깊은 분들의 의견이 궁금하고요.


(신해철이 이런 이야기를 시의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을거라 믿지 않습니다^^!)




3. 이어지는 A의 글: 90년대와 2010년대 한국대중음악에서 '가창력' 개념


<가창력, 90년대와 오늘날>


로이킴의 '먼지가 되어'를 들었을 때 그 먼지 먹은 기분이 떠오르네요. 음원 재활용 프로그램들의 천편일률적인 곡 구성에 대한 지적에 동감합니다. 이것은 아주 기본적인 팝 싱글의 구조(2~3개의 단위를 2~4회 반복하면서 절-후렴 구조에 기승전결 구성을 부여)를 직선적인 파국의 구조로, '양념'을 확 친 형태로 변형한 건데, 90년대 가요계에서는 흔합니다. 80년대 록/메탈의 한국식 토착화의 결과로 볼 수 있을 것 같고요(She's gone 들어보시면 파국으로 진행시키는 요소가 전부 다 들어 있습니다).


파국과 순환, 90년대 음악에서는 이 두 구성 사이의 선명한 대비가 돋보입니다. 록 전통에서는 직선적인 파국의 구조가 강조되고(부활-시나위의 멤버들에서 신해철, 김경호. 한국에서 이상하게 강세인 '발라드' 역시 이 구조를 기반으로 합니다. 어느 순간 한국 발라드가 전부 R&B를 따라하게 된 것도 그 소울 창법에서 파국의 구조를 갱신할 수단을 찾아서가 아닐지) 댄스 음악에서는 절-후렴 구조 본연의 순환성이 강조됩니다('쿵따리 샤바라'를 들었을 때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곡은 절과 후렴 사이의 기승전결 구조까지 파괴한, 완전히 순환적이라서 시간이 흐르지 않는 음악입니다).


파국과 순환, 록 전통과 댄스 전통 중에 어느 쪽이 한국 가요의 주류가 될 것이냐는 대립은 90년대 말까지 음악 담론에서 중요한 논쟁거리이자 구별짓기의 도구였고요. 예컨대 2000년 전후로 아이돌 그룹의 댄스 전통이 일시적이지만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 댄스 전통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록 전통을 유행에서 밀어낸 장본인, 그러면서 록 전통의 시대가 끝난 뒤 그것의 핵심을 그대로 따라해보려고 한 사람... 그러니까 문희준은 린치를 당했죠.


이 맥락에서 가창력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창력은 네 가지 이유에서 90년대적인 개념입니다. 첫째, 록 전통 쪽에서 댄스 전통과 자신을 구별짓는 데 동원한, 90년대적인 대립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둘째, 록과 댄스 모두 90년대에는 가요의 패러다임 안에서 유통되었다는 점에서. 록이든 댄스든 성공하고 싶으면 노래방에서 따라부를 수 있어야 하고, '한 박자 시고~' 무반주로 불러도 곡의 일관성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록을 정의할 때 기타 사운드만큼 보컬 창법이 중요하게 되고요. 이 가요 전통이 얼마나 강하냐면, 한국 사람들은 댄스 음악을 소비할 때도 틀어놓고 춤추는 게 아니라 그걸 따라 부릅니다. 셋째, 가창력은 측정 가능한 척도로 파악되고, 따라서 경쟁과 시상을 줄거리로 하는 TV 예능 프로그램들의 서사와 맞아떨어졌다는 점에서. TV를 안 봐서 지금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90년대에는 (88년부터 2002년까지) 스포츠 중계가 정말 중요한 서사물이었고, 자연 다큐멘터리까지(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등수를 매기고 상을 주는 식이었지요. 넷째, 가창력이란 개념이 쾌락에 대한 90년대 사람들의 이중적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창력은 별다른 게 아니라 그냥 고음부에서의 성량과 배음입니다. 매운 음식을 먹거나 큰 유방을 보는 것처럼 신체적인 차원이죠. 근데 그런 것 같지 않죠. 그 이상의 예술적인 뭔가가 들어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실제로 그 이상의 것이 약간 들어있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 쾌락에 대한 이중성을 바탕으로 가창력은 90년대 중후반 가요계에서 지고의 가치가 됩니다. 가창력 없이 승부를 보려면 서태지나 신해철처럼 음악성의 원천을 다른 데서 끌어오는 예외적인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이걸 잘 보여주는 게 립싱크 논쟁입니다. 립싱크는 옛날부터 댄스 음악과 함께 태어난 거고, 문제가 된 적도 여러 번 있죠.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은 실제로 부른 보컬과 립싱크하는 멤버가 다른데, 이게 들통나서 가요계에서 퇴출됐죠. 그런데 90년대 후반 들어서는 아이돌 댄스 음악이 등장하며서 립싱크 자체의 윤리성이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가요 프로그램 틀어보면 이게 립싱크인지 라이브인지 화면에 표시해주기도 했고, 라이브 하는 댄스가수들은 멀쩡한 핀마이크 냅두고 굳이 춤 추는데 방해가 되는 무거운 마이크를 쓰기도 했죠. 이 논쟁은 2000년대 들어 '립싱크도 장르'라는 이수만의 주장이 인정받는 것으로 일단란된 듯합니다.


2010년대 들어 나가수나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이 90년대 음악을 대거 재활용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90년대 음악의 귀환일 뿐만 아니라 가창력 이데올로기의 귀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두 번째 반복될 때에는 희극이죠. 우리는 나가수가 처음 나왔을 때 진짜 노래 잘 하는 사람들을 재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건 좋습니다. 그러자... 2011년에는 국회에서 립싱크 금지법이 발의되었습니다. 립싱크는 안되고, 굳이 하고 싶으면 불가피한 경우에 사전 통보를 해야 되고, 지키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


립싱크 금지법은 그야말로 희극이었지만, 가창력 개념은 예전의 위세를 되찾게 됩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결국 권위를 가진 기성 주체가 스스로 노력해서 경쟁을 뚫은 젊은이를 인정해주는 서사죠. 경쟁을 수치화해서 객관화하는 서사이기도 하고요. 피겨나 리듬체조 같은 스포츠랑 똑같습니다. 이런 서사적 욕구에도 부합하고, 아이돌만 가지고 음원시장을 굴리는 데 한계가 보이기도 하고, 아이돌의 존재는 아이돌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늘 구별짓기의 기제 같은 걸 요구했기도 하고, 그래서 검증받은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이 '좋은 음악'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게 됩니다(이 모든 희망과 아쉬움이 폭발한 아이유를 들어봐야 할 것 같군요). 이렇게 나가수 초반은 90년대 '좋았던 시절' 음악의 부활이라는 환상을 주는 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2010년대는 가창력 개념에 내포된 이중성, 90년대식의 조심스러움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런 것은 거짓말, 노랑머리, 세기말, 이런 것들 보면서 다 깨졌고, 이제는 음식 사진을 너도나도 SNS에 자랑하면서 신체적 쾌락을 전시하는 시대가 됐으니까요. 그래서 가창력이 어떤 초감각적인 예술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도 유지가 될 수 없습니다. 가창력은 감각적 차원의 특성이고, 그건 음악에서 양념이고, 하지만 음식에서 당장 맛있는 건 양념과 기름이라는 걸, 우린 이제 대놓고 인정하게 된 거죠. 그렇게 가창력을 강조하는 음악은 모로 가든 오르가즘으로만 가면 되는 음악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B씨가 말씀하신, 음원 재활용 프로그램의 천편일률적 곡 구성을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간단한 전망으로 글을 맺어볼까 합니다. 이렇게 분석을 했다고 해서 가창력 개념의 이중성이 완전히 지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랫동안 보이지 않던 가수 두 명이 최근 회자가 됐죠. 이선희와 소향. 이들은 그야말로 발성으로 승부를 보는 사람들이지만, 이전 시대 음악의 아우라를 간직한 가수들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소비자들은 그냥 지르는 것이 아닌 진짜 가창력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구별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가창력 이데올로기는 그런 사람들을 가끔 발굴해 나가면서 유지될 수 있겠죠. 하지만 이미 대세는 지나간 것 같습니다. 90년대 록 전통이 나가수/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재활용, 곧이어 패러디의 대상이 되었다면, 싸이는 90년대 댄스 전통을 마찬가지로 재활용-패러디한 건 아닐지. 정말 꾸준히 흔들리지 않고 남아 있는 90년대의 가요 전통은 더 조용하고 지적인, 유연한 사운드와 분명한 가사에 주의를 기울이는 전통인 것 같고(대표자 한 명 뽑는다면, 윤종신), 그런 음악이 눈에 더 잘 띄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록 전통과 댄스 전통의 대립은 그렇게 쉽게 한 쪽의 영원한 승리나 양쪽의 영원한 소멸로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영미권 수입 음악이 시장을 완전히 장악해야 하는데, 영화시장의 예에서 보듯이 한국의 문화자본은 그렇게까지 쉽게 넘어가진 않습니다. 조만간 이 판을 엎을 댄스 아이돌이 나올지 안 나올지 기다려 봅시다.



[A의 보충 댓글]


다시 보니 "2000년 전후로 아이돌 그룹의 댄스 전통이 일시적이지만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을 때"는 정확하지 않네요. 저 시대는 조성모와 god의 시대였고, 대학 입학했을 때 전후는 비와 SG워너비의 시대였고, 90년대 주역들의 후계자들은 뭔가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을 들게 하던 때였고(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뮤즈, 콜드플레이)... 암튼 90년대 말이나 2000년대 초보다는 뭔가 다양하고 복잡하면서도 힘이 빠져있고 하네요.




4. B의 글: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까지 한국대중음악의 변화: 서사성과 아이돌그룹



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가창력 개념에 대한 상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저 자신이 한국음악전통은 커녕 음악의 문법 자체에 대해 철저히 무지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설명들은 하나하나 흥미롭군요. 저는 얼핏 보면 이것과 꽤 다르지만 느슨하게나마 연결이 될 또다른 사항을 덧붙여보고 싶습니다. 바로 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한국 대중음악의 '서사적' 요소가 어떻게 변모하는지를 개략적으로 스케치하는 일입니다.


저 자신이 소설/이야기 전공자인 탓인지 저는 통상적으로 이야기로 분류되지 않는 것도 서사/이야기라는 관점에서 분석하는 습성이 있습니다(지난 여름 세미나에서 어느 정도 그런 면을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ㅋ). 이러한 관점에서 제가 기억하는 1990-2010년대의 한국대중음악사를 돌아볼 때 흥미롭게 느껴지는 지점 중 하나는 노래가사의 서사가 점차적으로 축소되는 경향을 띤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와 같은 곡들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제가 기억하는 90년대 한국대중음악은 가사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를 구축합니다. 극단적인 사례 중 하나로 박상민의 <무기여 잘 있거라>를 꼽을 수 있겠죠. 특정한 정서가 나오기 전에 꽤나 구체적인 상황제시가 있고 화자의 정서가 등장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2000년에 나온, 그 자체로는 꽤나 패러디의 느낌이 강한) 박명수의 <바다의 왕자>처럼 아예 상황 자체가 진전되기도 합니다. 비교적 정서를 강조하는 경우에도 청자가 상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서사적 맥락이 제시됩니다; 김경호의 <금지된 사랑>이 떠오르는군요. 여러 가지 형식적 변이형들이 있겠지만 여튼 1인칭 화자가 있고, 화자가 자신의 내면과 주변상황을 설명하는데 이게 하나의 서사적 공간을 구축한다는 것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소설과 비슷하다고 봐도 아주 틀리지는 않을 겁니다. 말씀하신 록이든 댄스든 따라부를 수 있어야 한다는 '가요전통'도 노래가사가 서사를 통해 특정한 정서를 구축한다는 특징과 아주 무관하지는 않겠죠.



노래와 서사가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긴밀했다는 사실은 다음의 두 가지 사례를 보아도 분명합니다.


90년대 중후반 한국대중음악계에 벌어진 가장 커다란 변화 중 하나는 TV에 음악전문채널(KMTV, Mnet 등)이 등장한 것입니다. 음악이 본격적으로 영상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거죠. 그 전까지는 주말예능이 끝나고 잠깐 나오는 수준이었고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던 뮤직비디오가--저는 곧바로 지금 보면서 오글거림을 느낄 수 있는 양파의 <애송이의 사랑>이 떠오릅니다--곡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는 엄청나게 중요한 요소로 갑자기 등장합니다. 몇몇 감각적인 시도를 제외하고 처음에 이 MV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 명확한 표준이 잡히지 않았던 시점에 발라드 가수들의 약진과 함께 가장 익숙한 방식에 따라 MV 자체를 영상서사로 구축하는 방식이 대세를 점한 건 매우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제 기억 속에 1999년 스카이의 <영원>은 공연보다는 차인표와 장동건이 등장한, 명확한 서사를 가진 MV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조성모의 곡들도 마찬가지였죠. 심지어 댄스장르에 속한 유승준 역시 적어도 영상의 차원에서 서사적 진행을 채택합니다(최지우가 등장하는 98년의 <나나나>가 있죠).


(당연히 기본적인 곡 전개는 물론이고) 가사의 근본적인 동력으로 서사적 원리가 작동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두 번째 사례는 흥미롭게도 아이돌그룹들의 음악입니다. 한국에 아이돌그룹을 도입하려 했던 최초의 시도에 속하는 영턱스클럽의 노래들은 말할 나위 없이 아주 명확한 서사를 채택하고 있으며, 한국 아이돌(댄스)음악의 본격적인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H.O.T.의 최초의 히트작 <캔디>의 가사는 꽤나 무의미한 내용이긴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1인칭 화자가 서술하는 짧은 연애소설처럼 구성되어 있습니다. G.O.D.의 <어머님께>나 <거짓말> 등은 말할 필요가 을 정도고. 무언가 구체적인 맥락에 호소하는 건 심지어 H.O.T. 5집의 (MV 자체는 이제 어떤 서사를 표현하지 않는) <Outside Castle>에서도 남아있죠. 꽤 뒤의 이야기지만, 이러한 성격은 2000년대 후반 동방신기의 <Mirotic> 같은 곡의 MV에도 희미하게 표현될 정도입니다.



말씀해주신 '가창력'에 대한 설명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는 2000년대 중후반은 대중음악과 서사성의 관계가 완전히 다르게 변모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점입니다; 보통 우리들은 한국의 대중문화를 역사적으로 사고하면서 모든 방향으로의 가능성이 열린 것처럼 보였던 90년대 중반, 그리고 98년 이후의 지속적인 하강기로 간주하곤 합니다만, 실제로 98년 이후 2010년대까지의 세밀하게 보면 이 시기를 결코 매끄러운 직선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07-09년 사이에 무언가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고 그 변화가 종합적인 설명을 요구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2007년에 원더걸스의 <Tell Me>가 등장하고, 정말 압도적인 인기를 끕니다. 이 노래가 한국대중음악의 역사에 끼친 지대한 영향은 후크송이라는 한 단어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물론 이 곡은 그 자체로는 여전히 이행기의 속성을 보여줍니다; 노래의 가사는 이전 시대의 서사적 성격을 간직한 사랑고백의 상황을 채택하고 있으며, 선로를 따라 움직이는 도심의 전차-버스--이것이 그 자체로 서사적 성격을 부여하는 장치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죠--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로 시작하는 MV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후의 다른 노래들에서 완성될 아이돌-후크 송의 근본적인 성격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MV의 각 에피소드들은 특별히 선후관계를 갖지 않는 파편들이며, 이제 에피소드의 이야기보다 반복적으로 나오는 독특한 춤동작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더불어 서사적 성격을 부여하는 전개부는 축소되고 무미건조해지며 독특하고 유혹적인 음색이 부여된 후크가 노래 전면에 등장합니다. 물론 이전의 '서사적' 노래들에서도 후렴구에 가장 많은 비중이 실렸으나, 이제부터는 몇 번 반복되는지 세어보기도 힘들 정도로 후크가 주역을 맡으면서 전개 자체는 아무래도 좋은 부분이 됩니다. (한국 아이돌 걸그룹의 오래된 특징인) 소희의 독무나 가창력-고음파트가 인위적인 절정-결말부로 설정되어 있는 것은 사실상 후크가 (전에는 형식적으로나마 일정한 역할을 보장받던) 전개부분의 영역을 침식해들어가면서 곡의 시작과 결말 자체가, 혹은 그것들을 배치하던 서사의 논리 자체가 와해되는 사실을 보강하기 위한 요소로 이해될 수 있을 겁니다.



아래는 이 글을 쓰면서 급하게 찾아들어보고 정리한 내용입니다.


<Tell Me> (Youtube에 돌아다니는 공식 MV 기준, 숫자는 초 입니다)


20-40 도입부

40-55-65 전개A+B(고조)

65-70 훅A["어머나 다시 한번 말해봐"]

70-85 훅B*2

100-125-160 전개A+B, 훅A+훅(B*2)

160-175 독무(소희)

175-183 ?

183-193 랩[유빈]+훅

193-235 훅A-B[213-30 선예 '가창력']; 끝

MV결말



후크송의 문법이 어느 정도 성립된 <Tell Me>에 적게나마 남아있던 이행기적인 성격을 걷어내고 이러한 경향 자체를 완성시킨 대표적인 곡으로 저는 2009년 초에 나온 소녀시대의 <Gee>를 꼽고 싶습니다. 이제는 시작과 끝을 제외하고는 (상대적으로 평범함에도) 후크가 훨씬 강력하게, 처음부터 노래를 장악하며, 전체적 구성도 훨씬 깔끔하고 반복적입니다. 잠시 끼어드는 전개B를 제외하면 사실상 노래의 서사가 사라졌다고 해도 좋습니다. MV, 가사 모두 역시 이제 어떠한 '이야기적' 성격도 띠고 있지 않죠. 남는 것은 구체적인, 서사적인 맥락으로부터 분리된 여성화자의 정념과 그러한 정념을 품은 화자의 이미지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소녀시대는 주지하다시피 그러한 이미지와 이미지에 맞춰진 상품으로서의 아이돌그룹이 소비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가장 성공적인 사례이기도 하죠(90년대의 가수들이 전혀 소비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형태로는 아닙니다...우리는 위에서 예로 든 뱅크나 박상민의 노래로부터 소비대상으로서 이미지로 구축된 화자를 찾을 수 없습니다). 정리하자면 곡 전개 형식, 가사내용, 영상의 차원 모두에서 서사가 훨씬 짧은 단위, 이미지에 가까운 단위로 대체된다는 점에서 이 노래는 2000년대 후반에 대중음악에서 나타난 변화를 가장 강력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역시 간략한 정리를 덧붙입니다.


<Gee> (Youtube MV 기준)

17-41 도입부

41-46-51 훅A(46-51 훅A')

60-80 전개A

80-100 훅B

100-160 훅A-전개A-훅B 

160-176 전개B

177-197 훅B

197-217 훅B(+태연 '가창력'); 끝

MV결말



반드시 <Gee>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대략 2009년을 전후해서 다른 가수들에도 그에 준하는 변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빅뱅은 2007-08년까지 <거짓말>, <마지막 인사>, <하루하루>에서 힙합적 스타일에 기초한 후크송을 내는데, 이 시기까지 가사와 MV 양자에 공히 선명히 드러나는 서사적인 성격은 2011년 초의 <Tonight>에서 자기미학적 이미지로 대체됩니다. 이 노래에서 "그대"는 정말 피상적인 껍데기만 남아있으며, 핵심은 거의 자기 탐미적이기까지 한 화자의 이미지 자체이며 최초에 ("그대"와의 관계를 통해) 남아있을 것만 같아 보이던 서사적 설정은 결국 끝까지 한발자국도 전진하지 않으면서 사라지죠. 1년 뒤 (오토튠으로 뒤엎인) <Fantastic Baby>에서 이런 경향은 더 강해지고 MV는 이제 폭발하는 이미지 자체로 채워집니다. 물론 이때를 전후해서 '클럽'이라는 새로운 공간이 대중음악의 주된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한다는 사실도 짚어둘만 합니다; 새로운 공간적 배경은 빅뱅과 2NE1 양자 모두의 노래가사에서 등장하는 아주 직접적으로 (주로 성적인) 쾌락추구를 천명하는 화자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후크송의 시대, 혹은 대중가요에서 서사가 축소된 시대에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덧붙일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노래가사에서 서사가 사라졌다면, 노래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 자체가 이전의 전개/후렴구에서 후크로 대체되면서 시간적으로 축소됩니다. 그리고 그 축소된 시간을 훨씬 더 다양하고 강한 자극을 제공하는 음들이 더욱 밀도있게 채웁니다. 빅뱅의 2010년대 음악을 듣고 <Tell Me>를 다시 들으면 후자의 후크가 무척이나 소박해서 거의 담백해보일 정도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의 대화에서 썼던 표현을 가져온다면, 양념의 농도가 엄청나게 높아진 셈입니다.



요컨대 90년대 후반부터 2010년 전반부까지 대중가요에서 주류를 점한 아이돌그룹들의 노래들을 좇아온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경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서사의 해체, 노래를 구성하고/감상하는 단위의 시간적 축소, 단위시간당 자극의 증대. 자극의 증대는 (저는 정확한 용어는 모릅니다만) 전자음의 도입과 박자/비트가 보다 짧게 반복되는 경향, 템포가 빨라지는 것 등과 무관하지 않겠죠. 이 기간을 거치면서 우리는 이제 더 시공간적으로 더 협소해진 인식의 단위에서 더 강한 자극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극들을 배치하는 전체의 서사적 구성은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교묘하게 계산되었을지언정 음악 청취의 경험에서는 거의 파괴된 것이나 다름없어졌습니다.


이러한 맥락들을 감안한다면, 90년대의 '가창력'과 2010년대의 '가창력'이 왜 상당히 다른 것으로 등장했는지, 후자가 왜 양념범벅에 가까운 도구로 전락했는지를 조금 더 역사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오디션 및 음원재활용 프로그램들은 서사성의 상실을 이전보다 훨씬 물신화된 형태로나마 복구하려는 경향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서사가 담겨있는 과거의 노래들을 조악한 형태로나마 다시 끌어오는 상황이나, 그 자체가 출연자에게 어떻게 '스토리'를 부여하느냐에 프로그램의 성패가 달려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서사로 돌아가려는 어떠한 뉘앙스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물론 이 모든 서사가 훨씬 기업적 생산물의 형태로 돌아온다는 점은 잊어버릴 수 없겠죠). 아마 오늘날의 대중음악을 비판적으로 읽는 작업은 그러한 서사로의 회귀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에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5. 추기: 한국대중영화에 관한 B-C의 댓글 대화



C: 나가수나 불후의명곡, 슈스케같은 프로그램에서 지나간 세대의 음악이 신세대 가수의 입으로&첨단화된 음악 장비로 리메이크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지금 우리나라 대중문화가 직면한 위기의 양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인 것 같아요. 말씀하신 '과한 양념'이라는 건 사실 신선도가 떨어진 재료의 흠을 가리기 위한 것(ㅠㅠ)이기도 하고, 이건 음악만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의 한국 주류대중문화는 기술적인 성취가 높은 반면에 진정성 측면에서는 대개 과거보다 훨씬 못해졌다는 평들이 많죠(그리고 이러한 평조차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질만큼 현상은 장기화되고 있는 듯해요). 이를테면 한국식 블록버스터의 경우ㅡ가장 최근의 사례로 <명량>에 대한 담론이 있었죠ㅡ테크놀로지적 측면의 진보성과 내용적 측면에서의 부실함이라는 부조화의 문제가 가장 눈에 띄는데, 결국 나가수나 불후의명곡에서 과거 세대 음악을 리메이크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고 봐요. 음악적 기교로 따지면 과거에 비할 바 없다고 해도, 거기에 원작을 능가할 만한 어떤 진정성이 있다고 보여지진 않고(수용자들도 그걸 염두에 두는 것 같습니다) 다시 또 일회성으로 소비될 뿐이죠.. 뭐랄까 지금의 한국 주류대중문화가 과거 세대 대중문화의 진정성을 다시 재현하고싶은 욕망은 있지만 그것을 실현하기가 불가능한 상태에 와버린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점에서 <명량>이 천만영화가 될 가치가 있느냐에 대한 대중들의 열띤 논쟁도 그렇고(오히려 영화평론가들은 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었던 게 신기했습니다), '언더그라운드'문화였던 인디음악이나 예술영화가 '오버그라운드'로 슬슬 올라오는 점(최근으로 치면 '10cm'음악의 유행이라든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흥행이라든가 하는 사례가 생각나네요.)은 그만큼 지금 상당수의 대중들이 주류 대중문화에서 대체로 부재한 '진정성','예술성'을 느낄 수 있는 대안을 갈구하고 있다는 뜻은 아닐까 싶어요.



B: 김홍중 교수 같은 사람이 진정성 같은 키워드로 90년대 이후를 설명하려는 노력을 하는데 저는 그게 그 자체를 핵심적인 원인이라기보다는 다른 요인들의 작동에 따라 빚어진 현상으로 간주하는 쪽이 조금 더 생산적인 독해가 가능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는 수년 간 영화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에 몇몇 우려의 코멘트 말고는 상황을 잘 몰라요;; 혹시 영화의 서사/문법 차원에서나 '내용의 형식' 차원에서 한국영화가 어떠한 내/외적 어려움에 직면하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들이 있을까요? 사실 '진정성' '예술성'은 그 자체로는 매우 모호하게 쓰일 수 있는 용어들이기는 하죠('소비'라는 단어가 적어도 소비자들의 행동양식/수용양식으로서 설명될 수 있는 것에 비하면, 앞의 두 단어는 조금 더 복잡할 듯 해요).



C: 근래의 한국 주류상업영화들을 보면서 제가 개인적으로 좀 문제삼고싶은 부분이 있었다면, 상당수의 영화들이 서사적 쾌감을 이끌어내는 데만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이른바 '막장드라마화'가 되거나 '반전'에 어떤 강박이 있거나 하는 식이죠. 그래서인지 오히려 요즘 나오는 독립영화들보다도 소재적 차원에서 다양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평가를 받는 영화들이 많이 나오지 않아요. 결말에 맞추어 이야기를 짜맞추는 식이다 보니 이야기의 결이 흩어지기 쉬운 것 같습니다. 뒤로 갈수록 내용이 엉성해진다던가요..;; 


그리고 여기에 적지않은 기여를 하는 것이 제작사들의 시나리오 교정 방식인듯 합니다. 언젠가 모 상업영화의 시나리오 모니터링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시나리오 교정 방식을 보고 좀 놀랐어요. 각 신 마다 항목을 만들어서 '재미없는 장면'은 잘라내버리고 '재미있는 장면'만 남겨두는 식으로 수정하더군요... 이러다보니 개별적인 장면들은 훌륭한 데 반해 전체적인 이야기가 좀 어색해지는 경우들이 있어요. 그런데 또 국내 흥행하는 영화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이야기의 전체적 맥락이 이상한 것이 관객들 반응, 호불호에 치명적 영향을 주는 것 같지는 않아요.일반적인 관객에게는 오히려 배우의 연기가 어떻고 결말이 어떻고가 영화의 좋고 나쁨의 판단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하나의 영화를 두고 평론가의 의견과 대중의 의견 사이 괴리가 심해지는 것도 거의 피치 못할 상황인 것 같아요.


B: 말씀해주신 두 가지 지점 모두 제게 무척이나 흥미롭게 들립니다. 먼저 두 번째 항목을 다음과 같이 옮길 수 있을 듯 합니다. 영화라는 서사 전체의 유기적 구조가 무너지면서 파편화된 부분들이 제공하는 즉각적인 쾌락이 전체의 구성보다 중요한 것이 됩니다. 이는 종합적인 서사의 연관관계를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소비자대중의 즉각적인 취향에 복무하는 공식으로서 영화'생산'(저는 영화가 명백히 산업화된 생산구조를 통해 만들어지는 상품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의 이윤창출과 대중적 소비자들의 감각적 쾌락추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뒤집어 말하자면, 이러한 상황에서 화폐와 감각이라는 근대적 경제인homo economicus의 두 척도 이외의 다른 요소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 됩니다. 즉 말씀하신 상황은 98년 신자유주의 도입과 함께 가시화된 한국인의 경제인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맞닥트리는 '합리화'의 결과이기도 하죠. 뒤집어 말한다면, 이러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근본적으로 논파하지 않고서는 예술적 생산이 쾌락제공상품 이상의 것이 되기는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첫 번째로 말씀하신 것, 그러니까 '서사적 쾌감'을 이끌어내는 막장/반전드라마에의 강박은 이러한 조건에서 볼 때 조금 더 복잡하게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왜냐하면 반전이나 막장적 요소에 기초한 서사는 한편으로 그 자체가 쾌감을 추구하는 것 못지않게 갖가지 파편들을 종합하는 기제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멜로드라마에 대한 논의를 참고하면 좋겠네요. 즉 감각적인 쾌락추구가 서사가 사라지고 파편화된 '단자'들을 개별적으로 향유하는 소비양식을 가져왔다면, 멜로드라마는 매우 단순하고 과장된 형태로나마 그러한 단자들을 다시 붙들어 하나의 서사로 구축하는 서사장르로서 전자의 경향에 대한 일종의 반대급부로 해석할 측면도 있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대중음악에서 오디션/음원재활용 프로그램에서 되돌아오는 서사적 요소를 그대로 환영할 수 없는 것처럼, 이러한 멜로드라마적 서사가 갖는 역사적인 함의는 조금 차분하게 풀어내야 할 것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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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이상 2017.01.31 04:06 신고 Modify/Delete Reply

    이 좋은 글을 이제서야 읽네요. 이와 관련해서 또 하나 참고할 만한 글 링크합니다.

    https://brunch.co.kr/@mcwannabe/48

    개인적으로는 90년대 음악들보다 지금의 음악들이 수준은 더 높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문제는 수준이 아니라 그것이 생산되는 방식에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사실 저는 한국음악의 진정한 르네상스는 70년대 말부터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기 전까지였다고 보고 그 이후부터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보는 편입니다. 양적으로는 성장했을지 몰라도 질적으로는 글쎄요? 씬을 뒤집었다 싶은 가수가 누가 있었나 싶네요. 그렇다고 '좋았던 옛날을 회고'하는 건 꼰대짓이고, '요즘에도 좋은 음악은 많다'고 단순화하는 것도 참 가식적인 짓이고...아직은 좀 더 지켜보렵니다. 무엇보다 오버씬은 실망스러울지언정 인디에서는 매 년마다 명반들이 나오고 있으니 안심하고도 있고요.

    • BeGray 2017.02.13 01:04 신고 Modify/Delete

      글 추천 감사합니다. 윤광은 씨 글이로군요. 다소 낭만적 정조가 엿보이지만,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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