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 일기. 책 읽고 정리하기. 걷기.
Comment 2014. 10. 3. 21:451. 책을 어떻게 읽고 정리하냐에 대한 지인의 코멘트를 보고 답플을 달다가 제법 길어져서 여기에도 옮긴다.
저는 읽는 책마다 조금씩 다르긴한데, 기본적으로는 지저분하게(?) 봅니다. 학부 때까지는 웬만하면 접지도 않았는데 석사 때부터는 그냥 필기구로 줄을 죽죽 긋고 화살표도 치고 접기도 하고... 중요한 대목이 별로 없는 책은 대충 구석을 접는데 중요한 대목이 너무 많은 책들은 난감해하다가 최근에야 포스트잇플래그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의 책 정리 습관을 조금 더 세밀하게(?) 분석해보면 크게 세 단계로 나뉘는 것 같아요.
(1) 인용/중요부분 체크: 접기, 플래그, 필기구(줄긋고 v 표기하고 등등). 한국어 책은 그나마 좀 나은데 영서는 이렇게 안 해놓으면 정작 페이지를 찾아도 중요한 대목을 찾기가 어렵더라고요.
(2) 메모: 이동할 때 등등 모든 것이 갖추어지지 않은 때 책을 읽는 경우가 많아서 그냥 필기구 하나 들고 끄적거립니다...저는 부지런하고 세심한 사람이 못 돼서 다양한 필기구는 못 쓰겠더라고요. 그냥 검정 펜 하나 갖고 적어요.
가장 간단한 형태는 줄치고 체크하고 동그라미치는 것, 조금 더 복잡한 형태는 (특히 문단 내외의 논리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 화살표로 서로 다른 부분을 연결하는 것, 마지막으로 중요한 대목이나 사고를 촉발하는 대목들은 옆에 직접적으로 코멘트를 하는 것. 코멘트는 만약 논리가 복잡한 텍스트라면 옆에 제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게 재정리를 하는데, 반드시 문장의 형태인 건 아닙니다; 개념어와 개념들의 관계를 나타내는 기호로만 이루어진 간단한 도표를 주로 그립니다(ex: "헤겔 -까-> 칸트 in 윤리학+인식론+논리학"). 읽고 의문이 들거나 하면 질문을 쓰고, 다른 저술이나 개념이 떠오르면 적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의 요점은 1)논리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시각화하는 것, 2) 다른 저술 또는 제 머릿속에 이미 존재하는 지식체계들과 연결하는 것, 3) 추가적인 질문을 끌어내는 거죠. 그래서 중요한 책의 중요한 (혹은 제 흥미를 끄는) 대목일수록 옆에 악필로 된 코멘트가 가득합니다. 이렇게 읽는 게 세미나할 때도 그렇고 실제로 더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단순내용요약이나 인용구 정리는 사실 읽으면서 머리가 좋아지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듯; 저는 이걸 적극적인 독서라고 부르고 싶네요.
(3) 기록: 페북과 블로그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20대 후반부터 이제 기억력이 10년 전과 같지 않음을 자각하게 되면서 읽은 것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더군요. 무엇보다 이렇게 정리하면서 '나의 언어'로 한번 다시 쓰는 게 훨씬 기억에도 남고 추가적인 사고도 촉발하게 됩니다.
기록방식은 크게 세 가지. 1) 전체적인 인상을 단순하게나마 가벼운 스케치로 남기거나 2) 인용할 대목들이 있을 경우 나중에 아예 바로 긁어오기 좋게 타이핑을 치거나(저처럼 읽은 책을 지방의 고향으로 보내는 사람은 특히 어쩔 수 없습니다); 이 경우 대목에 따라서는 타이핑한 바로 아래에 짧은 코멘트를 쓰기도 합니다...코멘트도 그때 그때 기록을 안 하면 다 까먹어서ㅠㅠ 3) 주요한 포인트를 잡고 정리&발전시키는 '비평적인' 글을 쓰거나. 1~3은 다 해놓으면 어쨌든 제 손가락과 뇌를 거치는 거고, 특히 1과 3은 어느 정도 저 자신의 언어가 되기 때문에 다음 번에 원문을 직접 경유하지 않고도 훨씬 자연스럽게 제 언어처럼 인용할 수 있게 됩니다. 특히나 저처럼 사유의 논리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단순히 해당 논리에 대한 교과서적인 설명을 하는 게 아니라 해당 내용을 저의 지식/논리체계의 일부로 흡수하고 제 체계를 확장시키는 게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니까요. 사실 (1)과 (2)도 결국에는 기록을 위한 작업이긴 하죠.
2.
선배 결혼식에 갔다. 직후 지인과의 약속이 당초 예정보다 매우 일찍 끝났다. 선릉에서 역삼역까지 갔다. 오후 3시, 초가을 볕의 색이 밝으면서도 쏘아지르지 않았고, 날은 적당히 따스했지만 너무 덥지 않았고, 무엇보다 사람이 나무보다 많지 않았다. 고개를 젖히고 봐야 꼭대기가 보이는 빌딩 위를 스쳐가는 구름을 보면서 하늘이 높다는 걸 알았다; 너무도 높은 하늘의 높이를 느끼기 위해 우리는 자그마한 척도로서 고층빌딩을 만들곤 한다. 이런 가을날에 걷지 않을 수 없어서, 그리고 조금은 과제 스트레스로부터의 도피심리로 좀 더 걷겠노라 마음을 먹었다.
의외로 선릉-강남 구간은 높은 나무들이 적당히 들어차 있어 고층건물들을 잘 가려주었다. 유리를 뒤집어씌운 검은 빛 건물들이 햇볕을 반사시켜 내쏘았지만 나무들이 잘 덮어주었다. 제법 실하게 공간을 메운 이파리들 틈새로 하얀 빛이 은은하게 흔들려 뿜어져 나오는 게 오히려 더 괜찮은 풍경같아 보이기도 한다. 거리를 본다기보다는 거리 위의 하늘을 보고 걷는다. 가끔 녹빛이 끝나면 연하게 푸른 하늘과, 그 하늘을 빛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만 흐르는 구름이 보였다. 어차피 얇디 얇은 옷이지만 외투를 벗어들고 소매도 팔꿈치까지 걷어부치고 계속 걸었다. 사람들은 누군가와 팔짱을 끼거나, 이어폰을 꽂거나, 손전화를 만지작 거리며 걷는다. 나는 45도 정도 고개를 들고 하늘과 건물을 본다. 마치 사람이 전혀 없는 곳의 사진을 찍을 때와 마찬가지의 기분으로.
강남역에는 싸이를 기념하기 위해서인지 '강남스타일'이 적힌 무대가 있다. 그곳에는 말 대가리가 그려져 있는데, 인간이 너무나 싫어 차라리 말을 사랑했던 한 냉소적인 풍자가가 떠오른다. 무대를 지나쳐보면 오른편을 본다. 강남역은 지하도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렇게 친절한 곳이 아니다. 길을 건너려 횡단보도를 찾으면 너무 멀찍이 떨어져 있고, 그곳에까지 가려면 두꺼운 소비대중의 존재를 버티며 나아가야 한다. 시위하는 군중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군중도 좋아해본 적이 없는 나는 마치 숨을 참고 잠수하는 기분으로 즐거운 사람들의 무리를 통과한다. 강남역과 같은 곳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은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아는 사람과 닮은 얼굴을 마주치게 되고, 닮지만 그가 아닌 얼굴은 내 기억에 남아있는 그의 얼굴에 어려있는 독특한 분위기와 함께 씻겨가 버리어 마침내 그 얼굴은 새로 칠한 페인트가 빗물에 씻겨 내려가버려 원래의 밋밋한 면이 드러난 벽처럼 흐릿한 얼굴로, 대중 속의 또 하나의 얼굴로 중성화된 이미지만으로 남는다.
사람들로부터 고개를 떼어내 들면 첫 눈에 보기에는 얼핏 영화에서 본 미국의 도시와 같은 광경이 있다. 영화에서 보던 건 영화에서나 보는 게 맞지, 굳이 여기서 실물로 보고 싶지는 않다. 조금 더 오래 시선을 두면 결국에는 미국의 거리와 다른 한국 강남의 거리가 나오게 마련인데, 그 고유함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태양빛을 반사하는 유리로 된 거대한 건물들이 서로에게 필사적으로 빛을 밀어낸다. 그 와중에 한 건물의 유리면에 다른 건물이 비치고, 전자에 맺힌 후자의 상은 기묘하게 찌그러져 원래보다도 더욱 흉한 물건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고층건물들은 서로에게 빛과 열을 떠넘길 뿐만 아니라 서로의 추한 외관을 드러내어 서로에게 보여준다. 건물들의 시선과 그것을 타고 흐르는 태양빛의 궤적을, 마치 미셸 푸코가 예술비평에서 그러곤 했듯이, 선으로 그린다면 그곳에는 거미줄처럼 뒤얽힌 빛의 판옵티콘이 있을 것이다.
가까스로 강남역을 빠져나오면 녹지가 조금 있는 교대-서초 구간이 있다. 이쪽은 걸어갈수록 건물이 상대적으로 작달막해져서 앞의 선릉-강남 간 거리를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후자만큼 나무들이 잘 갖춰져 있지는 않으며 공기도 좀 더 탁하다. 교대역 근처에는 어지간한 건물마다 법무사와 법무법인이 하나씩은 들어서 있다. 조금 더 걸으면 주거지역이 나오면서 녹지의 비율이 조금 더 높아진다. 그러나 교대-서초의 녹지들은 좀 더 높은 비율로 사유화되어 있다. 길거리의 아파트를 둘러싼 담장의 존재가 조금 더 뚜렷해진다. 법이 사유재산과 계약으로부터 시작한다면, 서초의 주민들은 법의 근본정신을 충실히 구현하는 이들처럼 보인다. 여기에서부터 방배-사당에 이르기까지 담장은 높아지고 종종 담장 위에 철조망이 둘러쳐진다. 나무와 풀의 비율은 높지만 그 대부분은 담장 안에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자신이 누군가의 단순한 재산이 아님을 외치고 싶어하는 덩굴과 나무가지만이 철조망 틈새로 자신의 손길을 뻗는다. 그나마도 없었다면 나는 이 집과 집단주택들을 보며 엊그제 몰래 들여온 담배와 빵쪼가리를 잔뜩 끌어안고 흐뭇해하는 누런 얼굴의 죄수들, 마치 스티븐 킹의 소설에 나올 것 같은 죄수들의 이미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오가는 혼탁한 자동차무리를 뚫고 서초역을 지나면 어느 순간 갑자기 높은 건물들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오른편에 홀로 높이 대법원이 우뚝 서 있다. 각종 변호사들, 법무사들, 세무사들, 변리사들의 사무실은 그 앞에서 마치 매월 소작료와 노동력을 바치는 농노들처럼 쪼그라든다. 이 영주는 정말로 자기의 넓은 봉토를 갖고 있어서, 주위의 갖가지 건물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숨통을 막고 있는 땅과 달리 이 봉토에는 나무와 주차장, 그리고 작은 건물 몇만이 얼핏 보일 뿐이다. 대법원 앞에서 직진의 길은 막히고 어쩔 수 없이 왼쪽으로 꺾어잡고 걸음을 지속해야 한다. 지금까지 사당역 방향임을 가리키던 표지판도 어느새 사라져서 도보로 이 길을 처음 지나치는 나같은 여행자는 살짝 헤맨다. 여기서부터 길의 오른편에는 계속 담장이 처져 있다. 그 담장 너머에는 무언가 좋은 것이 있어보이지만 어쨌든 주변에 나눠줄 생각은 없어보여서 감히 문을 두드리고픈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담쟁이덩굴이 그나마 방벽을 뒤덮어서 냉랭한 잿빛 얼굴에 연지곤지라도 발라준 꼴이 되었다. 문득 왼편, 건물로 가리워지지 않은 하늘을 보니 낮에 뜨는 달이 제법 크게 하이얗게 스쳐지나간다. 합리적이고 저렴하고 맛도 좋다지만 내가 하루 한 끼씩 저걸 먹었다가는 금방 파산해버릴 식당들이 이어진다. 이곳에는 풍요로움, 질 높은 생활, 그리고 두려움이 있다. 택시에서 내린 어머니와 꼬마애들이 얼른 카드를 찍고 잠시 열린 문 틈으로 후닥닥 뛰어들어간다. 잠시 열린 문 너머로 평범하고 특출날 것 없는 저층 연립주택, 지방 소도시에 가면 조금 연식이 된 얼굴로 무심하게 서 있을 평범한 건물과 별 다를 게 없는 걸 본다. 단지 여기에는 없는 삶의 두려움, 그리고 너무나 좁아진 '나만의 세계'가 높아진 부의 집적도와 함께 덧붙여졌을 뿐이다.
방배역에는 우면산이 있고, 우면산에는 돌아가신 선생님과의 추억이 있다. 철조망을 친 불안하고 추한 광경들을 잠시 덮어놓고 조금 높이 솟은 언덕과 같은 산을 본다. 예전에는 방배역에서 모여 매봉재산을 준비운동삼아 건너고 다시 우면산을 오르곤 했더랬다. 잠시 가깝지만 먼 산을 보다 다시 고개를 돌리고 사당역으로 향한다. 처음에는 아파트와 주거구역이 있다가 점차 상가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건물은 그렇게 높지는 않아서 해가 조금씩 지면과 가까워지는 걸 볼 수 있다. 가을은 볕이 견딜만한 만큼 성큼성큼 해가 떨어진다. 저녁시간이 가까워지면서 각종 식당에서 냄새를 피우기 시작한다. 나는 조금 일찍 길가의 식당에서 요기를 하긴 했는데, 양이 부족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더 돈을 쓰고 싶지는 않다. 아직 장염에서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태양의 흰 빛이 노을볕의 붉고 노란 빛깔로 바뀌어 갈라져 나온다, 마치 프리즘처럼. 갑자기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고, 땀에 젖은 몸은 순간 차갑게 식는다. 감기에 걸리기 전에 발걸음을 좀 더 재게 놀린다. 얼마 걸리지 않아 사당역이 갑작스럽게 튀어나온다. 여기서부터는 다시 익숙한 길이다.
낙성대 버스타는 곳까지 왔을 때 6시가 조금 안 됐다. 기숙사까지 걷는 것은 늘 하던 일이지만, 오늘 바람을 더 맞았다간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싶어 버스를 탔다. 저녁 6시 경 정거장에 내렸다. 하늘은 아직 맑고 푸르렀고, 구름은 소박하게 여기 저기 거닐었다. 나무로 뒤덮인 사이 번쩍이는 이마를 내보이는 바위산이 보인다. 그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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