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배젓. <롬바드 스트리트>. / 폴 벤느. <푸코, 사유와 인간>

Reading 2014. 8. 1. 10:24

월터 바지호트[배젓]. <롬바드 스트리트>. 유종권, 한동근 공역. 아카넷, 2003. [대우학술총서 504]


미국의 월 스트리트 정도에 비교할 수 있을 <롬바드 스트리트>는 19세기 중반, <이코노미스트>Economist의 창립자이자 편집자였던 월터 배젓Walter Bagehot(국역본은 이 이름을 '바지호트'라고 해놨다...어쩐지 책 이름은 낯익은데 저자 이름이 전혀 낯설어서;;) 이 동시대 영국의 금융시장과 영란은행Bank of England(스코틀랜드 등과 분리되어 있는 잉글랜드의 은행이다)의 역할에 대해서 나름의 실무적인 감각을 갖고 '비평'적으로 개입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고전파 경제학사를 따라가다 보면 (스미스는 일찍부터 신용 이야기를 하기는 하지만) 금융이나 은행 이야기는 별로 없다. 본인이 브로커였던 리카도는 좀 다를지도 모르겠는데 아직 내가 안 읽어봐서... 배젓이 이 글을 쓴 때는 한계효용혁명의 주역이자 신고전학파의 문을 연 제번스William Stanley Jevons의 활동기와 동시대인 (실제로 제번스에 대한 언급이 몇 번 나온다) 1873년이다. 국역본은 배젓 사후 1890년대에 몇몇 자료가 보충되어 출간된 판본으로부터 번역한 듯 싶다. 여튼 이 시점에서 영국의 금융경제 및 은행업의 발전 정도는 특히 1870년의 보불전쟁으로 유럽의 자본이 대거 영국으로 들어오는 상황과 맞물려 유럽에 단독적인 선두주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고, 배젓은 금융업의 성장이라는 맥락에서 18세기 말부터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온 신용공황--적어도 1797, 1825년의 공황이 크게 언급되며, 1844년 필 법안Peel's Act의 발의 이후로도 세 번에 걸쳐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영란은행이 (최종지급준비금을 보유하는 유일한 은행으로서) 견지해야 하는 원칙들을 나름대로 제시한다.


사실 나처럼 경제학 수업을 전혀 듣지 않은, 약간의 개념들만 숙지한 독자가 읽어도 배젓의 주장과 글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역으로 오늘날 금태환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미국 연방은행의 조폐권에 따라 움직이는 세계금융의 흐름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금태환이 여전히 중요하며 신용의 기저에 있는 '토대'로서의 실물분야에 대해 이론적인 최종적 중요성을 부여하는 배젓의 논의가 신기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18-19세기 근대영국사회의 대략적인 면모를, 경제사를 포함해서, 스케치하는데 관심이 있고,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이 있다면 1) 18-19세기 간 영국 금융경제의 발전 (물론 이 사실은 19세기 중반부터 영국 산업경제의 우위가 도전받기 시작한다는 사실과 대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2) 19세기 후반 유럽의 주요 자본이 영국으로 몰리는 상황, 상대적으로 뒤처진 독일과 (정부통제정책에 기반한) 프랑스의 금융시장; 1872-73년 기준으로 런던의 대부자금은 파리, 뉴욕, 독일의 것을 다 합친 것보다 2배 이상 크며, 1891년 기준으로도 다른 세 곳의 합의 두 배에 가깝다) 3) 18세기부터 주기적으로 반복되어온 공황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중앙은행이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고찰이 행해지지 않았던 영국의 '자유주의적' 정치경제학적 이데올로기(배젓이 가장 비판적으로 언급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5) 17세기 말 휘그 정부의 수립--명예혁명--부터, 그리고 추락한 정부의 신용 때문에 그것을 벌충하는 자본을 동원하기 위하여 등장한 BoE 6) 호황, 불황, 공황의 주기 및 필연적인 발생구조에 대한 논의가 사람들의 인식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맑스만이 유일하게 그 문제를 다룬 사람은 아니었다), 배젓이 그것을 노동분업의 문제와도 연결시킨다는 것 7) 단순히 유휴노동의 유무 및 양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인 화폐자본의 축적이 상품과 자본의 유통만이 아니라 사업 자체의 운동규모에도 필요조건으로 기능한다는 인식의 등장 정도를 꼽고 싶다. <이코노미스트>의 창립인이 영란은행과 같은 사실상의 공적인 기구 (물론 그는 이것이 공적인 기구가 아니며 일반 은행과 같다는 진술을 강박적으로 덧붙이지만, 그 기능의 특별함을 부정하지는 않는다)의 역할을 강조했다는 것은 어쨌든 흥미롭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농업혁명 -> 상업/산업혁명 -> 금융발전의 도식을 암암리에 전제하지만, 실제 경제사를 보면 금융과 상업/산업의 발전이 분리 불가능하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 (애초에 산업은 일정 이상의 노동력, 자본의 축적--'시초축적'-- 및 그것의 재빠른 이동을 토대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

국역본은 대체로 읽기 쉽다. 고유명사 번역이 몇 군데 거슬리지만, 요지를 이해하는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폴 벤느. <푸코, 사유와 인간>. 이상길 역. 산책자, 2009.


폴 벤느의 <푸코, 사유와 인간>_Foucault, sa pensée, sa personne_ 국역본을 읽었다.원저는 2008년 출간, 국역본은 2009년 1쇄 출간. 역자는 벤느의 주저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_Comment on écrit l'histoire_를 먼저 번역했던 이상길 교수. 이번에도 번역은 괜찮다. 서강대 김동규 교수의 서평을 보면 하이데거 철학용어들의 번역이 조금 아쉽다고 하는데, 내가 하이데거에 아는 게 없어서 크게 느끼지는 못했다. 해당 서평에서는 프랑스어 souci가 하이데거의 sorge를 번역한 것이기에 염려, 불안 등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하는데, 후기 푸코의 핵심 개념인 souci de soi 를 보통 자기-배려라 번역한다는 걸 말해두자. 자기-배려는 고대 그리스의 epimeleia heautou를 또 옮겨온 것이다. 내게 아쉬운 게 있다면, 푸코의 텍스트를 포함해서 벤느가 거론/인용하는 자료들 중 국내에 이미 번역된 텍스트들의 국내 서지가 붙어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푸코의 <말과 글>_Dits et Écrits_에 실린 텍스트들을 인용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텍스트인지 거론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예컨대 <말과 글> 1권 30쪽 이런 식이면, 국내/영어권에 이미 다른 경로로 번역된 푸코의 글인지 확인이 불가능하다) 정도.


책 자체는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의 문고판 부록으로 붙었던 "역사학을 혁신한 푸코"(Foucault ne rêvait pas à la révolution)의 연장선/확장판에 가까운 느낌이다. 1975년의 논고에서 벤느는 푸코를 거의 유명론자에 가까운 입장에서, 즉 구체적인 사실로부터 출발해 기존의 본질주의적 관념을 파괴하고 역사를 재서술re-narration하는 역사가로 독해했다. 이는 벤느 본인의 입장에 푸코를 끌어당긴 것이면서, 동시에 장치, 실천 등의 키워드가 강조되는 후기 푸코의 본면을 가장 잘 드러내는 글이기도 하다. 2008년의 짧은 책에서 벤느는 기존의 입장의 연장선에서 푸코를 설명할 뿐만 아니라 푸코 친구로서 보아왔던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덧붙여 푸코를 '회의주의자'로 부른다(흄과 비트겐슈타인, 몽테뉴가 짧지만 중요하게 언급된다는 점을 지적하자). 나는 철학상의 회의주의자로만은 포섭될 수 없는 벤느의 용법이 지니는 의미를 일일이 해명하고 싶지는 않다. 그가 책의 제목을 원래 '사무라이와 금붕어'라 짓고 싶어했다는 데서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겠지만, 이때의 회의주의자는 고대 그리스적인 것, 곧 인간적인 삶의 자세를 포함한다.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니까 직접 읽어보면 좋을테고, 어쨌든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한 인간으로서의 푸코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이라면 디디에 에리봉의 책과 이 책을 함께 읽어보기를 권한다). 여튼, 물론 벤느는 특히 <지식의 고고학>에 관해 매우 중요하게 평가하며--"너무 빨리, 성급하게 씌어진 책"이라는 아쉬움 섞인 단서를 붙이지만--'담론'에 대해서도 몇 가지 중요한 코멘트를 하지만, 내 생각에 한국에서 이 책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용도는 후기 푸코의 사유방법에 대해 깊은 수준의 이해를 보여주는 몇 안 되는 텍스트라는 데 있다. 특히 고대에 관해 다룬 <성의 역사> 2,3권을 포함해서, 후기, 말기의 푸코의 작업이 갖는 의미는 한국의 지식대중--그런 것이 있다면!--에게 그다지 이해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구체적인 세목, 특이점, 담론, 장치와 연결시켜 주체 및 주체화의 문제를 설명하는 벤느의 텍스트, 특히 8장은 에토스와 자기 배려, 미학화 등의 문제를 이해함에 있어 한번 정도 참고할 만하다(벤느가 베버와 푸코 양자를 함께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점은 도움이 된다). 1975년의 논고가 푸코의 입장을 전반적으로 개괄하고 있었다면, 2008년의 책은 푸코가 사용하는 개념적 도구들을 구체적으로 해설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는 데서 한층 더 푸코적일 뿐만 아니라 푸코의 논의를 보다 생생한 것으로 만든다. 내가 푸코에 대한 개설서를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개념적 도구로서 '담론'을 지나치게 추상적이지 않게, 안내자가 자신이 안내하는 대상을 분명히 파악하기에 비로소 가능한 구체성을 드러내며 설명하는 안내서를 본 기억은 없다; 그가 다른 대부분의 푸코 소개자들과 달리 직업적인, 1급의 역사가이며 그러한 관점에서 푸코를 역사가로서 소개한다는 사실도 하나의 중요한 차이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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