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르노. <사회학 강의>. 짧은 코멘트와 인용

Reading 2014.07.15 00:23

오늘 피터 브룩스Peter Brooks의 <플롯 찾아 읽기>_Reading for the Plot_ 및 아도르노의 <사회학 강의>_Einleitung in die Soziologie_ (양자 모두) 국역본을 읽었다. 꽤 오랫동안 끌어오다 오늘 둘 다 일단 일독을 한 셈인데--요 몇 주간 책을 읽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결국 완전한 소화를 위해서는 최소 1회 이상 추가적인 독서를 해야 한다는 사실도 같다. 전자는 어차피 세미나를 위해서 읽는 거라서 여기서 추가로 언급하지 않고, 후자에 대해서는 짤막하게 코멘트를 덧붙인다.


<사회학 강의>는 원제를 그대로 옮기면 "사회학 입문"이며, 영역판 역시 _Introduction to Sociology_로 번역되어 있다. 1968년 4월부터 7월까지 총 17강에--주지하다시피 68운동과 무관할 수 없는 시점이며, 이 강의가 아도르노의 마지막 강의가 된다--걸쳐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아도르노가 가르친 "사회학 입문" 강의를 녹취/편집 및 주석을 추가한 텍스트로, 영역본은 총 200여쪽, 국역본은 400쪽(...) 가량 된다. 영역판을 참고하면 이 판본의 편집자가 롤프 티데만이 아닌 크리스토프 괴데Christoph Gödde로 나와있는데, 당황스럽게도 세창출판사의 국역본에는 편집자명이 (적어도 눈에 띄는 곳에는) 실려 있지 않다. 국역본이 대체로 번역의 퀄리티나 가독성이 특히나 아도르노의 텍스트임을 감안하면 지금까지의 국역들 중 확실히 괜찮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가격(36,000원!)에 비해 만듦새가 좀 부족한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종종 있는데, 이런 사소하지만 중요한 지점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기타 국내에 이미 소개된 텍스트들의 제목 번역이 국역명과 잘 맞지 않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 국역본 내에서조차도 앞뒤가 다를 때도 있다. 솔직히 잘 팔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번역도 힘든 텍스트를 출간해주는 건 고맙지만, 가격을 이 정도로 비싸게 받을 거라면, 또 어쨌든 학술서를 출간하는 거라면 세창출판사는 편집기준을 조금 더 엄격하게 설정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텍스트 자체로 본다면, 이 강의에서 말하는 "입문"은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사회학 입문 강의와는 매우 다르다(오늘날 한국 대학의 학부 초년생들에겐 이 책을 소화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사회학의 외연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을 제시하는 대신 아도르노는 사회학의 근본전제들, 곧 방법론 및 주요원칙, 목표와 같은 주제들을 다룬다. 아도르노가 그와 같은 문제설정을 통해 수강생들을 인도하는 지점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사회비판이론으로, 그런 점에서 <사회학 강의>는 아도르노 및 당시까지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이론체계를 가장 크게 포괄하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곧 이 책에서는 예술비평 및 철학 비평, 이데올로기 비판을 포괄하는 사회 비판으로서의 사회학을 논한다. 하나의 완성되고 독립된 분과학문으로서의, 곧 온전히 자신의 영역을 가진 "사회학으로서의 사회학" 및 실증주의적 입장들에 (오해를 피하기 위해 첨언한다면 아도르노는 결코 양적인 연구방법의 의의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대항하여 저자는 사회의 파편화된 요소들로부터 심층적인 모티프들을 읽고 또 그것들을 종합/연결하는 방법론으로 "변증법적 사회학"을 주창한다. 본문에서도 누차 언급되듯, 이 저술을 아주 진지하게 읽기 위해서는 아도르노, 하버마스 대 포퍼의 영향을 받은 실증주의 사회학자들이 참여하여 진행된 <독일 사회과학에서의 실증주의 논쟁>_Das Positivismusstreit in der deutschen Soziologie_의 맥락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변증법을 공허한 추상론으로 치부하는 포퍼주의자들에 맞서 아도르노는 누차 변증법이야말로 개별 인간으로 환원되지 않는 사회의 객체적 진실을 드러낼 진정으로 종합적인 동력학임을 역설한다(종합의 모티프가 특히 강조되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아도르노는 놀랍게도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의 텍스트를 일독할 가치가 있다고 추천한다). 이와 같은 변증법을 단순히 독립적인 방법론으로 남겨두는 대신 변증법에 접합하여 사회의 부분이 아닌 사회 자체를 포괄할 수 있도록 돕는 영역들로 역사/경제학/철학/심리학(정신분석)과 같은 다른 분야들이 호명되며, 이러한 영역들로부터 분리되는 대신 그것들을 경유하여 사고하는 것이야말로 변증법적 사회학 또는 (사회의 전체적 구조까지 겨냥하는) 비판이론을 가능하게 한다. 결국 핵심은 그 자체가 상이한 것들을 종합하고 각각의 개념을 동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아마도 아도르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일 성좌konstellation적 배치를 가능하게 하는 변증법의 정의에 있다. 곧 변증법은 이론이 다루는 대상이자 동시에 그 모습으로부터 이론이 기원해야 하는 사회를 시간적/공간적으로 확장하면서 그 안의 제반요소들 간의 동적인 상호관계를 구체적-추상적 층위에서 운동하면서 분석하기 위한 근본원리가 된다. 변증법의 설명과정에서 특히나 베버와 뒤르켐, 미국의 사회학자들을 포함한 이전/동시대의 사회학 이론들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가 함께 한다. 아도르노와 맑스의 관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여기에서 전자가 자신의 이론에서 후자를 어떻게 근본적인 지점으로 삼는지를 손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이 텍스트는 단순히 오늘날의 사회학 전공자들을 위한 책이 아니다. 20세기 중반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야심차게 목표로 한 사회비판이론을 참고하고, 세우고, 활용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기에서 아도르노가 전개하는 논의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그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던지는 질문/지적들의 중요성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는 이 책이 많이 읽힐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사회비판적인 사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도르노에 흥미가 있든 없든 일독할 가치가 있다. 쉬운 책은 아니며, 부분적으로는 한국어를 보다 가다듬었으면 낫지 않았을까 싶은 대목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천천히 씹으며 나아갈 때 못 읽을 정도로 어렵지는 않다.




인용하고 싶은 대목은 너무나 많다. 그래서 아주 조금만 옮긴다.


"어떻든 이 세계에서 바른 길을 찾아가야 하는 필요성, 그 기이함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매우 특별하게 존재하는 사회를 하나로 묶어 두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하는 필요성, 우리의 위에 존재하면서 우리를 익명으로 지배하는 법칙을 파악해야 하는 필요성이 존재합니다. 사회학 교육이 전통적 교육 개념과는 매우 상이한 것의 배후에 놓여 있는 것들이 바로 앞에서 말한 필요성들입니다." (1.6)


"대학이 고등학교 수업을 닮아가는 경향과 대학개혁 사이에는 기이한 모순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 대학개혁을 위한 노력에는 두 개의 서로 상충되면서 대립되는 모티브가 하나의 사실관계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한편에서는, 대학이 고등학교 수업과 닮아가는 형태가 존재합니다. 이러한 경향에서 여러분은 여러 우회로를 경험하면서 직업적인 교육과 사전 교육의 의미에서, 즉 특별지출 비용의 의미에서 가능한 한 모든 짐에서 벗어나 있게 됩니다. 이것은 기술적 합리성이라는 의미에서 합리화되어 있는 부담 벗기의 원리에 놓여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대학 개혁에 대한 요구가 존재합니다. 이것은 함부로 다룰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러한 요구는 자유롭고 독창적인 생각들에 우선권을 부여하고 무엇보다도 특히 그러한 방향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 두 번째 길이 내게는 더욱 중요한 길이라는 점은 대단한 수수께끼 놀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율적인 정신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여러분이 이런 문제에 대해 그냥 겸손하게 있는 것보다는 이처럼 서로 결합되기가 어려운 요구들에는 내가 강의의 모두에서 여러분에게 말하였던 이율배반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명백하게 해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나는 여러분에게 사회학 공부에 대한 지침을 제공할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이러한 학습이, 다시 말해 공공연하게 학습으로 넘어가 버린 학습이 교육 기능을 충족시켜야 한다면, 괴테의 유명한 노새처럼 '안개 속에서 길을 찾는' 교육을 받는 사람의 자율성이 학습에 속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가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1.10-11)

; 대학교육 및 대학개혁의 문제에 대한 보다 심화된 코멘트로 7강 129 참조.



"나는 철학 공부에 해당되는 것이 어떠한 필요한 수정도 없이 그대로 사회학 공부에도 통용된다고 생각합니다. [...] 대학에서 하는 학문적 공부는 강력한 의미에서 고등학교 공부와 구분되며, 모든 것이 단계를 밟고 매개되어 빈틈없이 실행되는 것이 아니고 어떤 확실한 도약들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말하듯이, 공부한느 사람에게 갑자기 어떤 빛이 떠오르며, 공부하는 사람이 충분히 오랫 동안 공부에 집중하면 처음에는 때에 따라서 이해의 어려움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학습 자료를 다루는 기간과 특히 자유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질적인 도약들을 통해서 밝혀지게 됩니다. [...] 여러분이 사회학 공부에서 처음부터 내가 바로 지금 여러분에게 보여주려고 시도했던 차원에서 확실한 자유성이나 인내를 갖고 움직이게 된다면, 나는 여러분이 사회학 공부를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공부의 각 단계에서 학습 대상을 이해했는지의 여부에 대해 즉각적으로 고집을 부리는 태도를 취하지 말고 전체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에 장애가 되기보다는 도움이 되도록 함께 도약해 보면 공부에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그러나 여러분이 대가의 말verba magistri에 비판 없이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대가의 말이 여러분에게 어떠한 명증성을 갖지 못하는 경우에도 여러분이 무비판적으로 순종해서는 안 됩니다." (1.12)


"지난 1세기가 흐르는 동안에 본질의 개념에 대해 실행된 비판은, 즉 세계를 본질적인 것으로, 의미가 깊은 것으로, 세계 내부에서 표명된 신적인 세계 기획의 의미에서 이해하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결과에 이르게 한 비판은 철회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본질 자체는 오히려 [...] 의미와 한 몸이 아니며 특별하게 존재하는 긍정성도 아니고, 모든 개별적인 것을 엮어버리는 연관관계이거나 죄의 연관관계입니다. 모든 개별적인 것은 이러한 연관관계의 내부로 엮어 들어가 있으며, 이러한 연관관계는 모든 개별적인 것에서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 본질은 출현해야 한다는 헤겔의 문장은, 사회학이 본질의 분석에 중요한 학문인 한, 사회학에 대해서도, 그리고 사회학의 방법론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회의 본질적인 법칙들이 현상들에서 현상들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 스스로 가시적이 되지 않으면, 그리고 이러한 본질이 바로 현상들에서 그 덮개가 벗겨지지 않으면, '본질'이나 또는 '사회의 본질적인 법칙들'에 대한 논의는 소용이 없거나 전적으로 공허한 논의가 될 뿐입니다." (3. 49)


"한편으로는, 본질적인 것은 사회의 운동법칙들에 대한 관심입니다. 무엇보다도 특히 사회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으며 앞으로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를 표현해 주는 법칙들에 여러분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법칙들이 변경되며 운동법칙들이 실제로 출현하는 한에서만 운동법칙들로 통용된다는 점에 대해서도 여러분이 관심을 가져 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어서 제3단계로 여러분은 사회학의 과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본질과 현상의 빗나감을 사회학 나름대로 본질로부터 출발하여 파악하는 것, 즉 이론적으로 파악하는 것이거나, 또는 현상들과 곧바로 양립되지 않고 변증법적으로 매개되어 있지 않은 본질 개념들이나 일반 법칙성들을 포기하는 용기를 사실상을 갖는 것이 바로 사회학에 부여된 임무입니다." (3. 56)


"나는 여러분이 본질의 개념을 사람들이 더욱 좁은 의미의 인식론적인 의미에서 이해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파악하지 말기를 요청합니다. 본질의 개념을 사실성보다 어느 정도 확실하게 앞에 있는, 그리고 그 순수성에서 인식되어져야 하는 것이라고 하는 즉자 존재적인 것으로서, 순수한 개념적인 것으로서 파악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본질적인 것이라고 나타냈던 것의 [...] 대부분은 논리적으로 말한다면 개별적인 개념들의 의미에서의 본질이 아니고, 오히려 개별적인 법칙성들의 의미에서 본질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개별적인 법칙성들은 자기 스스로 통용되며, 전체 사회와 개인들의 운명에 대해서 법칙성 내부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법칙성들입니다. [...] 내가 처음부터 정말로 의도하는 바는 문장들이나 판단들의 연관관계이며, 근본적으로 이미 대상을 위에서 덮는 연관관계가 설정되어 있고 의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연관관계는 개별 개념이나 개별 본질성을 고립시킨 채 멀리 떨어지게 놓아둘 수는 없습니다." (3. 57)


"나는 강조된 실제도, 사회의 전체 구조에 관련되어 있고 개별적으로 나타나는 사회적인 징후들에 관련되어 있지 않은 실제로서, 역시 전체 사회에 관한 이론을 필요로 한다고 말하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실제가 구조 관계들을 실제 나름대로 분석하고 구조 관계들, 경향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회 내부에서의 권력 배열들을 원리적으로 분석하며 단순히 독특한 물음 제기의 틀에서 머물러 있지 않을 때, 전체사회적인, 다시 말해 구조에 관련된 실제가 의미 있는 실제로서 가능할 것이라는 점도 말하고 싶습니다." (4.64)


"19세기 이후의 사회 개념은 과거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4. 68) "강조된 의미에서의 사회에서는 인간 사이에 기능의 연관관계가 성립되며, 이러한 연관관계는 물론 역사적 단계에 따라 현저하게 변전됩니다. 기능의 연관관계는 어느 누구도 연관관계에서 놓아 주지 않으며, 사회에 속해 있는 모든 사람이 기능의 연관관계에 엮어 있도록 묶어 둡니다. 기능의 연관관계는 또한 사회에 속해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해 확실한 방식으로 독자성을 확보합니다." (69) "사회, 조직화된 사회는 사회적으로 조직된 인간 사이의 기능적 연관관계일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의 존재로서, 교환에 의해 규정되는 연관관계입니다. 사회를 원래부터 사회적으로 만드는 것은 교환관계입니다. 교환관계를 통해서 사회는 사회에 특별한 의미에서 개념적으로 기초가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실재적으로도 기초가 만들어집니다. 교환관계는 사회의 개념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을 잠재적으로 결합시킵니다." (71) "여기에서 일반적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는, 무언가 결핍되어 있는 표현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일반화는 교환의 진행 자체, 즉 근본적인 사회적 사실의 특별한 형식입니다. 교환의 진행 자체에 의해서 사회적 조직화와 같은 것이 산출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 점이 사회에 관한 이론의 중심점이라고 생각합니다." (72)

; 가라타니 고진의 후기 저작 참조.


"[...] 경험의 개념이 오늘날 아마도 얻게 되는 것은 형용하기 어려운 규범적인 의미밖에 없습니다. 경험의 개념이 이렇게 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진정한 경험에, 즉 이미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경험에 이르는 것이 더 이상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학문이 그 규정을 통해서, 그리고 학문이 인식에 부과한 규칙 체계를 통해서 내가 위에서 말한 그러한 경험을 근본적으로 더 이상 전혀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사회에 관한 변증법적 논의의 이념은 경험을 재생산하려는 노력, 또는 더욱 겸손하게 말하면 사회적 체계 자체뿐만 아니라 학문의 규칙들에 의해 우리에게 거부된 경험을 재생산하려는 노력이라고 정의하고자 합니다." (6. 114-15)


"[...] 사회학에서도 대상을 내부로부터 출발하여 인식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 방법론을 대상에 대해 절대적으로 설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히려 사회학의 방법론은 대상에 대해 생동감 있는 관계에 놓여 있어야 하며, 가능한 한 대상으로부터 전개되어야 합니다." (9. 159)


"이데올로기 연구 또는 이데올로기 비판이 [...] 사용하는 수단들 중의 하나는 이데올로기 연구가 정신이 산출해 낸 그 어떤 것들을 다루며 이것들을 분석하고 이것들로부터 사회적인 추론들을 도출해 낸다는 점을 여러분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 직접적으로 인간 자체의 이데올로기들인 이데올로기들은 그 사회적 원천을 인간에서, 그리고 인간이 합의한 것에서 즉각적으로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데올로기들은 집단적으로, 전통을 통해서, 또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손에 떨어지거나, 또는 의견 형성의 고도로 집중되고 조직화된 형태를 통해서,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문화산업을 통해서 비로소 그 모습을 확연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입니다. 이 점은 특히 현재의 사회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인간의 이데올로기들을 이데올로기들의 역동성에 따라서는, 인간에 대한 설문조사의 단순한 기법을 통해서는 전혀 알아낼 수 없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이데올로기들 자체가 지속적으로 작용들의 기능들이며 작용들은 이른바 실제적인 정신적 형상들을 통해서 기능들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런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정신적인 형상물들에 대한 연구로 눈을 돌리게 되며, 이러한 경향은 점차 증대되고 있습니다." (10. 190-91)


"내가 여러분에게 하고자 하는 첫 번째 조언은, 여러분이 읽은 책들이나 또는 여러분이 공부하는 저작들을 책이나 저작 안에서 무엇이 특별히 의도되고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처음부터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철학에 순진한 태도로 관계하고 텍스트의 배후에 무슨 의도가 놓여 있는가와 텍스트 전체가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가에 대해 누군가가 말한 것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는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됩니다." (11.208)


"[...] 모든 정신적인 것, 모든 객관화의 정신적인 형상물들은 일종의 이중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이 이러한 것들에 특징적이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것들에는 한편으로는 확실한 종류의 내재적 논리와 내재적 진리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내재적 논리와 진리는 인간이라는 종의 정신적 기능들이 인간이라는 종의 자연사적인 전개 내부에서 독립적이 되었고 일종의 고유한 법칙성을 획득하게 되었다는 것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내부에서 개별적 주체가 결코 작업을 하지 않고 항상 사회적 주체가 작업을 하는 정신적인 형상물들은 그것들 자체로서 항상 동시에 사회적 사실들로 머물러 있습니다. 사회적 사실들의 배후에는 사회가 전체사회적인 구조나 또는 특별히 집단적인 관심들에 의해 매개된 전체 구조로서 놓여 있습니다. 사회적 사실들은 집단들이나 또는 전체 사회에 다시 되돌아가서 작용을 미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이중적 성찰을 실행하는 것이 모든 정신적인 형상물들에서는 필연적입니다. [...] 정신적인 형상물들의 독립성, 자율성은 이것들 이외에 정신적 형상물들에 들어 있는 다른 것들이 정신적인 형상물들에 속해 있는 것과 똑같은 정도로 정신적인 형상물들에 속합니다. [...] 우리는 이러한 자율성 자체를 종국적으로 사회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정신이 스스로 독립적이 되는 것과 이러한 독립화의 필연성은 인간이라는 종을 위해서 행햊는 생존에의 요구들로부터 궁극적으로 나오는 결과인 것입니다." (11.210)


"나는 여러분이 사회학 이외에도 수공업[다른 기술적인, 전문적인 앎의 영역]과 같은 것을 공부하는 것이 전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3.241)


"[...] 초자아는 일단은, 초자아가 사회화 과정에 참여하고 있듯이, 외부적인 것이 아니고 심적인 심급입니다. [...] 이러한 모든 계율은, 실제로는 사회적인 계율들은 심리학적인 메커니즘들을 통해서 개인에게 본질적으로 내면화됩니다. 나는 개별 주체성에 이한 매개를 망각하는 사회학은, 사회학이 다른 것이 아닌 바로 인간의 다수에게 적용되는 심리학이라고 믿는--프로이트가 이것을 사실상 떠올렸듯이--것만큼이나 틀리고 잘못된 것이며 독단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3.253)


"[...] 인간 사이의 관계가 객채화된 경제적 형체에 대해 많이 주목하는 것에 시간을 쓰지 않은 채 인간 사이의 관계만을 다루는 사회학은 경제적인 것이 실제로 인간 사이의 관계들이나 또는 심지어는 사회적 행위들의 기회에 의존되어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이러한 사회학은 인간 사이의 관계가 객체화된 경제적인 형체가 되는 메커니즘에 경제적인 것이 의존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결여되어 있는 것은--'그 사이'에서는 여기에서 위상적으로 이해될 수 없고, 두 학문의 성찰로서 그 내부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한때 '정치 경제학'의 개념으로 의도되었던 것, 바로 이것을 지칭합니다. 이렇게 결여됨으로써 결정적인 것, 바로 이것에 의해서 사회적인 움직임이 유지되는 결정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움직임이 어떻게 유지되는가 하는 것도 사회학으로부터 사라지게 됩니다. 사회가 어떤 희생을 치르고 어떤 위협을 감당하며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 어떤 잠재성들을 가지면서 유지되는가 하는 것이 사회학으로부터 사라지게 됩니다. 사회학에서 중요한 것, 다시 말해 사회적인 과정의 핵심이 사회학으로부터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현재의 사회가 아직도 얼마만큼 교환사회인가 하는 물음, 그리고 현재의 사회가 얼마만큼 교환사회가 더 이상 아닌가 하는 물음과 직접적인 연관관계를 갖고 있는 물음, 다시 말해 경제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물음이 논의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16. 309-10)


"'모든 사물화는 망각'입니다. 비판은 원래 상기하기와 같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현상들에서 기동하는 것과 같은 것이 비판입니다. 현상들이 생성되었던 것이 무엇에 의해 현상들이 되었던가를 현상들에서 기동하는 것이 비판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현상들이 다르게 될 수도 있었으며 이를 통해 다르게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비판인 것입니다." (17.3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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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사합니다 2014.07.30 01:24 Modify/Delete Reply

    <도구적 이성비판>, <계몽의 변증법>부터 <인정투쟁>, <인권철학입문>까지 프랑크푸르트 비판이론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와중에 <사회학 강의>가 출판되었다고 해서 관련된 여러 글을 보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정말 좋은 리뷰입니다. 감사합니다!

    • BeGray 2014.07.30 11:15 신고 Modify/Delete

      아, 요즘 한국에서 프랑크푸르트 비판이론을 공부하시는 또 다른 분을 뵙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제 주변에서 그렇게 인기있는 주제는 아닙니다...개별적으로 벤야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야 있습니다만). 저는 프랑크푸르트학파 1세대, 그중에서도 아도르노의 작업에 가장 깊은 관심을 갖고 있지만, 하버마스와 호네트 및 에바 일루즈 / 크리스토프 멘케를 포함한 후속세대들의 작업도 흥미를 갖고 있습니다. 혹시 따로 공부모임 같은 게 있으신가요? 공부는 고립되는 것보다는 연결되는 게 낫다는 믿음 하에 여쭤보고 싶네요.

  2. 안녕하세요 2015.04.26 14:14 Modify/Delete Reply

    안녕하세요 댓글 남기고 갔었던게 벌써 작년 7월이네요.. 저는 대학원 사회학과에 입학하고 나서 군대에 입대를 한 상태입니다. 당시에는 한창 입대 전에 읽을만한 책들을 모으느라 비판이론에 관해 자료들을 검색하던 와중에 이 블로그를 찾아서 기쁜 마음에 댓글 남겼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모임은.. 안타깝게도 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만들고 계신다면 소식 전해주세요. 아직 잘 모르고 나이도 어려서 감히 참여할 수는 없지만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멩케의 평등 이론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BeGray 2015.04.26 22:36 신고 Modify/Delete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복무 중이셨군요- 부디 건강에 탈없이 학업을 지속할 수 있는 곳이기를 바라겠습니다. 사회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셨다니, 한국의 사회학과 중 비판이론을 다루는 곳이 존재한다면 반가운 일일 듯 합니다. / 저도 전공 및 여러 환경상 프랑크푸르트학파에 대한 공부는 거의 독학으로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긴 합니다(하버마스를 연구한다면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 제 가장 주된 관심사는 아도르노니까요). 당장 무언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 교류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될 성 싶네요!^^

  3. 너무맛 2015.07.24 02:10 신고 Modify/Delete Reply

    ㅋㅋㅋ 사회학 강의 책이 저에게는 뭔가 gray님의 자본론같네요.

    다들 어렵다 어렵다하지만 그 얘기만 듣고 안 읽었으면 어쩔뻔 했습니까. 완전 좋네요.

    제가 딱히 공부로 한가닥하는 것도 아니고 배경지식도 허접하지만 저만의 느낌으로 이해하는 재미도 있네요. ㅎㅎ


    이 책 인터넷에 리뷰가 별로 없어서 반가운 마음으로 보고 갑니다~

    • BeGray 2015.07.25 12:06 신고 Modify/Delete

      원래 책은 그렇게 읽는 거죠 ㅎㅎㅎ <사회학 강의>의 논의에 대한 보다 이론적인 기초를 제공하는 책으로 10년 전(1958) 강의록인 <변증법 입문>도 추천합니다. 번역도 나쁘지 않아요. 두 책을 같이 읽어보시면 더 재밌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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