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일 일기: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가?』 서평 외

Comment 2023. 7. 2. 15:30

1.

 

김민철 선생님의 최근작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가: 지성사로 보는 민주주의 혐오의 역사』 (창비, 2023)에 대해 『교수신문』에 기고한 서평이 나왔습니다. 이미 곳곳에서 호의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책입니다만, 박사논문 작업에서부터 저자의 연구 궤적을 따라가볼 수 있었던, 또 함께 지성사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쪼록 서평이 책을 읽었고 읽을 다른 독자들이 조금 더 깊이 있는 읽기를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여기서는 일부 대목만 옮겨둡니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의 찬반 자체보다는 민주주의의 개념이 놓여 있던 맥락을 이해하는 데 있다. 비판자들의 논지를 역사적으로 짚어보며 우리는 민주주의가 독립된 실체적 개념이었다기보다는 국가와 정치체의 작동을 설명하는 더 큰 분석적 언어의 일부였음을 알게 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케임브리지 지성사학파가 축적해온 연구성과를 간결하게 집약하는 3장에서 6장까지를 보자. 근대 초 다양한 사상적 흐름이 결합하면서 유럽의 정치 언어는 한층 더 정교하고 복잡해졌다. 저자는 그러한 언어가 왜, 어떻게 민주정을 부적합하고 위험한 정치체제로 간주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공화주의 전통을 따르든, 자연법 전통을 좇든 정치사상가들은 국가의 목표는 안정과 존속에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변동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전제에 동의했다. 이때 ‘신뢰할 수 없는’ 다수가 통치하는 민주정은 꼭 피해야 하는 선택지였으며, 고대 로마의 역사는 민주정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사례로 두고두고 인용되었다.

이토록 강고하게 축적된 반민주주의적 토대로부터 도대체 어떻게 민주정을 옹호하는 논리가 출현할 수 있었을까? 답변은 책의 핵심부이자 저자의 지적 역량이 집중된 제2부, 특히 프랑스혁명기 민주파의 사상적 실천을 서술하는 대목에서 찾을 수 있다(저자는 영어권-프랑스어권 학계에서 이 주제를 선도하는 대표적인 연구자다). 그때까지 전혀 당연하지 않았던 “대의민주주의” 개념의 창시를 비롯하여, 민주파는 반민주주의론의 요점을 하나씩 논박하고자 했다. 민주주의 개념은 그 과정에서 다각도로 확장되었다. 몇 차례고 숙독할 가치가 있는 8장과 9장에서, 저자는 민주주의가 인민의 정치적 의사결정권 보유라는 단순한 규정을 뛰어넘어 복잡한 정치적·경제적 쟁점을 아우르는 하나의 ‘근대적’ 정치체제 모델이 되어가는 과정을 재구성한다."

 

 

2.

 

서울리뷰오브북스 '리뷰의 발견' 코너에서 『한국에서 박사하기』를 놓고 진행한 대담을 정리·보완한 내용이 『서울리뷰오브북스』 10호에 실렸습니다(김두얼, 이우창, 정인관, 「대학원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pp. 192-214). 유튜브 녹화본에서 보여드린 저의 어리버리한 모습이 답답하셨던 분들께서는 『서리뷰』의 귀중한 서평 사이에 한층 정갈한 언어로 정리되어 있는 대담을 읽어주시면 쟁점과 요지가 뚜렷이 들어오지 않을까 싶네요 :)

 

※ 그 사이 『교수신문』에 『한국에서 박사하기』를 다룬 또다른 서평이 실렸습니다. 필자의 여러 고민이 압축적으로 들어가 있는 글인데요, 모쪼록 적지 않은 부담을 감내하고 서평 기고를 수락해주신 손성욱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3.

 

'다음 학기엔 반드시 최소한의 일만 맡아야지'라는 다짐이 심술궂은 운명Fortuna에게 지나치게 잘 이해되었는지, 6월에도 강연 자리를 두 차례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3-1. 먼저 6월 15일 경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주관하는 제4차 디지털인문학 전문가 초청강연에서 “나는 어떻게 디지털/인문학의 경계선을 오가게 되었나: 어느 신진연구자의 여정”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처음 강연 제안을 받았을 때, 비록 디지털인문학 연구자들과 같은 연구단에 속해 있긴 하지만, 디지털인문학 연구성과를 낸 적도 없고 하다못해 코딩도 안 하는데 (...) 스스로가 '디지털인문학 전문가 강연'이라는 타이틀에 도저히 부합한다고 볼 수가 없어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주최측에서 한번쯤은 저처럼 정통(?) 인문학 분과에서 교육받은 사람이 디지털인문학과 어떻게 조우했고 또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를 이야기해주는 게 오히려 유의미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준 덕에 용기를 내어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강연 자체는 대학원 과정에서 제가 디지털 환경/연구와 마주쳤던 경험을 풀어내는 방향으로 평이하게 진행되었습니다(저의 원론적인 입장은 연구모델을 어디까지 다변화할 수 있을지, 그 과정에서 사회학이나 출판-서책사, 미디어-플랫폼 연구 같은 기존의 연구성과를 어떻게 폭넓게 소화하고 활용할 수 있을지에 디지털인문학 연구의 성패가 달려있다...는 쪽입니다). 사실은 개인적으로 훨씬 인상적인 기억은 영문과 디지털인문학 수업의 기말프로젝트 발표시간에 참관한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한국의 영문학과 중 디지털인문학 정규 커리큘럼을 만드는 데 가장 본격적인 노력을 쏟고 있는 학과가 바로 경북대학교 영문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 학기 동안 제로 베이스에서 출발한 학생들이 여러 분석틀에 빠르게 익숙해지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지만, '앞으로 이 학과가 어떤 모습을 갖춰나갈 것인가'를 궁금하게 만드는 에너지와 의지가 제일 뇌리에 남습니다.

 

아쉬웠던 게 하나 있다면, 일정이 맞지 않아 경북대 영문과 대학원생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한 점이네요.

 

3-2. 6월 22일에는 성균관대학교 역사학과 Global Intellectual History Unit의 Reflexions 강연에서 "18세기 영국 계몽사상과 젠더 담론: 지성사적 접근법의 활용과 연구사 가로지르기"라는 이름의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성균관대 사학과가 앞으로 한국의 지성사 연구를 선도하는 중점기지 중 한 곳이 된다면, 그 핵에 있는 그룹이 GIHU입니다. 저 자신도 advisory council에 속해 있으면서도 이번에 처음으로 강연자 역할을 맡아보게 되었네요. Reflexions 시리즈의 성격에 맞게, 저도 스스로의 연구 여정을 돌아보면서 성대 사학과 대학원생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생각해보는 쪽으로 준비를 했습니다.

 

1학기에 사학과 대학원 수업을 진행하며 품게 된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역사적 접근 또는 역사 연구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요소들로 이루어지는가?" 입니다. 통상적으로 역사학 분야 바깥에서는 역사학을 "과거의 사실을 탐구하는 일" 정도로 규정하며, 막상 역사학 전공자들에게 물어봐도 "과거의 사실을 '실증적으로' 탐구하는 일" 정도의 대답에서 크게 벗어나는 예는 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단순한 규정은, 특히 저처럼 역사학 바깥에서 공부해 왔고 그래서 뒤늦게 필요에 의해 역사학적 방법을 습득하게 된 사람들은 더욱 그럴텐데, 실제로 역사학 연구자들이 무엇을 어떻게 수행하는지, 또 역사학이라는 학적 분과가 근대 학문 세계에서 어떻게 발달해 왔는지를 거의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몹시도 불충분한 진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강연의 큰 줄기는 바로 위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그에 대해 나름대로의 답변을 내놓고, 그러한 규정에 기초할 때 보다 새롭고 탁월한 역사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효과적일지를 이야기하는 순서였다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학생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갔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4. 

 

지난 번 언급했던 투고 논문은 무사히 심사를 통과해 9월 말에 발간될 예정입니다. 리뷰어들의 요구에 되도록 성실하게 응답하려다보니 초고보다 수정고가 원고지 40매 가까이 더 늘어난, 조금 묵직한 글이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처음 들어가보는 분야의 학술지인만큼, 어떤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힐지 궁금한 마음입니다.

 

올해는 계속 그렇지만, 7월도 여전히 쌓여있는 밀린 일을 하나씩 처리하면서 새롭게 쌓이는 더 큰 일을 버텨내는 (...) 시간이 될 것 같네요. 이런 상태가 지속되다 보면, 폭염도 한몫 하겠지만, 아무래도 심신이 늘어지는 감이 있는데요, 정신을 차리고 일단 몸을 가다듬는 일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주어진 일정 안에 쓰고 싶은 글을 다 쓰려면 좀 더 효율적인 삶을 살아야 할 테니까요 (라고 하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흥미로운 일들이 많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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