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TERF, 안티페미니즘: 비판적 개입 셋

Critique 2017.12.14 00:09

나는 두 편의 글 모두 TERF, 나아가 TERF를 묵인하는 일부 여성주의 연구자·활동가를 향해 썼다. 좀 더 간단한 단상에 가까웠던 첫 번째 글은 내 기대보다 많이 읽혔고 그만큼 직간접적으로 여러 형태의 반론을 맞이했다. 따라서 나는 내 입장 및 내 입장이 어떤 논리에 근거하는지를 좀 더 명확히 밝힐 필요를 느꼈고, 두 번째 글은 좀 더 논증적인 형태에 가까워졌다. 이후에 내 글을 보시는 독자들은, 내 입장에 대해 논평을 하신다면, 번거롭더라도 두 편의 글을 함께 읽어주시길 바란다. [이후 논쟁과정에서 세 번째 글이 추가되었고 이 게시물에 첨가한다-2018년 1월 2일]


1. *2017년 11월 23일 페이스북에 작성


활동가·연구자들을 포함한 여성주의자들 중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 트랜스젠더 배제 래디컬 페미니스트) 같은 '자칭' 래디펨이나 워마드가 잠시 혈기왕성한 언행을 보여주긴 하지만 남성중심적 질서에 대항한다는 점에서 크게 보면 연대의 대상이며, 이들이 문제를 일으킬지라도 비판하거나 질책하는 대신 적당히 묵인하면서 같이 갈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믿는 분들이 있다. 감기로 골골거리면서 '자칭' 래디펨들이나 워마드 이용자들이 일으키는 사건사고를 보다보니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든다.

먼저 얼마 전에 있었던 사례 하나를 참고하자. 2010년대 초중반 보수주의자들은 일베를 처음 맞닥트렸을 때 새로운 청년보수들이 온라인에 자생적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에 무척 감격했으며, (비록 문제적인 언행을 종종 보여주긴 하지만) 이들이 장기적으로 보수의 헤게모니를 위해 동원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달콤한 밀월기간도 잠시, 기존 우파들과 일베 이용자들은 예컨대 박근혜가 여성혐오적 언어표현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를 포함한 매우 중요한 이슈들에서 각자 서로가 상상하던 바와 매우 다른 사람들인 걸 곧 깨달았다. 젊은 일베 이용자들은 '선배님들'에게 "틀딱(충)"이란 별명을 선사했고, 이들은 서로를 물어뜯으면서 혐오의 언어를 진탕 퍼마시고 널부러졌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보수의 일베 끌어안기는 크게 두 가지 결과를 낳았다. 첫째, 기존 보수의 일베 동원 시도는 성공적이긴커녕 젊은 일베 이용자들이 선배들에 대한 다소의 환상마저 깨부수고 오히려 "틀딱"과 같은 노인 혐오를 갖도록 만들었다. 둘째, 이러한 흐름은 박근혜 정권기와 맞물리면서 사실상 합리적·상식적 보수 세력의 절멸을 가져왔다. 박근혜 탄핵 이후 보수에게 도대체 무엇이 남았는가를 생각해보라. 그 공허한 폐허는 부분적으로 일베에 이끌려들어간 보수의 오판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일부 여성주의자들의 TERF나 워마드 끌어안기 혹은 묵인도 마찬가지다. 후자의 그룹 내에서 (그것이 도대체 무엇에 의지하는 개념이든 간에) '생물학적 여성'에 근본주의적 가치를 부여할 뿐만아니라, "똥꼬충"·"트랜스젠더는 정신병"·"젠신병자" 같은 혐오 표현을 자신들이 이 사회에서 유일하게 순수한 피해자라는 논리 하에 정당화할 수 있다고 믿으며, 나아가 그 정당화의 논리로 인권을 포함한 모든 도덕·윤리적 가치를 폐기해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젠더퀴어를 비롯해 다른 약자들과의 연대를 추구하는 입장에 "쓰까페미"·"쓰까충"이라는 경멸의 호칭을 붙여주었으며, 자신들보다 윗세대 여성주의 활동가들을 "꿘줌"이라고 부르면서 조소한다. "자기들이 인정하는 페미니즘만 페미니즘"이라는 지금까지의 문구는 조만간 "자기들이 인정하는 여성만이 여성"이라는 말로 바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들이 결국에는 같은 편이라고 믿는 일부 여성주의자들이 일베가 보수의 새 희망이라고 믿었던 나이든 보수들만큼이나 순진하다고 생각한다. 여성주의의 이름으로 '조금 독특한 친구들'을 규합할 수 있다고 믿고 사소한 잘못--물론 퀴어·다른 젠더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가 '사소한' 잘못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는 둘째치고--을 묵인해도 된다고 믿는다면, 그들은 TERF와 워마드 이용자들이 자신들의 성향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대상이라면 페미니스트고 뭐고 가리지 않고 그 얼굴에 웃으며 침을 뱉고도 남으리라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다(사실 이미 계속 침을 뱉어 왔다는 건 일부 여성주의자들만 모르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들은 당신들의 판타지에 나오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조금 더 장기적으로 볼 때, 다른 페미니스트들이 TERF와 워마드에 대한 현재의 어정쩡한 태도를 고수하는 건 일베 끌어안기가 보수 세력 자체가 혐오·반윤리 집단으로 폄하되는 결과를 초래한 바와 마찬가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즉 그 끝에는 페미니즘이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 혐오의 기표로--페미니즘의 이름으로 혐오행위가 정당화되며, 동시에 페미니즘이란 말 자체가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전락하는 사태가 기다리고 있다. 이미 워마드 이용자의 호주 아동 성착취 사건 뉴스가 퍼지면서 노골적으로 페미니즘 자체를 혐오의 대상으로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간단히 말해, 페미니스트들이 자신들이 혐오의 동조자가 아님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혐오동조자로 간주될 것이며, 이는 심할 경우 지난 2-3년 간 급속도로 확장되었던 페미니즘의 빠른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페미니즘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지금과 같은 묵인·암묵적인 동조가 이어질 경우 이는 페미니즘 진영 자체를 돌이킬 수 없이 분열시킬 수 있다. 지금까지 복수의 페미니즘들이 수많은 이슈에 대해 입장을 달리해왔음은 분명하지만, 지금처럼 노골적으로 다른 그룹을 혐오와 조롱의 대상으로 삼으며 오직 자신들만이 진정한 페미니즘이라고 주장하는 기괴한 페미니즘이 대두한 적은 없었다. 요컨대 TERF와 워마드를 얻고자 하는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을 잃어버릴 것이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갈등을 겪어온 덕에 여성주의자들은 서로 간의 차이를 적당히 존중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관행이 지금 새로운 혐오언어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관한 우리 자신의 판단력을 흐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우리가 좀 더 사태를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주어진 선택지의 본질은 어떤 페미니즘을 고를 것이냐가 아니라 페미니즘이냐 혐오냐의 양자택일이다.




2. *2017년 11월 26일 페이스북에 작성


[길고 논쟁적이다]

나는 직전에 일부 페미니스트 활동가·연구자들이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m/Feminist, 트랜스젠더 배제 래디컬 페미니즘/페미니스트) 및 워마드의 언행에 대해 묵인 또는 방조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잘못된 판단이라고 주장했고, 이는 내가 기대한 것보다 더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https://www.facebook.com/leewcman/posts/927786214043460). 그중 일부는 나의 주장에 대한 비판 혹은 반론으로, (그저 생물학적 남성이 말하기 때문에 들을 필요가 없다는 TERF계열 지지자들의 무가치한 반응을 제외하면) 가장 흔한 요지는 내가 페미니즘적 실천에 내포된 복잡성을 “페미니즘 대 혐오”로 단순화하여 후자를 지워버리고 전자만 남길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반론자들의 선의와 미덕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내 생각에 그들의 반응은 내 이전 글이 어떤 논증을 통해 TERF 비판으로 들어가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충분한 반론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번 글에서 나는 여러 반론에 대한 재반론을 일일이 시도하는 대신 ‘한국형’ TERF가 어떤 점에서 문제적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페미니즘들의 한 분파라기보다는 사이비(pseudo-)페미니즘으로 이해되어야 하는지를, 그리고 TERF를 ‘우리 페미니스트 동지들’로 간주하여 그들의 명백히 문제적인 언행을 묵인·용납하는 태도가 어떤 점에서 잘못된 선택지인지를 보다 분명하게 말하고자 한다. 나는 가능한 간략하고 분명하게 말하고 싶기 때문에, 때때로 이론적인 쟁점들을 건드리는 부분이 그러한 논의들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겐 다소 낯설 수 있음을 미리 양해를 구한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말하자면 나는 “생물학적·물질적 여성성”이 젠더 정체성에 고유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그것이 MtF(남성->여성)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다른 이들이 보유한 젠더 정체성과 완전히 동일하지 않다는 이론적인 입장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비판대상은 그러한 이론적 함의를 악용하여 오직 “여성으로 태어나 그 신체를 유지하는” 이들만이 여성성·페미니즘에 대한 특권적인 위치를 지니고 있으며 다른 모든 입장은 언제든 혐오의 대상이 되어도 무관하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이를 실천하는 일부 자칭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며, 나는 이들을 “(한국형) TERF”라고 부를 것이다.

나의 한국형 TERF 비판은 크게 세 가지 진술로 구성된다.

① TERF는 페미니즘의 일부라기보다는 그 수사를 악용하여 페미니즘 담론을 질식시키는 사이비 페미니즘이다.
② TERF는 (넓은 의미에서) 페미니즘들·페미니스트들 내부에 넘을 수 없는 분열의 선을 그어놓으며, 현대 페미니스트 운동 전략의 핵심코드인 “연대”를 부정하면서 페미니즘을 내부로부터 붕괴시킨다.
③ TERF는 페미니즘을 안티페미니즘이 원하는 페미니즘, 즉 모든 보편적 가치를 부정하는 여성우월주의·분파이기주의로 전락시키며,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 담론장에서 페미니즘을 고립시키고 안티페미니즘의 먹잇감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트로이의 목마와 같다.

각 진술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TERF는 페미니즘의 일부라기보다는 그 수사를 악용하여 페미니즘 담론을 질식시키는 사이비 페미니즘이다. TERF 신봉자들과 한번이라도 직접 충돌해보면 쉽게 알 수 있듯, 이들은 (생물학적) 여성들이 “여성적 정체성”으로 인해 사회의 가장 큰 피해자였으며 따라서 페미니즘·여성성 등 제반사항에 대한 발언권을 도덕적으로 독점한다고 주장한다. 현실의 권력관계에 따라 여성에게 추가적인 발언권을 주는 게 보다 평등하다는 식의 논의는 기존의 페미니스트들에게서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었지만, TERF는 이를 극단적으로 왜곡한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정체성이 발화내용 혹은 메시지의 정당성을 결정짓는 유일한 자격요건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남성페미니스트·퀴어·다른 성소수자들과 충돌할 때 TERF들은 전자의 발화는 그 논리적 타당성과 무관하게 자격 없는 자들의 발화이므로 무가치하며, 역으로 자신들 혹은 동조자의 발화는 자격 있는 자들의 발화이므로 가치가 있다고 강변한다. 결과적으로 TERF들과의 논쟁에서 어떤 진술·주장이 그 자체로 타당성을 지녔는지, 어떤 TERF의 주장이 타당성을 지녔는지의 문제는 거의 검토되지 않는다. 아마도 이들은 어떤 발화의 타당성을 고려할 때 발화내용만이 아니라 맥락 또한 고려하는 것이 더 올바르다는 페미니즘의 가르침을 꺼내들며 반론하겠지만, TERF식 논증의 진짜 문제는 겉으로는 맥락을 고려한다고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맥락과 발화내용 모두 지워버리고 그걸 발화자의 정체성=자격에 대한 가치평가로 대체한다는 데 있다. 요컨대 이들의 태도는 여성이 무엇을 말하든 발화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그 타당성을 고려할 필요 없다는 지난 세기의 여성혐오자들에서 성별만 바꾼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토론장의 논쟁을 자격의 우열로 환원해버리는 TERF들의 태도에 강한 반지성주의가 깃들어 있으며, 이러한 태도가 확산될 때 페미니즘 담론장을 포함한 한국의 담론장이 그 실질적인 기능을 상실할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TERF의 확산 혹은 이를 묵인하는 태도는 이질적인 입장들 간의 논쟁을 통해 발전해온 페미니즘 담론(장)을 사실상 마비시키며, 그런 점에서 TERF는 페미니즘의 수사를 차용하지만 실제로는 페미니즘을 질식시키는 사이비 페미니즘이다.

② TERF는 (넓은 의미에서) 페미니즘들·페미니스트들 내부에 넘을 수 없는 분열의 선을 그어놓으며, 현대 페미니스트 운동 전략의 핵심코드인 “연대”를 부정하면서 페미니즘을 내부로부터 붕괴시킨다. 게이를 “똥꼬충”으로 부르고, 트랜스젠더를 “젠신병자”라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 TERF는 자신과 입장·정체성을 달리하는 모든 집단에 대해 혐오표현을 투척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으며, 심지어는 나아가 여성 중에서도 자신들에 동조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혐오대상으로 간주한다. 다른 페미니스트들, 예컨대 서로 다른 소수자 정체성들과의 연대를 주장하는 이들은 “쓰까페미”라고 이름으로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되며, 이전 세대의 운동논리를 염두에 둔 여성들은 “꿘줌”이라는 비하표현으로 호칭된다. 이들은 우리 편 아니면 혐오대상이라는 극단적인 이분법을 고수하는데, 이러한 이분법은 한편으로 페미니스트들 내부에 치유불가능한 분열을 초래하며 동시에 현대 페미니즘 운동 전략의 핵을 이루는 개념인 “연대”를 토대에서부터 파괴시킨다.

가령 11월 25일 한국철학사상연구회·한국여성철학회 공동주최 학술대회에 (자신들과 격렬한 논쟁을 주고받았던) 퀴어 연구자가 발표한다는 이유로 투서를 넣어 한국여성철학회가 행사 자체를 보이콧하게 만든 바에서 볼 수 있듯, 이들은 “자격 없는 자”가 공적인 발언권을 갖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관련 포스팅 및 공지는 https://www.facebook.com/sjkim1223/posts/10156081919694645 ; https://www.facebook.com/sjkim1223/posts/10156081974524645 ; http://ephilosophy.kr/han/51655/ 등을 보라). 나는 넓은 범위의 페미니즘들·페미니스트들 사이에 심각한 입장 차이가 존재할 수 있으며 때로 그러한 입장 차이가 그다지 사려 깊지 못한 언쟁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 자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과, 상대방으로부터 발언권 자체를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후자는 애초에 상대를 대화 가능한 동등한 인간·시민으로 보지 않겠다는 태도의 산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요컨대 TERF들이 한국 페미니즘들 중 일부로 수용 혹은 묵인된다면, 이들이 다른 입장을 애초에 동등한 발언권자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복수의 페미니즘들·페미니스트들 사이의 공존 및 다른 운동들과의 연대전략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우리는 입장이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 수 있지만, 특정한 소수만이 발언권을 독점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과 같은 담론장을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퀴어적 정체성·다양한 젠더 정체성의 평등함과 공존가능성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TERF는 양립 불가능한 입장이며, 지금처럼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TERF를 옹호하거나 묵인할 때 이는 실질적으로 전자를 후자의 먹잇감으로 내주는 비겁한 중립일 뿐이다. 더불어 TERF가 연대 개념을 뿌리 뽑아 내던져 버린다고 할 때, 페미니스트들이 지금 당장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자신들이 고수해온 전략의 핵까지 포기한다는 건 사실상 운동의 자멸로 들어서는 것이다.

③ TERF는 페미니즘을 안티페미니즘이 원하는 페미니즘, 즉 모든 보편적 가치를 부정하는 여성우월주의·분파이기주의로 전락시키며,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 담론장에서 페미니즘을 고립시키고 안티페미니즘의 먹잇감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트로이의 목마와 같다. 현대 페미니즘 운동이 본격적으로 정체성 운동의 성격을 띠면서 동시에 보편인권·모두의 평등·소수자 간 연대와 같은 보편적 가치의 슬로건을 받아들인 것은 그 특수성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뒤집어 말하면, 보편적 가치의 수용·추구가 사라질 때 페미니즘 또한 언제든 일부 이익집단의 자기주장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간주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의 안티페미니즘 담론생산자들은 정확히 이 지점을 파고들고 있다.

다행히 해프닝으로 끝난 “나무위키 젠더 이퀄리즘 날조”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안티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과 성평등 추구가 분리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페미니즘이 보편주의적 운동이 아닌 비합리적이고 탐욕적인 여성우월주의·분파적 이기주의에 불과하다고 지속적으로 공격해왔으며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여기서 보편인권을 포함한 모든 보편적 가치가 언제든 폐기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TERF가 정확히 안티페미니스트들이 원하는 페미니즘임은 명확하다. TERF들은 보편적 가치와 합리성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다른 페미니스트들을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라고 조소하지만, 실제로는 TERF야말로 “안티페미니스트들이 허락하고 원하는 페미니즘”에 불과하다. 그 TERF가 한국 페미니즘의 일부로 자리를 굳건히 하는 순간, 안티페미니즘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 페미니즘 전체를 고립시키고 “페미니즘=이기주의=정신병”이라는 그들의 도식을 전파할 것이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한국사회에 성차별·불평등이 남아있는 한 페미니즘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앞서 말했듯 안티페미니스트들이 성평등의 가치와 페미니즘을 분리시키려고 줄기차게 노력하고 있으며, TERF가 페미니즘 전체를 그러한 구도로 몰고가는 상황에서 (더불어 무엇보다 한국의 안티페미니즘의 잠재성은 결코 작지 않다는 점에서) 나는 이런 낙관에 동의하지 않는다. 페미니즘의 역사는 그것이 외부의 담론·가치를 수용하고 또 그와 투쟁해오며 성장해왔음을 보여준다. 페미니즘 외부의 담론지형을 고려하지 않는 페미니즘은 자신의 조건을 망각하는 것이며, 안티페미니즘의 위협을 고려하지 않는 페미니스트들은 전략적일 수 없다. TERF의 확산에 대한 묵인·동조는 따라서 페미니스트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자멸적인 전략적 행동에 속한다.

위의 세 가지 진술에 근거하여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자 한다. 먼저 TERF는 페미니즘들이 만들고 공유해온 여러 가지 수사적 요소들을 도용하지만, 실제로는 바로 그것들을 악용하여 내적 논리의 차원, 안티페미니즘과의 논쟁이라는 차원 모두에서 페미니즘을 붕괴시키는 사이비페미니즘이다. 포퓰리스트들이 민주주의자·체제비판자에 침투하여 후자를 약탈하듯, 기생물이 생명체에 깃들어 후자를 먹이로 삼듯, TERF가 한국 페미니즘을 잠식하며 그 이름을 찬탈한다. 적지 않은 연구자·활동가들이 한국의 남성중심적 질서에 대한 거부감과 여성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를 공유한다는 이유만으로 TERF를 페미니즘의 일부로 간주할 때, 이는 결과적으로 페미니즘 내부에서 차례차례 TERF의 반대자들을 추방하고 최종적으로는 속을 파먹혀 빈 껍데기만 남은 페미니즘을 안티페미니즘에 헌납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페미니즘의 정당성이 무엇에 기초하는지 분명히 확인해둘 필요가 있다. 많은 페미니스트 활동가·연구자들이 “올바른”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데 부담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실제로 TERF를 거론하며 페미니즘=정신병=생물학적 여성우월주의라는 비난을 퍼붓는 안티페미니스트들과의 논쟁과정에서 페미니스트들은 어떤 식으로든 “정당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에 대한 규정작업을 피할 수 없다. 현재 TERF에의 묵인이 안티페미니스트들과의 논쟁 최전선에서 페미니즘의 정당성을 옹호하려는 사람들을 곤경에 빠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연구자·활동가들이 규범적인 차원, 즉 페미니즘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구별 요청을 회피하는 건 무책임하다.

물론 이것이 페미니스트들이 반드시 잘못된 판단을 내려 TERF를 지지한 사람들 모두를 매도하고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이 신봉하는 입장 및 언행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과 별개로 그들의 감정적 원한을 이해하고 다시 설득하여 TERF로부터 이탈시키는 것은 분명 어렵지만 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이때 요점은 TERF의 주요 주창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달리 TERF가 실제로는 페미니즘을 더 약화시키고 안티페미니즘의 포로로 만드는 함정이며, 정말로 여성의 인권을 증진시키고 성적인 평등을 가져오고 싶다면 TERF를 폐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데 있다.

많은 이들이 ‘양자택일’의 위험함을 경계하고 나 또한 그에 동의함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이냐, TERF냐의 본질은 결국 페미니즘이냐 안티페미니즘이냐에 있다.



3. *2017년 12월 22일 페이스북에 작성


이 게시물의 댓글에서 다음과 같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을 존엄성을 인정받는 인간의 대상을 확장해가는 과정으로 보느냐, 지배에 저항하는 권력 싸움으로 보느냐에 관점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향점은 같을지라도, 전자의 태도에서는 실천에 도덕이라는 제약이 따르게 되고, 후자의 태도에서는 성별을 제외한 그 어떤 것도 우선되는 가치를 갖지 못합니다. [...] TERF의 페미니즘은 권력 싸움이기에 페미니즘의 목적 외부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요컨대 도덕적 정당성의 추구와 권력투쟁은 완전히 별개이며, TERF의 혐오/반사회적 발화는 권력투쟁을 추구하는 실천이기 때문에 어떠한 도덕적 정당화의 제약도 필요없다는 진술이다. 담론투쟁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물론 이런 주장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나이브함을 알 수 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에 함축되어 있듯, 담론을 통한 권력투쟁을 목적으로 하는 발화는 적어도 그 청중 중 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제시하며 그를 통해 더 많은 설득력을 얻고자 하는 게 합리적이다.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하지 못하는 담론투쟁은 결코 더 큰 권력을 획득할 수 없으니까.

중요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메갈리아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었던 당시에 나왔던 여러 논쟁적인 국면을 검토해본다면, 애초에 "미러링"이라는 논쟁적인 개념이 도입된 과정 자체가 정확히 이러한 예에 부합한다. 메갈리아 사용자들의 발화에 대해 반대론자들은 그것들이 단순한 혐오발언이며 따라서 비판·축출되어야 한다는 비판을 제기했고, 따라서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이들은 여기에 대항해 해당 발화·표현에 도덕적·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할 필요성을 느꼈다. 우리는 "미러링"이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여 메갈리아 사용자들의 그 자체로는 혐오발언에 해당할 수 있는 발화·표현들이 실제로는 메타레벨에서 기존의 잘못된 성차별적·폭력적·남성중심적 언어 및 사고체계를 고발하고, 문제를 드러내고, 비판하는 교정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규정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었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즉 혐오발언처럼 보이는 이것들은 실제로는 혐오발언이 아니라 기존의 잘못된 사태를 비판하고 문제삼는 실천이라는 것이다. 이 어휘가 당시에 무척 활발하게 유통되었다는 사실은 메갈리아를 옹호하고자 했던 많은 논평자들 및 메갈리아 사용자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사회 전체의 차원에서 정당화할 필요성을 의식적으로든 아니든 강하게 느겼음을 보여준다. 만약 정말로 언어를 통한 권력투쟁이 도덕적 정당화와 무관한 것이었다면, 그리고 다른 사회구성원들에게 그 도덕적 정당성을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면 이 행위자들은 애초에 "미러링"이라는 개념 자체를 들여올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맨 처음 인용한 문단이 TERF를 정당화하는 주요 논지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면, 이러한 주장을 내세우는 발화자들의 결정적인 착오는 심지어 메갈리아를 둘러싼 논쟁에서조차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데 있다. 이들은 담론과 언어를 통한 권력투쟁의 전개과정에서 도덕적 언어가 수행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간과하며, 도덕적 정당화 없는--물론 해당 문구의 작성자는 "지배권력에 대항해"라는 표현 자체가 도덕적 정당화의 시도임을 망각하고 있다--순수한 권력획득방식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건 잘못된 판단이며, 여기에 기초한 전략수립은 성공할 수 없다. 실제로 워마드와 TERF가 유감스럽게도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저건 아니다"라는 판단을 끌어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들은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공격적인 말을 여과없이 하는 것"이 그 자체로 권력투쟁의 한 방식이라고 믿는다. 틀렸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공격적인 말을 여과없이 하는 것"이 그 자체로 언제나 유효한 권력투쟁의 방식인 것이 아니라, 그것이 권력을 확인하고 획득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통용될 수 있었던 순간이 있었던 것뿐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이 하나의 유효한 방식이라고 주장하는 진술들이 있었고, 경우에 따라 그 진술들이 소수의 사람들 내에서 설득력을 갖는 순간들이 있었다(여성주의자들 간에 논쟁이 벌어지는 광경을 살펴본 적이 있다면 사실 이런 진술이 종종 나오는 걸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워마드와 TERF를 이런 식으로 옹호하고자 하는 이들은 매우 특수한 상황에서 통용되었던 논리가 일반적으로 통용될 수 있다고 믿으며, 따라서 언제 무슨 말을 하든 그게 모두 자신들의 권력증진으로 이어질 것이기에 그것은 정당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사례를 그들이 페미니즘을, 페미니즘의 다양한 구성물을 왜곡하여 활용하는 방식 중 하나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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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OAB 2017.12.19 09:02 신고 Modify/Delete Reply

    크리스티나 호프 서머스나 커밀 팔리아같은 분들도 있으신데 왜 그런 교수님들 팽개쳐두고 TERF가 주류가 되었는지 모르겠음. 페미니즘은 이미 100년 넘게 사회를 변화시켜 왔고 또 변화시켜 가는 중인데 한국의 페미들이 생각한 페미니즘의 결과물은 '여성의 신체적 한계와 남성에게 그동안 가해져오던 선입관을 최대한 감안하며 양쪽 모두의 기회적 평등을 보장하는 세대단위의 장기적 변화' 가 아니라 무슨 공산주의 노멘클라투라 같은 거였나봄.

    • BeGray 2017.12.21 02:24 신고 Modify/Delete

      음? TERF가 한국 페미니즘의 주류라고 볼 근거는 적어도 아직 없습니다. 저도 그런 뜻으로 말한 적은 없고요. 현재로서는 온라인 페미니즘의 여러 분파 중에서 전도유망한(...) 소수파 중 하나일 뿐이죠.

    • Birdsong 2017.12.23 02:22 신고 Modify/Delete

      극우 논객 크리스티나 호프 서머스가 '세상을 바꾸'는 '페미니스트' '교수님'씩이나 된다니, 제가 모르는 차원의 문이 어딘가에서 열린 모양입니다. 평행 세계가 있다면 저도 가 보고 싶군요.

    • MOAB 2017.12.24 22:29 신고 Modify/Delete

      서머스하고 팔리아 '교수'맞음. 정확히 말하면 서머스 교수는 전직 철학 교수이고 현재는 전미기업연구소(AEI)의 연구원으로 재직중임. 그사람들이 단순 '극우 논객'들이라고? 메시지를 공격하려는데 그 메시지를 만든 사람들이 뭐하는지도 모르늗 그 무식함과 용감함에 경의를 표함. 
      그리고 그 빈 머리에 뭣 좀 채워줘야 하겠구만.
      https://m.youtube.com/watch?v=iv7LvRhvgNI
      두 분은 이미 80년대 초반부터 '페미가 목적지를 지나쳐 너무 멀리 간건가'에 대한 담론을 나눠왔고 실제로 그것 때문에 당시 래디컬페미는 물론 반페미 진영에도 박해당한 경험(특히 커밀 팔리아.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성을 주제로 논문을 썼다고 찍혀서 졸업 후 취업길이 막힘;;)이 있으신 분들임. 
      전미기업연구소(AEI). 이 씽크탱크가 우파 자유주의 계열인거 부정하지 않음. 한때 네오콘들의 요람이라고 비난받은 적도 있었지만 깊이 파고들면 꼭 그렇지만도 않음.
      https://www.google.com/amp/www.rfa.org/korean/weekly_program/thinktank/us_thinktank-10282009165322.html/ampRFA
      보다시피 안보부분 역시 담당하고 보수성향 연구소로는 헤리티지 연구소와 더불어 미국에서 한손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수준의 내공을 보여주는 씽크탱크임.(미국의 씽크탱크는 숫자만 네자리수임. 이건 정말 대단한 거.)

      http://www.makehope.org/미국-최고의-싱크탱크들1네오콘neocon의-아성-미국기업연/
      실제로 미국 네오콘들의 요람이라는 비난을 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2008년 이후 네오콘들의 위치란(2007년 기사임).. 어..음.. 알리라 생각함. 딕 체니가 갈려나가며 완전히 몰락했고 지금 그들과 관련된 연구를 진지하게 떠벌리는 사람들은 없음
      암튼 얘들이 니가 생각하시는 어디 만만한 황색언론수준의 찌라시나 떠벌이는 집단은 아니라는게 확실하고. 마냥 극우적인 헛소리나 해대는 집단도 아님. 최소 수십년을 강단에 있었던 교수들과 학자들로 구성되어 있고, 크리스티나 서머스 '교수' 역시 그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말했으면 함. 커밀 팔리아 '교수' 역시 2세대 페미 중에서는 네임드로 통하는 사람임.
      그리고 또 쓰는데 그 두 분 다 페미니스트임. 이분들의 포지션은 2세대 페미니즘(2nd wave feminism)에 해당함. 지금 문제가 되는 것들이 그 다음인 3nd wave feminism이고.

    • BeGray 2017.12.25 04:15 신고 Modify/Delete

      MOAB 님 // 다른 댓글에서 경고드린 바와 같이, 명백하게 무례한 코멘트로 간주될 수 있는 댓글들은 삭제처리 했습니다. 제 게시물에서 유의미한 소통을 나누고 싶다면 그에 걸맞는 예의를 차려주시길 다시 한번 강력하게 말씀드립니다.

      서머스의 '철학적' 비판은 그다지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단순히 '교수'라는 직함이나 특정 단체에 소속되었다는 것만으로 누군가의 진술의 타당성을 증명할 수 있다면 저를 포함한 여성주의자들은 훨씬 방대한 리스트를 작성해 내놓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으시다면, 그 사람들의 무의미한 이력 말고 그 사람들의 논지들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제시해주시는 게 서로의 시간낭비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애초에 제가 안티페미니즘의 해외저자 끌고 들어오기를 비판적으로 다루었던 이유가 바로 '해외 저자의 신뢰성 검토 없이 직함에 의존해 논의를 대체하는' 패턴이 악용되는 꼴을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이니까 말입니다. + 여성주의 "제2의 물결"을 어떤 식으로 규정하시길래 이들이 거기에 해당한다고 설명하시는지 설명을 부탁드리고 싶군요.


      ++ 페미니즘의 주류가 TERF고 다른 여성주의자들이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말씀을 보니, 저로서는 MOAB님이 여성주의에 대해 아는 게 온라인에서 악플 다는 거 본 게 전부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그럼 각종 여성주의 인권이나, 가족제도 현대화 문제, 정치적·경제적 평등 문제, 교육에서의 성평등과 같은 주제들에서 지금까지 수십 년 이상 걸려 여성주의자들이 해온 작업이 허공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하다못해 여성주의적 이슈를 다룬 한국 학술지라도 좀 검색해보시면...유튭보다 등재지가 상대적으로 신뢰도가 높겠죠). 자기 눈 앞에 보이는 걸 과대평가하는 건 우리 모두가 쉽게 범하기 쉬운 오류입니다만, 사전에 자료조사 없이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건 MOAB 님 발화의 신빙성을 상당히 악화시키지 않나 싶군요.

  2. 11 2017.12.21 13:41 신고 Modify/Delete Reply

    사실관계를 잘못 알고 계신 거 같네요. 페미니즘 내에 경계선을 긋고 진짜 페미 가짜 페미를 나누고 있는 건 워마드 등의 TERF가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소위 "쓰까페미"입니다. (이건 주장이 아니고 객관적 사실) 여태까지 페미니스트여성이 연루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쓰까페미"들은 당사자가 래디컬이냐 아니냐를 파악하느라 사태의 본질을 지워버렸고, 바로 얼마전 아웃백 채용취소 사건만 봐도 피해자가 래디컬이라는 사실이 아닌 헛소문이 돌자 "쓰까페미"들의 반응은 '그럼 뭐 별로 나서고 싶지 않음'이었습니다. 오히려 워마드는 그 사람이 쓰까페미든 명예남성이든 수녀님이든 연쇄살인마든 박근혜든 심상정이든 '여성기만 달렸으면 우리편이다'를 주장합니다. "꿘줌"이라는 표현도 워마드에서 절대 쓰이지 않는 표현인데요. 워마드는 수많은 혐오발언을 쏟아내면서도 어떤 여성혐오적 표현에도 발작을 일으키는 년들인데 꿘줌같은 표현을 쓰겠나요? 꿘줌은 디씨 등 워마드와도 계열을 달리했던 일부에서 쓰인 말입니다. 태클걸고 싶은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님이 전제하고 있는 "노골적으로 다른 그룹을 혐오와 조롱의 대상으로 삼으며 오직 자신들만이 진정한 페미니즘이라고 주장하는 기괴한 페미니즘"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는 점만 말씀드립니다. 언제나 먼저 나서서 래디컬을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들은 "쓰까페미"였습니다. TERF와 리버럴이 이론적으로 충돌할 때에야 무엇이 진정한 페미니즘이냐를 운운하는 것은 피할 수 없겠지만, 님이 비판의 초점을 두신 부분도 이론이 아니라 실천의 면인 것 같아서요.

    • BeGray 2017.12.21 16:30 신고 Modify/Delete

      죄송하지만 말씀하신 내용에 거의 동의하지 않습니다.

      1. "쓰까페미"가 TERF에게 제대로 된 페미니즘이 아니라고 비판하는 건 당연합니다. 위에서 써놨듯이 현대 페미니즘 운동의 기본전략을 망가트리니까요. 제 글의 요점 진짜 페미 가짜 페미를 나누는 게 문제라는 게 아니라(오히려 저는 일정 지점에서는 우리가 그 문제를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TERF 식의 "여성기" 중심 페미니즘 규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며 특히 젠더/퀴어 쪽 진영과 양립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충돌과 함께 "쓰까페미"들이 TERF(저는 이 그룹이 래디컬을 독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도 11 님의 코멘트에 사용된 이 단어의 용법에 동의하지 않습니다)들과 충돌하게 된 컨텍스트를 싹 지워버리고 쓰까페미가 래디컬을 조롱했다 식의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건 솔직히 지나치게 TERF 중심적 현상기술이라고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2. "꿘줌"은 메갈리아 이전 및 메갈리아 논쟁 때도 이미 용례가 발견됐고 지금도 TERF 계열 내에서 사용례가 발견됩니다. 그 그룹이 "어떤 여성혐오적 표현에도 발작"을 일으킨다고 보기엔 명자/흉자 같은 표현을 포함해--물론 이 표현을 TERF들만 쓴다는 이야긴 아닙니다만--이미 다른 여성그룹들 대상으로 비하적 표현을 계속해서 사용해왔죠.

      요컨대, 11 님께서 주장하는 "사실관계"는 제 생각에 특정한 관점에 입각해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 사실들을 잘라내지 않고는 성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3. 11 2017.12.22 10:33 신고 Modify/Delete Reply

    TERF와 리버럴이 여성기 중심 페미니즘에 관해 이론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음은 분명하지만 저는 님이 성별이 신체(성기)를 넘어서는 다른 구분법을 가질 수 없다는 TERF의 이론적 주장 자체가 아니라 그로부터 초래되는 실천적 태도에 비판의 초점을 두고 있다고 읽었는데요. 굳이 '자칭'이니 '한국형'이니 하는 표현을 사용해 어떤식으로든 어딘가에 존재하는 '진정한' 래디컬과 구분짓고 싶어하시는걸로 보아 님도 허용 가능한 선에서 까부는, 연대 가능한 TERF는 인정하시는 걸로 보입니다. 그럼 결국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의 비여성 배제, "똥꼬충", "젠신병자" 같은 혐오표현, 포괄적으로 말해서 보편적인 윤리에 어긋나는 비도덕적 행위들이 바로 "안티페미니즘이 원하는 페미니즘"이라는 거죠?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을 존엄성을 인정받는 인간의 대상을 확장해가는 과정으로 보느냐, 지배에 저항하는 권력 싸움으로 보느냐에 관점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향점은 같을지라도, 전자의 태도에서는 실천에 도덕이라는 제약이 따르게 되고, 후자의 태도에서는 성별을 제외한 그 어떤 것도 우선되는 가치를 갖지 못합니다. 따라서 그 사람이 어떤 발언을 하든 간에 내용과 상관없이 발언 자체가 권력 행위이기 때문에 활동에서 비여성을 배제하고자 하는 겁니다. 또한 이들의 언어 사용은 알고계시다시피 과잉언어입니다. 남성 역시 가부장제의 피해자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도덕적인 페미니즘은 남성을 공격하는 데 죄책감을 느꼈지만, 이건 미시적 권력 싸움이기에 메갈리아가 과잉언어를 사용하여 남성 자체를 공격한 게 이렇게 폭발적인 효과를 낳은 겁니다. 이 점을 인정한다면 "한남충"은 되고 "똥꼬충"은 안 되는 이유는 뭔가요? TERF가 보기에는 젠더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제의 피해자이자 가부장제를 존속시키는 가해자일 뿐입니다. TERF의 페미니즘은 권력 싸움이기에 페미니즘의 목적 외부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느금마 불고기보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 훈계하고 설득해서 그와 같은 여성혐오가 옳지 않다는 동의를 얻기보다 "느개비 풍혈후장"이라고 맞받아칠 때 권력의 확대를 느낀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늘 평가받고 심판받는 대상이다가, 남성의 외모, 나이, 성기크기를 평가하고 한남충인지 아닌지 심판을 내리는 주체가 되었을 때 권력이 확대되었음을 느끼는 겁니다. 그게 상대방의 인권을 침해했더라도요. '선량한' 시민들에게 피해가 갈지라도 노동자들은 파업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걸 권력 싸움으로 본다면 안티 페미니즘의 공격 대상이 된다는 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로 환영해야 할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꿘줌을 사용 안 한다는데 사용한다고 주장하시니 할 말 없지만 꿘줌과 명자/흉자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명자/흉자는 여성들의 명예남성적 행동을 조롱하는 표현이고, 꿘줌은 아줌마, 즉 여성의 '나이 많음'을 조롱하는 데다가 꿘들의 꿘질을 여성이 대표하도록 만드는 표현입니다. "이미 다른 여성그룹들 대상으로 비하적 표현을 계속해서 사용해왔"다는 게 어떤 표현들을 염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이신진 모르겠으나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여성을 '각성'시키고자 하는 전략적 과잉언어냐, 이미 가부장제에서 수없이 조롱당해온 여성성을 조롱하느냐의 차이가 있습니다.

    • BeGray 2017.12.22 15:14 신고 Modify/Delete

      답변 달았습니다. 성실하고 예의있는 댓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4. BeGray 2017.12.22 15:14 신고 Modify/Delete Reply

    먼저 성실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제 생각에 11 님과의 대화에서 제가 결정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지점, 즉 우리 대화의 핵심이 되는 지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을 존엄성을 인정받는 인간의 대상을 확장해가는 과정으로 보느냐, 지배에 저항하는 권력 싸움으로 보느냐에 관점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향점은 같을지라도, 전자의 태도에서는 실천에 도덕이라는 제약이 따르게 되고, 후자의 태도에서는 성별을 제외한 그 어떤 것도 우선되는 가치를 갖지 못합니다. [...] TERF의 페미니즘은 권력 싸움이기에 페미니즘의 목적 외부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위 내용에서는 마치 도덕과 권력투쟁이 완전히 분리될 수 있고, "쓰까페미"는 전자로, TERF는 후자에 속하는 것과 같은 분류가 작동합니다. 저는, 수사적 실천과 그 전략에 (연구자이자 행위자로서) 관심을 갖는 사람으로서, 도덕과 권력투쟁이 완전히 나누어질 수 있다는 주장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나이브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여러 입장들 간의 언어적 투쟁의 역사를 살펴볼 때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언어투쟁은 단지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을 정당화하는 보다 기제를 포함해야 하며, 정당화를 완전히 포기할 때 해당 언어/입장은 필연적으로 쇠퇴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도덕과 윤리의 층위는 정치적 언어의 사용에서 핵심적인 역할에 위치하고요. 예로 드신 노동조합은 자신들의 파업이 사회 전체적인 선에 기여한다고 주장하며, 심지어 나치스나 극우파처럼 명백하게 반도덕적 선택을 하는 경우에조차도 자신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언어를 수없이 생산해내는 걸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아니면 지지자들과 외부인들을 설득할 수 없고, 그런 상태가 지속될 때 필연적으로 권력 또한 감소하니까요--좀 더 운이 없으면 다른 행위자들, 다른 입장들에게 포위되어 공격을 받아 유의미한 영향력을 상실하기도 합니다.

    간단히 말해 어떤 형태로든 도덕적 정당화를 고려하지 않는 (언어/담론 상의) 권력투쟁은 마치 자기 발 밑을 파는 것처럼 전략적으로 자멸적이라는 것입니다. 특히나 언어적/담론적 실천의 장에서, 명백하게 반사회적·반도덕적인 입장이 있다고 할 때, 그리고 그들이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획득에만 관심이 있다고 공공연하게 외치는 경우에, 다른 사회구성원이 이 입장을 용인하고 귀기울여야 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그 다른 그룹들이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이들이라면, 최대한 빨리 이들을 담론장에서 소거시키거나 적어도 이들로부터 가능한한 권력을 박탈하고 축소시키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고 그 실천에 돌입할 것입니다. 이 과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어떤 도덕에도 묶이지 않고 오로지 더 많은 권력만을 획득하겠다"고 TERF가 공언하는 순간, 이들은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공공의 적"으로 간주되며, 이는 TERF의 권력이 더 감소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TERF가 정말로 권력증진을 원하는 이들이라면 이들은 자신들이 오직 권력증진에만 관심이 있고 그 과정에서 다른 구성원들을 공격하고 조롱하고 이용하는 걸 거리낌없이 할 수 있다는 본심을 공언하는 게 더 전략적으로 해로운 판단인 것이죠.

    따라서 결론은 이렇습니다. 만약 TERF의 주요 행위자들과 이데올로그들이 정말로 말씀하신 것과 같은 논리로 스스로를 정당화한다면, 그리고 그 논리를 공언하는데 어떤 거리낌도 없다면, 그러한 전략은 스스로의 목적--더 많은 권력의 확보--에 합치하지 않는 잘못된 전략이라는 것이죠. 메갈리아 운동 당시 일부 관찰자들이 "여성이 직접 남성권력에 대항해 공격적인 표현을 발화할 수 있는 것도 권력의 증진"이라는 식으로 공격적인 표현을 정당화했습니다만, 그러한 식의 공격적 표현사용=권력증진이라는 진술이 적용되는 건 매우 특수한 조건 하에서만 가능하며 보편적으로 타당한 건 아닙니다('물을 많이 마시는 게 좋다'는 건강상식이 '물 100L를 1분에 마시는 일'에도 해당되지 않는 것처럼요). 저는 11 님께서 설명하신 행위자들이 정말로 실천적이 되고 싶다면 이처럼 도덕과 언어투쟁의 관계에 대한 단순하고 사실에도 맞지 않는 모델을 좀 더 현실적으로 유용한 모델로 대체하는 것이 낫다고 믿습니다.

    • MOAB 2017.12.24 22:50 신고 Modify/Delete

      그래서 난 빌 버같은 사람을 좋아함. 그사람은 굳이 자신에게 무슨 정당화 같은 걸 굳이 하려 들지 않는 이른바 '편협한 사람'을 자처한 후 그 '정의'라는 것들이 그 이름으로 보여주는 온갖 자기모순들을 시원하게 까내리거든. 그저 일개 스탠드업 코미디언에 불과한 사람이 보편적 정의라는건 없다는 아주 간단하지만 정곡을 꿰뚫는 사실을 실사례를 들어가며 알려줌.

  5. 지나가던A 2018.01.19 16:43 신고 Modify/Delete Reply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6. 퀴페 2018.05.10 16:21 신고 Modify/Delete Reply

    BeGray 님의 필력에 감탄하고 갑니다 ㅠㅠ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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