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 서구 근대의 역사, 그리고 동아시아적 근대?

Intellectual History 2016. 10. 15. 01:45
얼마 전 지인에게 선물받은 옥스퍼드 "초간단입문"(Very Short Introduction) <계몽(주의)>(The Enlightenment) 편을 절반쯤 읽고 있다. 저자 존 로버트슨(John Robertson)은 케임브리지 클레어(Clare) 칼리지에서 17-18세기 유럽 정치사상사·지성사를 가르치고 있으며, 스코틀랜드와 나폴리의 계몽(주의)에 관한 저술을 포함해 특히 계몽주의 관련 저술들을 내놓고 있다(http://www.hist.cam.ac.uk/directory/jcr57@cam.ac.uk 를 참고하라). Very Short Introductions 시리즈를 종종 챙겨보시는 분은 알겠지만, 이 시리즈는 한국에서 통상적으로 '입문서'라고 불리는 책들에 기대되는 바와 달리 해당 분야 일급의 전문가들이 그때까지의 (영미권의) 주요한 연구성과를 반영하여, 최소한 그것들까지 염두에 두고 쓴 책들로서 그 자체로 다른 연구자들에게도 중요한 읽을거리로 간주된다: 예를 들어 <클라우제비츠>(는 마이클 하워드(Michael Howard)가, <홉스>는 리처드 턱(Richard Tuck), <케인즈>는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 <맬서스>는 도널드 윈치(Donald Winch), <포스트식민주의>는 로버트 영(Robert Young)...(테리 이글턴도 끼어 있지만 모른 척하자).


1.

2015년에 나온 <계몽> 편 역시 예외는 아니라서, 8쪽에 달하는 "더 읽어보기"(Further Reading)를 보면 계몽기 주요 저작물의 비평판 안내에서부터 조너던 이스리얼(Jonathan Israel)의 네 권 짜리 두툼한 책은 물론, 작년 완간된 포칵의 <야만과 종교>(Barbarism and Religion)나 2016년 출간된 제임스 해리스(James Harris)의 흄 전기를 포함해 극히 최근의 연구까지 포괄한 시야를 자랑한다. 이러한 스칼라십을 토대로 로버트슨은 다음과 같이 상당히 논쟁적인, 그러나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주장을 제시한다. 그의 입장이 매우 잘 드러난 1장말미의 문단 하나를 그대로 옮겨보자.

"이 책에서 다룰 계몽은 유럽적인, 즉 영국에서 트란실바니아까지, 발트 해에서 지중해까지 전체 유럽 대륙을 가로지르는 현상이다. 이 계몽은 동시에 대서양 너머 남북 아메리카의 유럽 식민지까지 뻗어나가, 그리고 대서양으로부터 인도양과 태평양으로까지 나아가 인도 및 중국 문화와 마주한다. 그러나 내가 이해하는 한 계몽은 유럽세계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남아있다. 중국이나 남아시아에 고유한 계몽 개념을 만들어내는 일, 혹은 이 현상을 유럽 또는 세계사의 매우 다른 시기로 끌어가는 일은, 만약 그런 일이 유비에 의해서든 번역을 통해서든 가능하다면, 다른 이들이 수행할 과제다. 난 여기서 그러한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다. 좋든 나쁘든, 계몽은 유럽의 창작물이자 유산이다" (The Enlightenment presented in these chapters was a European phenomenon, reaching across the entire Continent of Europe, from Britain to Transylvania, and from the Baltic to the Mediterranean. It was also an Enlightenment which extended across the Atlantic Ocean, to the European colonies in North and South America, and from the Atlantic into the Indian and Pacific Oceans, there to encounter the cultures of India and China. But the Enlightenment as I understand it remains a phenomenon of the European world. If it is possible, by analogy or translation, to construct indigenous Enlightenments in China or South Asia, or to transfer the phenomenon to quite different periods of European or world history, others may undertake the task. I will not be making the attempt here. For better or for worse, the Enlightenment was Europe's creation and legacy. 13-14).

로버트슨의 책은 이러한 주장을 설득력 있게 만들기 위해 크게 종교, 사회(society)·사회성(sociability), 공론장(the public sphere)이라는 세 가지 주제에 초점을 맞춘다. 1980-90년대 이후 18세기 유럽을 다루는 영미쪽 스칼라십을 간간이 곁눈질해온 독자들에게는 이미 익숙할 이러한 키워드들을 바탕으로 저자는 계몽의 주요한 흐름을 형성한 필자들에게 기독교적 전통이 제기한 문제들을 처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이들이 이 시기에 자신이 속한 세계를 어떠한 개념들을 통해 받아들였는지, 이들이 주요한 발화대상으로 삼은 공중·공론장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등을 설명해 나간다(로버트슨이 언급하는 여러 저자들의 목록에는 기존에 한국에 소개된 문헌들만을 읽은 독자들에겐 낯선 이름이 적잖을 것이다). 이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역사적 대상으로서의 계몽을 이해할 때 유럽적 맥락을 소거하고 말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학문의 흐름을 보다 메타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어떤 점에서는 로버트슨의 입장이 단지 그 자신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니라 유럽이 만들어낸 서구 근대가 어떠한 지역적·역사적 특수성에 기초해 왔는가를 설명하고자 했던 20세기 후반 영미권 사상사 필드의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음을 한번쯤 생각해볼 것이다.


2.

그리고 이 책을 한창 읽던 나는 다음과 같이 당혹스러운 진술이 나오는 프레시안 기사를 마주한다(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42131): "이가와 요시지가 집필한 <송학의 서천>에서는 자유 시장, 관료제, 신분제 사회 해체 등 소위 근대적인 요소들이 서구가 아니라 중국의 송나라에서 시작됐다고 기술한다. 송나라 전에 당나라 때 남쪽에서는 불교, 서쪽에서는 이슬람교가 들어왔다. 이들을 본래의 유학과 통합해서 만든 것이 '송학'인데, 그 다음에 들어선 원나라는 유라시아의 거대한 대륙을 통합해서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 <송학의 서천>은 바로 이 네트워크를 통해 송학이 어떻게 전파됐는지를 추적한 책이다. 중국의 사서삼경을 비롯한 고전들은 이후 원나라가 구축한 네트워크를 통해 서구로 들어갔고, 이 책들은 그 지역의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중국어에서 페르시아어로, 페르시아어에서 라틴어로, 그리고 라틴어에서 프랑스어로 번역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 책들이 프랑스로 전해진 뒤에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 프랑스 대혁명은 왕의 목을 친 사건이다. 그런데 이것은 2000년 전 맹자가 이미 말한 적이 있다. 왕이 왕답지 않으면 목을 치라고 하지 않았나? 맹자의 이 말이 여러 가지 언어로 번역되면서 서유럽 대륙의 끝인 프랑스까지 도달했고 결국 프랑스 왕은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나는 16~18세기에 서구 지식인들이 중국문헌을 어떻게 수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연구사를 따라가본 적이 없지만, 이 시대 유럽인들이 가끔 중국 관련 언급을 할 때 기본적으로 자기들에게 이미 익숙한 프레임에 맞춰서 이해하는 경우는 본 적이 있다(대표적으로 <로빈슨 크루소> 2권이라든가). 관련 연구자들의 저술을 읽은 뒤에야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내 생각에 설령 "송학" 비슷한 게 진짜로 유입되었다 할지라도 매우 파편적으로, 서구인들 자신들의 관심사에 맞게 수용되었을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덧붙이자면 동방--꼭 중국이 아니라도 좋다--이나 '야만국'의 외국인 화자가 유럽에 와서 이상한 것들을 들추는 것 자체가 이 시기 하나의 관습적인 문학적 장르에 속한다; 대표적으로 몽테스키외의 <페르시아인의 편지>처럼). 물론 그 경우에조차도 이것들이 서구인들의 '근대적' 사고방식에 어디까지 핵심적인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해본다면, 나는 압도적으로 기독교적 전통과 고전기 텍스트들의 영향력이 컸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은 분명 이 시기 서구에서 인기 있는 여러 흥밋거리 중 하나였지만(물론 19세기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대체로 '미개한 비문명' 취급을 받기 시작한다), 고전기 문헌과 기독교 전통은 삶 자체라고 할 만큼 유럽인들에게 근본적인 인식틀을 제공했다--심지어 주어진 틀이 현상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에조차도 이 틀에 기반하여 사고했을 정도로 말이다.

18세기 서구의 사상사·문화의 주요 텍스트를 어느 정도 읽어본다면 이 시기의 유럽 지식인들이 자신들이 속한 사회·문화를 시공간적 특수성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할 정도의 거리두기를 시작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맬서스에게까지도 찾아볼 수 있는 목축-농경-상업 식의 단계론적 역사기술(stadial historiography)은 유럽문명을 시간적 구획 안의 한 단계로 인식할 수 있게 해주었고, 유럽 외의 여러 지역에 대한 관심은 기독교를 포함한 유럽적 전통이 하나의 지역적 관습에 불과하다는 걸 공식적인 지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었다. 예를 들어 로크가 <통치론>에서 "태초에 모든 세상은 아메리카였다"(In the beginning, all the world was America, Robertson 54에서 재인용)라고 말하듯이 말이다. 중국이든 동아시아든 대체로는 이러한 욕구, 즉 서구인들의 자기 이해(self-understanding)를 위한 여러 비교대상의 탐색과정에서 하나의 흥미로운 사례로 다루어졌다. 그 영향이 지금의 내 생각보다 좀 더 클 수는 있겠지만, 서구 근대의 주요한 요소들이 "송학"의 결정적인 영향 하에 있었다는 주장이 서구 근대를 역사적으로 다루는 이들에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내 생각에 적어도 가까운 시일 내에는 매우 낮다.

덧붙이면, 근대 세계에서 왕정을 전복시키고 재판을 통해 왕의 목을 자른 최초의 케이스는 1793년 프랑스가 아니라 1649년 영국이다. 그리고 영국의 공화정 경험은 당연히 이후 서구 근대의 주요한 혁명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송학 같은 것과 비교하는 게 말이 안 될 정도로 말이다. 이병한 박사에겐 (혹은 <송학의 서천>의 저자에겐) 아마 영국혁명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었던 모양이지만, 서구 근대인들에게는 물론 그렇지 않았다.


3.

내 생각에 이병한 선생과 이병한 선생의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프레시안의 운영진들의 가장 큰 불행은 주변에 괜찮은 서구 근대 연구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일성싶다. 저 포럼에서 나온 서구 근대 형성 관련 주장은 현재로서는 진지한 학적 주장이라기보다는 지금도 엄청나게 쌓이고 있는 서구 근대 연구 스칼라십을 제대로 따라가지 않은 상태에서 '서구 콤플렉스'를 어떻게든 해소해보려는 안쓰러운 지적 자위행위처럼 보인다. 이 시도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그다지 지적이지 않다는 것으로, 가령 어떤 문헌이나 학설이 전파·번역되었음을 말하는 것과 그것이 수용된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설명하는 작업은 상당히 다르다는 기초적인 사실은 적어도 기사에 인용된 이병한의 말에는 충분히 강조되지 않고 있다. 지적인 자위행위에서 지적인 면모가 빠지면 무엇이 남는지는 굳이 직접적으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왜 이런 황당한 일이 진보판에서 벌어지는지 솔직히 드러내놓고 이야기해보자. 제8회 백년포럼 강연 자료집(http://thetomorrow.kr/archives/2374 에서 볼 수 있다)은 아주 명료한 논리를 보여준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적 질서의 수명은 다했고, 중화신질서를 포함해 과거의 유라시아적 질서가 일어나고 있으니, 우리는 이제 "신 동도"(新 東道)의 "서진"(西進)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거의 종교적인 슬로건은 유감스럽게도 "그런데 우리에게 있다는 그 동도가 뭔지, 그게 과연 오늘날 우리에게 적합한 규범인지"와 같은 초보적이지만 필수적인 반문조차도 통과하지 않은 성싶다(기사를 따르면 이병한은 "신 동학"을 주장하는데, 아마 그게 뭔지 아는 한국인은 극히 드물 것이다). 여성주의적 담론을 통과한 여성들은 굳이 백여 년 전 한반도의 사상을 현재적인 규범으로 받아들이자는 요청을 달가워하지 않을 거라는 예측은 확실하게 할 수 있다. 그러한 규범적 적합성의 검토를 거치지 않은 이병한의 주장은, 그리고 이에 매혹되는 아저씨들의 사고방식은 아마도 다음과 같이 옮겨질 수 있겠다: "나는 동방인데, 지금까지 서구에 눌리고 살아서 서러웠으니 이제 내가 전 세계에 떵떵거리고 살면 참 좋을 것 같애, 그러니까 근대화 다 집어치우고 우리 유라시아 만세야!" 한 세기도 더 전의 사회에서 살고 싶다면 그래도 된다. 단 당신들만 가서 산다는 조건으로.

마지막으로, 진지한 연구자들이나 상식인들이 이런 황당한 이야기들을 레퍼런스로 잡고 동아시아적 근대화라든가 동아시아가 형성한 서구 근대 운운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이런 거 읽을 시간에 조금 더 시간 들이면 영어로 된 아주 많은 읽을거리 중에서 골라읽을 수 있고, 그 편이 확실하게 더 유익하다. 반근대주의적 반지성주의에 기초해서 근대화과정을 논하는 것만큼 확실하게 망하는 길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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