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 일기. 재보선.

Comment 2015. 5. 1. 00:09

발제 준비하다가 잠깐 들어와서 재보선 뉴스를 봤다. 전패라고 해서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기사를 읽어봤는데, 광주에서 천정배가 이긴 걸 새누리의 승리와 동급으로 놓을 수는 없고, 성남이랑 인천은 원래 새누리가 되도 딱히 이상할 게 없는 동네 아니었나 싶다. 관악이야 정동영이 역대급 X맨 역할을 해주었고(오가면서 현수막을 봤는데 가관이었다...그가 진심이 있든 없든, 선거전략을 그렇게 밖에 못 짤 거면 그냥 대중정치인을 그만둬도 별 지장이 없다고 본다; 본인의 역량 문제인지 참모진 문제인지야 알 도리가 없으나, 결과물이 허접한 건 마찬가지였으리라).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렇게 충격적인 결과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대선이나 도지사급 선거도 아니고,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인데 조직에서 밀리면 선거에서 지는 게 상식적인 거 아닌가.


개인적으로 이걸로 문재인이 끝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문재인이 복귀하기 전부터, 어쩌면 노무현 사후부터 새민련은 더 이상 합리적인 시스템을 갖춘 단일한 조직이라고 말하기 힘들었다. 한나라-새누리가 싱크탱크도 만들어 돌리고 공천권을 중심으로 나름대로의 조직을 갖춰 움직이는 동안--물론 내부경쟁에서 밀린 사람을 다른 데 꽂아주는 방식으로, 쉽게 말해 외부자원(대표적으로 국가자원)을 약탈하는 '제국주의적' 방식으로 내부의 갈등을 조정해 왔지만--새민련은 조직의 합리성 차원에서 어떤 개선이 있었나? 적어도 그런 움직임이 있었다고 이야기해주는 기사는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문재인은 이미 조직이라고 할 수 없는 조직에 (박근혜 정부의 실정과 개인에게 몰린 정치적 기대감을 이용해) 이름만 얹어두고 사실상 문재인 '개인'으로서 활동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예를 들어 지난 선거의 안철수와 비교해보면, 딱히 정치적 전략을 짠 것도 아니다; 그때 "전략공천"이란 말이 유행했던 것과 달리 문재인이 무언가 그림을 그리려 했다는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그가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싶다. 애초에 그가 조직을 장악했다면 세월호 정국 때 혼자 천막에 들어가서 쓸쓸히 단식투쟁 하면서 동물원의 동물마냥 구경거리가 되는--"문재인이 살 빠지니까 진짜 미남이구나" 이런 말만 돌아다녔다--민망한 광경 따위는 나오지 않았을 거다. 사실 이번 선거에서 '이겼'다고 해도 다음 대선 주자로서의 기대치가 약간 높아지는 거 외에 실제로 이득이 있었으리라 생각되지도 않는다.


문재인이 굳이 위기라고 한다면, 대권 주자로서 치명타를 입었다기보다는 이참에 문재인을 털어버렸으면 하는 새민련의 다른--그런 게 있다면--계파들이 문재인을 흔들 명분을 얻었기 때문에 위기가 올 가능성이 높다. 뒤집어 말하자면, 이번 선거를 기점으로 당 쇄신을 외치며 조직개편에 들어갈 수 있다면 차라리 앞으로 더 해볼 만할 건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한나라당이 탄핵역풍 맞고 완전 아작 났을 때 박근혜의 겉으로 보이는 중심잡기 말고 시스템을 디자인한 사람들이 있었을텐데, 한나라 혹은 새누리의 시스템이 어떻게 '합리화'되었는가를 추적하는 연구를 해서 새민련이 참고나 좀 했으면 좋겠다. 물론 새민련 소속의 아무도 뭐 하는지 모르는 유사-싱크탱크가 이런 걸 하긴 할런지는 모르겠다.


전략을 짜려면 적어도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 하나는 넓은 공간단위의--도, 국가, 교류권, 대륙 등등--사회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지식을 생산하는 기구고(경우에 따라서 이 기구가 담론 혹은 프레임을 생산하는 '수행적' 기능을 하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그렇게 결합-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전략을 짠 뒤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조직화된 집단이다. 새민련이 이 둘 중 하나라도 갖추었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 들은 적이 없다. 그래서는 전략적 움직임도 갖추지 못한 채로 그때 그때 유명인사나 지역유력인사를 끌어들여 어떻게든 선거만 이기고 보자는 기회주의적 습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예전 한나라는 그렇게 상대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새누리는 아니다.


새누리의 상승을 보면서 무지한 국민들을 탓하거나 정치적 절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글쎄, 나는 지금이 지극히 상식적인 요인들에 입각한 '합리적인' 귀결로 보인다. 박근혜가 아무리 지지율을 말아먹고 당 안팎에서 수많은 망언들이 나와도 새누리가 이기는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쉬운 답변은, 전근대적인 조직과 조금이나마 합리화된 조직이 경쟁했을 때 후자가 이길 확률이 당연히 높다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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