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삼아 보는 정치성향테스트 및 개인적인 코멘트

Comment 2015. 4. 25. 00:45






원 링크는 http://blog.naver.com/rerinelf/140211497369 첨부된 엑셀 파일을 받아 각 질문 중 본인이 해당되는 답변에 1을 넣으면 된다. 작년까지 떠돌던 4.0 버전과 차이가 꽤 많은데, 정치성향을 나타내는 그래프가 작년의 4각형에서 6각형 모델이 되었다. 가장 큰 차이는 배경에 놓인 정치성향들의 위치로, 4.0 버전에서는 총 21개의 성향들이 배치되어 있었다면 5.0에서는 19개로 줄었고 그 분포도도 훨씬 정리된 형태가 되었다. 이전의 코포라티즘이 빠지고 새로이 등장한 공화주의가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오늘날 공동체주의를 포함해 공화주의적 담론이 번성하는 상황을 반영한 듯 싶다).


4.0버전을 접했을 때 만든 이가 신좌파의 등장 이후 다양하게 분화된 좌파 내의 조류들에 관심을 가졌다는 인상이었다면, 5.0 버전은 조금 더 표준적 (미국) 정치학에 근접했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 나 자신이 최근 공화주의 논의를 좇아 읽어가고 있지 않았다면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는 극도로 생소할 공화주의가 등장한 것에 거부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정체성 정치 군에 속하는 여성/생태주의 및 다문화주의가 개인주의/사회적 자유주의/신좌파의 범주에 나뉘어 들어가게 된 점도 체크해야 할 부분. 정체성 정치의 지지자들에게는 5.0 버전의 변화가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정체성 정치의 비판자에 가깝지만, 한국적 맥락에서 볼 때 특히 성정치 등에서 정체성 정치의 효용이 남아있다는 주장에도 동의하기 때문에 5.0 버전을 거리를 두고 보게 된다.


따라서 이 테스트를 하는 사람들은 테스트의 결과제시에 나타난 정파들의 배열 및 성향이 기본적으로 유럽 및 미국의 정치 이해방식에 근거한 것이며 보다 복잡한 현대 한국의 맥락에서는 곧바로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숙지하는 게 좋겠다.


여전히 두 개의 입장만을 제시하는 질문방식은 불만족스럽고, 두 가지 주요한 선택 모두에 거리를 두는 경우가 잦은 나는 나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충분히 표현될 수 없다고 느낀다. 질문에 포함된 개념이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것인지, "현재의 조건에서 그렇다고 생각하는지"도 답변자가 다소 자의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사분면의 구조에서는 독특한 변증법적 구조를 갖는 입장들--맑스주의는 당연하고, 예를 들어 시민군이라는 매개를 바탕으로 개인의 덕성과 공동체의 덕성이 함께 증진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마키아벨리적 공화주의 등--은 제대로 표현되기 어렵다; 물론 개인과 사회의 간극이 부인하기 힘들 정도로 커져버린 오늘날 이러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의 소수파에 속할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다양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대에 비해 표로 표현된 결과물에 아주 냉소적이 되지는 않았다. 애초에 나 자신의 입장이 지난 10년간 계속해서 변화해왔고, 아마도 앞으로도 상당기간은 변해가리라는 것을 감안할 수밖에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나는 나 자신이 네오맑시스트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애초에 네오 맑시스트의 스펙트럼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부터 잘 모르겠다...분명한 사실은 나는 사민주의적 기획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나는 학부시절의 '상식'이었던 포스트모던-신좌파 및 정체성 정치에서 출발했으나, 공리주의/개인주의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면서 집단적 주체성을 강조하는 전통적 좌파 및 공동체주의자들의 입장에 좀 더 근접하게 되었다. 행정을 포함한 조직화된 권력의 역량 및 물질적 영역의 중요성처럼 정체성-개인-문화로 설명될 수 없는 사회적 실체들을 시야에 포함하게 된 것 역시 전술한 입장변화에 중요한 몫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자율성을 포기할 수 없었던 푸코 및 아도르노의 영향은 여전히 강하다. 이 결과에서 나 자신이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 양자에 깊게 걸쳐있는 모습은 내게 영향을 끼친 상이한 지적 전통들의 공존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가장 합당한 해석은, 이 표가 단순히 내 지적 이력의 잡식성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전체 사회문제에 일관된 입장을 제공해줄 수 있는 종합적인 사회/인간이론이 부재하다는 사실 자체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문화적 의식의 규명에 초점을 둔 대부분의 이론은 사회의 물질적 토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해명을 포기했으며,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불안정성을 지적하는 가장 주요한 입장인 맑스주의 또한 국가권력을 작동을 포함해 자본주의를 지양하는 방법에 대한 답변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현재 맑스주의적 분석과 맑스주의적 사회변혁이론을 성공적으로 융합한 주요 사례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혹은 한국사회에 성공적으로 등장하지 못했다). 우리는 좋든 싫든 사회이론의 측면에서 혼란기에 있으며, 반지성적인 극우파의 조야한 이데올로그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일종의 '절충주의자'로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장기적 절충주의/결의론의 시대가 될지, 아니면 더 포괄적인 입장들이 등장하기까지의 이행기로 끝맺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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