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렛 캐버노 인준의 역사적 맥락과 교훈

Intellectual History 2018.10.09 21:35
10월 6일 미국 상원에서 브렛 캐버노(Brett Kavanaugh)의 연방대법관 인준안이 통과되었다. 한국에서는 (적어도 내 시야 내에서는) 이 사안을 주로 트럼프가 지배하는 공화당의 승리, 혹은 성폭력 혐의가 있는 인물의 대법관 취임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둘 다 중요한 쟁점이지만, 내 생각에 보충되어야 할 사항이 있다면 이번 브렛 캐버노의 지명과 인준이 트럼프·공화당의 갑작스럽고 충동적인 결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적어도 1980년대 이래 지속되어온 미국 우파 반혁명(counterrevolution)의 연장선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대 미국 및 사법 문제에 있어 나는 흥미삼아, 그것도 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지인들의 추천을 받아 한 두 권의 책을 읽은 정도에 불과하므로, 여기서는 거칠고 간략한 구도와 몇 가지 읽을거리를 제시하는 걸로 만족하도록 하자.


1.

20세기 미국사를 이해하는 여러 관점 중 흥미로운 구도를 하나 꼽자면 특히 연방대법원을 정점으로 하는 사법부와 행정부에 진보/혁신주의("progressive")와 보수가 어떻게 파고들었나를 지켜보는 데 있다. 미국사에 대해 더 정통하신 여러 분들이 나의 오류를 교정해주시기를 기원하며 매우 거친 도식을 그려보자면 다음과 같다. 19세기에 고등교육과 보다 전문적인 학문의 발전에 있어 독일은 상당히 선진적인 수준을 이룩한 것으로 간주되었다면, 이는 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 "혁신주의 시대"(Progressive Era*)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시기 여러 미국인들은 유학 등을 통해 독일의 학문을 접하면서 특히 국가/행정기구가 사회개혁에 있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형성했다. 행정부를 통해 자신들의 목적을 수행하려던 진보에게 최대의 걸림돌은 연방대법원이었는데, 후자는 1930년대 프랭클린 D. 루즈벨트 행정부가 제출한 "뉴딜" 법안을 줄줄이 위헌으로 퇴짜놓았다. 루즈벨트는 이에 맞서 1937년 대통령이 만 70세 6개월 이상 고령의 연방대법관의 수만큼 추가로 대법관을 지명할 수 있도록 하자는 초강수를 두었고,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지만 이를 전후해 연방대법원은 점차 연방정부의 개혁적 법안을 합헌으로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연방대법원의 진보적 성향이 두드러진 것은 1953년 공화당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에 의해 연방대법원장으로 임명되어 1969년까지 재직한 얼 워런(Earl Warren)의 시기였다. 1954년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Brown v. Board of Education) 재판에서 연방대법원은 과거의 "분리하되 평등"(separate but equal)이란 구호 아래 인종분리를 정당화한 과거의 입장을 뒤집고 공립학교의 인종분리를 폐지시키는 기념비적인 결정을 내놓았고, 이후 (아이젠하워의 기대와 달리) 연방대법원은 매우 적극적으로 진보적 정책을 이끄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보수의 반발이 뒤따른 것은 필연적이었다. 1969년 대통령직에 취임한 리처드 닉슨은 연방대법원의 진보주의를 억누르고자 자신에게 무려 4차례나 주어졌던 연방대법관 지명권을 보수적인 대법관을 지명하는 데 할애했으나, 닉슨에 의해 지명된 판사들 또한 연방대법원의 진보적 성향을 바꿀 의향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1973년 여성의 낙태를 금하는 텍사스 주법의 위헌여부를 둘러싼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은 7 대 2로 위헌으로 결정되었다*. 이는 이후 수정헌법 14조에 보장된 "자유"에 여성의 프라이버시권이 포함되는지의 여부를 놓고 이를 인정하는 측과 그렇지 않은 측의 대대적인 갈등을 낳게 된다.
(* https://www.lawtimes.co.kr/Legal-Opinion/Legal-Opinion-View?serial=45636)

보수주의자들의 반격이 체계화된 형태로 등장한 것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기부터였다. 진보적인 성향이 가장 큰 목소리를 내고 있었던 당시 미국 법학계에서 1982년 설립된 "연방주의자 협회"(Federalist Society)를 비롯한 보수주의 법학 단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보수단체의 재정지원, 레이건 행정부와의 협력 등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화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빠르게 성장해갔다. 레이건 정부는 진보주의가 장악한 연방대법원을 보다 적극적으로 뜯어고치고 싶어했으며 새로이 등장한 우파 법조인들을 다른 무엇보다도 연방대법관직을 포함한 중요한 자리에 기용하고자 노력했다. 이들의 핵심적인 교리가 바로 헌법 해석에서의 "원전주의"(originalism)으로, 새로운 우파 법학자들은 미국 헌법의 해석은 헌법을 입안한 사람들, 즉 18세기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의 원 의도에 입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달리 말하면 "로 대 웨이드" 판결에서 낙태 합법화의 핵심논리였던 여성의 프라이버시권은 원전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에 속하지 않는다. 여성의 낙태권 그리고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대한 입장은 현재까지도 연방대법관 (후보)의 선정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요소로 남아있다.


2.

반드시 짚어야 하는 추가적인 사실이 하나 더 있다면, 그것은 복음주의자들로 대표되는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들이 연방대법원 문제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후 1960-70년대에 사법적 영역을 포함해 세속주의가 두드러지게 퍼져나간 것에 대항하여 개신교 복음주의는 1960년대 중후반부터 각 지역의 풀뿌리 교회 조직 및 대규모 TV 방송 등을 매개로 대대적인 조직화를 시도했다. 1960년대까지는 정치영역에의 개입을 꺼리던 근본주의적 복음주의자들은 세속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에 대항하여 공적 영역에서 기독교를 기념하고 가르칠 권리,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적인 지원을 받을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정치적 활동에 들어서기 시작한다. 이제 복음주의자들은 "도덕적 다수"(the Moral Majority, 1979년 출범)와 같은 슬로건 하에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으며, 1980년 레이건의 당선, 1988년 아버지 조지 부시의 대통령직 당선을 거치면서 공화당의 주요 결정에서 근본주의적인 개신교 복음주의자들의 의사는 무척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미국의 보수적 개신교도들에게 "로 대 웨이드" 판결과 낙태 합법화를 뒤엎는 과제는 사법적 영역에서 개신교 보수주의 혹은 극우의 승리를 선언함에 있어 결정적인 사안이 되었다. 보수주의 법학계의 원전주의적 입장이 그들의 중요한 법리로 자리 잡았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전사회적인 논란을 초래했던, 그리고 이번 캐버노 지명의 전례처럼 언급되고 있는 1991년 클래런스 토머스(Clarence Thomas) 연방대법관 인준은 헌신적인 원전주의자를 연방대법원에 집어넣기 위해 행정부·법조계·개신교계가 긴밀히 연계하는 현대 미국 우파 정치의 중요한 면모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연방대법원에 원전주의자가 지속적으로 투하되면서도 쉽사리 뒤집히지 않았고, 복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표가 이뤄지지 않는 걸 보면서 더욱 강경한 입장으로 옮겨갔다. 이는 특히 2000년대 아들 조지 W. 부시 대통령 재직 이래 공화당 정치의 주류에서 온건·중도파의 토대가 좁아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티파티에서 도널드 트럼프에 이르는 공화당의 새로운 포퓰리스트들은 "제도"(institution)에 대한 국민적인 혐오와 불신을 증폭시켜 연방정부의 역량과 권한을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이 과정에서 공화당 중도파는 무력화되었으며 민주당과 리버럴 또한 점차 좌경화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날 목도하는 "미국의 분열"의 한 가지 이유다.

트럼프가 캐버노를 선택하고, 지명을 밀어붙이고, 최종적으로 그 지명이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준될 수 있었던 것은 부분적으로는 바로 지금까지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한편으로 1980년대부터 미국 법학계에서의 보수주의 반혁명이, 다른 한편으로 그것과 분리될 수 없는 미국 우파 개신교계의 강력한 대중정치적 영향력이 있었고, 양자가 결합하여 미국 정치를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몰고 간 흐름이 있었다. 다음달 중간선거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새로운 미국 우파의 영향력이 쉽게 사라질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3.

캐버노의 인준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한국인들은 여기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세 가지 사실만 꼽고 싶다.

첫째, 극단주의의 발흥을 막아내지 못하면 언젠가는 '상식적인' 의사결정마저도 쉽지 않은 순간이 온다. 아직 태극기부대와 유튜브의 우파뉴스 채널은 미국의 포퓰리스트 극우파에 비하면 무척 왜소한 영향력만을 지니고 있지만, 이들이 새로운 세력을 형성해 보수정당에 침투하여 게임의 규칙을 새로 짜려 시도할 가능성은 항존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보도된 에스더기독선교회를 비롯, 반동성애 개신교 극단주의자들은 성소수자 인권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무척 경계심을 갖고 볼 필요가 있다.

둘째, 종교와 교회는 현대 정치에서도 여전히 너무나 중요하다. 현대 정치가 공적 영역에서 종교의 영향력을 퇴출시켰다고 믿을 수 있었던 시절은 지난지 오래다. 한국의 많은 진보/리버럴은 여전히 종교집단이 언젠가 알아서 사그라들거나 기껏해야 개인의 사적 생활로 축소될 거라고 낙관하는 경향이 있는데, 1990년대, 그리고 무엇보다도 9.11 이래 종교사회학·역사·사상연구자들은 종교의 영향력이 결코 쉽게 지워질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전제에 입각할 때, 한국의 성소수자운동 및 그 지지자들이 개신교를 뿌리치기보다는 어떻게 최근 더욱 보수화하고 있는 개신교단들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게 좀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셋째, 미국 리버럴은 보수주의 반혁명에 대처하는 데 그다지 성공적인 전략을 채택한 것 같지 않다. 20세기 중반 이래 보수진영에서 근본주의, 진보진영에서 세속주의가 강화되는 동안 진보·리버럴은 역설적으로 미국 기독교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통로를 점차 상실했다. 이는 오늘날 공화당과 복음주의자들이 기독교안 유권자들의 담론장에서 크나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거의 개입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나는 보다 전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주로 미국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 혹은 그러한 담론을 그대로 흡수한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태도, 미국 진보·리버럴의 규범적 가치와 정치적 전략, 그리고 그들이 20세기를 해석해온 과정을 그대로 받아들여 오늘날의 세계와 한국사회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은 반드시 수정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나 역시 미국 리버럴·진보의 가치관을 상당히 공유하는 입장이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전략과 현상분석이 '미국의 몰락'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우리에게 필요한 과제 중 하나는 근래 수십년 간 미국인 연구자들이 리버럴의 '휘그주의적' 전제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역사, 특히 20세기의 역사를 새롭게 연구해온 것을 소화하고 거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일이라고 덧붙이고 싶다.


4. 주로 참고한 자료 세 가지만 열거하면,

1) 지난 9월 말 New Republic에 실린 "왜 보수주의자들이 모든 것을 걸으면서까지 캐버노를 원하는가"는 1980년대 이래 보수주의와 연방대법원의 관계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으며
https://newrepublic.com/article/151411/conservatives-want-kavanaugh-costs

2) 제프리 투빈, <더 나인: 미국을 움직이는 아홉 법신의 이야기>, 강건우 역, 라이프맵, 2010 은 연방대법원과 보수주의 반혁명 관련 비전공자가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료 중 하나다. 한국에서는 이 책이 대체로 미국 연방대법원에 대한 인상깊은 취재물 정도로만 간주되고 있는데, 이 책의 핵심서사는 1980년대 레이건부터 2000년대 말 아들 부시까지 연방대법원을 장악하려는 미국 우파들의 노력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에 있다.

3) Noah Feldman, _Divided by God: America's Church-State Problem--And What We Should Do about It_, NY: Farrar, Straus and Giroux, 2005 는 미국역사에서 세속주의 대 근본주의/복음주의의 구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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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보개 2018.10.12 19:14 Modify/Delete Reply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1 종교는 왜 21세기 정치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나요?

    저의 교회에 대한 피상적인 관찰으로는 한국의 교회는 사교모임에 더 가까웠어요 어려운일이 있어도 다 하느님께서 계획이 있으셔서 그런겁니다하고 위로하는게 더 많았죠
    그련데 목사님이 선거철에는 "하느님을 믿으신다면 이분을 찍으셔야 합니다 "하는 경우가 많고 제가 만나뵜던 10분 중 7분은 자유한국당분을 추천하셨어요
    왜죠? 자유한국당이 더 목사님을 존중하나요?
    그리고 교회에 계신 분들 중 목소리가 크신분들은 목사님말씀이 맞습니다라고 응답했구요
    뭔가 사이비교단(?)에 온 느낌이 강했는데 주변분들의 호응이 좋으니 이상하다는 내색은 못하고 교회를 그만 뒀어요
    하느님을 믿는 것과 정치가 무슨 상관인가요?
    성경도 설교도 몇번 보고 들었지만 정치랑 관련 있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대충 기억나는데로 목사님의 추천사를 재구성하면다음과같았어요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우리 교회의 ~~~를 뽑아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분은 하느님에 대한 신심이 깊고 교회를 사랑하는 동량(기둥이라는 뜻 같은데 맞나요?)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제가 목사님 추천사를 봐도 왜 저분을 뽑아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거에요 목사님의 추천에는 정책이나 과거 공약 이행률 같은 말은 없으셨어요
    성경구절을 드셨고 재미도 있으신 분이고 신도분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지만 왜 다른 사람들은 저런 추천사에도 그분이 뽑히셔야합니다 말하시는분들이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목사님의 기분을 맞취드리려는 걸까요?

    2보수주의 반혁명을 대처할 수 있는 역사관이 무엇일까요?

    완성된 답이 없다면 어떤요소들이 반드시 포함되어야하나요?
    산업혁명이나 냉전처럼 시대적 맥락이 중요한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시대적 맥락이 중요한지 모르겠어요
    광고 종교 유행? 불평등? 실업자? 어떤 맥락을 넣고 어떤 맥락을 빼어야하나요?
    전에 말씀하셨던 대로 사람들은 모두 특정 역사관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것 같아요
    역사관 중에서 선악투쟁( 나와 내편은 옳고 상대방은 무조건 그르고 없애야한다) 나 왕과 모사=재상 같은게 주변사람들에 많았어요

    과학이나 기술에 대해서는 동의가 큰 것 같아요
    상대성원리같은 비직관적인 개념도 받아들이고 인공위성에서 실제로 쓰고 있어요 목사님도 받아들이셨구요
    북한도 E=MC^2을 통해서 핵을 만들고 사실상 의학은 서양의학으로 통일이 됬죠 IS도 서양의학을 배운 간호사 의사들을 받아들이니까요
    지구온난화에 대해서는미국은 인구의 절반정도가 회의적이라는 통계를 봤어요 하지만 그사람들도 폭염이계속되고 태풍의 수가 증가하고 루이지애나 지반이 침강하고 있다는건 알아요 설령 기상이변이 자연의 주기에 따른 것 이더라도 (인간의 간섭이 없을 때도 해수면은 상승했으니까) 원인과 상관없이 문제가 있다는건 알건데 돈을 내기 싫어하는걸까요?
    홍태경 교수님이 일본 동경도 50년 내에 진도9 이상 지진이나고 일본에서도 알고 있다고 해요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새로 수도를 정하는것이 힘들어서 그러는 걸까요?

    • BeGray 2018.10.13 00:32 신고 Modify/Delete

      1. 종교가 왜 21세기 정치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냐는 물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가장 타당한 답은 다음과 같을 것 같습니다.

      1)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종교는, 그게 어떤 활동까지 포함하든 간에,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2) 그중에서 종교적 지도자가 신자들의 삶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별도의 사제 신분이 존재하는 종교의 경우, (기독교적 용어를 쓴다면) 사제는 영혼과 도덕의 문제에 지속적으로 개입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그에 기반하여 물질적인 문제에까지도 개입할 힘을 얻게 됩니다.
      3) 마지막으로 그렇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제들 중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특정한 방식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그를 통해 신자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보개 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느낀 부조리함과 별개로, 현실은 이렇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2. 저도 일반적인 답은 모르겠습니다. 보수주의 반혁명도 상황마다 다르니만큼, 지금 말씀하시는 보수주의 반혁명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에 대처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겠죠. 다만 한국의 경우엔 좋든 싫든 전세계적 경쟁에서 살아남아 발전해야 한다는 것만큼은 대체로 다수에게 동의를 받는 이야기로 남아있으니, 그게 하나의 자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1 2018.11.20 03:03 Modify/Delete

      남한의 경우 기독교(특히 개신교)의 성장과 우파 정당과의 연계가 공고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 정부는 정부인사 과반수가 개신교 신자였는데 당시 남한에서 개신교 신자는 십만 단위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군사 독재 시절에도 다시 반공을 기치로 연계하고 또 다른 한편으론 진보적 성향의 기독교 세력이 발흥하려 하면 대공 사건 조작 등으로 철저히 탄압했고요.

  2. Sirius 2018.10.13 10:45 Modify/Delete Reply

    글 감사합니다.

    1. 2. 항목에서 "이 과정에서 공화당 중도파는 무력화되었으며 민주당과 리버럴 또한 점차 좌경화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라고 쓰셨는데요. 왜 이렇게 됬는지 설명해주시면 좋을 듯습니다.

    2. "보수주의 반혁명" 이 좋은 용어인가 의문이 듭니다. 글에서는 혁명이 없었던 것으로 쓰여져 있는데요. 혁명이 없었는데, 반혁명이라고 칭하는 것은 좋지 않아 보입니다.

    3. 끝에 교훈중에서 첫째에 의문이 듭니다. 비그레이님이 쓰신 교훈은 정치적인 느낌이 드는데요,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요.

    극단주의의 발흥이 나쁘다 쓰셨습니다. 극우가 나쁘다면 똑같이 극좌도 나쁘다고 생각이 들고요.

    " '상식적인' 의사결정마저도 쉽지 않은 순간이 온다." 쓰셨습니다. 예전에 미국에서는 흑인 노예에 대한 차별이 상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BeGray 2018.10.13 12:24 신고 Modify/Delete

      1. 그걸 이 댓글에서 다 설명하긴 힘든 일이고요, 공화당 중도파 무력화 된 거야 트럼프가 공화당 장악하는 걸로 가는 이야기, 민주당은 최근에 민주사회주의자들이 나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2. 제프리 투빈의 책에서 나온 표현을 받은 건데, 글에서 혁명을 언급하지 않아도 반혁명을 언급할 순 있죠. 카톨릭의 대항종교개혁 이야기하는 글에서 반드시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을 이야기할 필요 없으니까요.

      3. 어떤 게 의문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과거 특정한 시기의 "상식"이 옳지 않다고 해서 우리가 "상식적인 의사소통"조차 지향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가는 건 비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식적인"의 의미가 사람들이 공유하는 모든 상식을 충분히 따르자, 이런 건 아니니까요. 어법을 조금 생각해보면 굳이 나올 필요 없는 질문이지 않나 합니다.

  3. 바보개 2018.10.13 14:38 Modify/Delete Reply

    Begray님 답변 감사드려요
    종교가 삶에 많은 영향력을 주는군요. 도덕은 물질적 영향력으로 이어진다라 너는 이걸해야해 왜냐하면 이게 선하니까 저도 이런 논변이 옳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무엇이 선하냐는 어려운 문제이죠
    민주주의나 평등 자유의 이상은 많은 동의를 얻어요
    그래도 구체적인 영역에서 많은 난문이 있어요
    누구에게 돈을 얼마나 주어야 평등한걸까 혹은 자유로운걸까 같은 문제들은 어렵고 누구도 답변을 못하고 있어요 지금과 다른 정치경제제도가 필요하다는건 많이 동의하지해요
    그런데 다른 정치경제제도가 구체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소비(밥먹고 어디서 자고 체온유지는 어떻게하고 밥 온기 물 의료는 누가 만들어서 어떻게 빈민들에게 전하는가) 를 유지할 수 있는지 가난한 사람들 스스로가 자급자족이 힘들면 다른 사람들이 주어야할건데 사회적 동의는 어떻게 이끌어 낼지 내용을 보지 못핬어요
    1현재에 대한 격렬한 비판
    2 ????
    3 이상적 사회 건설
    2의 내용이 많이 없어요

    1. 비판과 이상적 사회 사이를 메우는 중간단계들의 후보는 뭘까요?

    후보를 찾을 수 있는 학문이 있을까요? 역사학?

    2. 종교가 삶에 많은 영향을 주는 사람과 저처럼 아닌 사람이 있어요. 종교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과 아닌 사람은 무엇때문에 차이가 날까요? 그래도 신자와 비신자가 상식적 합의에 이르는 길이 있을까요?

    기술이나 의료는 동의가 큰데
    정치부분은 신자와 비신자간의 동의가 적고 많이 싸워요
    이사실이 단서가 될건데 진행을 못하겠어요

    3.한국의 보수주의 반혁명의 가능성을 막기위한 역사관의 구성요소로 세계적인 경쟁에서 살아남고 발전해야한다는 걸 들어 주셨어요. 제 생각은 이것과 가짜음모론(예를 들어
    유엔이 미국을 조종하고 내정간섭을 할계획이야 그 근거는 기후변화 협약에 21이라는 숫자가 있잖아)을 없애는 게 출발점이 될거 같아요. 사람들이 이 정보는 진실이고 참임을 검증할 수 있어(적어도 에어컨 수리기사에게 에어컨을 믿고 맡기는 신뢰와 비슷한 수준의 신뢰로)와 경제발전을엮는 좋은 역사관이 있을까요?
    없다면 역사학의 어디에서부터 시작을 해야할까요?
    종교사? 경제사?
    그러한 역사관의 구성요소로 무엇이 필요하나요?

    경제발전은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많은 사람의 동의가 있는 좋은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요.

    • BeGray 2018.10.15 00:03 신고 Modify/Delete

      1. 모르겠습니다. 그런 건 하나의 학문으로 해결된다기보다는 여러 학적 지식의 결합을 통해서 역사적으로 특정한 순간에 제시된다고 보는 쪽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2. 그건 주어진 갈등의 상황에 따라 다를 것 같습니다. 17-18세기 유럽 관용(toleration) 쪽 논의를 찾아보시면 그래도 흥미로운 역사적 사례들을 접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3. 질문의 요점이 뭔지 정확히 이해하기 힘든데요, 역사관은 물론 학문의 성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특정 역사학을 골라서 거기에서 무언가 대안적인 역사관을 고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바보개 님과 제가 생각하는 '대안적인'이 같은지도, 두 사람이 생각하는 문제가 같은 것인지도 잘 알 수 없으니까요.

  4. Srius 2018.10.14 06:50 Modify/Delete Reply

    답변 감사합니다!

    - 반혁명이라는 단어를 쓰려면, 혁명이 있어야 적당하겠는데요. 혹시 혁명이 있었나요? ^^

    - 교훈에 대해서 댓글을 남긴 거는 극우가 그르다라고 암묵적으로 써져있는 거 같아 남겼습니다. 이전 댓글처럼 극우가 그르면, 극좌도 그른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비그레이님의 "상식적인"이란 단어의 뜻은 중도 우파 ,극우를 제외한 사람들의 "상식적인"의 뜻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 BeGray 2018.10.14 23:57 신고 Modify/Delete

      1. 투빈의 텍스트를 따른다면 혁신주의-뉴딜에서부터 이어지는 사법진보주의의 성과들이 그에 해당하겠죠. 저는 반드시 "혁명"을 전제하지 않더라도 "progress"에 대항하는 형태의 counter-revolution 개념을 활용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전혀 모르겠습니다만(누군가가 그렇게 쓰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솔직히 아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이 글에서 언급된 내용에 대해서는 저에게 더 문의하시기보다는 직접 투빈의 텍스트를 읽는 쪽을 권하고 싶습니다.

      2. 한국에서 (그걸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극좌의 존재나 정치적 영향력은 솔직히 미미하니까요. 문재인/민주당 지지자들이나 정의당 정도의 스탠스는 극좌라고 부를 수 없고, 녹색당도 딱히 잘 모르겠는데, 그보다 왼쪽은 현재는 정치적으로 의미가 없고요. 유감스럽지만 위의 질문을 포함해서 Sirius 님의 '대칭적인' 교정의 노력이 제게 그다지 의미가 있는 질문처럼 보이진 않습니다.

      "상식적인" 이란 말을 사회 통념상에 맞추어 사용한다면 당연히 극단주의를 제외한 사람들의 상식을 지칭하는 게 되겠죠. 물론 상식이란 말을 다른 형태의 규범적 언어로 활용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만, 특정한 상태를 기술할 때 그게 그다지 효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5. Sirius 2018.10.15 06:01 Modify/Delete Reply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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