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규정 기사에 대한 노트: 세대갈등, 조직론, 헬조선

Comment 2015. 12. 11. 13:50
한겨레 기사에 대한 짧은 비판적 논평.

한겨레 기사링크: '바늘구멍' 대학 기숙사 들어가니 "바늘방석이네"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721442.html

각 대학 기숙사의 전근대적인 (때로는 초헌법적인) 규정사항을 다루는 한겨례 기사. 읽어보면 여러가지 경악스러운 사례들이 많다. 기숙사에 산다고 하니 "통금이 없냐"는 질문을 수시로 받곤 해서 쓴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나는데, 한국에서는 규정을 거의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역으로 예외적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조금 진지하게 말해보자면, 이와 같은 생활규정이 여전히 효력을 미치는 현실은 이른바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의 한 사례로 이해할 수 있다. (대학) 기숙사를 만들고 운영하는 주체들의 연령대 및 배경을 감안한다면, 그들이 사회적 규범을 내면화한 시기는 대부분 90년대 중반 이전, 즉 한국의 전반적인 조직운영방식이 군사적 원리에 기초해 있을 때다(그보다 젊은 축이라고 해도 기숙사 관리자들 중 군인 또는 공무원 배경이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군대 문화, 혹은 노골적으로 말해 내무실을 관리하는 군 간부의 시선에서 바라본다면 이 기사에서 열거한 사례들이 어떠한 거리낌없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들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7-80년대의 상식이 2010년대를 통치하고 있다.

기숙사 규정사항에서 드러나는 시대착오적인 면모는 한국 사회의 다른 집단이 조직/운영되는 방식에서도 마찬가지로 찾아볼 수 있다. 조직에서 실권을 가진 관리자들은 대부분 50대 이상이거나 그 세대의 규범을 내면화한 사람들인데, 문제는 이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사고체계가 단지 (개인의 기본권 개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젊은" 세대들의 상식만이 아니라 2010년대에 한국이 명시적으로 표준으로 받아들인 기준과도 충돌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저 문화적 차원에서의 갈등으로만 남는다면 쓴 웃음을 짓고 말 일이지만, 조직운영방식에서의 비효율로 나타날 때는 이야기가 좀 더 심각해진다. 특히나 아직까지 지배적인 양식으로 남아있는 군사적 혹은 강한 위계질서에 기초한 모델이 이질성 및 변화의 수용,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보장과 같은 측면에서 극도로 취약하다는 걸 감안한다면 말이다.

우리는 이런 맥락에서 2000년대 후반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전 사회적인 반동을 서로 다른 조직원리들 간의 본격적인 갈등양상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그런 점에서 세대론은 확실히 진리값을 갖는다). 나는 대표적으로 헬조선 담론을 이러한 갈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로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심지어는 그것을 둘러싼 엇갈리는 반응 자체도 그러하다. 헬조선 담론의 핵심에는 단순히 무력감만이 아니라 그러한 무력감을 낳도록 하는 과거의 '미개한' 유산에 대한 적대감이 깃들어 있으며, 그런 점에서 세대론 및 그 기저에 있는 사고체계 간의 충돌과 헬조선 담론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기숙사 규정의 전근대성/비합리성을 고발하는 이 기사는 헬조선 담론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사례로 당당히 간주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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