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석박사 취득자 수는 OECD 평균의 1/5 따리입니다'

Comment 2023. 2. 13. 20:01

아래는 <한국에서 박사하기> 필자들과 이야기하다가 나온 내용을 정리한 내용이다. 편의상 음슴체로 쓴다.


"[2019년 기준] 한국 25∼34세 대학 이수율 70% 'OECD 2위'…석박사는 3%뿐"[OECD 평균은 15%] (https://www.yna.co.kr/view/AKR20201231120000530) -- 즉 25-34세 인구 중 최종학위가 학부졸업인 사람의 비중은 70%로 OECD국가 중 2위지만,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의 비중은 3%로 OECD국가 평균 15%의 1/5 밖에(!) 안 된다는 것. 처음에 통계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고 입법조사처의 원본 보고서와 해당 연령대 인구수, 연도별 대학원생 수(석박사 합치면 대략 30만명 조금 넘음)를 찾아봤는데 대충은 맞는 듯함. 간단히 말해 한국은 '선진국 기준' 학부 수준을 넘는 교육을 받는 사람의 수가 현저히 미달하는 대졸자 사회라고 할 수 있음.

 

1980년과 비교할 때 2010년대 이후 한국의 대학원생 수는 3만명에서 30만명 가량으로 10배 정도 증가함. 나 또한 지금까지는 늘어난 인원수만 보고 '대학원생이 늘어나다보니 학위를 따도 먹고 살기가 힘든 게 아닐까'하고 암묵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OECD 평균값을 고려하면 상당히 다른 가정을 떠올려볼 수 있음. 즉 한국은 지난 30-40년간 전문인력을 창출하는 통로로서의 대학원도, 전문인력을 활용하는 직업시장도 만들지 못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함. 집단지성이나 지식기반경제, "사람이 자원" 같은 구호가 늘 울려퍼지는 사회치고는 좀 황당한 상황이라 할 수 있음(물론 디테일하게 어떤 분야의 어떤 학위들인가 같은 건 국가별 비교를 제대로 해봐야 알텐데, 이건 한국에 몇 명 없는 고등교육 연구자 분들이 언젠가는 해주시...겠지?).

 

좀 더 곤란해보이는 건 아래 첨부된 도표에서 인용하고 있는 연간 대학원 졸업생 수. 한국고용정보원의 미래 예측이 꼭 맞지는 않겠지만, 증가추세가 아니라 확 꺾이는 감소추세임(2026년에 이르면 2020년 대비 대학원 졸업생 수가 2/3 정도로 줄어듦!). 학령인구수 감소에 따라 대학원 졸업자도 줄어드는 게 자연스러운 게 아니냐는 생각도 해볼 수 있지만, 1/3이 사라지는 감소폭도 문제고 무엇보다 2020년대 전반부에 한국사회가 노동인구 감소에 대비해 전문인력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더 심하게 줄어든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음(일단 2020년 기준 OECD 국가별 인구 1000명 당 연구자 수만 보면 한국은 16명으로 평균 9.1을 확실히 상회하는 최상위권).

 

이런 상황이 초래된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거임. 대학원 학위에 별다른 메리트가 없는 산업구조(하지만 정말 그런가?) 때문일수도, 대부분의 대학원 교육환경 자체가 시대의 눈높이가 올라가는 데 비해 충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상황 때문일 수도 있음(인권 관련 사건 하나 보면 대응시스템이 정말 미약...). 국가/사회에서도 아직 대학원교육을 사회 자체의 지식생산역량을 증대시키는 투자로 고려하는 대신 '여유 있는 애들이 알아서 자기 경력 더 쌓는 개인의 이익추구 아니냐' 정도로 보는 인식이 큼.

 

직장과 학위 간 거리가 가까운 공학 등등의 전공을 제외하면, 많은 대학원에서 졸업자들의 진로/직업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 것도 사실임. 직업 연구자의 길을 가지 않더라도 학위취득까지 축적한 전문성을 활용하는 경로가 개척되어야 대학원에 오는 사람도 부담이 없고, 직장을 병행하면서 대학원에 오는 것도 쉬워지는데, 현재는 많은 대학원에서 전문연구자 외의 경로를 고려하지 않음. 인문사회분야의 경우... 한국은 학계/언론/출판/정책분야의 단절이 매우 큼. 인문사회분야 저널리스트가 해당 분야 학위를 갖고 있는 경우는 여전히 드물고, 인문사회분야 편집자가 해당 분야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겠다는 결단을 내리는 일도 별로 없음. 인문사회분야 대학원에서 언론-출판에 통용될 수 있는 수준의 글쓰기 능력을 습득시키지 못한다는 통념은 너무 유명. 영미에서 고급저널리스트가 학계와 정계를 훅훅 점프하거나, 학계에 있던 사람이 저널리즘으로 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 것과 대조적(뭐 영미가 그만큼 엘리트집단이 지식-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이런 상황에서... 2010년대 초 반값등록금 시행 이후 대학의 등록금 수입 인상은 막아놨는데 -> 이를 벌충할만큼 지원이 들어가지 않으면서 -> 대학들이 인건비를 틀어막기 시작하고 -> 이러면서 교수의 수/삶 모두 악화되었다는 인식이 확 퍼짐; 임용문도 너무 좁고 임용이 되어도 너무 빡세다, 이럴 거면 대학원에 왜 가나 하는 인식이 청년층에 확산됨(처음엔 인문 쪽만 그런 줄 알았는데 비교적 학위의 환금성이 높은 공대도 마찬가지인듯).

 

원인이 뭐든 간에, 한국이 'OECD 평균 대비 대학원 졸업자가 1/5밖에 안 되는 상황, 그나마도 급감하고 있는 상황이 정말 최선인가'란 질문은 한번쯤 해볼 필요가 있다고 봄. 비전공자의 사견이지만, 나는 한국의 발전요인 중 하나는 빠르게 고등교육 이수율/대졸 노동인력을 확보한 데 있고, (현재 교육투자가 부족한 대학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대학이 너무 많으니까 줄이는 게 당연해!' 같은 통념이 진짜로 한국의 발전경로에 긍정적으로 부합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그렇게 말하는 사람 중에서 '그럼 당신은 한국의 고등교육 미이수 비율이 어느 정도 되어야 적절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을 진지하게 고민해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그 연장선에서 나는 한국의 미래는 더 많은 사람이 대학원을 활용하고, 또 대학원이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좋은 교육을 제공하는 기구로 개편되는 게 대체로 맞는 방향이라고 봄. 물론 그게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교육과 산업이 맞물리는 정책적 설계가 필요할 것임.

 

 

*도표는 다음 기사에서 인용(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39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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