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Critique 2016. 8. 22. 00:26

[이 글은 약간의 편집을 거쳐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게재되었다. http://www.huffingtonpost.kr/woochang-lee/story_b_11648252.html 참고]


정의당 자유게시판의 반 여성주의 게시물 비판 관련해 받은 주된 반응 중 하나는 메갈과 워마드를 구별할 필요가 있냐는 거였다. 이 문제는 우리가 "메갈리아" 및 그 지지자라고 부르는 집단이 단번에 동일한 집단으로 묶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게 다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특히 블로그에 해당 댓글을 달아주신 분이 "메갈리아4" 페이스북 페이지를 예로 들어주었기 때문에 두 시간 정도를 들여서 해당 페이지(https://www.facebook.com/mersgall4/)의 게시물 본문을 2015617일 생성시점부터 어떤 내용이 올라오는지 전부 훑어 읽었다(물론 페이스북의 게시물 열람 시스템을 고려하면 놓친 게시물이 있을 수 있다).

 


1.

 

내 일차적인 결론은 이렇다: 최근의 혐오표현을 문제삼으며 메갈+워마드를 문제삼는 사람, 그중에서 특히 "메갈"의 대표집단으로 메갈리아4 페이지를 짚으며 비난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전혀 존중해줄 필요가 없다. 그들은 자신의 발언을 책임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팩트체크도 하지 않은 이들로,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공론장에 진입할 자격이 없다. 실제로 메갈리아4 페이지에서 언급하는 대부분의 내용은 대학교 학부 교양수업이나 초보적인 여성주의 개설서 수준에서 다룰만한 주제들로, 반 사회적이라고 부를만한 요소가 거의 없다--이 페이지에서 다루는 내용조차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은 2016년의 한국 공론장에서 뒤떨어진 존재에 불과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물론 이 페이지의 모든 입장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심지어 해당 페이지는 운영 초기부터 미러링을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에 걸쳐 분명히 밝히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페이스북 페이지 하나에 덧씌워진 오명을 제거하는 것을 넘어 "메갈"이라는 집단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조금 더 섬세한 시각이 필요하다. 이는, 워마드를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메갈리아" 및 그 지지자 집단의 구성원들이 처음부터 매우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졌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기인한다. 종종 간과되지만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메갈리안이라고 부르는 집단 자체가 메르스갤러리/결못남 갤러리 및 지금은 사실상 정지상태인 메갈리아 웹사이트와 함께 페이스북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최소 두 개의 페이지(현재는 메갈리아4, 메르스갤러리저장소) 및 그 이용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범 메갈리아 지지자들 중에서는 이러한 곳들을 그다지 이용하지 않는 (온라인) 여성주의자들 또한 포함된다는 것이다(이는 최근의 메갈리아 지지자 사냥이 본격화되면서 오히려 두드러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 이용자들의 정치적 입장은 그들이 주로 이용하는 거점의 수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다양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2.

 

먼저 던져야 하는 질문은 도대체 이처럼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이 범 메갈리아/지지자 집단으로 느슨하게나마 결속하게 된 이유란 무엇인가이다. 가장 단순하지만 분명한 요소를 지적하자면, 이들은 자신들이 1) 개저씨·한남충·여성혐오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남성중심적 문화라는 거대한 적을 공유하고 있으며 2) 메갈리아의 활동시기를 전후해 여성 및 여성주의자들의 행동에 따라 원하는 방향으로 현실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특히 두 번째 요소는 매우 강조될 필요가 있는데, (메갈리아 비판자들이 소라넷 폐지 및 강남역 사태에서 메갈리아의 무용함을--내 생각에는 충분히 사려깊지 못하게--지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메갈리아는 의원실과의 연결 및 기존 여성주의운동 단체들과의 연계, 각종 모금을 포함해 온라인 여성주의자들이 결집할 경우 공식적인 제도/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이전까지 한국 청년집단이 공유한 정치적 무기력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엄청난 변화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을 거다. 타격대상이 분명하고 집단적 행위의 효과까지 절감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이 기존의 차이를 감내하고 공통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2015년 중반부터 1년 여 간 메갈리아라는 이름은 온라인 여성주의자들이 현실의 행위자로 활동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선택지였다는 사실이다--마치 한국 식민지 시기 임시정부가 적어도 초기에는 여러 독립운동세력들이 서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소속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주어진 선택지가 사실상 하나밖에 없는 상태에서 범 메갈리아/지지자 집단이 메갈리아4를 비롯해 미러링을 포기하고 "온건한" 논제를 제기하는 일에 집중하는 이들부터 미러링 중에서도 보다 극단적인 표현을 추구하는 이들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구성되는 것은 온라인 여성주의의 확산이 이제 막 발돋움한 초기단계임을 감안한다면 당연하다. 다른 사회운동, 예를 들어 영국의 사회주의 혹은 노동운동의 초기 역사를 간략하게라도 훑어본다면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3.

 

물론 이러한 조망이 모든 미러링이 무조건적으로 정당하다거나 현재의 온라인 여성주의가 '가능한 최선의 상황'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제로 점점 더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미러링/메갈리아 이후를 고민하고 있으며, 예를 들어 페미디아처럼 새로운 형태의 온라인 여성주의를 위한 선택지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 또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과거보다 더 유효한 결과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겠지만--어쨌든 앞으로는 점차 미러링이 단지 하나의 감정표현 및 문제제기 방식 정도로 여겨지게 될 거다--두 가지는 분명하다. 메갈리아와 워마드를 묶어 통째로 반사회적 집단으로 비난하는 주장은 사실과도 다를 뿐더러 사태의 합리적인 진전에도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어리석은 행동이며, 우리가 언젠가 좀 더 거리를 둔 시점에서 메갈리아 커뮤니티의 출현을 일련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평가하게 된다면 지금의 과도한 신성화 및 폄하 모두 단호하게 거부될 거라는 사실이다.

 

나는 현재의 시점에서 내 글이 모두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만약 충분한 시간이 지난 이후 좀 더 치밀하게 사태를 파악하려는 이들이 등장한다면, 이 글의 설명에서 틀린 지점들 또한 적지 않게 발견될 것이다). 입장을 떠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당히 격앙되어 있으며, 내가 평소에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분들조차도 충분한 사실조사 없이 지나치게 단순한 결론으로 도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좀 더 차분히 이해하며 자신의 발언에 좀 더 책임감을 부여하고자 노력하는 분들이 결코 없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이 글의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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