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과 낭만적 사랑의 궤적: 한국 90년대의 진보-자유주의와 낭만주의

Critique 2016.01.06 14:47

1.

 

1997년 N. EX. T 4집 <Lazenca: A Space Rock Opera>에 실린 <먼 훗날 언젠가>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PlAO69ILG3w)

 

"나 거친 삶 속에서 너와 마주친 그 순간 모든 게 바뀌어졌어

나 표현 못 해도 내가 못 가진 그 따뜻함 싫지는 않았어(A)

 

감추고 싶은 나의 지난 날들 기억하기 싫은 내 삶의 흔적을(A')

 

말하지 않아도 넌 그저 눈빛만으로 날 편안하게 해

먼 훗날 언젠가 나를 둘러싼 이 모든 시련이 끝나면(B)

 

내 곁에 있어줘(A)

 

너 내가 잊어버린 마음을 여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줬어

넌 내가 포기했던 일상 속에 행복을 내게 돌려줬어(A+)

 

좀 더 다정하게 말하려 해도 그럴 재주없는 이런 나지만(A'+)

 

말하지 않아도 넌 그저 눈빛만으로 날 편안하게 해

먼 훗날 언젠가 나를 둘러싼 이 모든 시련이 끝나면(B+)

 

네가 편히 잠들수 있도록 너의 머리맡을 나 항상 지킬께

네가 무서운 꿈을 깨어나 내 이름 부를 땐 나 언제나(C)

 

넌 그저 눈빛만으로 날 편안하게 해 먼 훗날 언젠가

나를 둘러싼 이 모든 시련이 끝나면 내 곁에 있어줘(B+, 드럼의 추가)

 

(짧은) instrumental / 먼훗날 언젠가

 

먼 훗날 언젠가(A)"

 

19세기 초 서유럽에서 유행한 낭만적 연애소설의 관습에 익숙한 청자라면 이 가사에서 전형적인 낭만적 사랑(romantic love)의 계기들을 어렵지 않게 짚어낼 수 있다("낭만적 사랑"을 다룬 평자는 아주 다양하지만나는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의 <열정으로서의 사랑>_Liebe als Passion_을 참고한다). "감추고 싶은 나의 지난날들기억하기 싫은 내 삶의 흔적들"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이 모든 시련"에 둘러싸인 화자에게 있어 유일한 안식처는 "날 편안하게하는 연인이며, "말하려 해도 그럴 재주"가 없는 연인의 "눈빛만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는 소통은 오히려 말로 표현될 수 없기에 더욱 이상적인 것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상대가 "내가 포기했던 일상 속에 행복"을 돌려준다는 말은 삶의 의미(significance)가 존재할 수 없는 영역인 일상과 '진정한행복의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단층을 전제하는데, "마주친 그 순간 모든 게 바뀌어"버릴 정도로 강력하고 진실된거의 초월적이기까지 한 사랑만이 우리를 일상으로부터 행복으로 도약하게 할 수 있다관계의 완성은 지금 여기로부터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진 "먼 훗날"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 사랑의 낭만적 성격은 더욱 두드러진다.

 

물론 <먼 훗날 언젠가>가 동시에 전형적으로 한국적인 요소를 보여준다는 사실 또한 덧붙이자이 노래의 사랑은 "거친 삶 속에서" "마음을 여는 법을" "잊어버린다듬어지지 않은 남성상과 더 세련된 혹은 성숙한, "내가 못 가진 그 따뜻함"을 가진 여성상을 암암리에 전제하며여기에서 남성은 이른바 '기사'와 같이 여성을 지키고 여성은 남성을 편안함과 성숙함혹은 '문명화된단계로 이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전복되어야 할 진부한 클리셰가 되어버리는 이러한 구도는 사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1982) 같은 텍스트에서 볼 수 있듯 한국에서 상당히 오랜 전통을 갖고 있으며예컨대 90년대 중반에 데뷔한 김기덕의 전기 작품들에서 이러한 전통을 매우 극단화하여 뒤튼 결과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적어도 그의 데뷔작인 <악어>(1996)와 악명높은 <나쁜 남자>(2002)는 이것이 자신보다 높은 신분의 여성을 향한 계급적 원한과 뒤섞이는 형태로 변주되며, 2012년의 <피에타>에도 이는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다물론 신해철은 그와 같은 극단화로 가는 대신 전술한 낭만적 사랑 안으로 이 남성상을 융화시킨다(이는 이 곡이 엔딩으로 사용된그 자체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도 같다).

 

요컨대 이 소품은 한국의 보다 오래된 전통을 가진 로맨스 구도와 낭만적 사랑의 결합을 압축적으로 표현한다압축적 성격은 심지어 곡의 전개에도 해당된다기본적인 리듬이 반복되면서 점차 고조되었다가 내려오고(A-B-A), 다시 전반적으로 더욱 강하게 고조되었다가 클라이막스에 도달한 뒤 하강하면서(A+-B+-C-B+) 악기연주가 흘러나오는데, 8초 가량의 연주부는 (특히 당시의 한국 메탈/락 음악에서명백히 관습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곡을 과도하게 잠식하지 않도록 매우 짧게 처리된다--청자에 따라서는 이 짧은 연주부의 덧없음이 더욱 이 노래의 낭만적 성격을 강하게 느끼게 하는 요소가 될지도 모른다압축적인 형태로나마 많은 것들을 담으려 한지극히 신해철다운 성향에 따라 <먼 훗날 언젠가>는 소품치고는 긴 4분대의 길이를 갖는다.

 

여기에서 나의 관심사는 내 능력을 벗어나는 음악적 분석에 있는 게 아니라신해철이 이 노래에서 표현한 낭만적 사랑의 변천을 짧게 살펴보는 것이다초기에서부터 후기까지 신해철의 디스코그래피를 부분적으로나마 따라가본 사람이라면 그의 노래에서 낭만적 사랑의 계기가 지속적으로 출현하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사후 널리 공개된 부인을 향한 영상편지에서 볼 수 있듯 신해철에게 낭만적 사랑은 단지 한국 대중문화의 유행을 따른 고려가 아니라 중요한 삶의 일부분이었다. 2000년대특히 중반 이후 사랑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표현하는 분위기는 거의 스러졌으며 신해철과 낭만적 사랑은 명백히 우리가 "90년대"라고 부르는 시대적 정서의 주요한 특징이다그러나 나는 보다 역사적인 시점을 간직하고 싶다그의 노래들은 단지 낭만적 사랑을 표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서의 변화 또한 보여준다그러한 변화는 90년대의 정신이 겪어야 했던 운명을 체현한다.

 

 

2.

 

신해철과 N.EX.T의 노래를 부분적으로만 들은 나로서는 대표적으로 세 곡을 꼽고 싶다. 1992년의 <인형의 기사 Part 2>, 1998년 <일상으로의 초대>, 2004년 <Growing Up>이 그것이다.

 

N.EX.T의 초기 대표작 <인형의 기사 Part 2>(https://www.youtube.com/watch?v=anNCo3-pZ74)는 이 글에서 다룰 노래들 중 낭만적 서사의 관습을 가장 분명하게 체현한다. "지금도 전 그녀가 무척 보고싶어요"라는 현재의 회상 시작-어릴 적-""의 결혼-영원한 사랑을 말하는 ""의 독백이라는 전개는 이 시기에 상당히 일반적인 것이었던 한국대중음악의 서사적 성격을 충실하게 따른다(http://begray.tistory.com/179 의 4절을 참고). 이러한 배치순서는 현재의 감정을 약간 내보인 후 과거의 서사를 전개함으로써 최종적으로 현재의 감정을 측량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것으로 만든다좌절된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체념과 같은 정서는 그 자체로는 대중음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이 노래에서 신해철은 ""의 어릴 적부터 시작되어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될 사랑이라는 이상적인 관념과 (그리고 "기사"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듯 한국 남성상의 전통과연결한다.

 

이 노래의 낭만적인 계기를 몇 가지 꼽는 것은 어렵지 않다먼저 "오래 전부터 사랑해왔다고" "영원히 내게서 떠나네" "오랜 시간 지나갔어도 널 잊을 수 없을 거야같이 시간적인 계기를 포함한 표현들은 모두 길고 영원한 것으로서 지금의 애착과 슬픔을 '낭만화'한다내 사랑의 영원성과 대비되는 요소가 바로 사랑의 이루어질 수 없음인데자다가 깬 ""를 "내가달래고 지켜준다는 점에서 둘의 관계는 오누이 간의 금지된 애정 혹은 그와 비슷한 무언가를 강하게 연상시킨다(바이런Lord Byron의 <만프레드>_Manfred_를 읽은 독자라면 근친상간적 애정에 내재한 절대적인 금기가 역으로 정념을 더욱 강화하는 구도가 아주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여성인물의 목소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신해철의 애정 구도에서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유일한 힌트가 되는 "너 떠나가는 자동차 뒤에는 어릴 적 그 인형이 놓여 있었지"는 ""의 마음 역시 ""를 향했을 가능성을 덧붙임으로써 상황의 비극적인 측면을 더욱 고양시킨다.

 

두 인물 사이에는 넘어갈 수 없는 장벽이 존재하지만그것이 역으로 ""의 감정을 더욱 복잡하고 깊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그런 점에서 ""의 결혼은 낭만적 사랑을 가로막는 현실원칙이 아니라 그 자체로 낭만적 사랑을 구성하는 장치다). 뮤직비디오를 본다면 노래 후반부에서 (신해철이 분한나이 든 화자의 모습과 어린 화자의 모습이 겹쳐지는 장면이 나오는데--<국제시장>의 무척이나 우스꽝스러운 결말부 이후로 우리는 이 장면을 90년대의 감수성으로 돌아가서 보기 어렵겠지만--그것이 낭만적 사랑의 계기를 강화시키기 위한 장치임은 부연할 필요가 없다화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노년을 겹침으로써 자신의 삶 자체를 낭만적 사랑에 완전히 할애된 것으로 만든다그의 삶에서 '사랑의 바깥'은 존재하지 않는다뮤직비디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화자가 어린 시절에 ""가 앉을 바닥깔개로 새마을 운동 깃발을 사용하는 것은 그 깃발이 다시 치솟은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 상당히 재미있는 사실이다.

 

 

1998년 솔로앨범에서 발표된 <일상으로의 초대>(https://www.youtube.com/watch?v=varyDSDi31s)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그 제목에서 볼 수 있듯 92년의 노래와 비교할 때 '일상'이 부인할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이다곡을 이끌어가는 전자음의 단순한 패턴은 그 자체로 낯설고 기계적인하지만 지워버릴 수 없는 것으로서의 일상을 지시한다. 1년 전에 발표된 <먼 훗날 언젠가>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기본음의 반복으로 출발해 점차적으로 상승하고 (다른 악기들이 덧붙여져고조되었다가 다시 하강하는 단계적인 구조를 취하는데노래가 전개되면서 화자의 단조롭고 "무언가 텅 빈 것 같"은 삶을 구원하는 것이 ""임이 분명해질 때 우리는 <일상으로의 초대>가 초기작을 이어 낭만적 사랑에 대한 믿음을 아직 간직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신해철의 화자는 우선 노래의 첫 대목에 일상을 구성하는 행위를 나열하면서 자신의 삶을 하나의 공간으로 제시한다기본음의 반복에서 다른 음이 덧붙어지면서 고조된 순간 화자는 이 공간에 너를 소환한다("내게로 와줘 내 생활 속으로"). 그리고 ""와의 사랑과 공존은 나의 일상=공간에 근본적으로 새로운 힘을 부여할 것이다. "네가 날 볼때마다 난 내 안에서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져 네가 날 믿는 동안엔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것 같은 기분이야"는 대목은 사랑하는 이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내면에 초월적인 힘을 불어넣는 사랑을 이야기하는데여기에서 낭만적 사랑은 일상의 단조로움을 깨트리는 힘의 원천으로 등장한다--그런 점에서 이 노래는 고전적 의미에서 낭만주의적이다.

 

일상을 상징하는 기본음의 배치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보컬의 강조가 집중된 "내게로 와줘"에서 순간 매우 축소되었던 기본음의 비중은 점차 보컬과 조화를 이루면서 배경음으로서의 독특한 역할을 부여받는다이런 점에서 <일상으로의 초대>의 성패는 기본음 혹은 일상적 계기와 낭만적 계기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에 달려있다처음에 유일한 음이었던 기본음은 곡을 구성하는 여러 음악적 색채 중 하나를 구성하며, ""의 초대 이후 곡에는 지속적으로 여러 음이 끼어들면서 배경음을시각적으로 말하자면단색에서 복수의 색으로 채색해 나간다보컬의 고조 이후 다시 내려와 리듬만을 따라가는음의 높낮이가 없는 나레이션이 전개될 때 기본음은 다시 돌아오지만 곡은 이미 곡의 시작점에 비해 훨씬 풍성해져 있다신해철이 여기서 일상의 계기를 부인하거나 지워버리는 대신 그것을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계기와 조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오랜 침묵 뒤 돌아온 2004년의 <Growing Up>(https://www.youtube.com/watch?v=UJpMI8U1IZc)에서는 낭만적 사랑에 대한 신념이 퇴색한 것이 확연하다아이들의 흥얼거림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어린 시절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추억한다는 점에서 12년 전 마찬가지로 성인 화자가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전개되는 <인형의 기사 Part 2>와 비교하기 매우 좋은 노래다그러나 12년 전에는 낭만적 사랑이 그 자체로 온전한 세계를 구성하며 곡을 채우고 있었다면 <Growing Up>에서 낭만적인 계기는 <일상으로의 초대>와 비교해도 명백하게 눈에 띌 정도로 후퇴하였으며 현실원칙이 훨씬 강력한 모습으로 세계를 활보한다아이들의 흥얼거림은 어린 시절의 사랑에 대한 화자의 회상으로 이어지는데그것이 현재의 기막힌 인연으로 이어지는 듯 하지만 노래는 곧바로 청자의 기대를 배반하고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 "결국 삶이란 영화가 아니란 얘기야"는 얼핏 들으면 청자를 깨우치는 표현 같지만실제로는 화자 자기 자신을 향한 말에 가깝다앞에서 고조되었던 감정 표현 역시 "나의 천사여"와 같이 우스꽝스럽게 들릴 여지가 있는 과장된 수사가 붙어 있다(<인형의 기사 Part 2>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감정의 덩어리로 차 있는 노래였지만적어도 노래 안에서 우스꽝스럽게 들리는 대목은 없다). <초대>에서 시도되었던 조화의 가능성은 이제 찾기 어렵다.

 

요컨대 <Growing Up>의 화자는 둘로 분할되어 있다이전의 노래들과 같이 낭만적 사랑을 추구하는 화자가 있고그것에 냉소적인 거리를 둔현실은 영화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또 하나의 화자가 있다그러나 신해철이 낭만적인 것을 포기하거나 폐기처분하는 게 목표가 아님은 분명하다(확실히 신해철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정신적으로 더 강한 인물이었음이 분명하다). 낭만적 사랑의 불가능함을그것을 기대하는 일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한 뒤 곧바로 그는 "정말 아주 우연히마주쳤을 가능성을 덧붙이고, "그 애"에 대해 "결국 말하지 못했던 그 말 그토록 오랜 세월이 가도 가슴에 남아있다고 말하는 것이다비록 내면의 주관적인 영역으로--여기에서 내면은 다시금 공간처럼 표상된다--후퇴했을지라도 낭만적인 것의 계기는 여전히 잔존한다.

 

 

3.

 

돌이켜보면 그에게 낭만적인 것과 일상의 갈등구도 자체는 비교적 초기에서부터 분명히 존재했던 것처럼 보인다. 1994년의 <The Dreamer>(https://www.youtube.com/watch?v=jY6XaezpTls)는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곤속에 묻어버릴 수는 없어 언젠가 지쳐 쓰러질 것을 알아도 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라고 말하는데이 대목에서 신해철이 스스로를 일종의 낭만적 영웅으로서 그리고 있음은 너무나 분명해서 오해의 여지가 없다--97년의 보다 정통적인 락에 가까운 <Here, I Stand for You>(https://www.youtube.com/watch?v=xdBXn_Hi51Y)에서 이 이미지는 과장에 가까울 정도까지 확장된다[이 곡을 덧붙여준 지인에게 감사한다]. 92년부터 2004년까지의 여정은 이 구도가 점차 일상의 극복에서 일상과의 더불어 살기로그리고 다시금 일상의 우위 속에서 어떻게 낭만적인이상적인 것이 살아남는가의 문제로 변화해갔음을 보여준다그리고 정치적 비판의식 못지 않게 낭만적 사랑을 중요하게 생각했던혹은 좀 더 정확히 말해 양자를 분리 불가능하게 생각했을 신해철이 낭만적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이러한 변화의 추이를 드러내는 지표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것이 단순히 신해철과 낭만적 사랑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덧붙이고 싶다사후의 재평가에서 많은 이들이 동의했듯 그가 진정으로 90년대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면이 글에서 다룬 낭만적 사랑의 표현과 그가 지속적으로 실천했던그리고 90년대의 진보-자유주의의 지지자들이 품었던 정치적/사회적 신념을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Growing Up>이 수록된 앨범 <The Return of N.EX.T. Part III: 개한민국>은 제목에서 뚜렷이 드러나듯 신해철의 역대 앨범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사회비판이 행해진 곡이었다그것들을 훑어본다면 기독교미국패권주의성매매정치 등 이른바 한국의 구세대적인 요소들에 대해 90년대의 진보-자유주의자들이 가했던 주요한 대중적 비판 소재들이 고루 포진되어 있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라디오 및 방송에서 그가 보여준 면모는 추가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것이 종합된 90년대의 진보-자유주의는 97년의 IMF 위기로 1차적인 타격을 받고, 2000년대 중반 그들이 지지하고 탄생시켰던 노무현 정권의 급격한 몰락과 함께 양분된다.

 

90년대의 진보-자유주의 문화의 붕괴를 설명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여기서는 무엇보다도 그 감정적 동력을 구성한 낭만주의자들과 비판적 계기를 강조한 합리주의자들의 분할을 짚고 싶다양자는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분명히 거대한하나의 공통세력이었다노무현 정권의 추락과 함께 전자는 민족주의영웅숭배 등이 뒤섞인 이어지는 감성의 정치로 이행하였으며(노무현 사후 부활한 "노빠"는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후자는 "팩트주의등의 -감성주의적인감성에 냉소적이고 때로는 이성을 물신화하는 면모까지 보여주는 비판적 합리주의의 등장으로 이어졌다실제로 그 세대에서 대중적인 주류를 차지한 것은 전자였지만전자가 보여준 컬트적인 비합리의 모습은 보다 젊은 세대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후자의 현실-합리주의에게 용납될 수 없었다그러나 후자는 감상주의와 멀어진 대신 언제든 속물화된 삶으로 전락할 위험을 품고 있었으며대중동원의 능력에서 명백히 전자에 비견될 수 없었다낭만적인 계기가 결여된 자유주의자를 기다리는 운명은 냉소적인 태도로 홉스적 세계 속에서 조용히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 이외가 되기 어렵다엄밀히 말해 오늘날 노인집단의 대두는 90년대 진보-자유주의의 분할 및 실패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신해철 본인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 음악적으로는 점차 잊혀지기 시작했으나자신의 세대의 때로 모순된 정치적 감수성을 고수하면서 속물적인 삶에 투신하지 않은 비교적 드문 사례로 남을 수 있었다(예를 들어 2010년대 유희열의 대중적인 이미지와 비교해 보라). 자유주의의 탈을 쓴 속물들이 가득한 시대에(소라넷을 보라!), 우리는 그러한 길을 걸어가지 않은 '자유주의자'로서의 신해철을 지탱했던 힘이 무엇인지를 한번쯤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 2014년 복귀앨범을 발매하고 한국 음악산업의 음악가 착취를 비판협동조합을 출범하며 신해철은 다시금 현재형이 될 기회를 가졌다그해 10아마도 그 자신이 가장 조소했을 부패한 속물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음으로서 이후에 그가 걸어갔을 길은 영원히 가능성으로만 남았다우리는 어쩌면 그러한 죽음조차도 90년대 한국정신의 운명을 설명하는 서사의 한 구성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유감스럽게도 그의 사후 90년대의 정신이 70년대의 과거를 재현하고 개인적인 탐욕을 채우는데 혈안이 된 늙은 퇴물들이 점거한 2010년대 전반부를 되찾아올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낭만의 용법이 자폐적인 감상주의로 찌그러든 채 남아있는 한자유주의자들이 난쟁이들의 시대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오늘날 신해철을 애도하는 이들은 많으나그의 힘이 무엇인지 묻는 사람은 드물다. 이 글은 한 갈래의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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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가딘 2016.02.05 10:45 신고 Modify/Delete Reply

    오랜만에 놀러와서 좋은 글 여러 편 재미있게 잘 읽고 가요. 꾸벅.

  2. 2017.07.11 22:45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BeGray 2017.07.12 10:02 신고 Modify/Delete

      흥미로운 댓글 감사드립니다 :) 저는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모르므로 제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만 몇 가지 말씀드린다면,

      1. 사실 낭만주의 혹은 낭만적인 것이 좁은 의미의 사적인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 것은 서구 18세기 말-19세기 초 낭만기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됩니다. 실제로 영국과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문인들은 어떤 지향으로든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있었고, 낭만주의자들은 작업은 넓은 의미에서 당대의 여론·문화적 정치와 맞닿아 있습니다. 애초에 이전부터 문학텍스트 및 그 미적 성격의 '도덕적' 측면을 두고 늘 논의가 벌어져왔음을 상기하면 이런 예술적인 것, 미적인 것의 정치적 성격은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기도 하고요. 물론 저는 60년대 말 세계의 여러 곳에서 공유되었던 혁명적 문화운동의 독특함이 평가절하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댓글의 두 번째 문단에서 말씀하신 여러 측면들은 제가 볼 때는 적어도 그 각각의 것들은 특별히 60년대의 고유한 산물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예컨대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양차대전 기간 동안 기독교 사상가들이 파시스트와 공산주의자들을 겨냥하며 꺼내든 주요한 카드이기도 하죠)--물론 60년대의 여러 사람들이 자신들이 그런 것들을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들이라고 믿었을 수는 있었겠지만 말입니다. 서구 근대는 우리가 종종 관습적으로 "근대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지적·문화적 자원을 가진 시공간이었습니다.

      그 점에서 오히려 흥미로운 부분은 60년대의 여러 사람들이 어떤 맥락에서 과거의 유산을 (선별적으로) 선택했는지를 이해하는 데 있지 않을까 싶군요. 부분적으로는 전후 만들어진 질서에 대한 반발이라는 측면이 꽤 클텐데, 여기서 다 다룰 수 있는 주제가 아니기도 하고, 찰스 테일러 같은 저자들이 어느 정도 흥미로운 설명을 시도한 바도 있으므로 일단은 넘어가겠습니다.

      2. 당연하지만 낭만적인 것이 최초에 정치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해서 그것이 확산되고 유행이 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의 사적인 취향, 인간 내면의 한 가지 면모를 지칭하는 요소로 축소되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이것은 낭만기의 감성의 문화도 피해갈 수 없었고, 60년대 말에 번성한 문화 또한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일이죠. 비록 그 몇몇 대표자들이 이러한 흐름을 달갑게 여기지 않고 계속해서 정치적인 성격을 부여하려고 노력하기는 했지만요. 낭만적인 것의 담론이 어쨌거나 그 논리구조
      상 자신의 정당성을 개인의 내면--혹은 내면과 연결된 더 큰 무언가--과 분리시킬 수는 없었음을 지적할 수는 있겠습니다.

      3. 마지막으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은 한국의 1990년대 문화를 단순히 서구 1960년대 문화운동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후자가 전자에게까지 파급력을 행사할만한 전통 혹은 문화적 자원으로 남아있었다는 모호한 진술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찬성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구체적으로 그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고, 60년대 말의 것 이외의 다른 요소들이 얼마나 뒤섞여 들어갔고, 무엇보다도 그것들이 1990년대부터의 한국이라는 맥락에서 어떻게 이해되었는지 등등은 전부 까다로운 사고를 요구하는, 그러나 무시될 수 없는 질문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90년대 말의 경제적 위기가 끼친 영향을 포함해 이 시기 또한 짧은 기간 동안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엄청난 변화가 진행되는 시기였고, 90년대의 진보-자유주의자들에게도 그 변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는 단지 특정한 과거의 유산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다는 사실도요.

      그런 점에서 저는 우리가 9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한국과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단순히 이 사람들이 선택했던 특정한 문화적 자원보다는 이 사람들이 어떤 맥락에 놓여있었는지에 주목하는 데서 출발하는 게 좀 더 많은 설명을 가능하게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 2017.07.18 19:39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BeGray 2017.07.24 17:37 신고 Modify/Delete

      요즘 블로그 접속이 뜸하다보니 답변이 계속 늦고 있습니다^^;; 저희가 기본적인 문제의식을 공유한다는 전제 하에 아마 약간의 입장 차이가 있다면, 저는 적어도 현재는 방법적으로 "정치경제학적 구조분석"과 여러 문화적·정신적 영역들의 변화에 대한 분석 사이에 어느 정도 단절을 설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갖고 있으며--즉 저는 전자는 후자에 '무대'를 제공한다고 할 순 있어도 후자를 결정하지 못하며, 동시에 '정치경제학적 현실' 혹은 물질적인 현실 또한 이미 해당 사회가 가지고 있는 해석적 틀에 의해서만 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동시에 "무의식"을 비유나 수사 이상의 초험적 개념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에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그 점에서 저는 문화적이고 정신적인 영역의 분석에 있어 이전 시대 한국에 통용되었던 여러 이론적 전제를 고수하는 것이 오히려 분석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그게 제가 보다 경험적·역사적인 지성사적 방법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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