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브라운. <기독교 세계의 등장>.

Intellectual History 2015. 12. 4. 23:29
피터 브라운의 <기독교 세계의 등장>(_The Rise of Western Christendom_) 한국어판을 꾸역꾸역 다 읽고 나름 새로운 지식을 충전한 기분이었다(18-19세기를 주로 공부하는 사람에게 17세기 정도까지는 그럭저럭 인접분야라고 할 수 있지만, A.D. 200-1000년은 완전히 다른 전공이다...이 시기에 관한 내 독서는 아무리 쌓여봐야 교양독자 수준이다). 최소 26개 언어를 익힌 대가가--중세 및 고대 사가들에게나 가능한--무려 800년에 걸친 시간적 범위와 북유럽(아이슬란드)부터 북아프리카 및 아라비아, 아시아에 이르는 말도 안 되는 공간적 범위에 걸쳐 기독교 사회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풀어주는 괴물 같은 책이니까. 2013년판 서문에서 몇 문장을 인용해보면 이 책의 광범위한 시야가 잘 드러난다.

"북서유럽으로 기독교가 확장해간다는 드라마 때문에 다음 사실을 보지 못해서는 안 된다. 북아프리카, 이집트, 소아시아, 시리아, 코카서스 지방, 메소포타미아 등 좀 더 오랜 근원을 가진 기독교 인구의 눈에서 볼 때 우리가 서구 기독교라 부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건 주변부 지역의 기독교일 뿐이었다."(The drama of the expansion of Christianity into northwestern Europe should not blind us to the fact that, seen from the viewpoint of the older, more deeply rooted Christian populations of North Africa, Egypt, Asia Minor, Syria, the Caucasus, and Mesopotamia, what we call Western Christendom was out on a limb. It was the Christianity of a peripheral zone. xvi) "서유럽에서 특정한 형태의 기독교가 서서히 출현해가는 과정에 이 책의 초점이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논의의 광범위한 지리적 배경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위와 같은 종류의 유럽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도록 유도하고자 했음을 독자들이 알아차릴 거라 생각한다." (Despite the fact that the principal focus of this book is the slow emergence of a distinctive version of Christianity in western Europe, I trust that the reader will realize that the geographical spread of this book was intended to head the reader off from European chauvinism of this kind. xvii)

그러니까 쉽게 말해 로마제국, 게르만, 앵글로-색슨, 아일랜드, 북유럽 스칸디나비아인들, 프랑크 왕국처럼 중세까지의 유럽을 구성하는 사회들만이 아니라 동로마, 아르메니아,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아라비아(무슬림 및 페르시아 제국 하의 기독교), 중국(네스토리우스교) 등등까지 포괄한 사회에서 기독교의 전파 및 다양한 형태들, 기독교와 각종 '이교도' 사회의 접촉과정을 친절하게 정리해주니, 읽고 나서 고대/중세 문외한이 그럭저럭 뿌듯한 기분이 드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는가(중세 영문학 전공자를 위해 덧붙이자면 <베오울프> 이야기도 약간 나온다)? 수도원 사회 및 규율(푸코), 우리가 이후 기독교적 덕(christian virtue)이라 부르는 것들의 등장부터(특히 8장 참고) 중세 봉건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밑거름이 될 내용까지 서구 근세-근대를 공부하는 사람이 알아두면 좋을 것들이 굉장히 많다.

그리고...서지사항을 뒤져보다가 약간 낙담했다. 한국어판은 2004년 말에 초판이 나왔는데, (자끄 르 고프가 편집자를 맡은) <유럽의 형성>(The Making of Europe) 총서로 나온 _The Rise of Western Christendom_ 초판을 번역저본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문제(?)는 초판에서 2판으로 넘어가면서부터 이 책이 매우 다른 책이 되어버렸다는 거다--유감스럽게도 2004년 이 책이 출간될 시점이 2판이 나왔다는 걸 알 수 있었을 역자 및 출판사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 괴물같이 부지런한 (올해 80세인) 저자는 초판 출간 후 7년 뒤인 2003년 상당한 내용을 증보한 2판을 냈고, 그 뒤 다시 10년 후 2013년에 10주년 기념 개정판으로 또 내용을 추가해서 냈다. 10년 사이에 이쪽 연구분야가 폭발해서 새로운 성과가 쏟아져나오고 있다고 친절하게 (각 분야별로) 설명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바뀐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총 3부 17장으로 되어 있던 초판의 구성은 2판부터 4부 20장으로 바뀌었다(2013년판은 본문은 동일한 구성을 유지한다). 초판의 세 부가 각각 AD 200-500, 500-750, 750-1000을 다루었다면, 2판은 초판의 1부 및 3부의 구성을 유지하되 2부를 500-600과 600-750의 둘로 나누고 새로 등장한 3부에 상당히 많은 내용이 추가되었다(2판의 3부는 본문의 1/3 정도를 차지한다). 2013년 판은 여기에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추가한 35페이지가 넘는 10주년 기념판 서문(preface)이 붙었고, 미주가 20여쪽 추가되었다(다행인지 추가적인 설명을 붙이는 주는 아니고 문헌 인용참고 표기만 나열된 미주다).

숫자로만 말해보자. 초판이 서문 포함 총 384쪽(한국어판은 520쪽), 2판은 636쪽, 2013년판은 712쪽. 그러니까 2013년판은 초판의 약 두 배 정도 되는 분량이다. 이래선 초판을 읽고 이 책을 읽었다고 말하기가 좀 곤란해진다. 내가 중세나 고대 후기 전공자면 이를 갈면서 추가된 내용을 다 따라갔겠지만, 행복하게도(?) 나는 교양독자 수준에서 만족하는 문외한이므로 지금은 더 건드릴 생각이 없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이 책을 읽어야 하는데 영어로 700쪽 짜리 연구서를 읽는데 절망감을 느끼시는 분이라면 다음의 경로를 추천한다. 먼저 한국어판으로 번역된 초판을 읽고(아쉽게도 서점에서는 현재 품절이다), 그다음 2013년 판의 서문(introduction) 및 10주년 기념판 서문을 읽으시라(합계 70쪽 쯤 되지만 브라운의 영어는 그리 까다롭지 않은 잘 정리된 영어다). 그리고 본문에 도전하시면 되겠다.

마지막으로, 이 분야 전공자가 아닌 내게 흥미롭게 읽힌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공적인 돌봄"(public care)이라는 행위양식을 통해 여성신도들의 역할모델이 출현하는 것, 자기돌봄에서 타자에 대한 돌봄으로 넘어가는 것(테일러의 _SoS를 떠올릴 것, 이상 8장), 초자연적인 것 및 내세와의 관계 변화(9장, 2판 이후 11장), 잉글랜드에서 기독교 선교자들과 색슨 군주들의 "선물교환"(12장, 2판 이후 15장), 8세기 프랑크 왕국 북부 갈리아와 라인 강에서 발달한 장원제, 로마가 무너지고 기독교가 전파된 지역이 넓어지면서 등장한 기독교'들' 간의 경쟁(이상 15장, 2판 이후 18장), 샤를마뉴 통치 하에서 "올바른"(correct) 라틴어 사용이 확립되면서 문자에 담긴 권위가 커지는 것, 문자화된 기독교와 각 지방에 남아있는 "비문자적"(unlettered) 기독교 사이의 갈등, 책읽기에 종교적 중요성이 부과되는 것(Theodulph) (이상 16장, 2판 이후 19장), 북유럽에서 (스칸디나비아인 전사문화의) 고대적 전승과 공존하는 기독교(17장, 2판 이후 20장) 등등.


P.S. 보너스 문제.

"바르데사네스의 시대에서처럼 비옥한 초승달 지역은 양쪽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는 세계였다. 로마와 페르시아 국경의 거주자들은, 어느 쪽에 살든지간에, 멀리서 자신들의 운명을 통제하는 통치자들보다도 맞은 편에 살고 있는 서로와 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더 북쪽으로 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변경 지역의 이중성은 특히 아르메니아에서 분명해졌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카프카스까지 펼쳐진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들은 군사 인력의 보급창이었다. 훗날 스위스의 용병이나 스코틀랜드의 고지대 사람들처럼 아르메니아인들은 두 제국의 군대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 그들의 문화는 영웅을 칭송했다. 7세기 아르메니아의 학생들은 다음과 같이 산수를 공부했다.


[인용] 아버지는 아르메니아와 페르시아와의 전투에서 자르웬 캄사라칸이 거둔 놀라운 공적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첫번째 공격에서 그는 페르시아 군대의 2분의 1을 죽였고 ... 두번째 공격에서 4분의 1을 죽였으며 ... 세번째 공격에서는 11분의 1을 죽였다. 살아남은 페르시아인은 겨우 280명 뿐이었다. 그가 쓰러트리기 전 페르시아 군대의 수는 [원래] 몇이었을까?"(258-59, 번역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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