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중순 독서노트: 바우만, 블로크, 볼테르, 플로베르, 자유주의, 코젤렉.

Reading 2015.11.21 04:02
2주간 읽은 책들 기록. 제대로 된 독서노트라기보다는 메모.

지그문트 바우만. <자유>. 문성원 역. 이후, 2002. : 엄밀히 말해 훑어본 것에 가깝다. 반납기한에 쫓겨서 너무 피곤할 때 억지로 읽었기에 제대로 소화했다고 말할 수 없다. <쓰레기가 되는 삶들>은 솔직히 실망스러웠는데, <자유>는 훨씬 나았고 바우만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게 해 주었다. 바우만은 "자유" 개념이 널리 믿어지는 바와 같이 보편성에 기초해 있는가를 의문삼으면서 자유는 항상 누군가의 부자유를 전제한다고 지적한다. 1장에서 벤담의 판옵티콘 모델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대표적인 사례다.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3장에서부터 중점적으로 서술되는 자유와 소비주의의 결합으로, 바우만은 자유가 소비행위를 통해 실천가능한 것으로 이해되면서 생기는 문제들을 지적한다(다만 그 문제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고, 나중에 한번 더 읽고 채워넣어야 한다).

마르크 블로크. <역사를 위한 변명>. 고봉만 역. 한길사, 2007. [국역본은 1993년 나온 제2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블로크와 역사학 방법론에 대한 흥미가 결합해서 마침내 읽었다. 스스로의 연구방법에 대한 역사가들의 자의식을 담은 글들은 20세기 인문학이 생산한 장르들 중 가장 재미있고 유익한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데, 블로크의 책은 중단에 저자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중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미덕을 고루 갖추고 있다. 특히나 해석의 문제에서 범하기 쉬운 오류에 대한 지적들은 상식론의 층위에서도 한번쯤 곱씹어볼 만하다. 이 책 자체에 관해 많은 말을 할 생각은 없고, 다음에 읽을 것은 중세 서유럽 왕의 안수치료를 연구대상으로 삼은 <기적을 행하는 왕>이다.

볼테르. <철학 편지>. 이병애 역. 동문선, 2014. 원제는 Lettres philosophiques인데, 실제로는 먼저 <영국인들에 대한 서한>(Letters Concerning the English Nation)이란 제목으로 24편의 짧은 글이 수록되어 나왔고 그 뒤 파스칼의 <팡세>를 비판하는 한 통을 덧붙여 지금의 형태로 출간되었다. 물론 내 시야에는 아직 파스칼은 없기 때문에 25번째 편지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고(볼테르의 비판이 실제로 유효한지도 잘 모르겠다; 그의 비판은 오히려 볼테르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걸 이야기해주는 듯 하다), 퀘이커 교도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종파, 의회, 정부, 상업, 학문, 예술 등을 포함해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상세한 목차는 영어 위키 https://en.wikipedia.org/wiki/Letters_on_the_English 를 참조). 조금 더 윗세대인 몽테스키외와 마찬가지로 볼테르가 영국에 대해 보여주는 태도는 (미묘하게 내려다보는 시선이 섞여있지만) 찬탄에 가깝다. 18세기의 상업/사치 논쟁의 맥락에서 상업에 대해 호의적인 볼테르의 짧은 코멘트를 기억해둘만 하고, 베이컨-뉴턴-로크 등 18세기 영국계몽주의의 위대한 조상으로 불릴 이들에 대한 찬탄도 눈여겨보자(특히 뉴턴에 대해서는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허버트 로트만. <플로베르: 자유와 문학의 수도승>. 진인혜 역. 책세상, 1997. Trans. of _Flaubert: A Biography_ by Herbert. R. Lottman, 1990. 플로베르에 대해 한국어로 된 몇 안 되는 두터운 전기. 진인혜 선생의 번역답게 잘 읽힌다(나는 <감정교육>과 <부바르와 페퀴셰>, <통상관념사전> 모두 진인혜 선생의 번역으로 읽었다). 순수하게 재미삼아 봤지만,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참고하여 플로베르의 세세한 일정을 설득력 있게 재구성해내는데 경탄하면서도(작가의 전기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의 학자들이 끈질기게 달라붙어야 한단 말인가!) 최근의 지성사적 전기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가령 스티븐 내들러의 스피노자 전기처럼, 시공간의 맥락을 소개하고 그 위에 인물을 배치하는 식이 아닌 철저히 인물의 행적에 집중하는 다소 고전적인 양식이라 아쉬운 게 있다. 물론 나처럼 역사적인 힘들이 작용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독자들이 다수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여튼 19세기 중후반 프랑스에서 문학/예술 장이 작동하는 양상에 대한 좋은 사례가 될 수 있고, 때때로 예기치않게 영미인들(매튜 아놀드나 헨리 제임스)이 플로베르의 삶에 튀어나오는 것도 흥미로웠다. 여담으로, 플로베르가 작품설정을 위해 책을 읽은 양을 보면 책 읽는 이로서 반성하게 된다.

Bell, Duncan. "What is Liberalism?" _Political Theory_ 42.6(2014): 682-715. : 최근에 읽은 논문 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글. 물론 이 글을 소개해 주신 지인께 대략의 내용을 사전에 소개받긴 했지만, 실제로 읽으면서 상당한 흔들림이 있었다. 벨의 논문의 요점은 대략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서두에서는 '자유주의 사상사'를 설명하는 몇 가지 전통을 비판적으로 소개하고(벨은 기본적으로 스트라우스 계열에 비판적이며 포칵 이후의 맥락주의를 수용하되, 자유주의란 이름을 가진 서로 다른 개체들이 공존한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다음으로 자유주의 사조 자체가 19세기 후반기에나 영향력을 얻고 20세기 중반의 이데올로기적 투쟁 속에서 받아들여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통상적으로 서구 자유주의의 원류로 칭송되는) 로크가 자유주의 사상사에 제대로 편입되게 된 것은 20세기 중반 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전통을 서사화하면서일 뿐, 19세기까지 로크의 인식론은 널리 읽혔지만 <통치론>은 과거의 유물 정도로 취급받았음을 밝힌다; 애초에 19세기 영국의 역사주의 열풍에서 자연권이나 사회계약 같은 개념은 구시대의 유물 정도로 취급받았으며, 자연권이 정치사상의 중심적인 주제로 돌아오게 된 것은 20세기 및 미국의 역사적 상황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 만들기'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또 영향력을 얻었는지를 설명한다. 벨의 글은 기본적으로 학문/사상/담론 자체의 역사화를 추구하는 1970년대 이후 영국 사상사학계의 흐름을 따르며, 그래서 한편으로 이 글은 자유주의에 대한 선행연구 정리이면서 동시에 이전의 글들이 어떻게 전통을 '발명'해 왔는지 추적하는 성격을 띤다; 이런 점에서 독자들은 스키너, 포칵 등이 이룩한 방법론적 혁신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에 다시금 놀라게 된다. 포칵의 70년대 저술, 즉 <마키아벨리언 모멘트>를 이미 읽은 독자들에게는, 2000년대 이후 자유주의 연구를 어느 정도 따라간 독자들에게는 17-18세기가 로크의 세기가 아니라는 주장이 그다지 낯설지만은 않겠지만, 아직 자유주의에 대한 '고전적인' 이해에 묶인 한국의 많은 독자들은 (심지어 사회철학이나 역사학 전공자들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벨의 글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다.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4: 전쟁>. 권선형 역. 푸른역사, 2010. [Krieg, 집필자는 빌헬름 얀센Wilhelm Janssen, 해당항목 출간시기는 1982년]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5: 평화>. 한상희 역. 푸른역사, 2010. [Friede, 집필자는 빌헬름 얀센. 해당항목 출간시기는 1975년]
: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에서 기획하여 일부 항목을 번역출간 중인 <역사적 기본개념>(_Geschichtliche Grundbegriffe_)의 두 항목, 전쟁과 평화를 읽었다. 같은 필자가 쓴 데다가 실제로 기본 서사를 공유하는 항목들이라 실제로 같이 읽는 게 좋겠다. 얀센은 중세시기 기독교 전통(교부철학 및 법학) 및 게르만 전통에서부터 출발해 절대주의-계몽주의를 거쳐 프랑스 혁명 이후 19세기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각 개념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간결하게 압축적으로 서술한다(단 중세-계몽주의 시기까지가 유럽지역의 논의를 아우른다면, 보통 19세기 이후부터는 독일 내의 용례들에 집중한다). 해당 내용을 일일이 요약하는 건 무리고, 다만 두 항목에서 제시하는 서사 모두에서 자연법의 이념이 심지어 그것이 비판받고 스러지는 순간에서조차도 깊은 자욱을 남긴다는 것은 짚어두어야만 하겠다. 자연권, 자연법, 효용과 같은 몇 가지 기준들이 있고 각 기준들을 염두에 둔 논변들이 변화하는 서사가 있다. 평화와 전쟁을 구성하는 논리가 변모하고 뒤집히는 계기들을 풀어내는 얀센의 정묘한 서술은 그 자체로 감탄스럽다. 몇 번을 두고 참조하면서 읽을 가치가 있다. 한국어로 번역된 다른 항목도 계속해서 읽어갈 생각이다.

다음은 코젤렉의 <지나간 미래>, 마이클 하워드의 <유럽사 속의 전쟁사> 등을 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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