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역사> /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자유주의> /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

Reading 2015. 1. 7. 11:44

로저 백하우스. <(지성의 흐름으로 본) 경제학의 역사>. 김현구 역. 시아출판사, 2005. Trans. of _The Penguin History of Economics_ by Roger E. Backhouse.


: 맨 앞에 장하준의 추천사가 붙어 있다. 추천받을만한 책이다. 고대부터 시작해 서구에서 전개되어 온 경제적 사고를 역사적 맥락에 따라 소개한다. 대략 고대~고전파까지가 절반, 한계효용혁명(1870년대)부터 동시대(원저는 2002년 출간되었다)까지가 절반 정도 분량으로, 역사적 배경만이 아니라 이론에 대한 요점도 꽤 날카롭게 짚어준다...그러니까 이론을 설명하면서 그 이론이 속한 사회적 배경과 함께 다른 이론에서 제기된 문제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같이 풀어준다. 내 관심범위 안쪽에서만 본다면 아담 스미스 설명에서 <도덕감정론>에 대한 나쁘지 않은 개요까지 집어넣은 건 강점이다. 고전파 및 이전의 경제학사 파트를 보면 보통 다른 책에서 종종 누락되기 쉬운 저자들에 대한 설명도 짧게라도 들어가 있다. 내 직접적인 관심사는 아니지만 20세기 이후 현대경제학사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도 나름의 흐름을 만들어 직관적인 수준에서--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경제학과 수업을 전공은커녕 교양수준에서도 한번도 수강한 적이 없다--이해하는데 큰 무리가 없을 정도다(의아한 점은 피에로 스라파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이 없다는 것 정도). 내가 한국에 존재하는 경제학사를 다 뒤져본 건 아니지만, 한국에 출간된 경제학사 책 중에 한 권으로 이 정도까지 정리해주는 책은 거의 보기 힘들 정도.  누가 한 권을 추천한다면 이걸 추천하게 될 듯 하다.


 다만 개인적으로 E. K. 헌트의 <경제사상사>_History of Economic Thought_는 백하우스의 책으로 완전히 대체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80년대 초판이 번역되었고 현재 3판이 홍기빈 선생의 번역출간 예정이다). 백하우스는 근대 이후 경제학사를 그 자체의 이론적 완결성을 높여가는 과정과 현실분석, 기술적(제도적 개입) 분석틀을 구축해가는 과정의 두 경향의 접근과 분리라는 축으로, 조금 쉽게 말해서 경제학에서 역사(현실)와 이론의 분리라는 큰 틀을 갖고 설명한다. 맑스적 전통에 조금 더 가까운 헌트는--내가 읽은 초판 기준으로--다루는 범위 자체는 조금 좁고 설명도 (일단 수식이 등장하니까) 보다 전문적이다. 헌트의 강점은 경제학 이론을 주관주의적 가치설(가치가 각 개인의 주관적인 효용에 기초한다는 것)과 객관주의적 가치설(노동가치설처럼 객관적인 양에 기초해 가치가 결정된다는 것) 간의 대립으로 간주하는 명확한 이론 내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데 있다. 백하우스에게 그런 이해가 없지는 않지만, 내 생각에 이론에 대한 사상적인 이해를 깊이 할 수 있는 시선 자체는 헌트의 안내를 따라가는 편이 좀 더 수월한 듯 싶다. 특히나 나처럼 경제학을 그 자체로 일종의 담론/이데올로기로 살펴보려는 입장에서 헌트의 시각은 비판이론적 사고를 경제학에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그래서 석사논문에서 벤담을 다룰 때 헌트가 매우 중요한 참고저자이기도 하다).




루돌프 피어하우스.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7 -- 자유주의>. 라인하르트 코젤렉, 오토 브루너, 베르너 콘체 편. 공진성 역. 푸른역사, 2014.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 내 지적 관심사를 일정 기간 이상 따라온 분들에게는 이상하지 않겠지만 나는 근대의 가장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경제, 정치, 법, 그리고 문화와 개개인의 삶의 태도에까지 파고드는 매우 타협적이고, 변화무쌍하며,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의 전개를 추적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코젤렉의 사전을 구입했는데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특정한 개념과 변이형들을 역사적으로 추적하며 그 활용의 변천을 따져보는 점은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키워드>_Keywords_를 연상케 한다. 다만 뭐랄까, 코젤렉 사전의 경우 19세기 독일에 주로 집중하고 있어 내 연구대상이 될 근대영국의 사례는 매우 미미한 정도로밖에 언급되지 않는다. 그나마 프랑스는 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이라도 어느 정도 중요성을 갖고 언급되지만... 기본적으로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19세기 전반부부터 후반부까지 독일의 복잡한 정치적 맥락에 대한 어느 정도의 상식적인 배경지식이 있어야만 한다. 그게 없으면 저자가 자유주의가 독일에서 그 자체로 영향력 있는 정당으로 성립할 수 없었는지를 설명하려는 논지 자체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즉 독일의 19세기 전반부에서 "리버랄"이 하나의 형용사로서 다양하지만 나름의 연결지점이 있는 뉘앙스를 띠고 사용되었다면, 후반부로 가면서 "자유주의" 자체가 특정한 정치적 태도로--구체적으로는 좌우파가 서로를 견제/비난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사적 표현으로--자리잡힌다. 그걸 일일이 따라가 여기에 적어놓을 필요는 없을테고, 근현대 독일에 관심 있는 분들은 보시라(조금 더 연결하면 이러한 맥락과 칼 슈미트를 포함해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결단주의의 등장까지 연결할 수 있을텐데 내가 이쪽까지 커버할 수는 없어서). 독일어 원문은 40여쪽인데 국역본은 140쪽이다. 코젤렉이 빌레펠트에 있었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루만과 아는 사이였나?!)




D. A. F. 사드.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 성귀수 역. 워크룸프레스, 2014. [사드전집 1권]


: 2015년은 사드전집과 루소전집만 따라가도 풍족할 것 같다. 전집 1권은 표제작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를 비롯한 짧은 글들, 편지들을 주로 수록했고 기욤 아폴리네르의 사드 소개문 "신성한 후작"이 함께 실렸다. 짧은 글들이지만 초기부터 사드의 중요한 모티프를 그대로 드러내는 텍스트들이 실려서 그럭저럭 충실하게 따라읽을 수 있다. 번역이야 역자가 역자니까(나는 고등학생 때 뤼팽 전집을 거의 다 사 모았다...), 내가 불어는 모르지만 한국어로 잘 읽히는 건 분명하다. 아마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리지는 않을 걸 예상한 듯 예쁜 하드커버, 그럭저럭 고급스러운(?) 책 편집에 18,000원이라는 가격이 붙었다(물론 요즘 책들 중엔 그렇게 비싼 가격도 아니다). 전집 4권 예정 <미덕의 불운>에서부터 전집 8권 예정인 <규방철학>에까지 일관되게 드러나듯 사드의 주된 입장은 기독교와 그 핵심의 '신'이라는 관념을 허구로 비판하고 대신 자연, 특히 자연이 제공하는 감각적 욕망/욕구에 대한 전적인 투신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전적인 투신"의 정도가 매우 흥미로운데, 사드의 텍스트는 특히나 성욕이라는 측면에서 감각적 쾌의 실현을 극단적인 수준으로까지 추구하는 심리를 묘사한다; 엄밀히 말해 사드의 구축물은 전혀 감정적이지 않으며 철저하게 이성적이다--그것이 묘사하는 감각적 쾌의 실현방법이 철저히 이성적인 차원에서 고안된 극한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바로 그 지점 때문에 칸트가 사드에 맞닥트리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전집 1권에서는 강도높은 묘사는 없으나 사드 사유의 기본적인 논리를 드러내는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표제작도 그렇고, 독서노트나 "신에 대한 사색", "진실" 등이 그러하다. 개인적으로는 이후에 나올 전집들이 훨씬 기대된다. <소돔 120일>, 쥐스틴 연작과 쥘리에뜨 가 최우선일 것 같다(<규방철학>은 이미 도서출판b에서 나온 판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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