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팩트>라는 커뮤니티, 혹은 실증주의적 우파에 대한 코멘트.

Comment 2014. 8. 24. 19:21

어쩌다보니 페이스북에서 무려 18,000명 이상이 호감을 표시한 <레알팩트>라는 커뮤니티(https://www.facebook.com/realfactyes)에 올라온 게시물을 읽게 되었다. 해당 게시물을 요약하면, 1년 전에 현재 단식투쟁 중인 김영오 씨가 국궁 초단을 취득한 사진을 올려놓고 죽은 딸의 양육비를 왜 지급하지 않았느냐는 식의 비꼬는 내용이 들어가 있어, (리플을 단 사람들에게서 명시적으로 발견되듯) 현재 단식의 정당성을 손상시키기 위한 의도로 읽어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이런 종류의 우파 멍청이들이 흔히 누락하곤 하는 '논리'를 검토해보자면, 1) 실제로 이런 종류의 취미생활에 얼마나 많은 액수가 들어갔는지, 2) 그 액수를 자기가 부담했고 그래서 양육비 지급을 실제로 할 수 없었는지--이건 내가 알기로 아직 입증이 안 된 '선동'이다--, 3) 양육비 지급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면 어떠한 취미도 가지면 안 되는 건지, 4) 그래서 1-3이 다 참이라고 해도 그게 지금 단식하는 사람이 내건 정당성을 실제로 불식시킬 수 있는지(이는 다시 윤리적인 질문, 곧 과거에 어떤 종류의 '잘못'을 한 사람이면 현재의 불의에 대해 어떠한 저항을 할 수 없는 것인지라는, 그러니까 대체로 멍청한 질문을 포함한다; 이런 분들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자면, 전과가 있는 이명박이나 아버지의 잘못에 대해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않은 박근혜는 어떠한 정치적인 정당성을 가질 수가 없게 된다...물론 이런 우파들은 그런 걸 신경쓰기엔 너무 시야가 좁고 자기 반성이 안 되겠지만 말이다), 에 대한 해명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여기서 핵심은 물론 4번이고, 이게 사실상 유일하게 유의미한 질문인데, 이 분들께서 팩트에 대한 엄격함을 워낙 강조하시기에 한번 비슷한 별 쓸데없는 태도를 견지해 보았다. 여튼 이 네 가지 질문이 해결되지 않는 한 저 팩트는 김영오 씨 및 그 행동을 판단하는 데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한다. 1-3이 사실이라고 해도 김영오 씨는 자식부양의 책임을 다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할 수 있을지언정 그걸로 지금의 행동이 틀렸니 마니 하는 결론은 한 마디도 도출할 수가 없다. 이런 '공적인' 판단과의 연결이 부재한 상태에서 이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누르거나 호의를 표하는 리플들은, 집단적인 관음증 혹은 비뚤어지다 못해 비도덕적이 된 도덕심의 표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무슨 대단한 사람도 아닌 일개 노동자가 무슨 취미를 가졌던 말건이 뭐가 중요한가? 그건 그 주변의 사람들이 판단할 문제지, 이렇게 사생활을 파헤치면서 다룰 주제가 아니다; 내가 저 커뮤니티 운영자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게 그 자체로는 비도덕적인 일에 불과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이런 형태의 '도덕적 관음증'을 옹호하고 싶은 이가 있다면, 나는 최규석의 <송곳>의 명대사 한 마디를 인용해서 대꾸해주고 싶은데,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간이 아닌 '시시한' 인간들의 삶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거다. 세월호의 피해자들이나 유가족들이 도덕적으로 완벽한 영웅이어야 그들의 주장이나 입장이 정당성을 얻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애초에 정치적인 행위의 성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나이브한 태도에 불과하다.



대략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한국 웹을 휩쓴 주요한 흐름 중 하나인 팩트의 강조=실증주의적 태도가 정작 해석과 논리를 전혀 신경쓰지 못했다는 것은, 특히 해석과 논리의 중요성을 매우 깊게 고민할 수밖에 없는 필드의 연구자로서 심히 아쉬운 지점이다. 나는 이 커뮤니티에서 공식적으로 걸고 있는, 그러니까 "선동"에 대항해서 "팩트" 제시를 통해 북괴를 퇴치하겠다는, 한 70년대 쯤의 정서에 어울리는 촌스러운 슬로건에서 드러나는 북한 정권에 대한 적대감 같은 걸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물론 그런 적대감은 그 자체로는 '팩트'로 구성되는 게 아닌 정념이라는 점에서 이 커뮤니티의 이름은 자기 모순을 보여주지만 말이다. 약간의 사고실험을 통해 쉽게 알 수 있지만, 팩트만 끝까지 밀어붙이면 팩트만 남지 어떤 종류의 윤리적/정치적 판단은 존재할 수 없다. 그들의 북한 정권에 대한 혐오로 돌아오자면, 실제로 북한 정권은 그 어떤 면에서도 좋아할 점을 찾기 힘들며, 세계사를 퇴행시키는 존재라고 봐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니까 뭐 큰 틀에서 동의할 수는 있다(대북봉쇄의 문제를 지적하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말하자면, 모든 정권이 국가적 봉쇄에 대항해 자국의 시민에게 인간 이하의 고문을 가하는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어떤 입장을 취하든 개별적인 사실들을 연결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논리는 있어야 하고--모든 사실fact은 연결하는 논리가 없는 한 어떠한 판단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이런 것도 가르치지 않는 한국의 교육이 개탄스럽다--, 그 논리를 제대로 검증하기 위한 해석 및 비판critique이 없다면 이런 모든 태도는 단순한 감정적 반발 혹은 이데올로기의 표현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북괴 추방"의 이름을 내건 이 커뮤니티에서 김영오 씨의 국궁--아예 국궁이 북한에서 만들어졌고 남한 요인들의 암살을 추동하기 위한 중요한 기술이라고 덧붙였으면 좀 더 일관된 논리가 만들어졌을 테지만--이 문제가 된다는 것 자체가 이들로부터 논리적 사고가 결여되어 있음을, 한 마디로 이들은 우파라서가 아니라 머리가 심각하게 나쁘기 때문에 문제임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정념과 이데올로기의 표현을 분석하는 게 직업적 실천의 일부인 나로서야 분석과 비판의 대상이 너무 쉬워져서 편한 일이 되는 셈이긴 하다만, 어쨌든 이런 앙상한 수준의 지적 실천을 하시는 분들과 같이 살아야 하는 것도 사실이기는 해서, 이왕이면 나는 내 동료 시민들이 조금 더 상식적인 수준에서 사고하고 자기 반성을 갖추기를 희망한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우파들을 보면서, 특히나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판단을 보며, 지적으로 한심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은 적이 없다(어떤 면에서 우파들의 지적 수준이 나를 왼쪽으로 몰아갔다고 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특히나 자신들이 지적인 우위에 서있다고 순진하게 믿는 우파들, 엘리트 교육을 받은 이들이건, 위에 언급한 사례처럼 팩트만 있으면 뭐든지 된다고 믿는 이들이건 간에(당신이 H2O를 매일 일정 이상 섭취해야 유기체로서 유의미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이런 꽤나 강력한 fact는 그 자체로는 정치적 논증을 뒷받침하기 매우 힘들다!), 그 지적 열악함은 강남 대로의 가로등보다 찬란하게 빛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그건 아니라고"라 덧붙여주고 싶게 된다; 아마 그게 그들을 위해서도 좀 더 나을 거라고 믿는다. 아마 이런 논리가 나의 조금은 사악한 즐거움(!)에 약간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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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로 질의해주신 분도 있고 해서 첨언.


어떤 이유로든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러니까 딱히 단식을 위해 특화된 신체적 조건이나 전문기술을 갖지 않은 사람이라면, 수 일 이상의 단식을 한다는 건 엄청난 의지가 필요하다. 자신의 생명력과 건강을 치명적으로 훼손할 수 있는 수십 일이라면 말할 나위도 없고. 뭐 하루 이틀이면 모를까, 저 정도 기간 동안 단식을 진행하는 사람에게 진심이니 진의가 뭐니 떠벌리는 건 인간에 대한 모욕일 뿐만 아니라 극도의 무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 생각에, 설령 저 국궁 어쩌구가 완벽히 사실이고 김영오 씨가 딸의 양육비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 때문에 40일짜리 단식을 하는 일의 (정당성은 말할 나위도 없고) 순수한 마음이니 의지니 하는 소리가 나온다면,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양팔 저울을 갖고 놀면서 사실들의 균형감각을 기초부터 다시 기르도록 권하는 게 맞다고 본다. 국궁 초단 취득이 현재 김영오 씨의 행동에 대한 해석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거의 음모론에 준하는 ad-hoc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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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2.


어쩌다보니 무슨 인간 행위의 이해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까지 하게 되는 한심한 상황에 이르렀다. 본래 내 의도는 '팩트'를 강조하다보니 정작 합리적인 설명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가 되어버린 우파들의 지적 오류를 드러내는 데 있었는데, 지금은 어찌되든 상관없는 이야기가 됐다. 여튼 인간의 해석이나 그런 이야기 해봐야 리플 달아주실 분들이 잘 이해할 거라는 자신은 없기 때문에 (그게 이해가 되는 사람들이면 애초에 지금의 '국궁 이의제기' 자체가 엉터리라는 건 잘 알테니까) 조금 다른 각도에서 논의를 쌓아본다.


쉽게 말하자면, 지금 국궁 및 취미생활에 관한 '팩트' 하나만으로 김영오 씨의 행위에 내재된 진정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주장은 가장 심각한 사실관계를 망각한다는 점에서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지적으로 유해하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종류의 주장은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발발 이후로 120여일 간 드러났던 정부 및 집권세력의, 요컨대 사태의 진면모를 밝히고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권력을 지녔던 주체들이 어떻게 행동해왔고/실수를 저질러왔는지 전혀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맹목적이다-쉽게 말해 '팩트'를 전혀 보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만약 우리가 김영오 씨의 행동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4월 16일 이후 김영오 씨가 마주쳤던 절망적인 현실, 곧 정부의 책임회피 및 무대응과 같은 요인들이 가장 강력한 요소로 등장해야만 한다(안 그러면 4월까지 직장 잘 다니던 평범한 노동자가 참사 후 2개월 지나서야 단식에 돌입한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먼저 참사, 피해자의 발생, 정부의 무능력하고 때로는 악의적이었던 행위와 같은 요소들이 가장 큰 요소로 도입된 후에야 비로소 1년 전의 취미가 어땠느니 평소에 양육비를 보냈느니 등의 (앞의 요소들에 비하면 아주 미약한 설명력을 지닌) 요소들이 끼어들 수 있다--당연하지만 들어와보야 그렇게 크지 않은 요인이다. 금속노조 운운은 애초에 노조 가입된 지 1년 갓 지난 사람인데, 금속노조가 무슨 슈퍼맨 조직도 아니고-_-;;; 그냥 설명력이 떨어진다.


요약하면, 4월 16일 이후 김영오 씨의 삶이 완전히 바뀐 것은 좋든 싫든 인정해야만 한다. 먼저 그 이후에 전개된 맥락과 그 과정에서 가장 강력한 주체였던 정부가 무엇을 했는가를 직시하지 않고 음모론이나 가십 수준의 요인을 주된 이유로 도입한다면, 그런 설명을 신뢰할 수 없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지난 120여일을 설명하지 않은 채로 400일 전에 가까운 사진을 증거로 채택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의심해야 할 대상은 김영오 씨의 진의가 아니라 그 사람의 머리가 도대체 어떤 종류의 논리로 돌아가고 있는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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