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llectual History

라세 안데르센, "이슈트반 혼트: 마르크스주의에서 국가이성으로" 강연 요약문

BeGray 2024. 10. 16. 01:55

 

아래 내용은 2024년 10월 10일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GIHU(Global Intellectual History Unit)에서 주최한 "이슈트반 혼트: 마르크스주의에서 국가 이성으로"(István Hont from Marxism to Reason of State) 강연 및 질의답변의 내용을 요약하고 정리한 것이다. 강연자 라세 안데르센(Lasse Andersen)은 세인트앤드루스대학 지성사연구소에서 이슈트반 혼트 문서고 등의 구축 작업을 담당해왔으며, 현재 세인트앤드루스대학 사학과 대학원에서 19세기 영국 토지개혁논쟁에 관한 박사학위논문을 마무리하고 있다. 그가 작업한 혼트 문서고 소장원고 중 일부는 온라인으로 공개되어 있고, 차후 그의 편집 하에 혼트 미출간 논문집이 발간될 예정이다.

 

혼트의 작업 중 처음으로 국역되는 유고작 『상업사회의 정치사상: 장-자크 루소와 애덤 스미스』(Politics in Commercial Society: Jean-Jacques Rousseau and Adam Smith, 2015; 국역본은 김민철 번역, 김민철·이우창 해제, 오월의봄, 2025년 예정)의 출간을 앞두고 GIHU에서 특별히 혼트 문서고 아키비스트의 초청강연을 열 수 있었던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18세기 유럽 지성사 연구자는 물론, 정치(경제)사상 연구자라면 누구에게라도 강렬한 지적 자극을 선사하게 될 혼트의 작업이 이후 한국어 지식장에 받아들여지는 데 본 강연 요약문이 작게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0. 강의정황
: 성균관대학교 퇴계인문관 시습재(31310)에서 오후 7시 30분 조금 넘어서 시작. 20여분 간 혼트의 "푸펜도르프에서 마르크스까지" 계획 구상 및 남아있는 근거 자료 등에 대해 강연, 이후 밤 9시까지 1시간 동안 혼트 관련 질의응답이 진행됨. 청중은 김민철, 김성우, 김영국, 이우창 포함 9명. 이하 내용은 강연 및 질의응답에서 나온 내용을 이우창이 재구성에 가깝게 요약정리한 것임.


1. 이슈트반 혼트(1947-2013)의 여정: 헝가리에서 케임브리지까지

-헝가리에서 공산당 간부의 자녀로 성장, 본인도 학문적 경로를 지망(최초에는 공학도였으나 후에 인문사회분야로 변경).
-1965-68: 헝가리 육군에서 복무.
-1973: 부다페스트 마르크스주의 학파에 참여, 카를 마르크스의 언어를 통해 체제 비판 시도. 이 활동을 통해 특히 초기 저작을 비롯한 마르크스의 저작에 매우 해박하게 됨.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혼트는 영국 망명 후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Gareth Stedman Jones를 비롯한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과의 논쟁에서 압도적인 면모를 보여줄 수 있었음. 독일어권의 저작에도 익숙해짐. 이는 망명 이후에도 혼트가, 독일어권 저작을 제대로 읽지 못한 퀜틴 스키너 및 J. G. A. 포콕과 달리, 케임브리지학파 내에서 독일 정치사상(사) 전통에 진지한 관심을 지속하는 데 영향을 주었으리라 짐작됨.
-헝가리에서 혼트의 박사논문은 데이비드 흄의 경제 시론을 다룸.

-1974/75: 우크라이나 출신 영국 경제사가 마이클 포스탄Michael Postan의 도움 하에 영국으로 망명; 혼트는 포스탄이 편집을 맡고 있던 영국의 경제사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을 헝가리어로 번역했으며, 이러한 경험을 통해 경제사 연구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게 됨. 역시 포스탄의 도움 하에 공식적으로는 옥스포드의 휴 트레버-로퍼의 박사지도학생이 되었으나, 실제로는 이미 헝가리에서 썼던 글을 영어로 옮겨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

-이 시기 더 중요한 사건은 당시 막 『흄의 철학적 정치학』(Hume's Philosophical Politics, 1975)을 출간한 던컨 포브스Duncan Forbes와 만난 것. 포브스의 저작으로부터 "근대적 자연법 이론"(modern theory of natural law) 개념을 접하고 자신의 구상으로 받아들임.
-망명 후 혼트는 공산권 붕괴 이전까지는 헝가리로 귀국할 수 없었으며, 그로 인해 자신의 부모와도 살아서 재회하지 못함.

-1978-84: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 연구소에서 "정치경제학과 사회, 1750-1850"(Political Economy and Society, 1750-1850) 프로젝트 연구원으로 재직. 이때의 결과물은 마이클 이그나티에프Michael Ignatieff와 편집한 논문집 『부와 덕: 스코틀랜드 계몽에서 정치경제학의 형성』(Wealth and Virtue: The Shaping of Political Economy in the Scottish Enlightenment, 1983)으로 출간; 해당 논문집은, 서언preface 마지막에 밝히듯, 1981년에 타계한 마이클 포스탄에게 헌정됨.

-해당 논문집에서 혼트가 기여한 글은 두 편으로, 제1장 「『국부론』에서 필요와 정의」(Needs and justice in the Wealth of Nations), 그리고 지금도 18세기 정치경제 사상사 연구의 걸작으로 남아있는 제11장 「스코틀랜드 고전 정치경제학에서 '부국-빈국' 논쟁」 (The 'rich country-poor country' debate in Scottish classical political economy)임. 전자는 공식적으로 이그나티에프와 공저한 것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이후 혼트의 논문집 『무역의 질투: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국제경쟁과 민족국가』(Jealousy of Trade: International Competition and the Nation-State in Historical Perspective, 2005)에 그대로 수록된 바에서 알 수 있듯, 실제로는 전적으로 혼트의 작업물이었음.


2. "푸펜도르프에서 마르크스까지": 미완의 계획


-혼트는 헝가리에서 흄과 스미스를 연구하던 시절부터 맑스와의 연관성을 의식함.
-특히 포브스를 비롯한 자연법 이론 관련 연구와 조우하면서, 17세기의 자연법학자 푸펜도르프로부터 18세기의 흄과 애덤 스미스를 경유하여 19세기의 마르크스까지를 잇는 거대한 사상사적 계보를 구상.
-그 출발점에 있는 것은 푸펜도르프가 제시한 "negative community"로서의 자연상태 개념, 그리고 그로부터 소유권property 개념이 발명되는 '역사적' 과정에 대한 설명[* cf. Hont, "The Language of Sociability and Commerce: Samuel Pufendorf and the Theoretical Foundations of the “Four-Stages” Theory", 1986 (이후 Jealousy of Trade 1장에 재수록)]. 이와 같이 소유권 개념 및 이를 둘러싼 요인들을 '역사적'으로 설명하려는 17-18세기의 도식에 초점을 맞추면 해당 사상가들의 연속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혼트의 관점. 
-이런 계보에서 혼트는 마르크스가 기본적으로 "18세기의 사상가"였다고 생각.
- 심각한 완벽주의자였던 혼트는 거의 완성되어 있는 글들을 포함해 30여편의 원고를 출간하지 않고 남겨두었으며, 이중에는 동료들의 글을 묶은 편집본도 2권 포함됨. 생전 출간된 혼트의 논문에는 마르크스 및 위의 구상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대목이 없다시피 하지만, 미출간 논문 원고를 검토하면 혼트가 그려내고자 했던 역사적 서사를 재구성하는 것이 가능. 
-현재 준비 중인 혼트 미출간 논문집 첫 번째 권(Lasse Andersen 편집 및 서문)에서 이를 재구성하여 보여줄 예정임.

-혼트의 영향 하에 푸펜도르프에서 마르크스까지의 계보를 각자 그려낸 저자로는 두 명을 꼽을 수 있음. 
-한 명은 본래 신좌파 마르크스주의자였으나, 혼트와 마르크스에 관해 논쟁하면서 지성사 연구자로 전향한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임. 펭귄판 『공산당 선언』 (2002; 한국어판은 권화현 역,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2010)에 붙인 그 자체로 책 한 권 분량에 달하는 서문, 그리고 이후에 쓴 마르크스 전기 『카를 마르크스: 위대함과 환상 사이』 (Karl Marx: Greatness and Illusion, 2016; 한국어판은 홍기빈 역, arte, 2018)가 그 사례.
-다른 한 명은 [*원래 18세기 프랑스 경제사가였으나 마찬가지로 혼트의 영향 하에 지성사가로 전향한] 마이클 소넨셔Michael Sonenscher로, 특히 그의 최근 저작 『자본주의: 자본주의란 단어 이면의 이야기』 (Capitalism: The Story behind the Word, 2022)는 스테드먼 존스의 위 작업과 혼트의 미출간 원고를 직접 언급.
-혼트는 둘에게 자신의 미출간 원고를 읽고 인용하도록 허락함 [*소넨셔의 『자본주의』 7장 1번 각주(p. 190) 및 스테드먼 존스의 『공산당 선언』 서문 각주 263번(원서 기준 p. 165), 267번(p. 169)는 혼트의 "Negative Community: the Natural Law Heritage from Pufendorf to Marx"(1989)를 직접 인용하고 있으며, 스테드먼 존스의 서문 각주 291번(p. 183)은 혼트의 또 다른 미출간 원고 "The Antinomies of the Concept of Use Value in Marx's Capital"을 인용함].


3. 냉전 이후: 국가이성, 위기, 코젤렉

-혼트는, '시대착오'를 경계하는 통상적인 케임브리지학파 역사가들에 비해, 18세기 사상사 연구를 통해 현재의 상황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으며 또 그것이 18세기 지성사 연구의 중요한 목표라고 여겼음.
-특히 1980년대 말 냉전 종식 및 공산권 붕괴 이후, 혼트는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연구를 (완전히 폐기했다고는 할 수 없어도) 더는 유의미하게 진척시키지 않음.
-이후 EU의 부상 등과 함께 "민족 국가의 종언"을 고하는 목소리가 유행하는 상황에서 혼트는 민족국가가 그렇게 쉽게 사라질 리 없다고 생각. 1990년대에 그는 (특히 프리드리히 마이네케Friedrich Meinecke 이래 20세기 독일의 정치사상가/사상사가들이 전개한) "국가 이성"(raison d'etat; 영어로는 reason of state) 관련 논의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졌으며, 1994년 출간된 논문 「분열된 인류의 영원한 위기: '오늘날 민족국가의 위기'를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보기」 ("The Permanent Crisis of a Divided Mankind: 'Contemporary Crisis of the Nation State' in Historical Perspective", 1994)는 이를 잘 보여줌.

-2005년의 논문집 『무역의 질투』 맨 마지막 챕터로 배치된 「영원한 위기」는 얼핏 보면 프랑스혁명에 대한 혼트의 사상사적 분석인 것처럼 보임(책 전체의 논문 배열이 17세기부터 프랑스혁명까지 논문들이 다루는 시대순을 따르는 것도 이러한 오해를 유발함). 하지만, 프랑스혁명사 연구로서 해당 논문이 지닌 여러 명백하고 심각한 결점은 논외로 하더라도, 「영원한 위기」가 처음 출간된 형태를 보면 『무역의 질투』 수록판에서는 알기 어려운 혼트의 문제의식 및 그의 논쟁 상대방을 알 수 있음.
-1994년판 「영원한 위기」는 2005년판과 달리 논의 서두에 "위기" 개념에 대한 혼트의 보다 상세한 서술이 있으며, 해당 대목의 주석에서는 독일의 역사가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의 『역사적 근본개념들: 독일의 정치-사회적 언어에 대한 역사적 사전』 (Geschichtliche Grundbegriffe. Historisches Lexikon zur Politisch-sozialen Sprache in Deutschland, 1972-97; 한국어로는 일부 항목이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시리즈로 번역출간)의 "위기"(Krise) 항목이 인용. [*물론 2005년 판에서도 코젤렉의 개념사 연구 및 <비판과 위기>를 중요하게 인용하는 각주가 여럿 남아있지만] 1994년 판에서 코젤렉의 연구가 혼트에게 중요했다는 사실이 좀 더 전면적으로 드러남.

-[*한국에는 주로 개념사 방법론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라인하르트 코젤렉은 이전 세대의 법학자/정치사상가 카를 슈미트Carl Schmitt의 깊은 영향 하에 독일 혹은 유럽의 근대성을 비판적으로 성찰한 정치/사회사상사가이기도 함. 
-특히 그의 초기작인 박사논문 『비판과 위기: 부르주아 세계의 발병에 관한 연구』 (Kritik und Krise. Eine Studie zur Pathogenese der bürgerlichen Welt, 1959년 책으로 출간; 영어판은 익명의 역자가 1988년 Critique and Crisis: Enlightenment and the Pathogenesis of Modern Society로 출간)는 18세기 계몽사상의 "비판"을 근대세계의 정치적 권위가 위기에 처하게 된 근원으로 지목.

-혼트는 1980년대 초중반부터 코젤렉과 교류. 그는 단순히 '개념사적 접근법'이라는 방법론에 관심을 기울인 것이 아닌, 정치사상(사)가로서의 코젤렉에도 주목. [*이는 그가 이후 2011년 던컨 켈리Duncan Kelly와 함께 진행한 케임브리지 CRASSH(Centre for Research in the Arts, Social Sciences and Humanities) "정치사상사의 문화사"(A Cultural History of the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세미나의 3회차 "카를 슈미트와 라인하르트 코젤렉" 노트에서도 명시적으로 드러남. 총 8회에 걸쳐 진행된 해당 세미나 노트 전체는 독일 정치사상사 및 국가이성론 전통에 대한 혼트의 관심이 만년까지 지속되었음을 보여주는 귀중하고 통찰력 있는 자료임]

-18세기 유럽 사상으로부터 현대 세계의 문제 혹은 해법을 찾았다는 점에서 혼트와 코젤렉은 공명하는 바가 있었던 듯함(혼트 역시 마르크스까지 오는 18세기의 지적 전통으로부터 20세기 헝가리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음).
-다만 혼트는 코젤렉의, 적어도 『비판과 위기』에서 제시된 구도에는 동의하지 않았으며, 후자와 마찬가지로 18세기의 '위기'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그 위기의 성격을 다르게 규명하고자 했음. 토마스 홉스에서 에마뉘엘 시에예스까지의 연결선을 긋는 「영원한 위기」에서 혼트는 코젤렉과 마찬가지로 18세기 이래의 반복되는 위기를 지적하되 그 근원을 민족국가와 인민주권을 둘러싼 대립, 즉 국가이성론의 전통에서 설명하고자 했음. [보다 상세한 논의는 Lasse Andersen, "Hont and Koselleck on the Crisis of Authority", Journal of the Philosophy of History 17 (2023): 357-79 (Open Access 논문)를 참조]

-국가이성 및 자연법 전통과 관련된 혼트의 미출간 원고에서 마이네케, 슈미트, 코젤렉 등을 제외한 독일 사상가들이 명시적으로 언급되는 예는 찾기 힘듦. 이는 부분적으로는 혼트가 타자기(typewriter)로 작업했기 때문이기도 함. 출간된 원고의 집필과정을 보면, 혼트는 타자기로 본문 초고를 다 완성한 후에야 각주를 달고는 했음. 즉 미출간 원고의 상당수는 애초에 각주 자체가 달려있지 않다는 것(따라서 편집자인 Lasse Andersen 본인이 이를 일일이 찾아 추적하는 노동을 해야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