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의 작업들: 위치와 맥락 (강연자료 및 코멘트)
아래는 2023년 1월 16일 서울대 영문과 대학원 리딩그룹 중 일부의 요청을 받아 진행한 소규모 강연의 자료를 일부 수정해서 옮긴 것이다. 당시 『안전, 영토, 인구』의 일부를 읽고 있는 학생들에게 미셸 푸코의 전체 작업을 개괄해달라는 것이 강연의 취지였다. 대부분의 푸코 입문서는 푸코의 몇 가지 '이론적' 주제를 선별해 해설하는 형태를 따른다. 나는, 그런 내용을 구두로 간단히 설명하기는 했지만, 아래의 강연자료에서 볼 수 있듯 상당히 다른 접근법을 선택했다. 바로 푸코의 저작 및 그 영역본이 언제 어떤 순서로 출간되었는지를 나열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개괄'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 외에도 큰 이점이 하나 있다. 어느 저자의 사유를 그 저작에만 묶어놓는 대신 그것이 언제, 어떤 독자들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수용/발명되는지의 궤적을 가늠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푸코의 수용/발명'들'에는 영어권 학술출판시장이 중요한 기여를 했다. 꼭 영문학 전공자들이 아니라 해도, 프랑스어 문헌을 읽기 어려운 대부분의 독자들이 일차적으로 접할 수 있는 통로는 영어 번역본이며, 푸코에 관해 (맞든 틀리든) 가장 많은 학술적 논의를 쏟아내는 곳도 영어권 학계다. 어떤 면에서 프랑스철학 전공자들을 제외하면 푸코를 읽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영어권에서 구축된 푸코의 이미지들에 깊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푸코는 생전에도 연구대상/관심사가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고, 사후 10여년이 지난 후에 두툼한 강의록이 발간되면서 '새로운' 해석이 유통될 수 있었던 운좋은 저자였다. 그는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문서고에서 각종 기괴한 문헌을 파헤쳤으며, 역사가로서의 훈련을 받지 않았지만 과학사가들의 작업을 참조했던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이는 1960년대, 70년대 그가 내놓은 결과물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만 그런 방식으로 연구할 수는 없는' 작업이 되는데도 영향을 끼쳤다. 이런 조건들이 맞물려 영어권에서는 시대에 따라, 또 독자에 따라 다양한 방식의 푸코'들'이 발명되었다. 그렇게 발명된 푸코들은 전후 미국 대학을 중심으로 재구축된 지구적 학술네트워크를 경유하여 세계 각지의 다양하고 이질적인 학술장에 퍼져나갔다. 여러 번에 걸쳐서 꽤나 다른 버전들로 말이다. 오늘날 연구자들이 알고 있는 푸코는 대체로 그렇게 만들어진 버전들 중의 하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푸코의 저작 자체를, 푸코가 정말로 하려던 작업이 무엇이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곧 푸코 연구의 유일한 미덕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푸코에 관한 다양한 해석이 전부 참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실제로 그런 해석 중 상당수는 비역사적이거나 부분적인 독해에 기초한 오독이며, 푸코의 모델을 따른다고 주장하는 이들 중 다수가 정작 푸코의 이해에 있어서는 진부할만큼 도식적이라는 아이러니는 음미할 가치가 있다. 단지 그렇게 수차례 발명된 푸코'들'이 서로 다른 지역, 서로 다른 분과에 속한 연구자들이 그 나름의 지적인 궤적을 이어나가는 데 중요한 자원이 되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임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푸코들이 발명되고 또 전파되는 과정은 20세기 후반 이래 북미와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지구적 인문사회 학술장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그 학술장의 행위자들이 어떠한 동기와 전제, 편견, 자원을 지니고 있었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사례이기도 하다. 요컨대 우리는 푸코 못지않게 푸코들이 속해있던 맥락에 주목하고, 그러한 맥락으로부터 어떻게 이론'들'이 (때로는 조악한 버전으로) 가공되었는가를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화로부터 누군가는 '이론' 역시도 수없이 발명, 파괴, 개조, 재활용을 거치는 '역사'의 일부임을 알아차리고, 나아가 여전히 많은 연구자들의 사고를 구제불가능할 정도로 굳어버리게 만드는 이론의 주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서울대학교 영문과 대학원 리딩그룹
미셸 푸코의 작업들: 위치와 맥락
2023년 1월 16일
I.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84)의 주요 저작
<주저>
1961.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 (Folie et déraison, Histoire de la folie à l'âge classique, 국가박사학위논문)
1963. 『임상의학의 탄생』 (Naissance de la clinique)
1966. 『말과 사물』 (Les Mots et les Choses)
1969. 『지식의 고고학』 (L'Archéologie du savoir)
1971. 『담론의 질서』 (L'Ordre du discours, 1971, 콜레주드프랑스 취임강연)
1975. 『감시와 처벌』 (Surveiller et Punir)
1976. 『성의 역사 1권: 지식의 의지』 (Histoire de la sexualité 1: La Volonté de savoir)
1984. 『쾌락의 활용』 (L'Usage des plaisirs, 『성의 역사』 2권);
『자기 배려』 (Le Souci de soi, 『성의 역사』 3권)
1994. 『말과 글: 1954-1988』 (Dits et écrits: 1954-1988, 4 vols.)
2018. 『육체의 고백』 (Les aveux de la chair, 『성의 역사』 4권)
<콜레주드프랑스 강의록>
1970-71. 『지식의 의지에 대한 강의』 (Leçons sur la volonté de savoir (1970-1971), 2011)
1971-72. 『형벌의 이론과 제도』 (Théories et institutions pénales (1971-1972), 2015)
1972-73. 『처벌사회』 (La société punitive (1972-1973), 2013)
1973-74. 『정신의학의 권력』 (Le Pouvoir psychiatrique (1973-1974), 2003)
1974-75. 『비정상인들』 (Les Anormaux (1974-1975), 1999)
1975-76.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 Il faut défendre la société » (1975-1976), 1997)
1977-78. 『안전, 영토, 인구』 (Sécurité, territoire, population (1977-1978), 2004)
1978-79. 『생명정치의 탄생』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1978-1979), 2004)
1979-80. 『생명존재의 통치에 관하여』 (Du gouvernement des vivants (1979-1980), 2012)
1980-81. 『주체성과 진실』 (Subjectivité et vérité (1980-1981), 2014)
1981-82. 『주체의 해석학』 (L'Herméneutique du sujet (1981-1982), 2001)
1982-83. 『자기의 통치와 타인의 통치 1』 (Le Gouvernement de soi et des autres I (1982-1983), 2008)
1983-84. 『자기의 통치와 타인의 통치 2: 주체성과 용기』 (Le Gouvernement de soi et des autres II : Le Courage de la vérité (1983-1984), 2009)
<주요 영역본 및 편저>
1965. Madness and Civilization: A History of Insanity in the Age of Reason. [원저 1961]
1970. The Order of Things: An Archaeology of the Human Sciences. [원저 1966]
1971. “Orders of Discourse” (https://doi.org/10.1177/053901847101000201 ). [원저 1970]
1972. The Archaeology of Knowledge. [원저 1969]
1975. The Birth of the Clinic: An Archaeology of Medical Perception. [원저 1963]
1977. Discipline and Punish: the Birth of the Prison. [원저 1975]
1978. The History of Sexuality, Vol. 1: An Introduction. [원저 1976]
1985. The Use of Pleasure. [원저 1984]
1986. The Care of Self. [원저 1984]
2021. Confessions of Flesh. [원저 2018]
1980. 『권력과 지식 : 미셸 푸코와의 대담』 (Power/Knowledge: Selected Interviews and Other Writings, 1972-1977, ed. by Colin Gordon)
1984. The Foucault Reader, ed. Paul Raninow.
1986. Foucault: A Critical Reader (ed. by David Couzens Hoy; 푸코에 대한 논평모음)
1988. Politics, Philosophy, Culture: Interviews and Other Writings, 1977-1984 (ed. by Lawrence D. Kritzman)
1988. 『자기의 테크놀로지』 (Technologies of the Self: A Seminar with Michel Foucault, ed. by Luther H. Martin, Huck Gutman, and Patrick H. Hutton)
1991. 『푸코 효과: 통치성에 관한 연구』 (The Foucault Effect: Studies in Governmentality with Two Lectures by and an Interview with Michel Foucault, ed. by Graham Burchell, Colin Gordon and Peter Miller)
1998-2001. The Essential Works of Michel Foucault, 1954-1984, 3 vols., ed. by Paul Rabinow (Vol. 1 Ethics: Subjectivity and Truth, Vol. 2 Aesthetics, Method, and Epistemology, Vol. 3 Power; Dits et écrits: 1954-1988 [4 vols., Paris: Gallimard, 1994]에서 편역).
*콜레주드프랑스 강의록은 2003-2017에 영역 출간
2003. “Society Must Be Defended”.
2006. Psychiatric Power.
2007. Security, Territory, Population.
2008. The Birth of Biopolitics.
<영어판 전기>
Didier Eribon, Michel Foucault (Harvard University Press, 1991 [원저 1989]).
James E. Miller, The Passion of Michel Foucault (Simon & Schuster, 1993).
Stuart Elden, The Early Foucault (Polity, 2021).
---, The Archeology of Foucault (Polity, 2022).
---, The Birth of Power (Polity, 2017).
---, Foucault’s Last Decade (Polity, 2016).
II. 맥락, 수용, 해석: 프랑스 VS. 미국 VS. ???
1. 프랑스 지성사·사상사 연구의 위치
- “상부구조”의 탐구: 전후 유럽의 좌파학자들과 ‘비판이론’ (구조주의, 정신분석, 문화연구... cf. 프랑크푸르트학파)
- 프랑스 지성사 연구 분과: 철학 대 역사학 → 푸코의 위치; 문서고 연구와 철학? (cf. 랑시에르)
- 1960년대 사상사 연구의 접근법: 구조와 단절 (cf. 구조주의철학, 과학사 연구)
→ 『말과 사물』, 『지식의 고고학』
- 푸코의 선택: 정신의학, 광기 등 인간 치료·통제 메커니즘에 대한 관심사 + 지식의 연구
→ 과연 1970년대 이후 “권력”·“통치성”에 대한 논의를 단절이라 볼 수 있을까?
→ 1980년대의 작업들은?
- 고대사가들과의 교류: 폴 벤느(Paul Veyne), 피에르 아도(Pierre Hadot), 피터 브라운(Peter Brown)
→ 푸코를 프랑스/(급진)철학의 맥락에만 놓고 보는 게 타당할까?
2. 미국에서의 수용
- 전후 미국 학계의 부상과 ‘유럽’에의 욕구
- 미국과 프랑스 학술장의 공생관계: 수입-가공-재수출의 정치
(cf. François Cusset, French Theory: How Foucault, Derrida, Deleuze, & Co. Transformed the Intellectual Life of the United States, 2008 [프랑수아 퀴세, 『루이비통이 된 푸코?』])
- 1960년대 이후 미국 인문학부의 정치적 급진화 + 다양한 방법론의 수용 시도
→ “프랑스 이론”, “비판 이론”, “포스트 이론”의 구축과 커리큘럼화, 페미니즘·탈식민주의·맑스주의 등등
- 푸코의 수용 혹은 변용: 1970s-80s
담론/지식과 권력 연구 (ex: Edward Said, Orientalism, 1978)
지성사·과학사(의학사) 연구 (ex: Thomas Laqueur, Making Sex: Body and Gender from the Greeks to Freud (1990)
페미니즘·젠더 연구 (cf. Jeffrey Weeks, Sex, Politics and Society: The Regulation of Sexuality Since 1800 (초판 1982); Judith Butler, Gender Trouble: Feminism and the Subversion of Identity, 1990; Annamarie Jagose, Queer Theory: An Introduction, 1996; Chloe Taylor, The Routledge Guidebook to Foucault’s The History of Sexuality, 2016, chs. 5, 6)
영문학의 “신역사주의” 연구 (cf. H. Aram Veeser, ed., The New Historicism, 1989; H. Aram Veeser, ed., The New Historicism Reader, 1994)
⇒ 『말과 사물』,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1권』 등이 주로 참조됨. 역사학, 문학, 사회과학, 여성학 등등에 폭넓게 영향
- 통치성(governmentality)과 생명정치(biopolitics): 재발명 (1990s-2010s)
콜레주드프랑스 강의록의 (재)발굴: 일부는 1970년대 후반부터 영어권에 번역유통되었으나, 『푸코 효과』(1991), 그리고 2000년대 중후반 『안전, 영토, 인구』와 『생명정치의 탄생』 출간
→ 푸코 해석의 초점 이동: 콜레주드프랑스 강의록의 발굴로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1권을 포함해 푸코의 1970년대 기획을 전체적으로 또 상세하게 조망하는 게 가능해짐
+ 푸코의 통치성·생명정치·(신)자유주의 연구 기획이 재조명 & 여러 분과에 수용
→ 이번에는 주로 역사학·사회과학, 특히 국가·통치/정치체제 연구자들에게 영향
→ ‘비판적’ 정치철학의 전유: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연작(1995-2015), 웬디 브라운(Wendy Brown)의 신자유주의 연구 등등 (Cf. Thomas Lemke, Biopolitics: An Advanced Introduction, 2011[원저 2007]; 국역본 토마스 렘케, 『생명정치란 무엇인가』, 2015)
3. '푸코 전설': 권력과 저항?
-통상적인 해석: 3단계론(?)
1960년대의 푸코(“고고학”·‘구조주의적’ 담론분석): 『말과 사물』, 『지식의 고고학』 등
1970년대의 푸코(권력과 통치성):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1권 및 ‘통치성’ 강연들
1980년대의 푸코(주체, 자기 배려): 『성의 역사』 2권 및 3권
- ‘비판이론’ 혹은 정치철학적 해석: 1970년대/1980년대 단절론
‘1970년대 담론·권력의 효과를 탐구했던 푸코는 ‘담론의 감옥’에서 주체가 어떻게 권력에 저항할 수 있을지 찾아낼 수 없었고, 그래서 1980년대에 대안을 찾기 위해, 혹은 대안을 포기하여 고대 그리스·로마의 주체화 과정으로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 위 해석의 문제: 아무런 문헌 근거 없는 뇌피셜(...). 가히 ‘푸코 전설’ 급.
a. 푸코가 권력의 일반 이론을 만들고자 했는가?
b. 푸코가 권력 대 (주체의) 저항이라는 도식을 중요한 의제로 품고 있는가?
c. 1970년대와 1980년대 작업이 정말로 단절인가?
→ a&b: 1970년대 강의록 + 출간저작을 훑어보면 딱히 별다른 근거가 없음
→ c: 여기에 답하려면 1970-80년대 푸코의 작업 사이의 관계를 검토해야 함
핵심은 『성의 역사』 1권, 『안전, 영토, 인구』 - 『성의 역사』 2, 3, 4권의 관계
III. 푸코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 1970년대의 중간결산: 『성의 역사』 1권, 『안전, 영토, 인구』
: 푸코의 주제 & 역사적 내러티브 이해하기
- 1980년대: 『성의 역사』 후기 3부작
저작의 성격: 장르와 글쓰기의 문제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초기 기독교까지: 어떤 이야기인가?
그 이야기는 1970년대에 만들어놓은 서사 속에서 어떠한 위치에 놓여 있는가?
[이하는 2023년 1월 16일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내용]
비공식적으로 푸코에 관해 짧게 설명할 일이 생겨서 강연자료를 만드는 중. 그중 일부를 여기에 좀 더 풀어쓰겠음. (음슴체로 쓰는 건 강연자료를 그렇게 만들다 보니...)
[*같이 논문 준비하고 있는 공저자와의 논의에 따라 일부 내용은 삭제처리함("<>" 및 "[]"로 표시). 언젠가(?) 나올 논문에서 확인해주세요^^]
1.
푸코의 저자로서의 이력에 관해서 가장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것은 다음의 3단계론이라 할 수 있음:
a. 1960년대의 푸코(“고고학”·‘구조주의적’ 담론분석): 『말과 사물』, 『지식의 고고학』 등
b. 1970년대의 푸코(권력과 통치성):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1권 및 ‘통치성’ 강연들
c. 1980년대의 푸코(주체, 자기 배려): 『성의 역사』 2권 및 3권.
보통 a에서 b로 가는 과정은 별다른 문제가 안 생기는데, b에서 c로 왜/어떻게 가는가를 설명하는 게 늘 쟁점이 됨. 영어권에서 흔히, 종종 프랑스어권에서도 유통되는 해석은 이른바 '1970년대/80년대 단절론'이라 할 수 있음. 이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1970년대 담론·권력의 효과를 탐구했던 푸코는 ‘담론의 감옥’에서 주체가 어떻게 권력에 저항할 수 있을지 찾아낼 수 없었고, 그래서 1980년대에 대안을 찾기 위해, 혹은 대안을 포기하여 고대 그리스·로마의 주체화 과정으로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로 정리 가능함.
영어권 푸코 개설서를 보면 거의 정설처럼 통용되는 이러한 해석의 가장 큰 문제점은... 놀랍게도 아무런 문헌 근거가 없는 뇌피셜이라는 것(푸코 전기를 쓴 디디에 에리봉이나 스튜어트 엘든 등을 제외하면, 푸코 해석자들에게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경향 중 하나는 역사학적·문헌학적 훈련을 받은 이들이 거의 없다는 것).
2.
애초에 푸코가 권력-저항의 일반 이론을 구축하고자 했다는 근거는 딱히 없음. 짧은 강연원고 몇 개를 제외하면, 푸코 권력론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저작은 『성의 역사』 1권임. 이를 천천히 읽어보면 자기가 앞으로 할 연구프로그램 설명과 맑시스트·정신분석 계열 역사서술을 조롱하는 어그로 등등이 다 뒤섞인 책이며 체계적인 권력이론을 서술한 작업이 아님. 전후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을 죽 읽어보면 통치/권력의 유형론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긴 한데 기본적으로는 역사적 설명의 시도에 가까움.
'주체의 저항'이라는 주제도 마찬가지임. 1970년대 푸코의 관심사는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에 굉장히 상세히 남아있는데 (예를 들어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1권의 내용 상당수는 그 앞 강연 몇년치를 뒤져보면 이미 언급되는 걸 확인할 수 있음) 적어도 1973-74년 『정신의학의 권력』에서 1978-79년 『생명정치의 탄생』까지 강의록을 훑어보면, 애초에 푸코에게 주체의 저항가능성이 중요한 의제였다는 해석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음. 『성의 역사』 1권에서 푸코 본인이 '억압 가설'을 그렇게 조롱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과연 권력과 저항이라는 도식이 푸코에게 중요하긴 했을까...를 다시 질문할 필요가 있음. 그게 푸코의 문제의식인지, 아니면 이데올로기와 해방이라는 도식에 얽매여 있는 (신)좌파 독자/해석자들의 문제의식인지부터 따져봐야 함(나는 후자라고 생각함).
*푸코가 권력과 저항의 전략에 대한 문제의식을 비치는 대목이 있긴 한데, 실제로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대체로 지나가면서 잠깐 코멘트하는 바에 가까우며, 그걸로 푸코의 전체 문제의식을 규정하기에는 현저히 적은 양임. 푸코가 그 주제에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천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날의 수많은 인문사회연구서도 갖가지 진보적 레테르로 점철되어 있지만, 그 저자들 중에 그러한 문제의식을 오랜 기간 진지하게 견지하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그게 푸코의 다른 작업을 이해하는 실타래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
두 번째로 과연 1970년대와 80년대의 작업 사이에 단절이 있긴 한가, 단절이 있다면 '어떤' 단절인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음. 나중에 여기에 관해서는 따로 논문을 쓸 계획이 있어서 자세히 쓰지는 않겠지만, 두 가지만 지적할 수 있음. 먼저 <1970년대 작업 일부를 상세히 읽어보면 [...] 1980년대의 작업은 그 이야기를> 성sexuality을 중심으로 깊이 있게 파고드는 작업이라고 봐야 함.
(그래서 푸코의 고대 해석에서 무슨 정치철학적 대안을 찾으려는 시도에 나는 회의적임. 푸코 본인이 그런 시대에서부터 시작해 고해 같은 제도가 생기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거기에 근본적인 대안이 있을 수 있겠나?)
둘째, 대부분의 푸코 해석자가 푸코를 '철학자'로만 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인데, <『성의 역사』의 '역사서'로서의 성격을 봐야 함.> 역시 대부분의 해석자들이 간과하지만, 푸코는 철학과에서 학위를 받아서 그렇지 문서고(archive)에서 미친듯이 자료를 파헤친 준-역사가였고, 이런 태도는 그의 연구 커리어에서 계속 유지됨. 물론 역사가들 사이에서 방법론 훈련을 안 받아서 1960년대에 썼던 '구조주의적' 책은 지금 보면 좀 해괴하고 ('많이 읽은 건 알겠는데 뇌피셜이 많은 유사역사학인 것 같다?' '뭔가 유식해 보이는데 이대로 쓸 수는 없다?') 1970년대 출간저작들은 에세이에 가까운 수준이기 때문에, 철학 전공자들도 역사 전공자들도 푸코의 포지션을 제대로 못 잡기 쉬움. 흥미롭게도 푸코는 1980년대, 자신의 주 분야가 아닌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 역사학적 학술서를 쓰게 됨(오늘날 지성사 연구자가 이 책들을 본다면 큰 위화감 없이 읽을 수 있음).
역사가로서 푸코의 작업을 보면, 그가 통치성의 연구를 수행하면서 주체의 저항 같은 대안에 매달리지 않았음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음. 어떤 완전한 체계를 만드는 건 역사가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임(인종차별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에게 '왜 인종해방의 이론적 해결책도 내놓지 않아?'라는 비판이 별 의미가 없는 거랑 같음).
3.
요약하면 주제에서든 형식에서든 푸코의 1980년대의 작업들은 도피도 대안찾기도 아님. 1970년대에서부터 가졌던 문제의식을 쭉 이어가고 있고, <이전의 막> 휘날리던 글쓰기 방식도 역사학자들에게 통용될 수 있는 수준으로 다듬어가는 중이었음. 단지 『성의 역사』 4권이 사후 30 여년이 지나서야 공개되는 바람에, 또 푸코 해석자/연구자들이 푸코가 속해 있는 <학문적> 네트워크에 무지하기 때문에 내러티브를, 맥락을 제대로 잡을 수 없었던 것임. 그 결과 대부분의 푸코 해석자들이 공유하는 급진좌파/비판이론의 문제의식을 푸코에 그대로 덮어씌웠고, 우리가 지금 흔히 접하는 '푸코 전설'이 만들어진 것임. 아무런 문헌 근거도 없는, 그야말로 사람들의 입을 통해 만들어진 '전설'myth임.
P. S. 최근에 번역된 프레데릭 그로의 『미셸 푸코』는 무엇보다 전체 콜레주드프랑스 강연록을 주의깊게 소개한다는 점에서 푸코에 관해 지금까지 나온 입문서 중 제일 유용함. 하지만 이 책은 한편으로는 2017년(초판은 1996년)에 나왔기 때문에 2018년 프랑스어판이 처음 나온 『성의 역사』 4권의 내용을 반영하지 못했으며, 다른 한편으로 <푸코 저작의 역사학적 맥락을> 고려하지 못함. 결과적으로 1980년대 푸코 저작 해석, 그리고 전체 푸코 작업의 얼개에 관해서는 여전히 보완할 점이 있는 책이라고 생각. 아마 6판이 나오게 되면 전자는 보강이 되지 않을까 싶음.
P. S. 2. "이론가"나 "사상가"를 제대로 연구하고 싶다면, 지성사/학술사 방법론도 장착하는 게 확실히 유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