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대학'과 학술사의 역사에 관한 기고
<교수신문> 기획연재 '천하제일연구자대회'의 두 번째 기고자를 맡아 영어권 "냉전대학" 및 인문학 학술사의 동향에 관해 간략하게 쓴 내용을 공유합니다: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86335
제 전공과 공부를 대략이나마 아시는 분들께서 짐작하시듯, 사실 두 주제 모두 제가 전문적으로 공부한 분야가 아닙니다. 저 역시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관심사에 의해 틈틈이 최근 동향을 따라가는 정도인 만큼 제 본업(?)을 두고 이를 소개하는 데 적잖은 부담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글을 쓰게 된 까닭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일차적으로는 아직 소수의 연구자들끼리의 의사소통을 제외하면 한국어로 해당 연구동향을 정리해서 소개하는 글을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냉전대학의 경우, 최근 한국사의 현대사 전공 연구자들이 본격적으로 북미 냉전사 연구와 접속하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우리에겐 더 많은, 더 전문적인 20세기 미국사 연구자들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학술사의 경우엔 냉정히 말해 개별적으로 고투하시는 소수의 연구자들을 제외하면 이런 분야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거의 인식되지 않은 듯 합니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지난 20여년 간 인문사회 분야에서 인문학의 위기, 대학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방식에서 느꼈던 아쉬움입니다. 지금은 조금 나아지고 있습니다만,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대학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참고하기는 매우 어려운) 빌 리딩스의 <폐허의 대학>The University in Ruins이나, "칸트적" 대학의 이상이 곧 보편적인 근대대학의 이념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예가 많았습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지금 우리의 인문학과 대학이 놓인 상황을 어떻게 이해·서사화할 것인지, 우리의 학문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과 그럴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설정하기 힘들게 만든 면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대학과 학계의 급격한 성장에는 국가의 전략적 목표 및 이를 위해 필요한 역량의 크기가 크게 바뀌었다는 배경이 있었습니다(그런 점에서 현대 한국의 대학은 적어도 그 목표에서 '전통적인' 대학이었던 적이 없다고 해도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역사적 인식이 공유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학교육의 축소나 구조조정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든, 대학에서 학문의 보호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든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매우 근시안적인 수준의 논변에 머무르기 쉬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인문학의 가치"를 둘러싼 인문학 논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문학이 무엇이었는지,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그것이 추구하던 앎이 어떤 용도와 의미를 지닌 것이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막연한 인상 속에서 인문학 무용론을 주장하거나 혹은 신화화된 인문학 옹호론을 꺼내놓고, 그것이 어느새 이른바 사회지도층의 논변처럼 되어버리는 소극(笑劇)적인 광경이 지금도 그렇게 낯선 것은 아닙니다. 특히나 교육과 학술분야의 정책에서 2008년의, 당대로서는 나름대로 선진적인 면이 있었다고 할 수 있겠으나 2022년에 시대착오를 면하지 않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정신과 함께 되돌아오는 듯한 지금은 더욱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런 수준의 논의로는 대학과 인문학이 사라져도 문제고 살아남아도 개운치 않다는 게 '학문후속세대'로서의 실감이고, 그게 제가 학적 한계선을 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러한 글을 쓴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론이 무엇이 됐든, 기본은 알고 이야기하자는 거죠. 제 글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수년 뒤에나마 훨씬 좋은 이야기들이 공론장에 공유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면판과 달리 링크한 온라인판은 하이퍼링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독자가 어떤 책들이 있는지 찾아보기 쉽게 만들었습니다(처음에는 지금보다 두 배 정도의 링크를 준비했습니다만, 너무 번잡스러워 현재의 수로 줄였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글을 쓰고 고치는 과정에서 천하제일연구자대회 기획위원회 및 교수신문 선생님들의 조언 외에도 구슬아, 김신현경, 소진형, 오석주 선생님들의 큰 도움을 받았음을 알려둡니다.
P. S.
저는 현재 본 기고문이 실린 기획연재 '천하제일연구자대회' 기획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후 4월 중에 실릴 30대 전후 연구자들의 좌담회를 포함하여 앞으로 한국 인문사회학계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여러 선생님들의 솔직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기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먹물먹물한 제 기고문은 극단적인 예외이며 대체로 더 재미있을 것입니다 ㅎㅎㅎ).
천정환 선생님의 발문: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86014
하남석 선생님의 첫 번째 기고: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86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