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에델스타인, <인권의 정신에 대하여>: 간략한 소개
댄 에델스타인(Dan Edelstein)의 <인권의 정신에 대하여: 권리는 언제, 어떻게 ‘권리’가 되었는가>(정원순 역, 생각이음, 2021; 원제는 On the Spirit of Rights[2018])가 번역출간되었다(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7642052 / https://press.uchicago.edu/ucp/books/book/chicago/O/bo29203166.html ). 에델스타인(에델슈타인?)의 이전 작업은 어느 정도 읽었고 인권·권리 관련 책을 쓸 예정이었다는 것도 알았는데 잊고 있다가 번역서가 나온 뒤에야 책이 나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쉽게도 현재 한국어로든 영어로든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18세기 및 인권의 지성사 연구가 큰 시차 없이 번역되어 나온 것 자체가 의의가 있는 일이니만큼 간단히 소개한다.
에델스타인은 기본적으로 18세기 프랑스 지성사·문학 연구자고, 스탠포드에 재직 중이니만큼 디지털인문학 방법론을 지성사 연구에 적용하는 데도 의욕을 보여왔다(문서고를 전자화하고 디지털화된 문헌학 연구방법론을 적용하는 접근법으로 보이는데, 내가 읽었던 2010년대 중후반 작업에서는 방법론적으로 특별히 눈에 띄는 독특한 면모는 없었다). 계몽주의와 프랑스혁명기에 관한 지성사적 연구서를 몇 권 출간했고, 그중 <계몽주의의 계보>(The Enlightenment: A Genealogy, 2010)는 영어권에서 한 권 짜리로 나온 계몽주의 개설서로는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세기 후반 이래 계몽주의 연구가 전체적으로 유럽을 아우르는 경향을 보여왔다면, 에델스타인의 책은 그러한 경향을 참고하면서도 프랑스 파리에 집중했고 대신 짧은 분량에 계몽주의 연구의 다양한 측면들을--특히 살롱과 언론 외에 학술원, 대학, 국가기구 등의 지적인 기여를 강조한 점은 개설서로는 유의미한 선택이다--아우르는 데 성공했다; 개인적으로는 존 로버트슨(John Robertson)의 입문서 The Enlightenment: A Very Short Introduction(OUP, 2015)과 함께 계몽주의 연구에 관해 처음 읽어보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2010년대 중반부터 자연권·인권 관련 논문들을 하나씩 썼고 이번에 번역된 2018년 저작은 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하는 이전에 읽었던 에델스타인의 논문들 및 2018년 저작에 관한 리뷰(특히 Max Skjönsberg의 리뷰 https://doi.org/10.1080/23801883.2019.1615191 )를 기초로 <인권의 정신에 대하여>의 주요한 쟁점 및 인권사·지성사 연구에서의 맥락을 간단히 정리한 내용이다.
에델스타인의 인권사 작업이 지성사 학계에서 어떤 맥락에 놓여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크게 두 가지 연구분야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20세기 후반 영어권 학계에서 진행된 초기 근대 프로테스탄트 자연법·자연권 연구다. 무엇보다 1979년 리처드 턱(Richard Tuck)의 <자연권 이론: 기원과 발전>(Natural Rights Theories: Their Origin and Development)을 기점으로, 그로티우스에 의해 정립된 '근대적' 자연권 이론이 홉스, 푸펜도르프, 로크 등으로 이어진다는 큰 서사가 확립되었다(이 계보 혹은 서사를 부분적으로 비판하거나 정정하려는 시도는 많이 있지만, 어쨌든 정치사상사에서 자연법 연구의 일반적인 커리큘럼으로 자리잡은 것은 분명하다). 특히 영어권에서 홉스와 로크 연구에 강력한 영향을 준 초기 근대 자연법 연구는 자연권·자연법이 어떻게 헌정주의적 혹은 정부형성의 이론의 뼈대가 될 수 있는지, 또 그러한 골격 내에서 주권자와 인민의 권리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었다.
에델스타인의 책에 좀 더 직접적인 맥락이 되는 두 번째 연구경향은 2010년대 북미 지성사학계의 가장 빛나는 주제 중 하나인 20세기 인권사 연구다. 현재 북미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성사가 중 한 명인 새뮤얼 모인(Samuel Moyn)은 <최후의 유토피아: 인권의 역사적 연구>(The Last Utopia: Human Rights in History, 2010)를 기점으로 '인권' 개념이 어떻게 20세기 후반의 지배적인 정치언어가 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일련의 지성사적 연구를 내놓았고, 이는 특히 냉전기 지성사 연구의 부흥과 맞물려 20세기 인권사 연구 자체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왔다. 모인의 책은 다음과 같은 강력한 서사를 제출했다: 특히 문화사가 린 헌트(Lynn Hunt)의 <인권의 발명>(Inventing Human Rights, 2007; 한국어판은 전진성 역, 돌베개, 2009)의 주장을 철저하게 박살내면서, 오늘날의 인권은 사실상 국가 내의 시민권 개념이라고 해야 할 18세기까지의 자연권 전통과 역사적으로도, 개념적으로도 단절되어 있는 20세기의 독특한 산물이라는 것이다.
(모인의 책에서 헌트를 비판하는 1장은 인권사 연구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지적으로 충분히 흥미로운 내용이다. 헌트의 책은 근대적 인권이 감상주의 문학·서간체 소설 등을 매개로 하여 18세기에부터 시작된다고 주장하는데, 여기에는 인권이라는 (법적인 함의를 띤) 개념과 인도주의적humanitarian 감수성의 확산을 명확히 구별하지 않는다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헌트의 책이 18세기 문화사·문학연구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와 별개로, 그의 주장은 이제 인권의 지성사가들에게는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는다. 에델스타인 책 또한 본문의 일부를 할애하여 헌트의 테제를 비판한다)
상기한 맥락에 (책 출간 이전에 내놓은 논문들에서) 에델스타인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식으로 개입하고자 한다. 첫째, 그의 전공시대를 고려하면 당연해보이는 선택이지만, 그는 한편으로 16-17세기 자연법 연구의 성과를 참조하여 (특히 프랑스의) 18세기와 혁명기 정치·사회사상에서 자연권을 비롯한 권리 언어가 주요하게 작동했음을 지적하고, 그것이 현대 인권과도 이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둘째, 그는 나아가 인권·권리 언어의 긴 역사에서 몇 가지 일반적인 유형(regimes)을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이 주장을 제시한 논문 "Early-Modern Rights Regimes: A Genealogy of Revolutionary Rights" (2016)은 개인적으로는 그 야심의 크기에도 불구하고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데, 책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첫 번째 쟁점에 관해서 관전포인트(?)를 간략히 짚어보면... 18세기 유럽 및 북미식민지의 정치언어에서 자연권 등 권리언어(들)의 영향력이 컸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18세기 연구자는 별로 없을텐데, a) 서로 다른 권리언어 중 자연권 언어의 영향을 어느 정도로 구별할 수 있는지 b) 권리언어가 어떠한 이론적 논의로 이어지는지, 그렇다면 그 과정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지 c) 권리언어에 기초한 논의가 구체적인 정치 논쟁지형에서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등을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냐가 특히 18세기 지성사 연구로서는 중요할 듯 싶다(Skjönsberg의 리뷰에 따르면 좀 애매하다는 느낌?). 더불어 에델스타인은 중농주의에서 비롯된 급진적 개혁론이 프랑스혁명기 공포정치로까지 이어진다는 (프랑수아 퓌레 식의) 내러티브를 따르는 듯한데, 프랑스혁명기 연구자들에겐 이러한 서사가 지나치게 단순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인권사 연구에서의 핵심 쟁점은 에델스타인이 18세기와 20세기 권리언어 사이에 놓인 단절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에 있다. 지금까지의 대체적인 합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프랑스혁명 이후 '혁명의 공포'에 경각심을 가진 19세기인들은 자연권 언어를 위험한 논변으로 간주하게 되었고--프랑스혁명기 자연권 언어에 대한 강력한 반발은 에드먼드 버크에게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자연권 언어는 20세기 파시즘과 공산주의 국가의 '세속주의적' 위협에 직면한 기독교 교단·사상가들이 다시 보편적 자연권으로서의 인권 개념을 부활시키기 전까지 정치사상으로서의 영향력을 거의 상실했다는 것이다. 물론 19세기 정치사상사는 여전히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분야로 간주되는만큼 언젠가 이러한 지배적인 서사가 교정될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자연권과 현대 인권의 연속성을 주장하려는 연구자들은 19세기라는 공백기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를 마지막 결론장에서 매우 제한적으로만 다루는 걸 고려하면, 에델스타인의 책이 이 문제와 정면대결을 한 것 같지는 않다.
(프랑스혁명기 이후 권리언어의 운명에 관한 최근의 읽을만한 글로는 리처드 왓모어Richard Whatmore의 "Rights after the Revolution" 참고. 초고는 저자의 academia edu 계정에 공개되어 있다; https://www.academia.edu/34513312/Rights_after_the_Revolutions )
에델스타인의 주장에 관한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말했듯 18세기 지성사 연구가 매우 짧은 시간적 간격만을 두고 한국어로 번역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더불어 오늘날 권리 개념의 사상사적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두 가지 분야, 즉 1970년대 이래의 초기 근대 자연법 연구와 2010년대 20세기 인권사 연구가 한국어로 거의 소개되지 않았으며 극히 소수의 연구자들에게서만 읽히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자연권·인권사 연구의 논의지형을 어느 정도 따라가는 데도 이 책이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세부적인 논쟁에도 불구하고 고전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한 여전히 중요한 저작인 <자연권 이론>, 그리고 2010년대 초에 도저히 읽을 수 없는 너무나도 엉망인 상태로 번역되었다 잊혀진 모인의 <최후의 유토피아> 모두 한국어로 번역될 절실한 필요가 있다). 모쪼록 이 책이 자연권과 인권에서 지성사가들이 작업한 여러 풍성한 연구가 한국 독자들에게도 관심을 받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