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과 종교, 혹은 '영성의 정치'에 반하여
올해 초부터 방송대학보 KNOU위클리에서는 <서구지성사입문> 교재의 내용을 간추린 연재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에 내가 담당한 챕터(6장), 즉 18세기 유럽계몽사상 편의 순서가 되어 두 편을 썼다. 링크는 그중 후편에 해당하는 주제, 즉 "계몽과 종교"를 다루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교재로 나온 서술을 간추린 글이지만, 그 서두는 교재 본문의 문장에 미묘하게 손을 댄 것이다.
"유럽의 계몽을 세속화secularization 과정, 즉 기독교적 세계관을 종식시키고 합리적인 사회질서를 구축하고자 하는 사상적 운동으로 규정하는 통념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공유되고 있다. 특히 오늘날 세속화된 자유주의를 비난하며 영성이나 종교에 기초한 정치적 실천을 부르짖는 이들은 계몽사상을 탈종교의 원흉으로 지목하고는 한다. 그와 같은 입장을 지닌 계몽사상가가 없지는 않았으나, 실제 계몽과 종교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는 부분적으로 18세기 종교론의 상당 부분이 앞선 시대의 맥락과 긴밀하게 연결 돼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종교개혁 이후 유럽인들은 극렬한 종교갈등이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생생하게 목도했으며,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종파 간 갈등의 해소를 시대적인 과제로 만들었다. 하지만 기독교 세계를 하나의 교회로 통합하려는 시도는 더는 설득력이 없었다. 따라서 사상가들은 이제 복수의 종파들이 어떤 식으로 공존할 수 있는지, 그리고 종파 간 차이가 극단적인 적대로 격화하는 전개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게 됐다. 그 핵심에는 '관용toleration', 즉 교회들이 서로의 차이를 인내 혹은 인정하고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눈 밝은 이들은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겠지만, 이와 같은 서두를 쓰게 된 계기는, 혹은 근본적으로 원 챕터의 방대한--해당 교재 6장은 몇 십 년에 걸쳐 진행된 거대한 연구사를 차곡차곡 압축한 결과물이다--주제들 중 '계몽과 종교'를 고른 계기는 직전의 계엄-탄핵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계엄-탄핵을 둘러싸고 우리의 공론장에서 전개된 일련의 논쟁적인 입장들을 보면서 (논쟁적인 입장들이 실제로 유효한 논쟁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종교-정치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초 계엄을 옹호하고 탄핵을 반대하는 결코 적지 않은 수의 인원들이 점유한 거리로부터 '영성'의 에너지를, 자유주의-합리주의-세속화에 거세되지 않은 어떤 열정을 느낀 관찰자들이 나타난 것은 특별한 일은 아니다(애초에 개신교 극우 교회 네트워크가 상당한 역할을 수행한 자리들이기도 했으니까). 오랜 고민을 하게 만들었던 대상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러한 영성의 정치에 매료되어 이를 제도 정치에 들여올 가능성을 언급하거나, 혹은 좀 더 거대한 (사실은 클리셰적인) 도식에 매혹되어 이를 자유주의 세속화라는 악덕에 대항하는 영웅적인 저항으로 서사화하고자 하는 이들이었다. 진짜로 영성의 정치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낭만화하는 것이 이러한 부류라면, 우리가 좀 더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할 대상은 "기독교인의 사회참여"라는 (사실은 "정치참여"를 에둘러 말하고 있는) 구호 하에 자신들의 신학적-종교적 신념을 공식적인 정치적 의사결정에 '열광적으로' 투사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집단이다.
두 부류의 '사상가 지망생' 혹은 프로파간디스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면모 중 하나는 매우 단순화된 역사인식이라 할 수 있다. 근대화란 곧 자유주의 세속화요, 자유주의 세속화란 인간 정신을 '중성화'시키는 악덕이며, 그 기원은 유럽 계몽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는 너무나도 간편한 도식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200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한--그러나 한국에는 지금까지도 제대로 소개되지 않는--세속화 연구나, 역시 20세기 후반부터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교회사·지성사 연구를 전혀 참조하지 않는다는, 쉽게 말해 역사적 사실관계에 심각할 정도로 무지하다는 학구적인 불만은 접어두자. 내가 이러한 역사인식에, 좀 더 근본적으로는 그 기저에 있는 열정에 미소지어줄 수 없는 진정한 이유는 다른 것이다. 바로 실제로 '영성의 정치'가 작동할 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나이브함을 참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핵심은 에너지의 지향점이 사람마다, 집단마다, 종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사회참여'를 부르짖는 이들에게선 종종 단 하나의 진실한 신앙과 그에 적대하는 비도덕적 불신앙자의 이항대립으로 정치적 갈등을 요약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의 내면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면, 우리는 세상이 자신들만이 진실한 신앙을 보유하고 있다고 믿는 서로 다른 집단들이 지리멸렬하게 공존하는 공간임을 곧바로 알아차리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집단, 모든 종파가 자신들의 신앙에 기초한 '종교인의 사회참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하게 수행하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순도높은 신앙은 대화도 타협도 모른다. 독실한 신앙인은 오직 자신의 정당성만을 끝까지 외치며, 그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저주한다. 영성'들'의 정치는 필연적으로 타협불가능한 집단들 사이의 극한투쟁으로 이어진다. 신앙인들은 서로를 침묵 혹은 개종시켜야 하고, 끝내는 박멸하고 도륙해야 할 이단으로 간주한다--그것이 성전의 본질이다. 참된 영성의 정치가 현세에 강림하는 순간, 인간은 인간에게 악마가 된다.
관련 연구자들에게는 이미 뻔하지만 그 바깥에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몇 가지 사항을 지적하자. 첫째, 이러한 '강림'의 가능성은 이미 역사에서 몇 차례 현실화된 바 있다. 16-17세기 유럽의 종교투쟁은 그 하나의 예시일 따름이다. 유럽 계몽을 단순히 과학과 합리주의의 대두로, 세속화로 요약하는 통념에서는 언급되지 않는 사실이지만, 종교-정치적 측면에서 계몽사상의 핵심적인 과제 중 하나는 영성의 정치로부터 초래될 현세지옥을 예방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그런 점에서 보면 관용과 자유주의는 계몽과 상당한 관계가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영성 정치의 폭주를 시민사회 내적인 장치를 통해 막아낼 수 있다고 믿었던 이들은 도덕감정·여론이나 상업사회와 같은 모델을 탐색했고, 그럴 수 없다고 믿었던 어느 사상가는 종교인들과 시민사회를 초월한 기계장치와 같은 절대적 정치권력의 수립만이 답이라고 주장했다--홉스의 <리바이어던>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17세기에서 18세기 유럽 사상의 전환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전략들이 제출되었는지 우리가 좀 더 진지하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광신과 이단을 통제하는 시행착오의 축적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교회정치의 역사 역시 마찬가지 이유에서 중요하다.
둘째, 세속주의자들에게도 영성의 정치에 준하는 에너지는 존재하고 종종 현실화된다. 단적으로 이미 20년도 전에 한국 대중정치의 핵심적인 동력으로 자리잡은 팬덤정치는 공인된 종교를 지니지 않은 사람이 초합리적인 판단과 행동에 도달할 수 있고, 또 그러한 열광적 에너지를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 투입하는 '영성의 정치'를 수행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님을 입증했다. 지난 20여년 간 우리가 목도한 '진화' 과정이란 곧 팬덤정치가 다른 형태의 정치적 의사소통 및 동원의 경로들을 먹어치우고, 결국에는 모든 진영이 팬덤정치가 우점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과정이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오늘날 주로 극단 우파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영성 정치의 주창자들은 자신들이 일종의 후발주자에 불과하며, 한국 사회에 영성 정치의 자리는 이미 상당 부분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좋을 것이다. 김어준이야말로 극우파 개신교 스피커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한 가지 궁극적인 진화형태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블랙유머인가? (초기 <딴지일보>의 맹렬한 반개신교적 성향을 고려하면, 오늘날 우파들이 김어준을 '교주'라고 부르는 상황은 의미심장하다.)
역사적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면, 오늘날 한국을 포함한 많은 '선진' 국가에서 일제히 '거대한 신들 간의 투쟁'이 가시화하는 상황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전개다. 그러나 한국의 시민으로서 나는 내 조국이 악마들의 만신전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기원한다. 그것이 내가 점차 계몽과 자유주의 전통들의 역사를--그것들의 성공이든 실패든--제대로 돌아봐야 한다는 강한 실천적인 동기를 느끼는 한 가지 이유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