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반 혼트, <상업사회의 정치사상> 한국어판 해제(일부)
이슈트반 혼트의 『상업사회의 정치사상: 루소와 스미스로 읽는 18세기 지성사』 한국어판(김민철 역, 오월의봄, 2025)이 드디어 공식적으로 출간되었다(실물로 받아보니 청량한 푸른 빛깔의 아름다운 표지를 자랑하는, 한 손에 들고 다니기 좋은 느낌의 예쁜 책이다). 2020년 번역출간된 리처드 왓모어의 『지성사란 무엇인가?』 (특히 169-177쪽) 및 안두환 선생님의 논문에서 그 문제의식이 어느 정도 소개된 바 있으나, 지성사·사상사에 관심을 가진 독자에게조차도 혼트의 이름은 아직 낯설다. 이전까지 한국의 영국 지성사 연구 수용이 대체로 퀜틴 스키너가 주도한 언어맥락주의 방법론 논쟁, 그리고 스키너와 J. G. A. 포콕의 '공화주의' 연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현실이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김민철 선생님과 나는--혼트가 누구인지, 그가 어떤 맥락 위에서 작업했는지를 소개하는 게 한국어판 해제의 중요한 과제이며, 그렇게 완성된 한국어판 해제가 더 많은 (잠재적) 독자에게 가 닿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이에 오월의봄 출판사의 허락 하에 해제 일부를 공개한다.
『상업사회의 정치사상』한국어판 해제는 부록을 포함해 출간도서 기준으로 31쪽(7-37쪽)이자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160매를 넘는, 그 자체로 인문학 학술지 논문 한 편 분량에 달하는 글이다. 아래는 이중 직접적으로 본문 내용을 소개하는 3절의 주요 서술을 제외한 나머지를 싣는다. 조판 과정 이전 단계의 원고를 옮긴 것인만큼 서술내용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으나 문장 표현이나 단어 선택에서 책으로 출간된 글과 다른 부분이 있다. 따라서 해당 내용을 공식적으로 인용하실 분은 출간된 한국어판을 직접 참조하시길 권장한다.
*『상업사회의 정치사상』 한국어판 주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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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트반 혼트와 상업사회의 지성사1)
이우창(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김민철(성균관대학교 사학과)
이슈트반 혼트(István Hont, 1947~2013)는 J. G. A. 포콕(J. G. A. Pocock, 1924~2023)과 함께 현대 지성사 연구를 대표하는 역사가 중 가장 찬란히 빛나는 존재였다. 마침내 한국어로 출간된 《상업사회의 정치사상》은 그의 오랜 탐구와 사유가 잘 무르익어 있는, 케임브리지 지성사 학파가 내놓은 가장 높은 수준의 결과물이다. 2020년 《지성사란 무엇인가?》 한국어판(이우창 옮김, 오월의봄, 2020)의 출간 이래 지성사 연구와 케임브리지 학파를 향한 한국 인문·사회학계의 관심은 놀라울 정도로 증대되었으나, 그 성과와 한계에 대한 인식은 이제야 그 출발점에 선 참이다. 《상업사회의 정치사상》 한국어판은 그 인식의 경계선을 있는 힘껏 밀어내려는 시도다.
본래 다양한 청중을 염두에 둔 강연 원고였던 만큼, 이 책은 일견 장-자크 루소와 애덤 스미스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지식만 있다면 별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는 교양서처럼 읽힐 수도 있다. 하지만 혼트의 논지를 천천히 따져 묻는 독자라면 곧 저자가 사상사의 수많은 핵심 주제를 소환해 하나하나 날카롭게 파고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본래의 형태로, 즉 서로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구조물로 재조립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이 해제는 독자들이 혼트의 서술 밀도와 광대함을 인지하면서도 그에 압도당하지 않도록 돕는 것, 다시 말해 그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기초적인 토대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먼저 혼트의 이력과 그의 학적 경로·맥락을 간단히 돌아보고, 그다음에는 《상업사회의 정치사상》 본문의 요지를 풀어보고자 한다.
1. 혼트의 생애2)
이슈트반 혼트는 1947년 4월 15일 헝가리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혼트 야노시(Hont János, 1914~1982)는 1949년 수립된 헝가리 인민공화국의 농무부 차관을 지냈으며, 어머니 케메니 클라러(Kemény Klára, 1923~1973)는 헝가리 최초의 여성 공학 교수였다. 1965년 한 해 동안의 군복무를 마친 이슈트반은 처음에 전기공학을 전공으로 택했으나, 1968년 아버지의 조력에 힘입어 역사학과 철학으로 분야를 바꿨다. 카를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해석을 놓고 헝가리 지식인 사회에서 벌어진 논쟁에 참여하면서, 혼트는 유럽 자본주의 발전사의 비판적 검토를 위해서는 애덤 스미스의 사상을 위시한 18세기 스코틀랜드 정치경제학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다. 1974년 “데이비드 흄과 스코틀랜드”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에 곧 헝가리 학술원의 연구관으로 부임했다(당시 그는 이미 헝가리 사회주의노동자당 당원이었다). 안정적인 삶이 보장된 직위였지만 스코틀랜드 정치경제사상사 연구를 향한 혼트의 열정을 충족시킬 수는 없었다. 1975년 가을, 혼트는 다시금 아버지의 영향력에 힘입어 부인 안나(Anna Hont)와 함께 30일간의 영국 체류를 허가받았고, 영국 현지에서 망명을 결정했다.
그의 영국 망명은 급작스러운 결정은 아니었다. 혼트 부부는 1972년 이미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을 방문해 곧 흄 지성사 연구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게 될 던컨 포브스(Duncan Forbes, 1922~1994)를 만난 바 있었다. 좀 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학술원 연구관의 직무 자체였다. 혼트는 영국의 유서 깊은 학술지 《경제사 평론》(The Economic History Review)을 요약 정리하는 과업을 맡았으며(이를 통해 그는 사회경제사 연구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부다페스트를 방문한 마이클 포스탄(Michael Postan, 1899~1981)을 수행하게 되었다. 제정 러시아 출신으로 러시아혁명을 피해 영국으로 망명한 포스탄은 런던대 유니버시티 칼리지와 런던정경대를 거쳐 케임브리지대학 경제사 교수직에 취임했으며 오랜 기간 《경제사 평론》의 편집인을 역임하기도 한 영국 사학계의 유력인사였다. 혼트의 불만을 알아차린 그는 망명을 권유했을 뿐만 아니라, 타국에서 학적인 경력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젊은 망명자의 정착을 도와주었다. 포스탄의 추천에 힘입어 혼트는 곧바로 옥스퍼드대학의 근대사 흠정 교수이자 중요한 계몽사상사가였던 휴 트레버로퍼(Hugh Trevor-Roper, 1914~2003)의 박사과정 지도학생 신분을 얻었다(사회학자였던 안나는 생계를 위해 학문적 경력을 포기하고 직업을 구했다). 옥스퍼드에서 그는 저명한 경제이론가이자 뛰어난 교수자였던 존 힉스(John Richard Hicks, 1904~1989)의 경제사상사 수업을 들으며 정치경제학 연구를 위한 토대를 쌓았으며, 1977년에는 울프슨칼리지의 지성사 연구원 자리에 임용되었다. 그러나 지성사가로서 혼트의 경력에서 진정한 분기점이 된 것은 이듬해 케임브리지대학 킹스칼리지의 연구원직에 지원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78년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는 킹스칼리지 연구소에서 “사회와 정치경제, 1770-1850”(Society and Political Economy 1770-1850) 연구 프로젝트를 관장할 연구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다(실제로 진행된 프로젝트의 이름은 “정치경제와 사회, 1750-1850”이었다). 이후 하버드 역사학과 교수가 된 에마 로스차일드(Emma Rothschild)같이 빼어난 학자도 지원했으나, 선임연구원으로 선정된 것은 하버드 역사학과에서 갓 박사학위를 취득한 마이클 이그나티에프(Michael Ignatieff), 그리고 이슈트반 혼트였다. 1984년까지 6년간 진행된 이 야심 찬 프로젝트는 포브스, 포콕, 도널드 윈치(Donald Winch, 1935~2017), 존 던(John Dunn), 퀜틴 스키너(Quentin Skinner), 리처드 턱(Richard Tuck),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Gareth Stedman Jones), 키스 트라이브(Keith Tribe)와 같이 이후 케임브리지 학파를 이끌 역사가들은 물론, 프랑코 벤투리(Franco Venturi, 1914~1994),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2006), 주디스 슈클라(Judith Shklar, 1928~1992) 등 유럽과 미국의 정상급 학자들 역시 참여한 대기획이었다(1979년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에게도 초청장이 갔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그러나 전체 논의를 주도한 인물은 다름 아닌 혼트였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그리고 그 첫 결과물인 논문집 《부와 덕: 스코틀랜드 계몽에서 정치경제학의 형성》에 수록된 탁월한 논문들을 통해 혼트는 본격적으로 학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킹스칼리지 프로젝트가 종료된 후 혼트는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조교수, 프린스턴 고등연구원 방문학자 등의 경력을 거친 뒤 1989년부터 케임브리지대학 역사학과에서 교편을 잡았다. 2000년 하버드대학 정치학과에서 교수직 제안을 받기도 했으나, 당시 총장이었던 로런스 서머스(Lawrence Summers)가 50세 이상의 연구자에게 정년 보장을 해줄 수 없다는 이유로 학과의 요청을 거절하면서 이는 무산되었다. 서머스의 기이한 결정은 돌이켜보면 케임브리지 지성사 학파에게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케임브리지로 돌아온 혼트는 2005년 ‘책 한 권 분량’의 서론이 붙은 자신의 논문집 《무역의 질투: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국제 경쟁과 국민국가》를 출판하며 명실상부한 거장으로 인정받았고, 2008년에는 과거 포브스의 자리였던 정치사상사 부교수(Reader in the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자리를 계승했다. 혼트는 케임브리지 역사학과에서 이후 18세기 유럽 계몽사상사 및 정치경제사상사 연구를 이끌 뛰어난 역사가를 여럿 훈련시켰다. 현재 세인트앤드루스대학 지성사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리처드 왓모어(Richard Whatmore)를 포함한 혼트의 제자들은 케임브리지 학파 내에서 ‘스키너 학파’(Skinnerians), 즉 퀜틴 스키너의 영향 아래 있는 학자들과 뚜렷이 다른 색채를 드러낸다.
2010년까지 후속 작업을 준비하며 왕성하게 활동하던 혼트의 건강은 2011년 당뇨병과 심장질환 등을 겪으며 급격히 악화했다. 그해 말 같은 대학 정치학과의 동료 던컨 켈리(Duncan Kelly)와 진행한 세미나 “정치사상사의 문화사”(The Cultural History of the History of Political Thought)의 강의 노트는 혼트가 만년에도 여전히 날카롭고 명민한 지성을 유지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건강은 부인 안나의 조력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을 만큼 계속해서 나빠졌다. 2013년 3월 29일, 이슈트반 혼트는 결국 영면에 들었다. 생전 ‘케임브리지 학파’라는 이름표를 끈질기게 거부했으나 그가 케임브리지 학파, 좀 더 정확히 말해 케임브리지대학 역사학과 정치사상사 연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인물임은 분명하다. 혼트가 동료와 제자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는 그의 사후 발간된 저작 몇 권을 지목하는 것으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혼트가 2009년 옥스퍼드대학 칼라일 강연(Carlyle Lectures) 이래 계속해서 출간을 준비해온 강연록은 그가 타계할 때까지 미완성 원고로 남았지만, 그의 지도학생 벨라 카포시(Béla Kapossy)와 동료 마이클 소넨셔(Michael Sonenscher)의 편집을 거쳐 2015년에 바로 이 책, 즉 《상업사회의 정치사상》으로 출판되었다. 뒤이어 두 권의 추모논문집이 각각 《계몽사상의 상업과 평화》(2017), 《시장, 도덕, 정치: 무역의 질투와 정치사상사》(2018)라는 제목으로 나왔으며, 케임브리지대학 출판부에서 혼트의 미출간 논문집 제1권 《푸펜도르프에서 마르크스까지의 정치경제학: 문화, 필요, 소유권》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
2. 혼트의 연구와 그 맥락
오늘날 지성사·정치사상사 혹은 케임브리지 학파는 주로 퀜틴 스키너로 대표되는 방법론 논쟁 및 공화주의·헌정주의 전통의 연구로 알려져 있다. 학파의 탄생 역시 1950년대 이래 피터 래슬릿(Peter Laslett, 1915~2001)과 포콕, 던, 스키너가 주도한 언어맥락주의적 접근법의 형성과 동일시되곤 한다(리처드 왓모어, 《지성사란 무엇인가?》 2~3장). 이슈트반 혼트는 이 모든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2005년 12월 11일 일본 치바대학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 “케임브리지 모먼트: 덕성, 역사, 공공 철학”(The Cambridge Moment: Virtue, History and Public Philosophy)에서 혼트는 자신이 케임브리지학파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선명히 드러낸 바 있다.3) 이 강연은 보통 역사연구의 방법론을 중시하는 태도에 대한 조롱, 그리고 케임브리지 학파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만일 그것이 존재한다면 차라리 회의주의자들의 “반反학파”일 것이라는 도발적인 선언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사실은 이를 통해 혼트가 케임브리지 학파의 역사에 대한 대안적인 서사를 제시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케임브리지 학파를 형성한 핵심 인물로 포브스와 포콕을 지목했고, 자신이 편집하고 저술한 《부와 덕》과 《무역의 질투》를 그 뒤를 잇는 저작으로 거론했다(스키너의 이름은 강연문의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는다).
혼트의 강연이 단순한 도발이 아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70년대 전후의 학술사적 맥락으로, 특히 혼트가 언급한 두 역사가의 작업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던컨 포브스는 오늘날 흄 연구를 제외하면 거의 기억되지 않지만, 이후 케임브리지 학파 1세대로 불릴 역사가들이 어떠한 역사적 전제에서 출발했는지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짚어봐야 할 인물이다. 그가 근대 정치과학의 진정한 출발점으로 지목한 곳은 18세기 스코틀랜드였다. 그에 따르면 흄과 애덤 스미스로 대표되는 스코틀랜드 계몽사상가들은 뉴턴주의적 경험론을, 또 인간 본성에 기초해 사회를 탐구하는 근대 자연법 이론을 계승함으로써 특정한 정파의 이데올로기로 환원되지 않는 ‘회의주의적’이고 ‘과학적’인 정치·사회 분석의 틀을 구축했다. 근대 정치사상을 가르치는 포브스의 수업은 여러 뛰어난 학생들을 매료시켰으며, 근대 정치사상의 역사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을 통과해야 한다는 믿음을 전파했다. 던과 스키너 역시 본래는 포브스의 지도하에 스코틀랜드 계몽사상을 연구하고자 했으나, 그는 지도를 거부했다(이후 던은 로크의 정치사상을 왜 근대 사상으로 인정할 수 없는가를 해명하고자 했으며, 스키너는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홉스의 ‘정치과학’으로 귀결되는 근대 정치학의 계보를 제안했다).
포브스가 자신의 연구를 집약한 《흄의 철학적 정치》(Hume’s Philosophical Politics)를 내놓은 1975년, 케임브리지 학파의 또 다른 걸작인 포콕의 《마키아벨리언 모먼트: 피렌체 정치사상과 대서양의 공화주의 전통》(The Machiavellian Moment: Florentine Political Thought and the Atlantic Republican Tradition)이 출간되었다. 포콕은 근대 정치사상을 ‘가치중립적’인 정치 분석의 언어와 동일시했다는 점에서는 포브스와 같은 전제를 공유했다. 그 원류를 자연법과 스코틀랜드 계몽사상에서 찾은 후자와 달리, 포콕은 마키아벨리 등 르네상스 피렌체의 사상가들로부터 내려온 공화주의 정치언어 및 그 파생물에 주목했다. 그는 특히 17세기 잉글랜드 내전기의 정치사상가 제임스 해링턴 및 이를 계승한 신해링턴주의자들의 저작에서 국가 혹은 정치체의 성장과 쇠퇴, 혹은 그 구조의 변화를 설명하는 역사적 정치이론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키아벨리언 모먼트》의 또 다른 중요한 기여는 근대 초 정치사상과 정치경제적 전제가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특히 ‘상업사회’ 개념을 케임브리지 학파의 지평에 도입했다는 것이다. 포콕은 공화주의 정치언어가 18세기 잉글랜드에 도래한 상업사회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지적 전통이 되었다고 보았으며, 이 맥락에서 상업사회와 공화주의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일련의 작업을 내놓았다. 스키너의 공화주의가 주로 법과 권리 담론을 대상으로 지배와 자유, 저항의 정당성 등 규범적 측면에 집중하는 작업을 생산한데 비해, 포콕의 연구는 공화주의 전통에서 비롯된 여러 언어적 전통의 변이를 탐구하는 다양한 후속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다.
포브스와 포콕의 저작은 곧바로 18세기 정치사상사를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었다. 흄과 스미스 연구를 일신하는 두 편의 저작인 도널드 윈치의 《애덤 스미스의 정치사상: 역사학적 수정을 위한 시론》(Adam Smith’s Politics: An Essay in Historiographic Revision, 1978)과 크누트 하콘센(Knud Haakonssen)의 《입법자의 과학: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의 자연법학》(The Science of a Legislator: The Natural Jurisprudence of David Hume and Adam Smith, 1981)이 대표적이다. 비록 포브스가 따로 서신을 보내 포콕의 공화주의 개념에 대한 거부감을 표명하긴 했지만, 윈치는 양자의 논의를 모두 활용해 스미스에 대한 기존의 해석을 뒤집고자 했으며, 하콘센은 자연법 사상을 중심으로 스코틀랜드 계몽사상의 철학사적 연구를 갱신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케임브리지 역사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하기도 전에 일찌감치 에든버러대학 역사학과에 자리 잡은 니컬러스 필립슨(Nicholas Phillipson, 1937~2018) 역시 이 시기에 포브스와 포콕의 작업을 토대로 스코틀랜드 계몽사상의 윤곽을 전체적으로 정립하는 학문적 여정을 시작했다.4) 포브스와 포콕의 직접적인 영향권 바깥에 있던 연구, 예컨대 스키너의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The Foundations of Modern Political Thought, 2 vols., 1978), 리처드 턱의 《자연권 이론》(Natural Rights Theories, 1979), 제임스 털리(James Tully)의 《소유권 담론: 존 로크와 그의 적들》(A Discourse on Property: John Locke and His Adversaries, 1980) 등 중세 후기부터 17세기까지의 계보를 재구성하려 했던 작업까지 시야에 넣는다면, 1970년대 후반은 진정 케임브리지 학파의 지적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분출되던 시점이었다.
1978년 킹스칼리지 연구 프로젝트의 의미는 전술한 학술사적 맥락 위에 놓을 때 한층 더 분명해진다. 1970년대 이전까지 케임브리지 학파의 역사가들이 주로 17세기 잉글랜드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정치경제와 사회, 1750~1850”는 케임브리지 학파 안팎의 동력을 집약해 스코틀랜드 계몽사상으로부터 19세기 지성사 연구로까지 뻗어나가는 새로운 경로를 개척하고자 했다. 핵심은 물론 정치경제학이었다. 프로젝트의 첫 결실이자 지금도 18세기 정치경제사상과 스코틀랜드 계몽사상 연구의 필수적인 출발점으로 남아 있는 《부와 덕》은 주로 애덤 스미스를 중심으로 한 스코틀랜드 계몽사상의 재해석에 초점을 맞췄다. 두 번째 논문집 《애덤 스미스 이후: 19세기 초 정치경제학의 교차로》(After Adam Smith: Crossroads in Early Nineteenth-Century Political Economy)는 듀걸드 스튜어트와 그의 후계자들에 가장 많은 논의를 할애했으며, 토머스 맬서스(Thomas Malthus), 영국의 초기 사회주의 전통, 유럽대륙의 정치경제학 등을 아우르는 구성을 취했다(각 장의 원고가 모두 취합되었으나 책임편집을 맡은 혼트는 책을 출간하지 않았다).5)
세 번째 논문집으로는 사회적·제도적 맥락에 초점을 맞춘 《무역, 정치, 문예: 정치경제학의 기예와 영국의 대학 문화, 1755~1905》(Trade, Politics and Letters: The Art of Political Economy and British University Culture 1755-1905)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기획으로만 남았다. 혼트가 준비하던 저작 세 권 역시 출간까지 이어지지 않았으며, 프로젝트 연구원이자 스테드먼 존스의 지도학생이었던 비앙카마리아 폰타나(Biancamaria Fontana)의 박사논문만이 《상업사회의 정치를 다시 생각하기: 《에든버러 비평》, 1802~1832》(Rethinking the Politics of Commercial Society: The Edinburgh Review 1802~1832, 1985)으로 출간되었다. 이후 수십 년간 케임브리지 학파의 역사가들이 좀처럼 19세기로 진입하지 못했음을 고려하면 킹스칼리지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부분적으로만 출간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혼트의 학문적 이력에 집중할 때 “정치경제와 사회, 1750~1850”가 그에게 중요한 도약의 시기였음은 분명하다. 킹스칼리지 연구원으로 합류한 혼트는 앞서 언급한 여러 새로운 지적 흐름을 한껏 흡수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자신의 문제의식과 접목해 18세기 정치경제 사상의 역사를 재해석하는 굵직한 프레임들을 내놓았다. 그가 영국에서 처음으로 출간한 논문, 즉 《부와 덕》에 수록된 <《국부론》에서 필요와 정의> 및 <스코틀랜드 고전 정치경제학에서 ‘부국-빈국’ 논쟁>은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명목상으로는 이그나티예프와의 공동저작이지만 사실상 혼트 본인의 논문으로 통용되는 <필요와 정의>는 18세기 스코틀랜드 정치경제학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씨름하는 쟁점들, 특히 “근대 ‘상업사회’”에 대한 규정과 평가를 살펴봐야 한다는 주장으로 시작한다.6) 혼트는 스미스의 입장을 크게 두 가지 전통과 대비시킨다. 먼저 근대 상업사회의 불평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공화주의 전통이 있고, 그 반대편에는 토마스 아퀴나스에서 그로티우스, 푸펜도르프, 로크로 이어지는 자연법 전통, 특히 소유권과 생존권의 갈등을 논의해온 전통이 있다. 스미스는 상업사회가 불평등과 사치를 야기함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시장에서의 분업을 통해 생산성의 절대적인 증대를 이룩하여 결과적으로는 전체 사회구성원의 효용이 상승하는 자연법적 ‘정의’가 충족된다고 주장했다. 곡물 거래의 자유화를 둘러싼 논쟁에서 스미스가 제시한 논변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혼트는 공화주의 및 자연법 등 케임브리지 학파의 역사가들이 복원해놓은 18세기의 언어적 맥락과 정치경제적 논쟁을 연결해 당대인들이 직면한 문제를 복원하고, 스코틀랜드 계몽사상가들이 이를 돌파하는 과정에서 수행한 이론적 작업을 재구성한다.
정치경제사상사 연구의 걸작 <‘부국-빈국’ 논쟁>은 18세기 정치경제 담론에서 공화주의적 언어가 상업의 비판자만이 아닌 옹호자들에게도 빈번하게 활용되었음을 지적하며, 18세기 영국의 산업·교역 전략 논쟁을 그 사례로 소환한다. 핵심은 국제무역의 국가 경쟁력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제조업의 발달로 국가가 부유해지고 임금이 상승하면 국제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이 하락해 결과적으로 국부가 쇠퇴할 것이라는 당대의 우려에 맞서, 흄과 스미스를 포함한 스코틀랜드 계몽사상가들은 국가 경쟁력을 이해하는 대안적인 경제이론을 구축해갔다. 이 과정을 추적하면서 혼트는 공화주의 언어의 흔적을 털어낸 과학으로서의 정치경제학이 마침내 19세기에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1990년대까지 혼트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이 두 논문에서 다뤄진 주제들을 발전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여기서는 《무역의 질투》에 재수록된 논문을 중심으로 그의 지적 궤적을 살펴보고자 한다.7) <필요와 정의>의 문제의식, 즉 스코틀랜드 계몽과 자연법적 전통의 관계에 대한 성찰은 다음 두 편의 논문에서 상세하게 다뤄졌다. <사회성의 언어와 상업: 푸펜도르프와 스미스 4단계 이론의 토대>(1986)는 스코틀랜드 계몽사상가들이 제시한 문명 단계론의 기원을 자연법 전통에서 찾는다. 여기서 혼트는 자연적 사회성(natural sociability) 개념이 상업사회 담론과 결합하는 양상을 탁월한 논변으로 보여주었다.8) <‘부자연스럽고 역행적인’ 순서의 정치경제학: 애덤 스미스와 자연적 자유>(1989)는 스미스가 고대부터 근대까지 유럽의 역사가 전개된 방향을 어떻게 파악했는지, 그것이 18세기 유럽의 정치, 사회, 경제를 설명하는 그의 작업에 어떤 시사점을 주었는지를 풀어낸다.
혼트가 <‘부국-빈국’ 논쟁>에서 시도했던 포콕과의 대화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나갔는지와 관련해서는 좀 더 설명이 필요하다.9) 그는 1986년부터 1989년까지 미국에서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및 프린스턴대학 고등연구원을 거치면서 정치이론적 문제의식을 자신의 논의로 흡수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특히 근대 상업사회의 등장을 일국一國의 범위에서 보는 시각을 떠나 여러 국가들 사이의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사고하는 등 정치사상과 정치경제의 연관성을 한층 더 깊이 있게 파고들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자유무역과 국가 정치의 경제적 한계: 신마키아벨리적 정치경제 재고>(1990)에서 혼트는 17세기 이래의 유럽을 국가 간의 냉혹한 경쟁이 펼쳐지는 세계로 그리면서, 사상가들이 어떻게 마키아벨리적 언어를 바탕으로 각국의 교역·발전 전략을 고민했는지 재구성한다.10) 포콕이 조명했던 18세기 국채 논쟁을 다시 살펴보는 <국채의 광시곡: 데이비드 흄과 자발적 국가 파산>(1993)은 흄의 논의에서 당대의 끊임없는 전쟁과 전시 경제에 대한 인식을 부각한다. 프랑스혁명기 정치사상을 다루는 <분열된 인류의 영원한 위기: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오늘날 국민국가의 위기’>(1994)는 근대 민족주의적 갈등의 근원을 설명하고자 한 정치이론 작업인데, 이 논문에서 그는 실제 역사상과는 다소 괴리된 방식으로 프랑스혁명의 국제정치경제학을 이른바 자코뱅파의 애국주의적 사해동포주의와 시에예스의 민족주의적 상업사회론으로 양분한다.11)
혼트의 원숙한 사유가 드러나는 것은 2005년 이후의 출판 저작이다. 156쪽에 달하는 《무역의 질투》 서론(2005), <초기 계몽사상의 상업과 사치 논쟁>(2006), <‘부국-빈국’ 논쟁 재론: 흄 역설의 아일랜드적 기원과 프랑스 수용>(2007), 그리고 2009년 강연인 이 책 《상업사회의 정치사상》(2015)이 여기에 속한다. 그의 후기 작업에서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하나는 18세기 프랑스의 지적인 맥락을 보강해 정치경제 논쟁의 국제적인, 혹은 유럽적인 성격을 드러내려는 경향이다. 이전의 작업에서 혼트의 시야는 주로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아일랜드 등 영국의 논쟁에 머물렀으며, 프랑스 사상에 대한 분석은 (스미스가 바라본) 중농주의를 언급하는 수준에서 특별히 더 나아가지 않았다. 2000년대 이후의 저작은 17세기 말 프랑스의 페늘롱에서 시작되는 프랑스의 정치경제 개혁 논쟁의 구도를 부분적으로나마 재구성하고, 그것과 영국의 논쟁을 연결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혼트의 구도가 스미스 및 영국인들의 견해를 암묵적으로 답습한다는 비판은 가능하다).
또 다른 하나는 도덕철학, 사회이론, 정치체론, 정치경제, 국제정치론 등 18세기 지성사의 제반 영역을 종합하는 시선이다. 혼트는 이전에도 해당 영역 모두에 관심을 가졌으나, 기존의 작업에서 한두 개의 영역을 분절적으로 다뤘던 것과 달리 이제는 각 영역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그중 정수라 할 수 있는 것은 《무역의 질투》 서론과 《상업사회의 정치사상》이다. 여기서 혼트는 개인의 심리에서부터 국제정치까지 사상사의 여러 층위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고리를 밝히고 모아내며, 1990년대 통합적 사회이론을 구축하려는 시도가 붕괴한 이후에도 광대한 시야와 세밀한 관찰을 높은 수준에서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가능함을 몸소 입증한다.
《무역의 질투》 서론은 흄이 사용한 “무역의 질투” 개념을 중심으로 18세기 국제정치경제학의 중핵을 재구성하고, 이때까지 혼트가 수행한 작업의 의미와 맥락을 더욱 명료하고 풍부하게 재서술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독립적인 한 권의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혼트의 주요한 입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근대 정치사상의 요체는 정치와 경제의 상호의존, 혹은 지구적 시장에서 상업국가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때로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사태를 초래하는—현실에 대한 인식에 있으며, 유럽 지성사에서 그것이 가시화된 시기는 18세기 전후였다.
둘째, 그러한 근대 정치사상의 정수는 흄과 스미스를 정점으로 하는 18세기의 사상가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마키아벨리와 홉스의 언어가 후대인들의 출발점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 둘은 상업사회, 즉 상업이 모든 정치·사회·경제 시스템의 핵심이 되는 새로운 사회의 등장을 고려하지 않았고, 바로 그 점에서 “전근대적” 사상가였다(이는 명백히 스키너를 겨냥한 것이다). 반대로 정치학과 경제학이 분리된 19세기 이후 사상가들의 시야는 직전 세기보다 좁아졌으며, 이로 인해 현대의 정치이론적 분석은 18세기에 이미 제기된 분석에서 유의미한 진전을 이루어뤄내지 못하고 있다.
셋째, 18세기 사상이 오늘날의 문제에 곧바로 해법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흄과 스미스를 비롯한 문필가들은 자연법·공화주의를 비롯해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지적 자원을 총동원해 정치와 경제의 착종을 정교하게 파고들었다(따라서 혼트는 정치경제학이 자연법 혹은 공화주의 중 어느 계보에서 비롯되는가를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그들 또한 경쟁하는 국가들 사이의 적대와 그로부터 이익을 취하는 세력들을 견제할 만병통치약은 찾아내지 못했다.
서론의 마지막에서 혼트는 역사학적 탐구가 곧 현대 정치·경제 이론의 질문에 해결책을 내놓지는 못하지만, 기존의 답변이 실패하는 순간에 그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고 쓴다. “역사는 회의주의자들의 도구다. 그것은 우리가 더 나은 질문을 던지도록 돕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역사는 우리가 몇 가지 똑같은 질문을 계속해서 무익하게 되풀이하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다”(《무역의 질투》 156쪽).
3. 《상업사회의 정치사상》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무역의 질투》 서론과 《상업사회의 정치사상》은 유사한 입장을 공유하는, 함께 읽을 때 서로의 함의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한 쌍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책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상업사회의 정치사상》이 근본적으로 루소와 스미스에 집중하는 저작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루소 사상에 대한 독해는 혼트를 스코틀랜드 계몽의 전문가로만 기억하는 통념을 뒤흔들 만큼 정교하고 치밀하다. 혼트는 영국의 루소 철학 연구자 니컬러스 덴트(Nicholas Dent)의 연구를 접한 1990년대 후반부터 루소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품기 시작했으나, 그 성과를 풀어놓은 지면은 이 책이 처음이다.
루소를 전면에 내세운 첫 저작에서 높은 수준의 분석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저자 자신의 병적인 완벽주의 못지않게 루소와 스미스라는 두 인물에 초점을 맞추는 구성에서 힘입은 바가 크다. 기존 작업에서 혼트는 지성사가들이 그러하듯 논쟁의 역사적 맥락을 복원하는 과제에 더 큰 무게를 실었으며, 흄과 스미스 등의 사상을 다룰 때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논쟁과 닿아 있는 대목에 집중하곤 했다. 그와 달리 《상업사회의 정치사상》은 루소와 스미스의 사상을 여러 각도에서 대비하면서 그 전체적인 상을 되살리는 과제에 뛰어든다. 그 과정에서 혼트는 지금껏 지성사가들이 발굴한 다양한 논쟁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데, 이러한 지적 맥락을 따라가는 것 역시 이 책을 읽는 큰 즐거움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루소와 스미스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
인물의 사유 자체에 대한 천착에 힘입어 혼트는 주권이나 정부 형태 등 이른바 ‘정통적인’ 정치사상만이 아닌, 두 인물의 도덕철학과 역사 서술의 중요성을 부각할 수 있었다. 독자들은 루소와 스미스의 도덕철학과 역사적 서술이 깊은 숙고의 결과물이자 고도로 섬세한 정치적 진술임을 깨닫게 된다. <사회성의 언어와 상업> 및 <‘부자연스럽고 역행적인’ 순서의 정치경제학>에서 드러나듯, 혼트는 역사 서술과 정치경제적 입장 사이의 긴밀한 연관을 일찍부터 알아차렸다. 이후 포콕의 대작 《야만과 종교》(Barbarism and Religion, 6 vols., 1999~2015)를 접하면서 계몽사상의 역사서술이 그 자체로 매우 정교한 정치이론적 실천임을 다시 의식했으며, 이는 <애덤 스미스의 정치이론: 법과 정부의 역사>(2009) 등의 논문을 거쳐 이 책에서 개진한 한층 풍부한 분석으로 이어진다.12) 독자들이 《상업사회의 정치사상》을 읽으며 눈여겨봐야 할 지점 중 하나다.
[본문 소개 대목 생략]
《상업사회의 정치사상》은 이 정도의 요약으로 다 담아낼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쟁점과 깊이 있는 논평으로 가득한 책이다. 특히 국제적인 경쟁이 노골적으로 가시화하고 있는 지금, 혼트의 시선은 그 자신이 의도했던 것처럼 18세기 유럽만큼이나 오늘날 우리가 속한 세계의 난관 또한 정확히 관통하고 있다. 독자들이 책을 천천히 여러 번 음미하면서 명민한 지성사가의 사유와 통찰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갈 수 있길 바란다.
이제 혼트가 기다리는 강연장으로 들어가자.
해제 부록: 이슈트반 혼트의 저작 목록
I. 편저 및 단독저서
István Hont and Michael Ignatieff, eds. Wealth and Virtue: The Shaping of Political Economy in the Scottish Enlightenment.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3. [《부와 덕: 스코틀랜드 계몽에서 정치경제학의 형성》]
Jealousy of Trade: International Competition and the Nation-State in Historical Perspective. Cambridge, MA: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2005. [《무역의 질투: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국제 경쟁과 국민국가》]
Politics in Commercial Society: Jean-Jacques Rousseau and Adam Smith. Béla Kapossy and Michael Sonenscher, eds.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15. [《상업사회의 정치사상: 루소와 스미스로 읽는 18세기의 정치경제학》]
Political Economy from Pufendorf to Marx: Culture, Needs and Property Rights. Lasse S. Andersen, Béla Kapossy, and Richard Whatmore, ed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5 [《푸펜도르프에서 마르크스까지의 정치경제학: 문화, 필요, 소유권》, 2025년 10월 출간예정].
II. 논문
“Needs and Justice in the Wealth of Nations.” In Wealth and Virtue, pp. 1-44. [<《국부론》에서 필요와 정의>; 《무역의 질투》 6장으로 재수록]
“The “Rich Country–Poor Country” Debate in Scottish Classical Political Economy.” In Wealth and Virtue, pp. 271-316. [<스코틀랜드 고전 정치경제학에서 ‘부국–빈국’ 논쟁>; 《무역의 질투》 3장으로 재수록]
“The Language of Sociability and Commerce: Samuel Pufendorf and the Foundations of Smith's Four Stages Theory.” In Languages of Political Theory in Early Modern Europe. Anthony Pagden, e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6, pp. 253-76. [<사회성의 언어와 상업: 푸펜도르프와 스미스 4단계 이론의 토대>; 《무역의 질투》 1장으로 재수록]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Unnatural and Retrograde’ Order: Adam Smith and Natural Liberty.” In Französische Revolution und Politische Ökonomie. Schriften aus dem Karl-Marx-Haus, vol. 41. Trier: Friedrich-Ebert-Stiftung, 1989, pp. 122-49. [<‘부자연스럽고 역행적인’ 순서의 정치경제학: 애덤 스미스와 자연적 자유>; 《무역의 질투》 5장으로 재수록].
“Free Trade and the Economic Limits to National Politics: Neo-Machiavellian Political Economy Reconsidered.” In The Economic Limits to Politics. John Dunn, e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0, pp. 41-120. [<자유무역과 국가 정치의 경제적 한계: 신마키아벨리적 정치경제 재고>; 《무역의 질투》 2장으로 재수록]
“The Rhapsody of Public Debt: David Hume and Voluntary State Bankruptcy.” In Political Discourse in Early Modern Britain. In Nicholas Phillipson and Quentin Skinner, ed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pp. 321-48. [<국채의 광시곡: 데이비드 흄과 자발적 국가 파산>; 《무역의 질투》 4장으로 재수록]
“Commercial Society and Political Theory in the Eighteenth Century: The Problem of Authority in David Hume and Adam Smith.” In Main Trends in Cultural History. Willem Melching and Wyger Velema, eds. Amsterdam: Rodopi, 1994, pp. 54-94. [<상업사회와 18세기의 정치이론: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의 권위 문제>]
“The Permanent Crisis of a Divided Mankind: “Contemporary Crisis of the Nation State” in Historical Perspective.” Political Studies, 42:1s (1994), pp. 166-231. [<분열된 인류의 영원한 위기: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오늘날 국민국가의 위기’>; 《무역의 질투》 7장으로 재수록]
(Hans Erich Bödeker와 공저) “Naturrecht, Politische Ökonomie und Geschichte der Menschheit: Der Diskurs über Politik und Gessellschaft in der Frühen Neuzeit.” In Naturrecht—Spätaufklärung–Revolution. Otto Dann and Diethelm Klippel, eds. Hamburg: Meiner, 1995, pp. 80-89. [<자연법, 정치경제학, 인류사: 초기 근대에서의 정치와 사회 담론>]
“Irishmen, Scots, Jews and the Interest of England’s Commerce: The Politics of Minorities in a Modern Composite State.” In Il Roulo Economico delle Minoranze in Europa secc. XIII-XVIII. Simonetta Cavaciocchi, ed. Florence and Prato: Le Monnier, 2000, pp. 81-112. [<아일랜드인, 스코틀랜드인, 유대인, 그리고 잉글랜드 상업의 이해관계: 근대 합성국가에서 소수자들의 정치>]
“The Early Enlightenment Debate on Commerce and Luxury.” In The Cambridge History of Eighteenth-Century Political Thought. Mark Goldie and Robert Wokler, ed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pp. 379-418. [<초기 계몽사상의 상업과 사치 논쟁>]
“Correcting Europe’s Political Economy: The Virtuous Eclecticism of Georg Ludwig Schmid.” History of European Ideas, 33:4 (2007), pp. 390-410. [<유럽 정치경제를 교정하기: 게오르크 루트비히 슈미트의 덕성스러운 절충주의>]
“The ‘Rich Country–Poor Country’ Debate Revisited: The Irish Origins and French Reception of the Hume Paradox.” In David Hume’s Political Economy. Margaret Schabas and Carl Wennerlind, eds. London: Routledge, 2007, pp. 243-321. [<‘부국-빈국’ 논쟁 재론: 흄 역설의 아일랜드적 기원과 프랑스 수용>]
“Adam Smith’s History of Law and Government as Political Theory.” In Political Judgement: Essays for John Dunn. Richard Bourke and Raymond Geuss, ed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9, pp. 131-71. [<애덤 스미스의 정치이론: 법과 정부의 역사>]
III. 헌정논문집 및 문서고
세인트앤드루스대학 지성사연구소 지성사문서고 이슈트반 혼트 컬렉션 [https://arts.st-andrews.ac.uk/intellectualhistory/items/browse?collection=40].
Béla Kapossy, Isaac Nakhimovsky, and Richard Whatmore, eds. Commerce and Peace in the Enlightenment.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7. [《계몽사상의 상업과 평화》]
Béla Kapossy, Isaac Nakhimovsky, Sophus A. Reinert, and Richard Whatmore, eds. Markets, Morals, Politics: Jealousy of Trade and the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18. [《시장, 도덕, 정치: 무역의 질투와 정치사상사》]
1) 혼트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 리처드 왓모어, 이언 맥대니얼, 안두환, 오석주 선생님, 그리고 세인트앤드루스대학 지성사연구소 문서고 이슈트반 혼트 컬렉션 아키비스트 라세 안데르센Lasse Andersen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2) 1절의 서술은 주로 다음의 자료에 기대고 있다: Béla Kapossy, Isaac Nakhimovsky, Sophus A. Reinert, and Richard Whatmore, “Introduction,” in Béla Kapossy, Isaac Nakhimovsky, Sophus A. Reinert, and Richard Whatmore (eds.), Markets, Morals, Politics: Jealousy of Trade and the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18), pp. 1-22 중 특히 1-15; István Hont, “Curriculum Vitae” (2010); John Robertson, “István Hont (1947–2013)” (2013). 로버트슨의 추도사와 혼트의 이력서는 세인트앤드루스대학 지성사 문서고 이슈트반 혼트 컬렉션에서 열람할 수 있다. https://arts.st-andrews.ac.uk/intellectualhistory/collections/show/40
3) 해당 강연문은 현재 영어권 학계에서 “케임브리지 모먼트The Cambridge Moment”라는 잘못된 제목으로 인용되고 있으나, 정확한 제목은 “18세기 정치사상에서 상업과 정치Commerce and Politics in Eighteenth-Century Political Thought”이다.
4) 필립슨의 스코틀랜드 계몽 연구에 대한 간략한 개괄로는 다음을 참조하라. 이우창, <문인의 글쓰기와 지성사적 전기: 제임스 해리스, 《데이비드 흄: 지성사적 전기》(2015)>, 《교차 3호: 전기, 삶에서 글로》, 읻다, 2022, 143~169쪽, 특히 154~158쪽.
5) 혼트는 스튜어트에 관한 논문 두 편, 맬서스에 대한 논문 한 편을 수록할 예정이었으며, 이중 전자의 흔적은 이후 《무역의 질투》 서론 곳곳에서 나타난다. 《애덤 스미스 이후》의 목차 및 원고 일부를 열람하게 해준 안데르센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6) 마르크스 이전까지 정치경제학적 분석이 변모해온 역사를 다시 쓰고자 했던 혼트는 19세기 및 20세기의 관점이 강하게 담긴 ‘자본주의’ 대신 그러한 관념이 득세하기 이전인 18세기에 근거한 ‘상업사회’ 개념을 선호했다.
7) 혼트는 마르크스 사상의 자연법적 기원에 대한 논문을 포함해 30여 편이 넘는 미출간 원고를 남겨놓았으며, 이를 살펴보면 출간 원고에 담긴 구상들 상당수가 오랜 수정과 숙고의 결과물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출간 시점에 따라 그의 지적 궤적을 재구성하려는 시도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짚어둔다.
8) 이는 다음과 같은 후속 연구를 통해 부분적으로 수정되었다. Fiammetta Palladini, “Pufendorf Disciple of Hobbes: The Nature of Man and the State of Nature: The Doctrine of socialitas,” History of European Ideas, 34:1 (2008), pp. 26-60.
9) 1980년대 포콕과 혼트의 지적인 대화에 관해서는 다음 논문을 참조하라. Lasse S. Andersen and Richard Whatmore. “Liberalism and Republicanism, or Wealth and Virtue Revisited.” Intellectual History Review, 33:1 (2023), pp. 131-60.
10) 해당 저술이 수록된 논문집 《정치의 경제적 한계》는 던, 포콕, 혼트와 같은 케임브리지 학파 외에도 경제학자 프랭크 한Frank Hahn과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커헤인Robert O. Keohane이 참여했다.
11) 《무역의 질투》에 수록된 판본에서는 삭제되었으나, <‘분열된 인류의 영원한 위기’> 최초 출판본은 서두에 코젤렉에 대한 논의를 담았다. 다음을 참조하라. Lasse S. Andersen, “Hont and Koselleck on the Crisis of Authority,” Journal of the Philosophy of History, 17 (2023), pp. 357-79. 케임브리지 학파 역사가들이 냉전 종식 전후 국민국가와 주권을 놓고 전개한 사유는 아직 제대로 탐구되지 않은 주제다.
12) 유사한 맥락에서 루소의 역사 서술을 재구성한 연구로는 다음 논문을 참조하라. 안두환, <장-자크 루소의 자기 편애의 추론적 역사학: 혁명과 전쟁>, 《정치사상연구》, 27(2), 2021, 9~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