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llectual History

맬서스, 『인구론』 관련 노트

BeGray 2023. 7. 31. 02:39

오늘도 바쁘니까 음슴체로.

지성사 연구 또는 수업을 할 때의 즐거움 중 하나는 모두가 이름은 알지만 (그리고 내용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읽어보지는 않는 텍스트를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 지난 학기 수업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는데,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 (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이 그중 하나임.


1.

한국에 관련 연구는 물론 번역서도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이라 (일본의 경우 칸토가쿠인대학에 수고본을 포함한 맬서스 문헌들이 꽤 소장되어 있음) 거의 제로베이스에서 이야기해야 하는데, 1798년 영국 내 프랑스혁명 논쟁을 염두에 두고--사실 이때쯤엔 이미 누가 우세한지는 대충 결판이 난 시점이긴 함--나온 초판은 복합적인 성격의 에세이라고 할 수 있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교과서적인 공식, 즉 식량 증가값과 인구 증가값을 통해 충격적인 '인구감소'가 필연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논지도 제시되지만, 당연히 그게 전부가 아님.

먼저 <인구론> 초판은 400쪽 가까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논쟁팸플릿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텍스트임. 실제로 영어 문장을 읽어보면 바로 알 수 있는데 맬서스는 정말정말 쉽게 읽히는 짧은 문장을 쓰고 문단 길이도 대체로 짧은 편. 프랑스혁명기 팸플릿은 몇 개 보지 못했지만, 에드먼드 버크와 톰 페인을 양극단(?)으로 놓고 평가한다면, 굉장히 조심스럽게, 또 예의를 차리며 에두르는 스타일이라 그렇지 페인에 더 가까운 가독성을 자랑함(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면 버크의 <프랑스혁명에 대한 성찰> 원 문장을 읽어보면 바로 감이 올 것... 독학자 울스턴크래프트도 사실 문장이 그렇게 잘 읽히지 않음). 내용의 측면에서도 고드윈과 콩도르세, 프라이스 등을 비판적으로 논하는 부분이 전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함.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은 마지막 두 개의 장이 집중적으로 신학적 논변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임. 악과 신정론의 문제가 그것임. 여기서 맬서스는 한편으로 인간의 본성에 제거불가능한 결함이 있다고 전제한다는 데서 일종의 아우구스티누스주의적 포지션을 취함(<인구론> 서두부터 인간의 완전가능성perfectibility에 대한 비판이 언급되는데, 이는 프랑스혁명 지지자들이 해당 개념을 루소에게서 물려받아 전유하는 데 대한 비판이기도 하겠지만, 아우구스티누스-펠라기아누스 논쟁의 오랜 구도를 떠올리게도 함)--<인구론>의 핵심이 인간의 성욕/번식욕과 맞닿아있음을 고려하면 딱히 의외의 전개는 아님. 더불어 이러한 문제적인 본성에서 비롯되는 빈곤과 같은 '악'의 문제에서 신의 의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등이 언급됨.

(정치)경제학 혹은 사회이론 전통에서 맬서스를 독해하는 비전문적인 독자라면, 맬서스가 목사여서 저런 소리도 하나보다... 정도로 비웃을지도 모름(실제로 경제학 쪽 대중서에는 독신과 금욕의 강조에 대한 조소와 함께 종종 이런 식으로 언급되는듯). 하지만 이 주제는 그것보다는 진지한 눈길을 받을 가치가 있음.


첫째, 맬서스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개신교 목사가 아니라 잉글랜드국교회 소속 성직자였고(그는 케임브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함; 이때 옥스브리지 졸업은 국교회 성직으로의 통로 중 하나임), <인구론> 이후에도 관할 교구 관리가 생계를 지탱하는 주 수입원 중 하나임. 금욕은 18세기 국교회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주제 중 하나(그 함의를 여기서 일일이 적을 순 없음).


둘째, 빈곤/구빈법 문제와 (신학적) 악의 문제를 연결짓는 것은 맬서스 이후 19세기 빈곤론 관련 논의에도 계속해서 나타남. 예컨대 19세기 전반부 사회개혁론에서 무시할 수 없는 지분을 차지하는 카톨릭 사회개혁담론 저작 등(지금 서울대 서사과에 19세기 프랑스 사회개혁담론을 파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앞으로 어떤 연구를 내놓을지 기대됨). 아직 우리는 18-19세기 빈곤 담론의 역사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데, 맬서스의 텍스트에서 나타나는 신학적 논변은 단순히 '목사님의 습성' 정도로 치워버리기는 곤란하지 않을까 함.


2.

<인구론>이 판을 거듭하면서 계속해서 내용 수정이 이뤄졌다는 사실은 그래도 어느 정도 알려진 편. 그러나 그 수정의 방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짚어보는 예는 별로 없음. 이는 아마도 우리가 18-19세기의 '학술' 저작 장르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임. 간단히 말해 <인구론>의 후속 판본은 완전히 다른 저작이 되고, 초판의 '에세이'는 후속 판본에서 본격적인 학술 저작으로 탈바꿈하게 됨.

내가 이 사실을 깨닫게 된 건 전적으로 우연의 산물임. 1학기 수업에서 18세기의 인구-가족 담론을 다루는 주차 커리큘럼을 짤 때, 나는 당연히 <인구론> 초판본을 포함시켰음. 문제는 학생 중 한국사 전공자 비율이 꽤 높았다는 것. 대충 매주 한영 합계 5-600쪽 정도 읽히던 때라 '그냥 영어로 읽으세요~'라고 할 수가 없어서 일단 국역본을 찾아봄. 문제는 지금 구할 수 있는 동서문화사판을 보니 예상과 달리 초판본을 옮긴 게 아님. 심지어 무슨 판본을 참고했는지도 언급이 없음(...). 약간의 노고 끝에 국역본은 최종판본인 6판을 번역한 것을 알게 됨(누락 여부나 정확도 등까지는 대조를 안 해봐서 나도 모름). 근데 초판본과 너무 다른 책이 되어 있는 것.

<인구론> 초판 이후 맬서스는 두 차례 정도 유럽 여행을 다녀오면서 막대한 자료를 수집함. 그 결과 1803년의 2판은 600쪽 분량으로, 1806년의 3판에서 최종판인 1826년의 6판은 500쪽이 넘는 2책 구성의 육중한 분량이 됨. 분량의 증가와 함께 책의 구성 역시 변화함. 혁명기 논쟁팸플릿으로서의 성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제 1800년대에 접어들면 고드윈이나 콩도르세 비판은 별다른 시의성이 있는 주제가 아니게 됨. 대신 맬서스의 주된 관심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뻗어있는 듯함.

하나는 인구 증감의 일반적 원리를 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당대에 제기된) 인구/빈곤문제에 대한 제도적 대응책을 하나씩 평가하는 것임. 이런 점에서 <인구론>은 여전히 정치적-정책적 논쟁에 개입하는 저작으로서의 성격을 유지하고 있고, 이는 이 텍스트를 깊이 있게 읽기 위해서는 언어맥락주의적 접근법이 필요함을 말해 줌; 가령 4부 6-7장은 18세기 정치담론의 자유(liberty) 개념을 어느 정도 알아야 맬서스가 왜 이런 내용을 하나씩 언급하는지 이해할 수 있음(여기엔 '자유주의' 연구는 거의 쓸모없고, '공화주의' 연구는 부분적으로만 도움이 됨--18세기 '자유' 개념은 전통적인 공화주의 정치언어로만 담아낼 수 없기 때문).

다른 하나는 인구 증감 문제를 중심으로 일종의 문명사-보편사를 정리하려는 것임. 당황스럽게 들릴 수 있는데, 국역된 6판 목차를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음. <인구론> 6판 1부는 아메리카, 미크로네시아부터 고대 그리스, 로마에 이르기까지--여기서 근대 이전 세계사 서술이 그리스와 로마로 끝나는 것은 19세기 인류학/세계사에서 일반화된 관습이 됨--세계에서 '덜 문명화된 부분'의 인구증감 문제를, 2부는 근대 유럽의 '문명화된' 국가들의 상태를 다룸(특히 2부에서는 인구통계표가 적극적으로 사용됨). <인구론> 개정증보판은 (당시 맬서스에게 가능했을 범위 내에서) 세계사적 시공간을 놓고 거기에서 각 민족 별로 문명단계, 풍속, 제도, 인구증감의 상호작용을 분석하고, 이로부터 일반적 원리들을 도출하고자 함. 적어도 몽테스키외의 저작 이래 본격적으로 구축된 18세기 계몽주의 문명사의 서술방식이라면, <인구론>의 개정판은 이러한 장르의 문제의식과 관점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음. 달리 말해, 이 책은 19세기 사회이론과 18세기 계몽사상, 특히 문명사적 성찰 사이의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예시임.


3.

수업에서는 최소한의 참고문헌만을 보고 넘어갔기 때문에 나도 맬서스 관련 연구동향은 관련 자료만 조금 모아놓은 수준. 여튼 2010년대 들어서 맬서스를 다룬 연구단행본이나 학술지 특집호가 빈번하게 눈에 띄는데, 한국에서는 관련 스칼라십이 비어있음(도널드 윈치Donald Winch의 VSI 시리즈 맬서스 편 정도는 큰 어려움 없이 번역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이것도 이미 오래된 책이긴 함). 18세기 계몽사상을 어느 정도 판 사람이 들어가면 판 만큼 건질 수 있는 게 많으리라 생각. "정치경제학"이나 오늘날의 "맬서스주의"에 묶이지 않고 그냥 죽 읽으면, <인구론>은 아주 흥미로운 텍스트임--심지어 젠더 문제에 있어서도 그러함.

근대 초까지 인구담론의 역사를 살펴볼 분에겐 작년 Ideas in Context 총서로 나온 Ted McCormick, Human Empire: Mobility and Demographic Thought in the British Atlantic World, 1500-1800 을 추천함. 푸코-이언 해킹 으로 이어지는 인구통계 담론의 과학기술사-통치성 연구와 영국식 지성사를 결합한 연구로, 16-18세기 인구담론의 형성과정을 검토한 뒤 결론Conclusion에서 맬서스의 <인구론> (초판)이 18세기 계몽 담론의 주제를 충실히 계승하면서 어떻게 그 방향을 뒤바꾸고 있는가를 보여줌. 연구 모델의 차원에서도 흥미롭고, 마치 맬서스로부터 인구조절 논의가 시작된다는 식의 잘못된 인식을 교정하는 데도 도움이 됨(플라톤의 <법률>에서부터 이미 도시국가 인구수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은 중요한 쟁점이었고, 이는 곧 가정 및 성 풍속을 정치체가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했음).

 


Cf. 통치성 연구의 영향과 함께, 한국의 서구 인구 담론 연구에서도 푸코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록, 특히 <안전, 영토, 인구>가 종종 인용됨. 해당 강의록에서 푸코가 보여준 통찰은 깊이 있게 음미할 가치가 있지만, 해당 강의록(및 이후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초기 근대 영국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푸코의 서술이 곧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믿으면 곤란함. 푸코는 영국사 스칼라십에 제한적으로 접근한 듯 싶고,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날개를 피고 있던 케임브리지학파의 연구는 거의 몰랐던 것으로 보임. 18세기 영국 관련 역사적 사실관계의 차원에서 푸코를 인용하는 것은 인용자가 18세기 영국 전문가가 아님을 보여줌.

영국 관련 역사적 사실관계의 오류는 편집자들의 주석에서도 나타나는데, 가령 <안전, 영토, 인구> 3강 주석 13번(국역본 106쪽)에서 편자들은 영어에서 "population"이 양적 개념의 "인구"를 가리키는 첫 용례가 18세기 중반 데이비드 흄의 저작에서 처음 나타난다고 쓰지만, 실제로 OED "population" 항목에서 가리키는 용례를 따라가면 17세기 전반부 프란시스 베이컨의 Essays에서 해당 용례를 찾을 수 있음. 편집자들은 베이컨의 텍스트에 등장하는 "population"은 후대의 번역본에서 나오는 단어이며 17세기 판본에는 찾아볼 수 없는 것처럼 말하지만, OED 해당 항목에서 예를 들듯 1625년 런던에서 출간된 The Essays Or Counsels, Civil and Moral, 83쪽(15번 에세이)에 명확히 해당 단어가 등장함. 즉 "population"의 용례에 관련된 푸코의 설명도, 강의록 주석자들의 설명도 모두 그대로 신뢰하고 인용할 수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