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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 일기: 18세기 역사쓰기, 한국사의 시대구분, 인문사회 교육의 질문

BeGray 2019. 5. 5. 20:54
[4월 27일 페이스북 포스팅]

지난 한 달 간 너무 바빠서 페이스북&블로그에 거의 접속할 시간이 없었다(사실 내일 저녁 세미나 리딩을 포함해 지금도 할 일이 있다). 명백한 개점 휴업계정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에 페이스북도, 블로그도--아마도 티스토리 블로그가 이제 네이버와의 경쟁을 위해(?) 개별 포스팅 클릭을 기준으로 방문자 수를 측정하는 뻥튀기를 한 게 아닌가 싶지만--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놀라웠다. 그동안의 몇 가지 일정 및 생각들을 간략히 기록한다.

1. 4월 중순까지 가장 바빴던 일은 18세기 사료세미나 발표. 17세기 중반의 공화주의 역사모델부터 18세기 초중반의 '근대' 휘그역사 모델의 등장까지를 최소한의 자료만 갖고 간략하게 훑으려고 했다. 제대로 정리하려면 따로 포스팅을 써야 하는데 (어차피 박사논문의 첫 챕터가 이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결국 나의 질문은 이거다. 영국인들이 지금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 즉 "근대"를 고대, 중세(혹은 "고트적" 시대)보다 명확히 우월한 "문명화된" 시대라는 역사적 서사를 만들게 된 것은 언제, 어떻게인가?

가령 1656년의 제임스 해링턴, 1681년의 헨리 네빌, 1698년의 앤드루 플레처에게 현재는 기본적으로 고대 로마의 붕괴 이후 위험과 쇠락의 시대였으며, 고대의 자유와 덕성은 그것이 고트족으로부터 내려오는 고대 잉글랜드인들의 자유이든, 로마공화국의 덕성이든 여전히 중요한 지향점으로 남아있었다. 18세기 영국은 한편으로 이러한 고대 민족/공화국을 전범으로 "근대"를 비판하는 공화주의적 역사관이 지속되면서도, 동시에 그와 다른 역사적 서사, 즉 왕정복고와 명예혁명 이후야말로 고대보다도 더욱 진정한 자유가 성립한 시대라는 주장(존 허비, 1734), 나아가 "근대"가 상업, 풍속, 교양에서 과거보다 더욱 우월한 시대라거나(흄, 1750s) 인류사의 진보(윌리엄 로버트슨, 1769)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시각이 등장하고 또 확산된다. 우리는 후자의 "근대성"이 너무나 자명한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서사가 자연스럽게, 무無에서부터(ex nihilo) 탄생한 게 아니라는 사실에 좀처럼 주목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자료와 연구사를 뒤지면서 그림을 그려가다 보면 적어도 영국에서 이러한 서사가 생성·확산되는 과정에는 18세기 초중반의 휘그파 역사서술들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 같다는 추정을 하게 된다(제임스 해리스James Harris의 지적에 따르면, 대표적인 계몽주의 역사서 중 한 권인 흄의 <영국사>는 확실히 1720-30년대 이래의 휘그역사서들의 연장선에 있다). 서양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과거의 사람들도 역사서를 썼다는 사실, 그것도 매우 많이 썼다는 사실에 별 관심이 없을텐데, 이미 17세기 후반부터 영국에서는 역사서가 중요한 정치적/사회적 논쟁의 수단이었으며, 18세기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엄청난 수의 역사서들이 쏟아진다(...). 문제는 18세기 초중반의 휘그 역사가들 중에서도 일부만 고른다고 해도 그 저작들이 하나하나 수천 쪽 짜리라는 사실에 있는데... 일단 되는 대로 시간을 쏟을 생각이다.

이거 말고도 18세기 잉글랜드 계몽주의 연구를 계속 쫓아들어가고 있는데 상세한 설명은 다음 언제가로 넘기자.

2. 발표 이후 지난 주말에는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주관한 좌담회에 패널로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대략의 주제는 (설민석으로 대표되는) 역사대중화 현상과 한국 근현대사 였는데, 여러 논의들이 풍성하게 나온 자리였으니 상세한 소개는 5월 중 출간될 지면을 안내하는 것으로 하고, 개인적인 소회만 짧게 남긴다. 1980년대 이후의 한국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서사들 간의 투쟁에는 약간의 관심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근현대사에는 문외한이기 때문에 부족한 시간에나마 꾸역꾸역 이런 저런 자료를 뒤져보고 갈 수밖에 없었는데, 거기에서 받은 기본적인 인상은... 설민석의 이야기는 종종 과장되거나 사실관계가 틀린 지점이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으로는 EBS수능특강 교재, 좀 더 근본적으로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설정한 역사관에서 벗어나는 건 잘 없다. 다시 말해, 설민석이 고양하는 과장된 감정이나 '국뽕' 비슷한 것들이 있다면, 그건 기본적으로는 한국사학계가 지금까지 만들고 국편을 통해 확산해온 역사적 서사에 이미 깃들어 있던 가능성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번에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건 설민석이 아니라 EBS 수능특강 한국사 교재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10여년 만에 봐서 더 그런 거겠지만, 애초에 서구인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그것도 구체적인 정치적/문화적 논쟁을 거쳐 만들어 냈으며 지금도 계속 수정 중인 고대-중세-근대 모델이 한국사에 투사되는 건 무척 당황스러운 광경이고(특히 앞서 1번에서 언급한 주제를 파고 있는 입장에서는), 19세기 후반 이래 한반도의 여러 항쟁이 '반봉건'적이라는 태그가 붙여지는 것도 무척 괴이하다. 애초에 조선시대가 서구의 (거기에서도 나라마다 다 다르지만) '중세'였던 것도, 주군과 영주들, 가신들 사이에 '봉건적' 토지소유모델이 운용되었던 것도 아닌데(17세기 영국에서 중세와 봉건법의 역사를 둘러싸고 중요한 정치적-학문적 논쟁이 벌어지기 때문에 이게 더욱 눈에 띤다), 도대체 반봉건이 여기서 왜 등장해야 하는 건가? 물론 "봉건"의 이러한 시대착오적 용법이 (봉건="중세적" 잔재=전근대적인 악습이라는 도식을 설정했던) 마르크스주의 역사모델과 깊은 연관성이 있으며, 20세기 내내 한국 역사학계에서 반드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용법 및 그와 맞물린 역사도식을 채택해왔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심각한 시공간적 착오가 오늘날의 공식적인 한국사 서사에도 그대로 퍼져있는 광경은 솔직히 당혹감을 멈추지 못하게 한다.

공인된 한국사가 기본적으로 민족과 국가를 주어로 한다는 사실, 모든 시대의 문화/과학/학문은 "발달"로만 설명된다는 사실(매 순간 발달한다면, 도대체 이 나라들은 왜 망하는 것인가?), 조선시대까지 중앙집권과 왕권강화는 항상 정치적 발전인 것처럼 그려진다는 사실 등등을 포함해 EBS 교재에서 나타나는, 그리고 한국사학계의 여러 연구자들이 여전히 공유하고 있는 역사서술의 심각한 시대착오는 나 말고도 많은 연구자들이 너무나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말할 수 있는 점은, 한국사의 역사모델이 서구 특정시기의 역사모델을 본뜬 채 민족/국가의 시련 및 발전의 역사라는 서사를 결합했다는 사실을 비판하지 않는다면--민중사관이든 뉴라이트사관이든 차이는 없다--이러한 시대착오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은 계속 발생할 거라는 사실이다.

3. 4월 말까지의 바쁜 일정이 끝나고 <지성사란 무엇인가?> 번역을 재개했고, 몇 달 만에 (이 책에서 가장 긴) 2장 초역을 끝냈다. 하면 할수록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를 느끼게 되는 일인데, 어쨌든 5월 중에는 초역을 마치는 게 목표다.

4. 여러 가지 일들 끝에 현재는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 운영위 교육분과에 대학원생 위원으로 들어가 있다(조찬회의가 제일 힘들다). 처음에는 약간 '또 학생사회를 마음대로 하려는 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고 들어갔는데... 자료들을 보니 2016년 본부점거 사태 이후로 시흥캠퍼스의 교육/학생 관련 논의 자체가 사실상 터부시 된 상황이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정말 교육/학생 관련 논의가 충실할 정도로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거기에 1단계 건설에 소요될 예산이 이미 거의 용처가 정해졌기 때문에 학생 관련 건축을 요구하고 싶어도 예산이 없다...). 약간은 냉소적인 코미디의 배우가 된 기분인데, 대학원총학생회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의무는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미래의 서울대 대학원생들에게 최대한 많은 가능성 및 효용을 제공하는 데 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학생/교육 관련 계획을 뭐라도 집어넣으려고 계속 고민하고 있다. 지금 뭐라도 계획안에 넣어놔야 몇 년 후 원생들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테니까.

여튼 쓰고 싶었던 건 조금 다른 주제인데, 전체 워크숍도 가보고 지금 회의에 가서도 느끼는 거지만 이렇게 캠퍼스, 혹은 좀 더 크게는 하나의 작은 사회를 기획하는 일에 인문/사회 전공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우리의 대학은 인문/사회 전공자에게 그러한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치고 있는지 계속 자문하게 된다. 특히 이공계 계열의 전공자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쪽 전공에는 바로 특정 분야의 실제 업무로 연결되는 지점들이 있으며 사업수행경험도 훨씬 풍부하다는 걸 느끼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나는 18세기 영국의 각종 문헌들을 (사실 내 전공이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이질적인 범위의 문헌들이긴 하지만) 읽고 있지만, 꼭 내가 아니라도 인문 전공자들이 한 명의 시민으로서 앞으로의 사회를 기획하고 건설하는 과정에 다양한 형태로 참여하게 될 일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무슨 몫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가? 물론 이공계 전공이 사회의 모든 문제들을 다루는 법을 가르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인문사회 전공자들이 기여해야만 하는 지점은 분명히 존재한다(확실히 현재까지 시흥캠퍼스의 구상은 '사회'에 대한 고려는 아직 부재한 것 같다). 내 질문은 우리의 교육이 전공자·학생들로 하여금 그러한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지에 있다.

우리는 무엇을 가르칠 수 있으며 가르쳐야 하는가? 각 전공별로 지금까지 논의되어 온 내용들을 전달하고 재생산하는 과정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기초학문'이라는 울타리 내에서 정작 사람들이 한 명의 시민으로서 미래의 문제를 효율적으로 대면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누락해온 게 아닌가 하는 질문을 이제 본격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P. S. 그 사이에 "글이 너무 길어서 안 읽게 된다"는 고백(?)을 여러 차례 접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애초에 내가 페이스북이든 블로그든 무언가를 쓰고 읽는 이유는 짧고 간략한 내용이 아니라 길고 주의 깊게 생각해볼 글들을 읽고 싶어서, 또 나와 같은 욕구를 지닌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서였다. 어차피 유튜브든 트위터든 뭐든 높은 접근성과 짧은 분량으로 읽고 볼 거리를 제공하는 곳은 어디든 널려있는 세상이니, 내가 매우 좁은 범위의 독자&대화상대를 대상으로 글을 쓰는 것 정도는 관대하게 받아들여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