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더링 하이츠>,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역사학을 혁신한 푸코"

Reading 2014. 3. 26. 01:22

어제는 유쌤이 번역하신 <워더링 하이츠>를 읽고 오늘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을 일독했다(방금 폴 벤느가 쓴 "역사학을 혁신한 푸코"도 읽었다). 유쌤의 번역퀄리티야 예전부터 익히 들었는데, 직접 몇 권이나 받았으면서도 읽게된 건 정작 이번이 처음이다--<역사로서의 영문학>은 세 번 정도 읽었는데, 문학에 별 흥미가 없는 문학전공자다보니까...; 원 텍스트를 다음 주에 읽으니까 그때 보면 확실히 알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유쌤의 국역본을 읽어도 어떤 울림을 받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수십년 안 쪽에는, 그러니까 유쌤의 한국어 자체가 낡은 것이 되기 전까지 이거보다 잘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적어도 한국소설을 읽는 것처럼 잘 읽히는 게 번역의 한 모범이라면 말이다) 너무 어릴 적에 읽고 오랜만에 다시 읽은 셈이라 거의 새롭게 읽혔다. 아마 다음 주부터 텍스트분석을 하기 시작하면 이야기할 게 더 많으리라 생각한다.


푸코는 뭐, 어차피 세미나에서 앞으로 한 달 간 더 꼼꼼하게 읽을 예정이니까 깊게 덧붙일 건 없다. 다만 거의 35년 전에 행해진 강의임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의 이론적/철학적 성찰에서 오늘날 이것과 맞먹을 수 있는 텍스트를 한국에서 거의 보지 못했다는 게 안타깝다. 비교적 동시대의 문제에 집중하는 강의임에도 불구하고, 푸코는 꽤나 자유롭게 시대를 넘나들기 때문에 나처럼 18-19세기에 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참고할 게 많다. 아니, 이건 너무 약한 진술인데, 왜냐하면 푸코는 정치경제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 결정적으로 시민사회에 관해 통설을 거의 뒤흔들어놓는 관점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아담 퍼거슨Adam Ferguson을 직접 인용하는 사람도 거의 처음 본다!) 정치적 강령으로서의 자유주의, 그리고 경제적 이론으로서의 자유주의를 '정치적 실천', 그러니까 그 자신이 <안전, 영토, 인구>에서 제시했던 통치성의 분석틀에 맞춰 풀어내면서 푸코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결론은 꽤나 충격적이라서, 그것을 활용하기 위해서든 비난하기 위해서든 제법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언젠가 다음에 적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안전, 영토, 인구>가 푸코가 통치성의 분석이라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서구의 역사를 그 방법론에 따라 재구성하는 작업이었다면,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은 자신이 앞서 제시한 방법에 따라 근대의 가장 중요한 통치성의 도구 중 하나인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실천들을 낱낱이 파헤친다. 자신이 직접 제시하는 모범적 사례랄까. 그 당시에 벌써 스키너의 심리학적 작업과 신자유주의적 인간관의 연계 같은 걸 짚었다는 점은 푸코가 동시대의 문제들을 단지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았을 뿐 능력의 부족 때문에 못한게 아니었음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참, 푸코가 시민사회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은 가라타니의 최근작업인 교환양식적 분석과 굉장히 맞닿는다(예전 <세계사의 구조>가 처음 나왔을 때 가토 노리히로였던가, 하여간 일본의 누가 푸코 말년의 작업과 비교하면서 가라타니보고 '공부가 부족하다'고 코멘트 했었는데, 지금 푸코를 읽으면서 조금 그 코멘트의 배경이 이해가 간다).


벤느의 글은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에 수록되어 있다. 1978년에 집필된 글이니 앞서 언급한 두 강의록과 거의 동시대에 나온 셈이다. 두 강의록에서 푸코가 직접 보여주고 있는 자신의 방법적 태도--물론 그걸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보이겠지만--를 푸코 자신의 언어보다 좀 더 어렵게^^; 설명하고 있는데, 조금 산만해보이지만 나름 역사분석의 태도에 관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논지를 유지하고 있다. 한번 정도 읽고 음미할 글이라고 생각한다. 이데올로기와 같은 선험적인 전제들을 전부 걷어내고 '실증적인' 태도에 입각해서 역사를 서술하는 것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실천이라는 차원에서 역사를 기술하고 인간들의 행위의 의도를 어떻게 그 자체에 가깝게 읽어낼 것인가라는 점에서 푸코의 방법론을 평가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사실 너무 평이한 풀이인데, 벤느도 자신의 주장이 대충 써놓으면 뭐가 특이한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서인지 그 '차이'를 언어로 포착하기 위해 본인도 고생하고 독자도 고생시키는 측면이 있긴 하다. 아마 푸코에게 있어서 실천, 장치, 절차와 같은 도구가 갖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벤느를 읽어도 아리송하긴 비슷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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