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수업 기록[140407]

Comment 2014. 4. 9. 01:37

두 번째 수업 끝.

2차 과제 총평은 조금 엄격하게 했다. 솔직히 학생들에게 '읽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은 상태에서 읽기가 필요한 과제를 내주면 서로가 힘들다는 걸 확인한 게 이번 과제의 소득이지 않은가 싶다(물론 읽기능력은 결코 단숨에 성취되지 않는다...). 다들 수업 여러 개 듣는 것도 알고, 이제 중간고사의 압박을 받고 있는 것도 잘 안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grading이 없는 수업의 과제를 무신경하게 쓰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는 것도 잘 알고...(왜 불필요한 요약을 넣었을까, 왜 쓸데없는 배경지식을 채워넣었을까 잘 이해가 안 됐는데, 책을 아예 다 못 읽었다고 보면 되는 단순한 문제였다) 돌이켜보면 조금 더 부담이 적은, 기본적인 과제를 냈어야 하지 않나 싶다. 학생들은 여전히 개인의 심리에 초점을 맞출 때 그나마 솔직함이 배어 있는 글을 써낸다. <적과 흑>을 끝까지 읽은 학생이 그렇게 많을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세 번째 과제는, 지금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원래 계획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이 소설들은 생각보다 낯설고 어렵다.

이번 수업은 강의 비중이 토론보다 높았다. 한 1/5 정도 졸거나 스마트폰으로 도피하는 게 보였는데(어떤 학생들은 정말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학생들의 마음을 끌고가는 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grading을 하는 수업이었다면 그냥 구석에 가 있거나 나가도 된다고 얘기해줬을텐데, 어쨌든 나는 이 수업에서 단 한 명의 이탈자도 없게 하고 싶다), 그래도 토론을 늘린 것보다는 낫지 않았나 싶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내가 시선을 돌리면 (옆에서 다른 학생이 몰래 깨우나?)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은 한다.

강의는 크게 두 파트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 파트는 배경지식. <적과 흑>의 종교를 이해하면서 오늘날의 관점을 무반성적으로 투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적어도 19세기 전반부까지의 유럽 텍스트를 읽을 때 기독교가 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절대로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쳤다. 이것 때문에 제4차 라테란 공의회, 트리엔트 공의회--둘 다 고해성사랑 관련이 있다--까지 뒤져보면서 자료조사를 좀 했다(당연히 미셸 푸코의 이름은 언급했다). 굳이 말하자면 이때까지의 기독교는 세상의 모든 것을 둘러싸는 얇은 막 같아서, 세계가 이해되는 방식, 세계가 지배되는 방식--당연히 교구가 떠오른다!--모두 기독교와 분리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수업시간에 언급은 안 했지만) E. P. 톰슨이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에서 조애너 사우스컷과 천년왕국운동을 설명하는 부분을 계속 떠올렸다.
그 다음 1789년부터 1848년까지 프랑스 혁명사를 아주 간략히 언급했다. 애들이 삼부회 소집이나 1,2,3 신분이 무엇인지는 그래도 고등학교 때 공부한 게 남아있어서인지 곧잘 대답을 하더라. 대프랑스 전쟁이나 방데 반란, 나폴레옹 3세의 즉위과정은 잘 모르겠지만. 이 과정을 대략 이해해야, 특히 귀족의 목이 1792년도에 얼마나 날아갔는지를 알아야 왕정복고 이후에도 귀족들의 무의식에 남아있는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다. 계급갈등까지 가려면 사실 좀 더 디테일하게 이야기했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모자랐다.
마지막으로 감수성sensibility와 소설의 문제. <적과 흑>에서는 쥘리앵 소렐과 레날 부인이 시도 때도 없이 기절하는데, 이건 확실히 감수성과 무관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감수성의 역할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 로 읽으면 <적과 흑>이 조금 더 명료하게 읽히는 면이 있다. 오늘 수업에서 마틸드를 거의 다루지 못한 게 매우 아쉽지만, 레날부인-쥘리앵-마틸드 모두 특정한 형태의 감수성과 무관하지 않다(그리고 이 셋의 배열은 각각 어떤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와도 연결이 된다). 스탕달은 거의 노골적으로 인물들 사이에 감수성의 능력에 따라 특정한 위계가 존재함을 보여주며, 그 감수성이 1830년대 프랑스, 즉 속물들의 시대에서 인물들을 도드라지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여튼 감수성과 소설 모두 이 텍스트에서 절대로 간과될 수 없는 주제다(아직 나는 이걸로 스탕달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별로 보진 못했는데, 실제 연구는 어디까지 되어있을지 모르겠다...내가 감수성에 대한 연구를 본 건 주로 영미권쪽이지만). 이 텍스트가 동시에 소설에 대해 아주 많은 언급을 한다는 것을, 그리고 스탕달의 소설관이 부분적이지만 직접적으로 드러난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사전지식만 강의하는 걸로도 30분이 지나갔다(원래 목표는 20분 정도였다). 클로즈리딩 강의를 훨씬 더 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모자란 것도 있고...결정적으로 내가 사전지식 준비하느라고 읽기 파트는 그다지 준비하지 못했다. 아마 고골을 다룰 때 조금 더 해야할 것 같은데, 고골이 워낙 까다로워서... 여튼 15분 정도 특히 맨 앞장을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 다시 말해 얼마나 속물적인 땅인지를 강조했다.

그 다음 토론 수업. 조별토론-전체토론의 포맷은 전과 같았다. 질문은 다섯 개를 준비했는데 사실 다 까다로운 것들이었다. 1) 쥘리앵 소렐은 다른 인물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인물인가? 그는 무엇이 특별한가? 2) 레날 부인과 마틸드의 비교 3) 결말의 의미 4) 쥘리앵의 성격과 <적과 흑>의 세계의 관계 5) <적과 흑>에서 소설이란 무엇인가? ; 질문이 까다로워진 것은 일차적으로 페이퍼에 나온 질문들이 대체로 흐리멍덩해서... 알고보니 책을 다 못 읽은 학생이 제법 있는 것 같았다. 토론은 어쨌든 특별히 졸거나 빠지는 학생이 없이 그럭저럭 비중 차이는 나더라도 다들 참여는 했다. 학생들 나름대로는 머리를 쓰려고 한 것 같은데, 사실 나온 답변들은 그렇게 성이 차지는 않았다. 애초에 세심하게 텍스트를 읽지 않은 이유도 있을 것 같고 (읽기 교육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했다)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까다로운 질문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 이유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학생들이 엉뚱한 소리할 때 약간 꼬장꼬장하게 틀렸다고 말해주었다-_-; 원래 질문들은 쉬운 걸로 내줘야 하는 게 맞는데, 전체적으로 오늘의 키워드는 '읽기'였고 이게 제대로 안 될 수 있다는 걸 감안하지 못한 내 실책이기도 하다...첫 수업이라면 이 정도로도 만족했을텐데, 두 번째라서 조금 더 많은 걸 해보고 싶었기에 아쉬움도 큰 수업. 알고보니 1시간 15분이 아니라 1시간만 수업하는 거라서, 오늘까지만 아이들의 한숨을 묵살하고^^; 1시간 15분을 하기로 했다. 고골은 어차피 내가 강의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서 토론이 많이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스마트폰은 확실히 치우게 했어야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지난 시간의 토론수칙을 다시 환기시키지 못한 것도 반성해야 할 부분. 돌이켜보면 준비를 좀 더 철저히 했어야 했다...

수업 끝나고 추천도서는 <세상의 이치> <혁명의 시대> <고리오 영감> <잃어버린 환상> <마담 보바리> <감정교육> 이렇게 여섯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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