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통치계급, 우파 엘리트들의 자기 이해 서사

Comment 2014. 6. 1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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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사: 새누리당 당직자들이 문창극의 온누리교회 영상 보고 적극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힌 내용을 소개)


누누이 주장해왔듯이 이게 이 사람들의 평균적인 인식이다. 절대로 특별히 엇나갔거나 튀는 게 아니다. 한국 사회의 우파-엘리트(근데 좌파 엘리트가 있나?-_-;)들은 통치자로서의 자기 자신과 피통치자들, 즉 자기와 같은 계급 외의 시민들을 엄격히 구별하며, 대체로 한국의 모든 문제들은 후자로부터 비롯된다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다. 우파 엘리트들은 사회의 각 위치에 모두를 위한 올바른 자리들이 위에서부터 아래에까지 정해져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으며 자신들이 그 위계질서에서 최정점에 위치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들의 관점에서 오늘날의 사회에 생긴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과도한 민주화", 다시 말해 위계질서의 흔들림으로부터 기인한다. 자신들처럼 뛰어난 통치자들이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견제당하며 천박한 하층계급들이 "제 자리에 있지 않고" 날뛰는 한 사회의 혼란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시장질서는 엄밀히 말해 자유로운 경쟁이 아니라 그들 자신들이 속한 계급을 맨 위로 올려주는 "자연의 섭리"를 재현하는 공간이다(환율조작을 비롯한 우파 정부 특유의 시장개입을 보라). 그들이 어떤 이론적인 언어와 수사로 자신을 포장하든 간에, 그들의 무의식의 핵심에는 16세기 이전으로 거슬러올라가는 이와 같은 사고틀이 자리한다. 내가 그들을 경멸하는 여러 이유들 중에 하나는 그들이 입으로는 근대화를 부르짖지만 사실 그 지성과 의식의 수준에서는 그야말로 전근대적인 존재들일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전근대적인 성격조차도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주제파악도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파 엘리트들(물론 이 용어는 그들이 실제로 지적으로 빈곤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심각한 문제가 있다)에게 '식민지 근대화론-이승만 국부론-개발독재 산업화론'이, 사실 이 셋을 엄밀하게 분석한다면 반드시 하나로 묶이리라는 보장이 없음에도, 하나의 일관된 이데올로기처럼 이어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들이 무엇일까? 나는 저 세 가지 이론 모두 1)권력이 집중된 소수의 통치계급이 전체 공동체를 성공적으로 이끈다는 서사를 제공하며 2)당시 한국에 존재하던 이질적인 주체들을 수치상의 평균으로 환원하면서 착취당한 약자들의 피해와 고통을 은폐하고 3)자신들의 정신적 빈곤을 은폐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위계를 뒤흔들 수 있는 정치적 변혁의 가능성을 제거하고 오로지 물질적인 층위의 성장만을 강조하면서 4)현재의 성공한 통치계급들, 속물로서의 자기 자신들의 위치를 정당화한다는 점들을 꼽고 싶다. 저 세 가지 이론의 결합물을 약간의 냉소를 섞어 "슈퍼-히어로" 서사라고 (실제로 최근 슈퍼-히어로 대중서사의 범람은 흥미롭지 않은가?...슈퍼-히어로 서사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히어로와 일반 대중이 매우 엄격히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때로 대중 사이에서 그들의 동료를--마치 선거에서 새로이 당선된 반짝스타처럼--찾아낸다고 해도 말이다) 부르자면, 우파 통치계급은 자신들이 슈퍼-히어로로 하늘로부터 (왜냐하면 대중들은 그렇게 인준해주지 않으니까) 인준받은 이들이라고 믿는다. 슈퍼-히어로가 무엇인지, 어떠한 자격을 갖는지, 무엇이 그들을 영웅으로 만들어주는지에 대한 반성 따위는 없이, 단지 현재 자신이 (겉보기에, 혹은 통장잔고나 생산수단이) 우월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통치자가 되어야 하며 하늘에서 피통치자들을 굽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자신들을 슈퍼-히어로로 "망녕되이" 일컬을 때, 여기에 (문창극이 무척이나 애착을 갖는 표현인) "신의 뜻"을 포함한 종교적인 서사가 끼어든다는 점은 전혀 놀랍지 않다.


 이들이 타락한 형태의 기독교, 속칭 "개독"으로부터 자신들의 서사를 취하는 방식은 분석할 가치가 있다. 문창극 및 그에 동조하는 우파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보통 물질적인 성장과 국제무대에서의 높은 평가로 정의되는) "신의 축복"의 매개물로 간주하며 마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듯 자신들이 한국의 피통치자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들이 구약의 서사를 활용하면서 그로부터 암암리에 취하는 전제가 진실로 흥미로운데, 이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은 선지자/왕의 잘못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타락했기 때문이다"라는 도식을 한국에 적용하고 싶어한다. 쉽게 말하자면 "한국이 잘 되는 건 자신=통치자들 때문이고 안 되는 건 너희=피통치자들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미개한 국민"으로 단번에 드러나는 우파들의 의식구조는 저 도식을 생각하면 분명해진다--정몽준은 "자식이 손가락을 잘못 놀렸다"고 덮으려 했지만, 그 부인이 "말은 맞는 말인데" 식으로 이야기한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한국의 평범한 10대들은 저런 식으로 이야기하진 않는다; "미개한 국민"은, 일베 유저 등을 제외하고는, 중2병에 걸린 10대가 쓰기엔 너무 스케일이 작고 수험에 찌든 10대가 쓰기엔 비현실적이다. 통상적으로 지금까지 엘리트들이 정치적/정책적 결정의 실패를 자신들이 져 왔음을 감안한다면, 현재 한국 우파 엘리트들의 무책임함이 보여주는 독특함은 위와 같은 서사를 통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떠한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정치 및 정책의 실패는 자신들이 아닌 대중/세계/우연적인 사건들로부터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진실로 기독교 서사를 취사선택하여 "개독"으로 활용한다. 그들은 구약에서 때때로 왕과 지도자들이 책임을 지고 목숨을 잃는다는 사실을 외면하며 하다못해 만인의 죄를 대속한다는 신약의 서사 따위엔 어떠한 관심도 없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정치적 사건들 중 유일하게 "비극적"인 코드로 해석되었던 노무현의 죽음이 우파들에게 (친노파의 정치적 기반이 되었다는 "실증적"인 해석 말고는) 어떠한 울림도 주지 못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들은 이해받지 못하는 선지자는 될지언정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처럼 책임을 지고 싶지는 않은 채로 언제까지나 피통치자들로부터 자신들을 갈라놓는 홍해 바다 안쪽에서 존경받으며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것이다--우파들로부터 자기 계급의 흥성을 보장한다는 것 이외에 어떠한 국가적 전망이나 분석이 나오지 않고 있는 이유가 달리 뭐가 있겠는가, 그들의 지적인 무능함을 빼고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현재 한국의 투표참여자들 중에는 우파 엘리트들의 계몽되지 못한 형태의 서사에 강한 매력을 느끼거나 그것이 가져올 해악에 무관심한 경우가 너무도 많다. 난 저들의 통치가 변함없이 지속되었을 때 문제가 될 요소 세 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1) 가장 큰 문제로. 우파 엘리트들에게는 통치자와 피통치자들의 분할은 너무나 확실하기 때문에 (정몽준이 "강남 3구에서 박원순 지지율이 높다는 사실에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외쳤을 때 이는 진정한 계급투쟁의 선포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단지 전통적인 도식과는 달리 부르주아들이 프롤레타리아들에게 외친 것일 뿐이다) 세월호와 밀양에서 드러나듯 이들은 통치계급의 이득을 위해 피통치자들의(그러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들의!) 재산, 권리, 심지어는 생명까지도 어떠한 죄의식없이 기꺼이 희생시킬 것이다. 2) 이명박의 사랑을 받았던 강만수로부터 특징적으로 드러나듯, 이들은 어떠한 정치적/정책적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며 만민의 고통보다는 자신의 곤궁함만을 강하게 느낄 것이다. 이른바 사회지도층이 어떠한 책임감을 보여주지 않을 때 사회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지금도 모두가 생생히 겪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3) 이들은 자신이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슈퍼 히어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떠한 반성도 하지 않으며 자신보다 열등한 이들의 충고나 조언, 비판은 전혀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한 마디로 이들은 자신들의 의식구조의 변화 자체를 거부할 것이다.


 행정경험이 전무할 뿐만 아니라 (과거 "신의 왕국", 그러니까 독재자들의 평화로운 철권통치기에의 향수...그러니까 우파 엘리트의 표준적인 정치관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정치적 비전도 없는 언론인 문창극의 국무총리 지명과 전 SBS 앵커의 문화부장관 임명을 볼 때 현재 한국의 통치계급이 실질적인 행정과 정치의 개선보다는 비판의 봉쇄와 여론조작을 기꺼이 선택하는 이들임은 분명해졌다. 비유컨대, 화재경보기가 울릴 때 이들은 불을 끄는 대신 경보기를 끌 것이다. 다만 화재가 건물과 거주자들을 다 태워먹을 때 가장 고층에서 이들은 달러를 한 아름 싸들고 자신들을 미국과 일본으로 운송해줄 전용 헬기를 기다리리라는 점만이 통상적인 화재와 다를 뿐이다. 글쎄, 이러한 통치계급들에게 사회의 헤게모니가 장악되는 한심한 사태의 반복이야말로 문창극이 말하듯 조선인들이 더 배우고 깨우쳐야 한다는 "신의 뜻"인가? 나는 무신론자로서 그 서사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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